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65)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65화(65/117)
***
피를 뒤집어쓴 채 싸늘하게 식어버린 영채의 옆에서 들리는 충격적인 대화.
“어떻게 됐습니까? 실험에는 조금 진전이 있습니까?”
“아!
히어로님께서 오셨군요
. 아쉽게도… 진전이 없습니다.”
연구원들과는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 사람의 정체는 다름 아닌 히어로.
영채가 그녀에게 언급했던 ‘히어로’였다.
“안타깝군요. 연구의 성과가 제대로 나지 않는 건 이해하지만…,
상층부에서도 즉시 전력감을 계속해서 요구하는 중이라서 말입니다.”
“이능력은 인간의 지식수준에서 연구하기가 참 어려운지라… 하하.”
– 쾅!!
“지금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즉시 전력감 말이야. 어?”
즉시 전력감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히어로의 말에 연구원이 웃으며 너스레를 떨자,
연구원 옆의 벽을 주먹으로 쳐부수며 변해버린 말투와 격앙된 목소리로 협박했다.
“죄…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성과를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자 연구원은 덜덜 떨며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하아…. 당신들한테 들어가는 돈이 얼마인 줄은 알아?
앞으로는 주먹 안 나오게 잘하라고. ‘열심히’가 아니라 잘.”
“예…!”
힘이 풀려 자리에서 주저앉은 연구원을 발로 툭툭 밀어내더니,
그 히어로는 험악한 표정으로 채령이 있는 곳을 힐끗 바라보았다.
“쳇.”
그러고는 영채의 시신이 있는 쪽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연구복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불쌍한 년이군. 겨우 저런 애새끼 하나 키워보겠다고 죽어버리다니 말이야.
아까운 몸이란 말이지….”
“그… 그 손 놔!!!”
“뭐야?”
영채를 모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시신을 더듬거리던 히어로.
채령은 참지 못하고 히어로를 향해 울분이 섞인 목소리를 토해냈다.
“실험체 교육 똑바로 안 시키십니까? 싸가지가 없네요.
어쩌면 앞으로 선배가 될지도 모르는 분께 말입니다. 안 그래요?”
– 콰드드득ㅡ 챙!
히어로는 영채와 채령의 사이를 갈라놓고 있던 유리벽을 주먹 한 방에 부수더니,
이마에 핏줄을 세우며 험악해진 표정으로 채령에게 다가왔다.
“히… 히어로님! 실험체는 건드리시면 안 됩니다!”
채령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연구원의 말을 듣고도,
히어로는 그저 비키라는 손짓만 하며 채령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 새파랗게 어린 년이 지랄하고 앉았네.
야. 여기서 저 멍청이들이 돌봐주니까 뭐라도 된 거 같냐?”
당장이라도 채령을 죽일 기세로 험악한 표정과 자세를 취하는 히어로.
그러나 채령은 너무나도 큰 상실감과 분노 때문인지 히어로의 태도에도 굴하지 않았다.
“당신 같은 게 히어로라니… 용서 못 해… 용서 못 한다고!!!”
“용서 못 해? 용서 못 하면 뭐 어쩔 건데? 어쩔 거냐고! 어?”
– 퍽ㅡ!! 퍽! 퍼어억!!!
자신의 협박이 통하지 않자 히어로는 주먹을 들고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 씨발년이! 대답을! 쳐! 하라고! 어?”
평범한 성인 남성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초인적인 힘.
가벼운 주먹 한 방에 벽에 균열을 만들 정도의 무지막지한 공격이 그녀에게 퍼부어졌다.
“그만하십쇼. 히어로 ‘그레이트 가이’.
그러다 실험체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책임지실겁니까?”
그러다 그의 뒤에서 누군가의 손이 히어로의 어깨를 잡고,
주먹을 휘두르던 그의 움직임을 멈춰 세웠다.
“뭐야? 누구신가 했더니… 이거 ‘블레이드 마스터’ 아니야!”
그러자 히어로 ‘그레이트 가이’는 주먹질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를 멈춰 세운 또 다른 히어로 ‘블레이드 마스터’를 반갑게 맞이했다.
온몸이 근육으로 뒤덮인 흉악한 인상의 그레이트 가이와는 달리,
‘블레이드 마스터’라 불린 히어로는 상대적으로 샤프한 인상이었다.
“후우… 좀 열 받아서 말이야. 저 멍청한 연구원 새끼들도 존나 마음에 안 들고.
그래서 좀 두들겨 팼어.”
“그러다 또 상층부에서 징계를 주실 겁니다. 이쯤 하시죠.”
그는 그레이드 가이의 어깨와 등을 두들기며 채령을 향한 공격을 만류했다.
“앞으로는 똑바로 깍듯하게 해라. 알겠냐? 후.”
***
영채가 너무나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채령의 곁을 떠나고,
그녀는 실험실 독방 안에 혼자 남아 식음을 전폐하며 죽음을 기다리려 했다.
그러나 연구원들은 그녀에게 억지로 영양분을 투여하여 실험을 계속하려 했고,
이제는 알 수 없는 약물이나 물체를 그녀의 몸에 투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전히 연구원들이 원하는 것과는 달리,
채령에게는 이능력이 발현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이미 죽은 시체나 다름없던 가축만도 못한 삶을 살던 그녀에게,
커다란 삶의 전환점이 한 가지 찾아왔다.
“습격이다!!! 빌런 녀석들이 연구소에 쳐들어왔다!!!”
그건 바로 빌런 조직의 연구소 습격.
당시 빌런들은 히어로들의 전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보급품 생산 공장이나 관련 연구 시설을 공격하는 데에 집중하던 시기였다.
그 흐름의 영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채령이 머물고 있던 연구소 실험실에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연구소를 지키고 있는 경비 병력과 B급 히어로들을 몇 시간 만에 모조리 박살 내고,
연구소 안에 있던 실험체들을 납치하여 데려갔다.
“마음에 드는 녀석이네. 눈이 예사롭지 않아.
뭔가 대단한 게 숨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뭐지…? 저런 사람이 빌런이라고…?’
채령을 데려간 것은 상큼한 외모를 가진 한 이름 모를 빌런.
빌런이라기에는 너무 청초한 꽃잎 같은 예쁘고 귀여운 얼굴이었지만,
그 속에서는 어딘가 묘하게 이끌리는 카리스마의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당시 한 거대 빌런 조직에서 간부급 자리에 몸을 담고 있던 그녀.
그녀는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이끌고 새로운 조직을 창설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조직의 연구소 습격을 마치고 나서,
자신이 납치해 데리고 있던 실험체 중 가장 먼저 채령과 독대했다.
“눈이 엄청 무섭게 생겼네?”
“날… 어떻게 할 생각이죠…?”
아주 상냥하고 편안한 얼굴로 채령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는 그녀.
채령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 걱정 마. 너한테 이상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니라고?”
“그럼… 어서 날 죽여주세요.”
“죽여 달라니! 안 된다구. 얼마나 힘을 들여서 데려왔는데!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보인단 말이야. 안 그래?”
그녀는 채령에게 있었던 일을 마치 알고 있기라도 한 듯,
그녀에게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지 않느냐 물었다.
“네가 원하는 걸 다 이루게 해줄게.
돈… 권력… 그리고 네가 가장 원하는 복수도 말이야.”
그러고는 채령의 바싹 마른 창백한 피부를 스윽 쓰다듬으며,
자신을 위해 일한다면 모든 걸 주겠다고 말했다.
채령은 떠올렸다.
자신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과거를 빼앗았을 연구원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영채를 총으로 쏴 죽였던 연구원의 얼굴.
그리고 그녀의 시신을 희롱하며 자신에게 폭력과 욕설을 휘둘렀던 그 히어로.
‘나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온 거야.
그 빌어먹을 연구소 녀석들… 그리고 히어로들에게.’
복수심.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빼앗은 히어로들에게 복수하겠다는 그 마음.
그런 그녀의 굳은 복수의 의지를 마치 신이 알아보기라도 한 건지,
그 이후의 어느 날로부터 ‘도플갱어’라는 이능력이 발현되었다.
몇 개월 동안 연구원들이 아무리 온갖 실험과 학대를 가해도 이루어내지 못했던 것.
물론 이능력을 가지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확연하게 다르지만,
우연의 일치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딱 들어맞는 시기였다.
이름 모를 빌런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들이며 이능력까지 발현된 채령은 그 뒤부터,
그녀의 모든 명령을 순종적으로 따르는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그녀가 휘하의 부하 빌런이 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크 나이츠가 세워졌고,
채령은 총수가 되어 스스로를 ‘카이저’라고 칭한 그녀를 도와 조직의 모든 일을 도맡았다.
히어로와 히어로 연합의 정보와 움직임을 파악하는 일부터,
다른 빌런 조직들은 어떻게 활동하여 조직을 키워나가는지,
그리고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채령은 히어로에 대한 복수심 하나만으로,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들을 자신의 이능력으로 완벽하게 해내었다.
그렇게 다크 나이츠는 채령의 노력으로 몇 년 동안 작지 않은 조직으로 성장했고,
작은 도시 하나 정도는 점령할 수 있을 정도의 무력까지 키워냈다.
카이저 총수는 그녀의 노력을 치하하며 조직의 최고 간부 자리를 내리고,
그녀가 원하는 복수를 이루어주고자 함께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부와 시민들의 지지와 지원을 힘에 업은 히어로들의 힘은 막강해져 갔다.
불과 몇 년 사이에 S시 내의 빌런 조직으로 의심되는 수십 개의 조직이 강제로 와해되었고,
다크 나이츠 또한 이를 피해 가지 못했다.
히어로들과의 전투에서 계속해서 크게 패퇴하거나 먼저 물러서야만 했고,
심지어는 간부급 빌런을 여럿 잃으며 조직이 크게 흔들렸다.
채령은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강력한 빌런들을 다크 나이츠에 스카우트하며,
간신히 카이저 총수를 모시며 조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간부급 빌런들이 조직에 정착하고 나서,
정확히 100일이 지나고 난 뒤.
결국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