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81)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081화(1081/1114)
에인로가드에 입학하고 나서 이런저런 경험을 하긴 했지만, 처음 보는 악마가 도와달라고 하는 경험을 겪게 될 거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인상이 험악해서 그런가?’
-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워다나즈 가문의 핏줄 아니십니까?
“쉿.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
이한은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들을까봐 악마의 입을 닥치게 했다.
악마들은 다른 차원의 존재인 만큼 필멸자들과 그 원리가 다른 후각을 갖고 있었다. 덕분에 외관만 바꾼 이한의 혈통을 꿰뚫어 본 것이다.
윽박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악마는 어지간히도 다급했는지 간절히 사정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저는 교만공 전하의 결투 깃발 기수이자 전막 광대인 오를라흐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악마는 자신의 직위를 저렇게 먼저 밝히지 않았다.
악마를 상대하는 필멸자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정보였기 때문이었다.
상대 악마가 어떤 악마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마법사는 그 약점을 노릴 수 있었다. 정말 다급한 게 분명했다.
‘특이하군.’
“여기 흑마법사들이 그렇게 위협적인 사람들은 아닌데.”
-흑마법사들 말입니까? 지금 그런 걸 두려워하는 게 아닙니다!
오를라흐는 터무니없는 말을 다 한다는 듯이 외쳤다.
저런 마법사들 몇몇에 겁을 먹을 만큼 오를라흐는 약한 악마가 아니었다. 명예로운 교만공의 결투 깃발 기수 아니던가.
“그런 걸? 이 자식. 에인로가드 흑마법 학파를 얕보는 거냐?”
-그, 그런 게 아닙니다!
이한이 발끈하자 악마는 재빨리 사죄했다.
지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제가 두려워하는 건 천사 놈입니다.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존재의 이름에 이한은 크게 놀랐다.
천사라니?
사실 제국에서 천사는 흔히 접하기 힘든 존재긴 했다. 비교적 보기 쉬운(어떤 가문에는 길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흔할 정도였다) 악마와는 정반대였다.
그 이유는 두 차원 종족의 성향에 있었다.
필멸자들의 영혼에 깊은 관심이 있어 언제나 제국으로 강림할 기회만 노리는 악마.
그에 비해 천사들은 다른 차원의 종족들에게 어떤 관심도 없고 오로지 스스로가 정한 규율과 율법에만 몰두했다.
폐쇄적인 은둔생활을 하는 이 천인(天人) 종족은 정말 만날 일이 드물었다.
마법사가 계약을 맺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방문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원하는 게 없는 이들한테 어떤 방식으로 접촉하겠는가.
그렇기에 제국 마법사들은 현명하게 악마를 노렸다. 욕망 넘치는 악마들은 아무리 당하더라도 마법사들의 계약을 피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종족의 이름을 여기서 듣게 될 줄이야.
“천사는 어지간해서는 다른 종족하고 부딪칠 일이 없을 텐데?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천사들이 수행하는 본거지로 침공해 학살이라도 한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오를라흐는 부정했다.
-고작 그런 짓 때문에 천사들이 차원 밖으로 나와서 쫓아오진 않습니다.
“…그, 그렇군.”
이한은 생각보다 훨씬 더 놀라운 천사들의 생태에 전율했다.
본거지로 침공해서 학살을 저질러도 자기네 영역에서 도망만 친다면 굳이 쫓아오지 않는다니.
오를라흐는 있었던 일을 다급히 설명했다.
-저는 전하의 명령으로 이 필멸자들의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을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 저를 쫓아오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바로 천사였습니다.
제법 강력한 악마긴 했지만 오를라흐는 그렇게 전투에 자신 있는 악마가 아니었다.
그에 비해 상대 천사는 전투특화였는지 잠깐의 틈도 주지 않고 쫓아왔다.
점점 궁지에 몰린 오를라흐는 결국 지하 유적지 안으로 들어가 고대 유물에 몸을 숨겼다.
다행히 이것까지 추적하진 못했는지 천사는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지만…
“아하. 그래서 이렇게 팔려온 거군.”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흑마법사들이 절 꺼내면 천사 놈이 다시 추적을 개시할 겁니다!
악마는 벌벌 떨었다.
이 저택의 주인 놈을 꼬드겨서 한동안 잘 숨어 있으려고 했는데, 흑마법사들이 강제로 꺼낸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러는 과정에서 천사가 찾아내기라도 한다면…
-저를 도와주신다면 관습에 따른 기간만큼 성실히 일하겠습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어라?’
이야기를 듣던 이한은 의문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이런 교섭은 이한이 아닌 흑마법사들한테 해도 되는 것 아닌가?
노예로 성실히 복무하겠다고 한다면 흑마법사들도 교섭에 응해줬을 텐데…
“그런데 왜 나한테 말을 건 거지? 다른 흑마법사들도 있었는데?”
-워다나즈 가문의 핏줄이시잖습니까?
오를라흐는 워다나즈 가문의 핏줄을 이어받은 마법사가 왜 이런 질문을 하나 의아해했다.
악마도 잘 부려먹는 마법사가 있는 법. 어쭙잖게 악마를 부려먹으려다가 패망한 마법사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워다나즈 가문은 악마를 부려먹는 데에 있어서 제국에서 손꼽히는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가문이었다.
심지어 오를라흐 본인도 먼 옛날에 가문 밑에서 복무한 적 있을 정도로.
당연히 악마 입장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흑마법사들에게 자신의 약점까지 말해가며 목숨을 맡기느니, 믿음직스러운 악마 전문가 주인님에게 목숨을 맡기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어차피 하인으로 지내야 한다면 믿음직한 주인님이 낫지 처음 보는 흑마법사를 어떻게 믿겠는가.
“…가문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가문의 옛 악마 명부에서 제 진명을 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그렇게 두꺼운 명부의 이름을 어떻게 다 일일이 기억하나!”
이한은 괜히 악마에게 화를 냈다. 오를라흐는 주눅들어서 고개를 급히 숙였다.
* * *
일단 선배들의 작업을 급히 중지시킨 뒤 이한은 디레트를 불러 상황을 설명했다.
“디레트 선… 씨. 지금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
악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빠르게 설명해주자 디레트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생각치도 못한 천사가 이 이야기에 끼어 있다니.
“그런데 신기하네.”
“천사 말입니까?”
“아. 천사도 천사인데, 악마가 이렇게 자세하게 사연을 말하는 거 말이야. 흔한 일은 아니거든.”
정보가 약점이 될 수 있는 만큼 악마는 이런 상황도 숨기는 편이었다.
아무리 천사가 쫓아온다고 하더라도 입을 다물면 다물었지, 괜히 낯선 마법사에게 약점을 추가로 떠들 이유가 없었다.
상대에 대한 믿음이 있거나, 혹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맞아. 교만공의 수하라고 했지? 후배 네가 교만공과 상대한 적 있으니까 널 인정한 것 아닐까?”
디레트는 그럴듯한 추측을 내놓았다.
정령왕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이한은 강림한 교만공을 막아선 적이 있었다.
공작 본인이 그 실력에 감탄했으니, 수하들이 이한에 대해 들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과연. 실로 예리한 추측이십니다.”
이한은 뻔뻔하게 대답했다.
워다나즈 가문에서 부려먹은 적 있는 악마라서 찾아왔다고는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제법 흐르지 않았습니까? 천사가 아직도 추적하고 있을까요?”
“유물에 갇히기 전에도 추적하고 있었다면 지금도 추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긴 해.”
디레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천사 같은 종족에게 일이백년은 별로 긴 시간이 아니었다. 아직까지 악마를 쫓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
기대와 다른 대답에 이한은 식겁했다. 그러는 사이 디레트는 학생들을 불러 모으고 상황을 설명했다.
“여기 이 악마는 천사에게 추적의 낙인이 찍힌 모양이야. 자칫 잘못 끌어냈다가는 천사를 상대해야 할 수도 있겠어.”
“천사라고?!”
코홀티는 깜짝 놀랐다. 다른 학생들도 그에 못지않게 놀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름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근처에 있는지 수색해볼까요?”
“탐지하기 힘들거야. 게다가 전용 마법도 희귀하고.”
제국에 대(對) 악마 마법은 많았지만 천사를 상대하는 마법은 드물었다.
디레트도 천사를 추적하는 마법 같은 건 익힌 적 없었다. 그런 걸 익혀서 어디에 쓰겠는가.
“그런데 악마가 저렇게 자세히 사정을 떠드는 건 되게 의외네요.”
“나고 님의 강함을 보고 빠르게 굴복한 거겠지.”
코홀티가 대신 뿌듯하다는 듯이 설명했다.
만약 그들끼리만 왔었다면 악마가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느라 일이 커졌을 수도 있었다.
충돌을 감지한 천사가 저택에 찾아오면 그 때부터는 일이 커지는 것이다.
스테달 나고가 존재만으로 악마를 굴복시키고 안에 숨긴 비밀을 토해내게 만든 덕분에 일처리가 쉬워졌다.
“그렇죠, 나고 님?”
“말이 너무 많군.”
“알, 알겠습니다!”
코홀티가 입을 다물었지만 다른 학생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디레트는 사정이라도 알았지(착각이긴 했지만), 사정을 모르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놀랍기 그지없었다.
어떤 충돌이나 대결도 없었는데 존재만으로 악마를 굴복시키고 안에 숨긴 비밀을 털어놓게 만들다니.
저런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정말 보통 전투 마법사가 아닌 모양이었다.
“으음. 유크벨티레가 관련 마법을 갖고 있긴 한데, 편지 보내서 오게 하려면 너무 오래 걸릴…”
“수도에 있다.”
“…걔가 왜 수도에 있는데?!”
후배, 아니 스테달의 말에 디레트는 경악해서 외쳤다.
다른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저 살벌한 전투 마법사를 저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나?
“아, 아니. 으흠. 왜 수도에 있는 건가요?”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디레트는 헛기침을 했다. 코홀티는 무례한 친구 대신 자신이 직접 사과했다.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디레트는 평소에 저런 친구가 아닌데.”
“…상관없으니 조용히 하도록.”
귀찮아진 디레트는 전투 마법사의 등짝을 친 뒤 따라 나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둘만 대면하자 디레트는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유크벨티레가 왜 수도에 있어?”
“그러게 말입니다.”
이한은 디레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고자질하는 건 쉬웠지만 괜히 불똥이 자신한테까지 튈까봐 걱정이 됐다.
사실 적당히 해도 됐는데 버두스 교수가 사족보행하는 걸 보고 싶어서 너무 깊게 참여한 것이다.
“뭘 그러게 말입니다야? 후배 널 쫓아왔겠지!”
“!”
이한은 속마음을 들켰다는 걸 알고 놀랐다.
“어떻게?”
“어떻게는 무슨 어떻게! 걔 성격에 수도에 올라왔으면 뻔하지.”
디레트는 실로 뛰어난 탐정이었다.
친구가 수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목적과 행적을 알아맞힌 것이다.
“죄송합니다.”
“후배 네가 왜 죄송해? 그걸 기어코 쫓아와서 맡긴 걔가 죄송해야지. 반성 좀 하나 했더니…”
‘휴.’
이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버두스 교수의 사족보행 때문에 자원해서 나선 건 눈치 못 챈 모양이었다.
그거까지 말했으면 정말 유크벨티레 선배와 같은 취급을 당했을지도 몰랐다.
“…수도에 있으면 부르긴 쉽겠네.”
연신 투덜거리던 디레트가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고 중얼거렸다.
친구 뒤통수를 한 대 때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당면한 일을 우선시해야 했다.
“불러올까요?”
“아냐. 종이 새 보내서 아티팩트만 빌리자. 얼굴 보면 싸울 거 같아.”
* * *
유크벨티레는 가방 안에 천인 탐지 아티팩트와 마도서를 담아 발걸음을 옮겼다.
디레트는 그녀의 바쁜 일정을 존중해 아티팩트만 보내달라고 했지만, 유크벨티레는 인정하는 상대에게만 드물게 보여주는 너그러움을 선보였다.
바로 자신이 직접 가서 마법을 시전해주려고 한 것이다.
디레트가 실수할 가능성까지 고려한 이 배려심은 에인로가드에서 손꼽히는 것이리라.
유크벨티레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뭐야. 직접 왔나?”
“!”
정문 앞에 서있던 낯선 마법사가 말을 걸어오자 유크벨티레는 멈칫했다.
험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이 마법사는 마법 전투가 전문이었는지 온몸에서 빈틈이라고는 전혀 엿보이질 않았다. 유크벨티레는 살짝 위축되었다.
“누구지?”
“알 거 없다. 안으로 들어가라.”
“…!”
이런 무례한 마법사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