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57)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57화(5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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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연합 본부 건물 맞은편에 있는 한 일식집.
그렇게 오래된 가게는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12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임에도 손님으로 북적거리는 맛집이다.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면 한국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돈까스나 우동 종류부터,
규동이나 부타동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일본식 덮밥이나 국물 요리도 팔고 있는 모양이었다.
“흐음… 이거 괜찮을 거 같네요. 냉우동에 돈까스 세트.
루미 씨께선 어떤 걸로 드실래요?”
시윤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키오스크 태블릿을 천천히 살피며 자신이 먹을 메뉴를 고르고는,
루미에게 태블릿을 건네며 물었다.
“저… 저도 같은 걸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루미는 메뉴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같은 걸 먹겠다 말했다.
애초에 지금 그녀는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아아… 왜 자꾸 이렇게 말을 더듬거리지?
시윤 씨에게 올바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어떻게든 바르고 올곧은 여성이자 히어로로서의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만,
자꾸만 붉어지는 얼굴과 더듬거리는 말투는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도화가 분명 엄청 얼음 같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귀엽기만 하잖아?’
물론 시윤은 딱히 그 사실을 알고도 별 신경도 쓰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면 돈까스 냉우동 세트 2개… 결제 버튼 누르고… 카드로.”
시윤이 결제 버튼을 누르고 자신의 카드를 꺼내어 계산하자,
루미는 다급하게 지갑을 꺼내어 결제를 취소하려 한다.
“제… 제가 사 드린다고 했는데…!”
“괜찮아요. 바쁜 분 불러내서 밥 먹자고 했는데 제가 사 드려야죠.”
엄청 비싼 가격의 메뉴를 먹는 것도 아닌데다가,
자신이 나오라고 불러냈으니 말은 그렇게 했어도 사줄 생각이었다.
“시윤 씨는…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이신가요?”
음식 주문과 결제를 마치고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를 동안,
루미가 용기 내어 먼저 시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것도, 입에 밴 딱딱한 사무적인 말투가 아닌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로.
“아… 가볍게 칵테일 바 하나 운영하고 있어요.”
시윤은 자신이 빌런 조직의 수장이라는 걸 숨기고,
S시 시내에서 자그마한 칵테일 바를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유토피아의 아지트 거실은 실제로 모던한 분위기의 바 컨셉으로 꾸며져 있는데,
시윤이 그런 분위기와 느낌을 선호하는 것이 이유다.
“혹시 이능력자… 는 아니신가요?”
절묘한 시야의 각도로 인해 다른 시민들과 요원들은 보지 못했지만,
루미는 엑스큐셔너의 등에 박힌 도끼창을 분명 보았다.
“이능력자… 라고 할 수는 있겠네요.
근데 뭐… 딱히 내세울 그런 건 아니라서.”
“그렇지 않아요…! 저를 구해주셨는걸요.”
“음식 나왔습니다!”
루미가 시윤이 이능력자인지에 관해 묻고 있던 사이,
금방 조리된 음식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무더운 여름 날씨를 시원하게 적셔줄 차가운 냉우동,
그리고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촉촉한 일본식 돈까스까지.
쯔유에 첨가된 싱그러운 레몬 냄새와 고소한 기름 냄새를 솔솔 풍기고 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네! 맛있게 드세요. 부족하면 더 시키셔도 괜찮아요.”
시윤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수저를 들고 식사에 들어갔지만,
루미는 아직도 떨리는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진정해… 그저 아는 사람과 식사를 하는 것일 뿐이야.
시윤 씨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 뿐이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기름진 돈까스를 한 입 베어물고,
시원한 쯔유 장국을 머금은 쫄깃한 면발을 조심스레 맛본다.
‘맛있다….’
돈까스의 단면에서 주르륵 흐르는 육즙과 기름이 고소한 맛을 자아내고,
쫄깃하면서도 질기지 않은 적당한 면의 탄력이 치아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엄청 맛있는데요? 요 며칠 먹은 음식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
자신도 본부 직원들에게 맛있는 곳이라 들었을 뿐,
정작 루미 본인은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가게.
우연히 찾아온 곳을 자신은 물론 시윤이 마음에 들어 한다는 사실에,
루미는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얼굴 근육을 풀고 여유롭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맛있다….’
평소에는 바쁜 임무와 자기 관리로 인해 조촐하고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했던 루미.
돈까스나 우동 같은 음식은 누구나 흔히 먹을 수 있는 메뉴이지만,
그녀에게는 정말 든든하면서도 특별한 식사였다.
“아! 엄청 맛있었어요.”
잠시 동안 말없이 조용하고 여유롭게 점심 식사를 마친 루미와 시윤.
두 사람 모두 깨끗하게 접시와 그릇을 비웠다.
“저, 저도…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가게를 나와 시윤에게 고개를 푹 숙이며 감사하다 인사하는 루미.
“아유! 그러실 거 없어요. 저도 덕분에 맛있는 요리를 먹었는걸요.”
시윤은 루미의 어깨에 손을 조심스레 올리며 그럴 거 없다며,
오히려 루미 덕분에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고 반응했다.
“그럼… 이제 돌아가셔야겠네요? 바쁘실 텐데.”
“아…! 아닙니다! 아, 앞으로 며칠 더 쉬기로 해서….”
“오! 그래요? 그럼 좀 더 놀러 다녀도 괜찮아요?”
“놀러… 다닌다구요?”
놀러 다닌다는 말에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는 루미.
왜 노는 지가 아니라 어떻게 노는 건지를 모르는 듯 보였다.
“네! 커피도 마시고… 노래방을 간다거나, 옷 같은 거 보러 가도 괜찮고…,
게임 좋아하시면 PC방이나 오락실도 있구요!”
‘다 가본 적 없는 곳들인데… 어떻게 하지?’
학창 시절에는 열심히 학업에만 전념하고,
이능력으로 히어로가 되고 나서는 쉬지 않고 일에만 전념했던 루미.
저 장소들이 정확하게 뭘 하는 곳인지는 전부 알고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볼 이유도 없거니와 딱히 갈 시간도 없었다.
다음 일정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여 천천히 근방을 돌던 중,
한눈에 봐도 사람들이 놀러 다닐만한 번화가로 보이는 곳을 찾아냈다.
“저쪽이 사람들 많이 돌아다니는 곳인 거 같아요!
버블티 가게도 있고… 이것저것 많이 있는 거 같은데요? 가요!”
“으아앗?! 시, 시윤 씨?!”
시윤이 자신의 손을 잡고 번화가를 향해 빠르게 달리자,
루미는 손을 잡았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면서도 그의 발걸음을 뒤따랐다.
그렇게 시작된 루미와 시윤의 데이트.
“엄청 쫄깃쫄깃하죠! 많이 마시면 살 엄청 찔 것 같은 맛이에요.”
“그러게요…! 엄청 달콤하고… 맛있어요.”
루미는 한번도 마셔본 적 없는 버블티를 마셔보기도 하고,
“이거 어때요? 엄청 웃기게 생겼죠.”
“네…? 아하핫…. 잘 어울려요.”
바쁜 일상에 늘 인터넷에서만 구매했던 옷들을 천천히 구경하거나,
시윤이 고르는 우스꽝스러운 액세서리를 보고 웃기도 한다.
한 명은 도시를 지키는 히어로,
그리고 한 명은 히어로를 사냥하고 도시를 어지럽히는 빌런.
하지만 지금 이 거리의 두 사람은 겉으로 보기엔,
그저 설렘이 파릇파릇 싹트기 시작한 커플처럼 보였다.
“으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렇게 번화가에서 즐길 만한 수많은 놀거리와 간식거리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고개를 내리기 시작한다.
“피곤하지는 않으세요?”
“괜찮아요…! 평소엔 엄청 험한 곳도 많이 다니는걸요.”
“역시 도시를 지키는 히어로님은 뭔가 달라도 다르시네요!”
“그리고… 시윤 씨와 함께 있으니까 즐거워요.”
분명 시윤이 채령 제압 작전 현장에서 보았던 루미의 얼굴은 정말 차가운 기계 같았지만,
지금 즐거워하는 이 자리의 루미는 정말이지 사랑스럽고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혹시 시윤 씨는… 피곤하세요?”
“아하하… 아무래도 늘 가게에서 한적하게 있는 날이 많아서 그런가,
약간 피곤하기는 하네요.”
“그, 그러시군요….”
시윤이 피곤해하는 뉘앙스로 질문에 대답하자,
루미는 혹시나 자신 때문이 아닌가 하고 풀이 죽은 듯 보였다.
“그럼 저희… 잠시 다른 곳에서 쉬다가 갈까요?”
“쉬다가… 간다는 건 어떤…?”
마침 두 사람이 선 곳은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어느 호텔.
그것도 도화와 시윤이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 익숙한 호텔이었다.
“편히 쉬면서 영화 같은 것도 보고… 마침 곧 저녁이니까 배달도 시켜 먹고.
요즘엔 호캉스라고 해서 휴가를 호텔에서 보내기도 해요!”
“아! 그… 그렇군요.”
‘호텔은 원래…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숙박업소로 알고 있었는데.
요즘엔 편하게 놀러 오는 곳이구나….’
물론 시윤은 자신이 말한 대로 행동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지만,
놀이 문화나 밤 문화에 전혀 문외한인 루미는 곧이곧대로 시윤의 말을 믿었다.
‘이 정도로 순진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시윤은 루미가 당연히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고,
만약 거절한다면 신체 조종 명령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주 잠깐 동안 고민하던 루미가 알겠다고 대답하는 걸 보며,
그녀가 히어로에 관한 것이 아니면 잘 모른다는 걸 확실하게 깨달았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어느새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 두 사람.
루미와 시윤은 영락없는 커플의 모습으로 호텔 안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