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6)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6화(6/117)
***
S시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어느 한 대로변 한복판.
“꺄아아아아악!!!”
“빌런이다!!! 으아아아아악!!!”
바쁜 일상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의 앞을 가로막는 한 남자가 있었다.
몇 년은 다듬지 않은 듯한 수염과 머리카락.
머리카락 속에 숨겨진 얼굴을 덮고 있는 파리 같은 방독면.
그리고 그 속에는 금방이라도 큰일을 저지르겠다는 비열한 미소가 있었다.
“크크크… 숨이 막힌다는 느낌이 뭔지… 한 번 느껴보라고. 케케케….”
구부정한 자세로 등에 지고 있는 커다란 통과 연결된 호스를 마구 휘두르는 남자.
그 호스에서는 정체불명의 가스가 뿜어져 나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덮쳤다.
시민들은 갑자기 나타난 빌런의 소행에 코와 입을 가로막으며 멀리 도망치거나,
차창을 닫고 히어로가 오기까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케헥!! 크하악! 수… 숨이…!”
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 이들은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가스에 직접 노출된 경우엔 거품을 문 채로 기절하기도 했다.
몸 곳곳에서 조금씩 유독성 가스가 새어 나오는 이능력을 가진 남자.
빌런 ‘그린 미스트’는 그 가스를 모으고 도시 한복판에 조용히 나타나 가스 테러를 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멈춰라! 빌런 ‘그린 미스트’!”
마치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를 다른 이들에게 퍼부으려는 듯한 그의 앞에 나타난 히어로.
히어로 네임처럼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주황빛 머리칼과 눈동자.
A급 히어로 ‘이그니션’이 그린 미스트 앞에 나타나 그를 멈춰 세웠다.
“히어로다! 히어로가 왔어!”
“여러분! 우선 멀리 떨어지세요! 위험합니다!”
시민들을 직접 가스가 퍼지지 않은 곳까지 대피시키며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쳇… 히어로잖아? 케케케… 딱 봐도 애송이 같은데.”
단독으로 행동하는 대개의 빌런은 개인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빌런은 히어로가 나타날 경우 도망치거나 겁을 먹어 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린 미스트는 이그니션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네 녀석이 더 이상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널 처단하겠다!”
“케케케…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처단하겠다는 이그니션의 호언장담과는 다른, 어딘가 불안한 듯한 표정.
그린 미스트에게는 그 불안함이 보였다.
그린 미스트는 10년 넘게 체포되고 탈옥하기를 반복한 베테랑 빌런.
정말 많은 시민들의 비명 소리와 히어로의 절망을 보아온 그였다.
자신과 대면한 히어로의 표정과 말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그는 전문가 이상의 능력을 가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실컷 불타고 나서야 그 입을 멈추려나?”
“크크… 난 다 보인다고. 네년의 그 불안해하는 표정에서.”
이그니션은 그린 미스트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잠시 움찔했다.
늘 자신감 넘치던 표정이 아닌 것을 그녀 스스로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전날 대학교 근처에서 전투원 505호에게 무력하게 처녀를 빼앗겼던 일.
능력과 움직임 뿐 아니라 말까지 마음대로 하지 못했던 일.
히어로 활동에서 한 번의 움츠러듬 따위 없었던 그녀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심지어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른 빌런에게 그 사실을 분석당했다.
하지만 이그니션은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그녀는 도시를 지키는 히어로다.
나약한 마음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
이그니션은 순간 불안했던 자신에게 펀치 한 방을 먹이듯 혀를 꽉 깨물었다.
“흐아아아아아앗!!!!!”
– 슈아아아아아아앗-
이그니션의 표정을 보며 낄낄대던 그린 미스트의 앞에 날아든 화염 줄기.
그린 미스트는 재빠르게 뛰어올라 간신히 화염 줄기를 피해냈다.
“휴. 위험한 이능력이군.”
“한 줄기 피했다고 안심하면 안 될 텐데?”
그의 다리 사이로 지나간 화염 줄기는 등 뒤에서 갈라져 나오더니,
하늘로 솟아 마치 빗방울처럼 그린 미스트의 등 뒤를 덮쳤다.
“크아아아악!!!”
“내 표정이 뭐 어쩌고 어째? 당신 표정이나 잘 관리해!”
등에 지고 있는 가스통 덕분에 큰 데미지를 입지는 않았지만,
옷과 긴 머리카락에 엉겨 붙은 불은 그린 미스트를 고통스럽게 하기엔 충분했다.
“크으으으… 으아아아아아아!!!”
– 치이이이이이이이익-!!!
고통에 흥분한 그린 미스트는 이그니션을 향해 호스를 뻗어 가스를 분사했다.
– 부웅-
“흐앗!”
움직이는 호스의 방향을 보자마자 불꽃의 추진력으로 높이 뛰어오르는 이그니션.
적어도 건물 3층 높이는 될 법한 높이까지 순식간에 날아 오른다.
“뭐… 뭐야?”
“받아라아아아앗!!!”
당황한 그린 미스트의 머리 위에서 발 끝에 불꽃을 두른 이그니션의 킥이 날아든다.
– 쿠과과과과광-!!!
재빠른 불꽃 킥에 반응하지 못한 그린 미스트.
화염에 휘감긴 채 10미터는 훌쩍 넘는 높이에서 작렬하는 발차기는 그의 등과 머리에 직격했다.
“크… 으으…”
부서진 통 안의 가스는 그대로 힘없는 소리를 내며 새어 나갔다.
많은 양의 가스를 압축하여 분사하지 않으면 제 힘을 낼 수 없었기에,
통 안의 가스가 새어 나가더라도 금방 공기 중에 발산하여 사라져 버릴 것이다.
“제… 젠장…”
방독면이 부서지고 나서 드러난 그린 미스트의 추악한 얼굴.
땀과 땟국물로 얼룩진 얼굴에 피까지 흘러들어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너. 아까 내 표정이 뭐 어떻다고 했지? 다 보인다고?”
“크으으… 내가… 내가 당하다니…!”
유독성 가스를 뿜어대는 그의 위험한 능력과 빌런으로서의 경험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이그니션을 자극하여 감정을 건드리더라도,
그린 미스트가 가진 전투 능력으로 이그니션을 제압하기엔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그니션의 무기는 심플하면서도 무궁무진한 활용까지 가능한 이능력 < 발화 >.
단순히 화염을 방사할 뿐 아니라 추진력을 통한 파워와 스피드까지 가진 것이 그녀다.
그가 오랫동안 빌런 생활을 하며 많은 경험을 쌓은 건 맞지만,
여러 번 체포와 탈옥을 반복했다는 건 ‘제압이 가능한 빌런’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히… 히어로가 이겼다!!!”
“감사합니다!! 히어로 님!!!”
“와아아아아아!!!”
머리를 잡은 채 쓰러진 빌런 앞에 당당하게 멋진 모습으로 선 A급 히어로 이그니션.
그녀에게 구해진 이들은 모두들 찬사와 환호를 보냈다.
“그 표정… 언젠가는… 꺾일 것만 같군 그래….”
***
빌런 그린 미스트를 물리치고 난 뒤 그날 밤.
‘이그니션’ 윤도화는 선남대학교 앞에서 연지우가 오기를 기다렸다.
‘지우는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슬슬 시간 다 되어 가는데….’
전투원 505호가 말했던 시각은 오후 10시.
그녀의 휴대전화에 띄워진 시각은 오후 9시 48분이었다.
만약 지우가 빨리 약속 장소까지 오지 않는다면,
도화는 영문도 모른 채 몸을 움직여 전투원 505호가 말한 호텔로 가게 될 것이다.
– 띠링-
[ 지우 : 갑자기 먼 곳에서 호출이 와서 좀 늦을 수도 있을 거 같음. ] [ 10시 20분은 되어야 갈 거 같은데. (오후 9:50) ]“어? 뭐라고? 늦… 늦는다고?”
[ 도화 : 그러면 안 되지! 약속이잖아! ] [ 지우 : 왜? 언니도 어제 늦게 왔잖음. 금방 갈 테니까 먼저 가 있으셈. ]“진짜… 꼭 필요할 때는 도움이 안 되냐…! 아아!”
마치 호텔로 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한 것처럼,
그녀가 다급하게 지우에게 전화하려는 그 순간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 제발… 멈춰야 하는데…!”
갑자기 움직인 몸에 깜짝 놀라 그대로 넘어져 버린 도화.
하지만 그녀의 몸은 금방 다시 일어나 호텔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호텔 앞에 선 전투원 505호의 얼굴이 보였다.
‘안 돼… 안 돼… 지우야…! 제발… 나 좀 도와줘!’
그녀는 두려웠다.
다른 빌런들의 앞에선 누구보다 당당하고 멋진 히어로 이그니션이지만,
어째서인지 전투원 505호의 앞에 서기만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도화는 몇 시간 전 제압했던 그린 미스트의 말이 떠올랐다.
불안해하는 표정이 보인다는 그 말.
하지만 지금 그녀가 짓고 있는 표정은 전자의 것과는 약간 달랐다.
잔뜩 달아올라 붉어진 얼굴과 거칠게 내뿜고 있는 숨.
그리고 침으로 반질반질해진 입술과 어딘가 풀린 눈.
불안감으로 가득 찼어야 할 그녀의 표정은 전투원 505호의 앞에서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오! 오늘도 제 시간대로 오셨네요. 참 잘하셨어요.”
전투원 505호는 미소를 지으며 어제의 과격한 태도와는 다른 상냥한 태도를 취했다.
마치 어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하! 꽤 기대하고 오셨나 본데요?”
“그… 그런 거 아니야.”
흐트러진 도화의 표정을 보고는 웃음을 지은 전투원 505호.
그녀는 자신의 흐트러진 표정을 어떻게든 바로잡으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올라가시죠. 제가 미리 체크인까지 해놨으니까.”
도화는 자신의 손을 잡고 이끄는 전투원 505호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치고 싶었다.
당장에라도 호텔 로비 직원에게라도 도와달라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순순히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최우선 권한은 전투원 505호가 쥐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