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69)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69화(69/117)
***
– 위이잉ㅡ 위이이잉ㅡ
– 철컥ㅡ 철컥ㅡ 철컥ㅡ
온갖 무수한 기계 소리가 요동치고 있는 어느 한 지하의 연구소.
수십 명의 연구원은 사람의 몸집보다 몇 배는 큰 기계 여러 대를 동시에 조작하며,
그들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H4301이랑 H4302, 바이탈 수치는?”
“양쪽 모두 이상 없습니다!”
눈 주위에 새까만 다크서클과 반쯤 벗겨진 머리를 가진 남자.
연구원 중에서도 높은 직위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남자는 연구원들 사이를 바쁘게 뛰어다니며,
각각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지시하고 감독하고 있었다.
– 위이이이이잉ㅡ 치이이이이이…
퀭한 인상의 남자가 커다란 버튼 하나를 누르자,
연구실의 벽 한 쪽이 반으로 갈라지며 그 안에서 커다란 시험관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실험은 꼭 성공해야 할 텐데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소장님. 안 그러면 또 그 녀석들이 와서 행패를 부릴 텐데요.”
“하아… 그러니까. 이렇게 막 어른이 되서 놀고 싶을 이 애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원.”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장과 연구원들의 앞.
두 시험관 안에는 각각 하늘색과 녹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이제 막 성인이 된 풋풋함이 느껴지는 두 여성이 물에 동동 뜬 채로 잠들어 있다.
“이제 시작해야겠네. 둘 다 HV9 7번 투여 시작해!”
“예!”
소장의 지시에 연구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거대한 시험관 옆에 붙어 있는 커다란 실린더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실린더 끝에 굵직한 파이프를 꽂아 넣고 무언가를 누르자,
시험관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물속으로 그 파이프가 삽입된다.
그 파이프는 각각 두 소녀의 목과 등줄기에 팍하고 강하게 꽂혀,
그녀들의 몸 안으로 무언가 수상한 낌새를 풍기는 액체가 삽입된다.
그러자 잠들었던 두 사람의 눈이 찡그려지더니,
주입되는 액체로 인해 고통스러운 듯 몸을 웅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액체가 모두 주입되어 실린더가 텅 비고,
주입이 끝난 파이프는 두 소녀의 목과 등줄기에서 뽑혀 나와 다시 시험관 밖으로 빠져나왔다.
“바이탈 상태 이상 없습니다.”
시험관 앞 스크린에 띄워진 정보를 기록하던 연구원이 소장에게 달려와,
자신이 기록한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한다.
“30분 후 수액 제거하고… 시험관 밖으로 빼서 상태를 지켜봐.”
“예! 알겠습니다.”
***
“으아아아?!!!”
좋지 않은 악몽이라도 꾼 것만 같이 놀라는 목소리.
굉장히 신선한 상태의 미역과 같은 느낌의 녹색 머리칼을 가진 소녀가 크게 놀라며 눈을 떴다.
“하아…. 목이랑 등에 상처가 있네.”
불과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시험관 안에서 무언가를 주입 당하고 있던 그녀.
히어로 ‘마법소녀 세라피나’는 자신의 상처를 매만지며 고개를 돌렸다.
“아쿠아마린… 은 아직 자고 있는 모양이네.”
그녀들이 누워 있는 침대 너머 상태를 지켜보던 한 연구원.
그는 세라피나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에게 다가가 상태를 물었다.
“H4301. 몸 상태는 어때?”
“실험 번호로 부르지 마세요. 엄연히 히어로 네임이 있다구요!”
세라피나는 연구원이 자신을 실험체 번호로 부르자,
표정을 찡그리며 자신은 엄연히 히어로 네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난 여기서 연구만 하느라 잘 모른다고.”
“하아… 연구원 아저씨들은 하나 같이 이 모양이라니까.
상처 난 곳은 좀 많이 아픈데… 다른 곳은 괜찮아요.”
그러자 연구원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거 미안하구만! 못돼먹은 아저씨라서. 일단 알았다.”
연구원이 잠시 그녀들이 누워 있던 장소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자,
세라피나는 머물고 있는 장소가 익숙한 듯 그 안을 편하게 걸어 다녔다.
“이 책은 아직도 있네. 2년 전에 여기 처음 올 때도 있었는데.
실험 시설은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좋아지는데… 여긴 아직도 그대로야.”
그렇게 크지 않은 사이즈의 새하얀 철제 침대.
책 몇 권과 자그마한 화분이 놓인 작은 책장.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몇 개의 예능 프로그램만 재생할 수 있는 TV 한 대.
그녀들이 몇 년 전부터 실험에 임할 때마다 머물렀던 방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으으음…. 으으으….”
대화 소리와 TV 소리에 잠을 깬 듯한 아쿠아마린이 몸을 뒤척인다.
“괜찮아. 세라피나가 여기 있어.”
세라피나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좋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쿠아마린에게 달려가,
그녀의 머리와 등을 조심스럽게 토닥거렸다.
“세라… 피나. 다행이다.”
아쿠아마린은 세라피나의 손길에 안정을 찾은 듯,
약간은 편안해진 표정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번이 몇 번째 실험이었을까.”
“글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만 해도 열 번은 넘을 것 같아.”
“벌써 그렇게 됐구나.
그러고 보니 이 침대도 그렇고… 다 전이랑 똑같네.”
“어! 나도 아까 혼자 그 얘기했는데. 우리 통했네?”
“그러게? 헤헤.”
파이프가 삽입되면서 생긴 같은 부위의 상처를 더듬거리면서도,
두 사람은 잠시나마 실험의 후유증을 잊고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 철컥ㅡ 끼이익…
“크흠.”
“한참 재밌는데. 아저씨… 아니지. 할아버지는 여기 무슨 일이세요?”
아까까지 직접 실험을 지휘하다 문을 열고 상태를 직접 살피러 온 연구소장.
문을 열자마자 시작된 두 소녀의 말장난에 한숨을 푹 내쉰다.
“두 사람 다 몸은 어때. 상처는 좀 아프다고 들었는데… 그거야 뭐 늘 있는 일이고.”
“괜찮아요. 평소랑 그렇게 다를 것도 없어요.”
“그렇구나.”
소장은 소녀들의 괜찮다는 대답을 듣고, 들고 온 묵직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앞으로 자네들은 하루에 한 번 빠짐 없이 이 약을 먹어야 해.
이번 실험에 사용된 약은 아주 독하고 위험한 약이니까.”
그가 꺼내 보인 것은 새까맣고 동그란 알약 수백 알.
내부가 보이는 투명한 통 두 개에 두 사람분이 나뉘어 들어 있다.
“하아… 이젠 약까지 먹어야 하는 거에요?”
“그래. 이 약을 24시간 안에 먹지 않으면… 온갖 부작용이 쏟아질 게다.”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 거죠?”
부작용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 묻는 세라피나의 질문.
소장은 약간은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망설였다.
“그… 그건….”
“말씀해 주세요. 히어로 일이라는 건 만일의 사태가 늘 벌어지는 거잖아요.
저희도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해야 해요.”
두 소녀의 단호한 말에 소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부작용에 관해 설명했다.
“처음엔… 눈이나 코에서 조금씩 피를 쏟게 될 거야.
아마 1시간 정도는 계속 피를 뚝뚝 떨어뜨리게 되겠지.”
“그 정도는 가끔 예전부터 있던 일이잖아요.”
“내 말을 끝까지 들어. 자네들이 말해 달라고 했으니까.”
별거 아니라며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두 사람을 다그치는 소장.
그러고는 계속해서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만약 25시간이 지나도록 약을 먹지 않는다면…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네.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다거나 후각이 마비되기도 하고… 강한 어지럼증을 느끼게 될 거야.
그리고 거기서 더 시간이 지나면… 몸의 온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게 되겠지.
근육이 녹아내리고 전신이 무너져 내리는 거라네.”
“만약 그렇게 될 때까지 못 먹으면… 죽는 거네요.”
“그래. 대신 그런 부작용이 있는 만큼, 확실하게 강해졌다고 보장하지.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이능력을 사용하는 데에도 있어서도.”
아쿠아마린과 세라피나는 조금 놀라는 듯하면서도,
별 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안타까워하는 소장에게 오히려 웃어 보였다.
“괜찮아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어차피 소장님이 안 계셨었다면 저희는… 이미 없었을 목숨이니까요.”
“내가 자네들을 안심시켜야 하는 입장이기는 해도…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소장은 밝게 웃는 두 소녀의 표정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커졌지만,
겉으로는 안심하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는 다시 활동해도 괜찮을 거야.
여기 두고 갈 테니까 꼭 챙겨 먹어야 하네. 부족하면 언제든 더 줄 수 있으니까.”
그녀들이 누워 있는 침대 옆 테이블에 약이 든 통들을 올려놓고,
소장은 가방을 닫고 등을 돌려 나가려 했다.
“아저씨.”
“왜? 물어볼 거라도 있나?”
“저 약 먹는다고 해서… 계속 살 수 있는 거 맞아요?”
장난기 하나 섞이지 않은 세라피나의 진지한 질문.
소장은 부작용을 이야기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잠시 자리에 멈춰 선 채 고민했다.
보통 인간의 육신이라면 이미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수많은 실험.
그리고 그와 동반되는 몸과 마음의 크나큰 스트레스.
심지어 이젠 언제 갑자기 죽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큰 부작용까지.
본인들에게 남아 있는 명줄이 그렇게 길지는 않을 거란걸,
아쿠아마린과 세라피나 두 사람은 너무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소장은 그것이 정말 사실이라는 걸,
저 두 소녀에게 도저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말했잖나.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한 알만 먹으면 된다고.”
소장은 괜스레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려는 듯,
두 소녀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