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94)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094화(1094/1114)
‘정말 기분 나쁜 믿음이다.’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젊은 왕자나 해골 교장이나 이한에게 신뢰를 보내는 건 같았지만, 세부 내용은 상당히 차이가 났다.
솔직히 해골 교장이 보내는 신뢰는 기분나빴다.
저게 악신숭배자 만나라는 저주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저는 배그렉 교수님한테 접근할 가능성 때문에 말씀을 꺼내신 줄 알았습니다만.”
“볼라디 교수가 접근하면 접근했지 놈들이 접근할까…”
해골 교장은 회의적이었다.
물론 머릿속에 뇌 대신 광기와 지푸라기를 채워 넣고 다니는 악신숭배자들은 예측하기 힘들긴 했다.
그래도 일단 어떻게든 예측을 해본다면, 볼라디 교수한테 접근할 가능성은 별로 높아 보이지 않았다.
악신숭배자들은 볼라디 교수한테 원하는 게 없는 것이다.
피비린내 짙은 원한이 서로 사이에 있긴 했지만 악신숭배자는 복수를 할 시간에 자기들 신앙을 한 톨이라도 더 뿌리려고 할 자들.
오히려 볼라디 교수가 악신숭배자들한테 원하는 게 많을 것이다.
‘주로 목 위에 있는 걸 원하겠지.’
사실 마음 같아서는 이한도 가둬놓고 볼라디 교수도 가둬놓고 싶을 정도였다.
이한은 무리더라도 볼라디 교수는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로.
하지만 볼라디 교수 성격상 가둬놓는다고 ‘저를 걱정해주시니 얌전히 징벌방에 있겠습니다’할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바로 탈주해서 폭주하면 모를까.
억지로 밀어붙였다가 계획 전체가 파탄나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삐라도 채두는 게 나았다.
교수가 원하는 대로 아끼는 제자와 붙여 놓으면 허튼 짓을 할 때 그래도 한 번, 아니 반 번, 반의 반 번 정도는 고민할지도…
문제는 제자가 가진 액운이었다.
최근 워다나즈가 겪은 일들을 생각해보면 악신숭배자들이 접근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직감이나 예감에 가까운 막연한 발상이었지만 뛰어난 마법사는 절대 이런 징조를 무시하지 않는 법.
“그래도 너무 막연한 것 같은데요.”
“그럴듯한 이유를 원하느냐? 대귀족 가문 출신에, 용보다 많은 마력을 갖고 있고, 용과 계약을 했으니 악신숭배자들의 관심을 살 만하지. 너만한 먹잇감은 제국에 얼마 없다.”
‘그냥 막연하게 이야기할 때가 차라리 나았군.’
이한은 속으로 투덜댔다.
해골 교장이 논리적으로 말하니 오히려 더 기분이 나빠졌다.
“아무래도 납득한 것 같군. 잘 기억해둬라.”
“예. 수상한 놈 보면 일단 의심부터 하겠습니다.”
“수상한 볼라디 교수 보면 의심하는 것도 잊지 말고.”
“…예…”
“그럼 이 놈 데리고 가서 훈련시켜라. 클젠베르그?”
-예!
죽음의 기사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여기 이 기사가 이번 학기 때 밖에서 널 호위할 거다.”
“배그렉 교수님이 동행하실 텐데 기사분들도 따라오십니까?”
“물론이지. 말했듯이 볼라디 교수가 널 패고 빠져나갈 수도 있으니까.”
“……”
“눈치 빠른 기사들 뽑아서 호위 준비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해골 교장은 치밀했다.
두 제자를 풀어준다 하더라도 절대 방심하진 않는 것이다.
볼라디 교수가 악신숭배자를 감시하고, 데스 나이트들이 악신숭배자를 감시하고, 워다나즈가 볼라디 교수를 감시한다면 빈틈이 없으리라.
-마지막에 잘못 말하신 거 아닙니까?
“제대로 말했는데?”
-……
이한에게 악신숭배자보다 교수를 더 주의해서 감시하라는 말에 기사들은 당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골 교장은 휘적휘적 손을 내저었다.
“가봐라. 교수들하고 상의할 게 있으니. 네 선배들이 저지른 사고들이 알아서 숨겨지지는 않… 잠깐.”
“?”
돌아서서 떠나려던 이한은 해골 교장이 다시 부르자 멈칫했다.
무슨 일이지?
‘혹시 속으로 욕하던 게 들켰나?’
“아니다. 가봐라.”
“예.”
이한이 완전히 떠나자 해골 교장은 자리에 있던 기사들에게 말했다.
“저 녀석, 왜 에우앙겔리온을 걸치고 있지?”
-그, 글쎄요. 혹시 명예욕의 분신에게 위치를 들은 것 아닐까요?
* * *
“사악한 용병이나 도적에게 접근할 일이 있으면 뭐든지 맡겨주십시오.”
이빈타는 굽신거리며 아첨했다.
지하 요새의 주인이었다는 자부심 같은 건 산산조각나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지금 원하는 건 단 하나.
무시무시한 워다나즈 가문의 마법사에게 거슬리지 않고 이번 임무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이 마법사가 괴팍하더라도 설마 첫째보다 무서울까.
“접근할 일 없습니다만.”
“예?”
“접근할 일이 없다니까요.”
혼란스러워하는 옛 도적에게 이한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해골 교장의 악담과 별개로 이한은 이번 학기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외출할 생각이 없었다.
물자는 이미 확보했고, 무엇보다 해골 교장이 저렇게 말하니 괜히 기분 나빠서 나가고 싶지 않아졌다.
‘안에서 할 수 있는 의뢰만 받으면 해골 교장의 저주도 별 의미가 없겠지.’
“워다나즈.”
검을 어깨 위로 걸친 채 걸어가던 지젤이 뒤에서 이한을 불렀다.
솔직히 죽음의 기사들과 도적 사이에 있는 친구를 굳이 부르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전할 이야기가 있었다.
“여기. 가주님의 서신이다.”
“??”
이한은 지젤이 내미는 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지젤이 더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놀라는데? 의뢰 맡기는 편지잖아.”
“무슨 의뢰?”
“…혹시 방학 동안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기억이 날아갔나? 작년에 네가 맡겨만 달라고 했잖아.”
지젤은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교장 선생님께 부탁해서 에인로가드로 정식 의뢰를 보낸다면 어떻겠나?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작년 겨울 방학 때 나눴던 대화가 떠오르자 이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심지어 지젤한테 같이 의뢰 맡아서 돈 나눠먹자고 신나서 떠들기까지 했던 것이다.
‘아차.’
그 때는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일단 받았는데,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워다나즈 가문의 손님에게.
저번의 유익한 대화는 가문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네. 가문에 방문한 견습기사들을 풀어주지 말고 혹독하게 단련시키란 조언, 그 조언 덕분에 견습기사들이 부쩍 강해졌군…
지젤의 아버지이자 모라디 가문의 가주가 보낸 서신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존중이 엿보였다.
언제나 냉철하고 효율을 따지는 가주가 이 정도로 호의를 보이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 하나는 이한이 저번에 한 조언이었다.
초대를 받고 가문에 온 견습기사들을 돌아다니게 하지 말고 (에인로가드처럼) 외출금지를 시켜라!
그 조언이 생각보다 매우 효과적인 모양이었는지, 가주는 서신으로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좋은 일이군. 기사들에게 도움이 되다니 뿌듯한데.’
이한이 미소짓자 지젤이 의아해했다.
서신의 내용이 어떻길래 저렇게 훈훈한 미소를?
“뭐야? 의뢰 내용 말고 다른 것도 적혀 있어?”
“아. 별 건 아니고. 저번에 가주님께서 내 조언을 경청해주셨는데 그게 효과가 있었나봐.”
“무슨 조언?”
“영지에 찾아온 견습기사들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에인로가드 학생들처럼 다뤄야 한다고 했지.”
“…?!!!”
네가 범인이었냐!!
지젤은 경악했다.
영지 내의 탑 위치까지 바꿔가며 견습기사들을 감시하고 놀지 못하게 막길래 ‘혹시 해골 교장이 무슨 말이라도 한 걸까?’하고 궁금해했는데, 범인이 여기 있었을 줄이야.
덕분에 견습기사들의 실력이 향상하긴 했지만, 이 기사들이 고마워할지는 알 수 없었다.
눈에 번뜩이는 독기를 보면 아마 고마워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영지 가면 절대 네가 조언했다고 말하지 마.”
“아니. 어째서? 내 조언 덕분에 다들 실력이 늘어난 것 아닌가?”
‘이 자식. 점점 더 교장 선생님 같아지네.’
지젤은 속으로 친구를 욕했다.
방학 때 너무 교수진들하고만 지냈는지 약간 감각이 망가진 것 같았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작년에 약속한 대로 각하에게 서신을 보내 정식으로 의뢰를 맡겼네. 올해도 재기발랄한 의견을 기다리고 있도록 하지.
지더프 모라디
“……”
편지를 다 읽은 이한은 침묵했다.
작년에 ‘맡겨만 주십시오’라고 말한 걸 잊지 않았는지 가주는 이한이 무조건 맡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내 무덤을 팠군.’
이한은 반성했다.
앞으로는 아무리 좋은 기회여도 무작정 받는 건 조금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 상황이 바뀔 줄이야…
‘어쩔 수 없군. 이것만 받자.’
이한은 각오한 얼굴로 말했다.
“의뢰를 수락하겠다. 모라디.”
“수락은 작년에 했고… 너 오늘 진짜 왜 이래?”
지젤은 친구를 살짝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어지간해서는 이런 시선을 보내지 않았지만 오늘 워다나즈는 사람을 걱정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던 것이다.
용무를 마친 지젤이 돌아가자 이한이 다시 이빈타를 보며 말했다.
“모라디 가문 영지만 방문하면 밖에 나갈 일이 거의 없을 겁니다.”
“이한. 여기 편지.”
“……”
이한은 홱 몸을 돌렸다. 요네르의 목소리가 이렇게 무서운 건 처음이었다.
“…무슨 편지?”
“언니가 보낸 편지야. 자.”
연금술 약품 냄새가 나는, 고급스러운 흰 편지지를 펼치자 크게 휘갈긴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요네르의 친구에게
저번에 공방에서 작업한 걸 기억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네요. 실은 이번 학기, 모라디 가문의 가주님에게 의뢰를 받았다는 소문을 들었답니다. 학생들 중에는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외출을 피하는 학생도 있다고 들었는데 워다나즈 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하긴 그렇게 활발히 돌아다니는 분께서 그러실 리 없죠.
실은 이번에 새 연구를 준비 중인데, 뛰어난 학생들의 도움이 필요하답니다. 요네르와 같이 와서 도와주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참. 요네르가 무슨 말을 해도 너무 귀담아듣지 마세요. 동생은 과장이 심하니까요…
이한은 전율했다.
‘귀족 가문은 서로 연락을 하지 못하게 제국법으로 막아야 한다.’
귀족 가문들끼리 연락해봤자 사악한 음모나 꾸미지 제국에 도움이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모라디 가문의 의뢰가 벌써 요아넨의 귀에 들어가다니!
“의뢰지?”
요네르는 안 들어도 알겠다는 듯이 물었다. 이한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받는 게 좋을 거야. 이번에 가면 잠도 못 자고 일하게 될 걸.”
“메이킨 님도 정확히 그 말을 하시면서 믿지 말라고 하시는데.”
“……”
요네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마 언니에게 여기까지 행동을 예측당했을 줄이야.
“내, 내가 방금 말한 건 비밀이야.”
“걱정하지 마. 그보다 너도 같이 오라고 하시는데.”
“뭐?!”
요네르는 친구의 손에서 편지지를 받아 황급히 읽어내려갔다.
그러면서도 믿기 힘들다는 듯이 연신 중얼거렸다.
“연금술 의뢰는 그냥 안에서 맡겨도 되는데 굳이 이렇게 밖으로 불러서 맡긴다는 건… 그만큼 사람을 갈아넣겠다는…”
“…다 들리는데.”
편지를 다 읽은 요네르는 시무룩해졌다.
이한과 달리 요네르는 언니가 오라면 와야 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지… 가는 수밖에…”
“…요네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보상이 좋아.”
“그러게… 일하다가 쓰러지면 그 돈으로 관 짜면 좋겠다…”
“참. 여기에 다른 학생들 더 데리고 와도 된다고 하셨는데 가이난도도 데리고 갈까?”
시무룩해진 요네르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이한은 그걸 보고 더욱 과감히 제안했다.
“평소 마음에 안 들었던 선배나 교수님도?”
“그건 미친 짓 같아.”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이한은 재빨리 말을 바꿨다. 사실 선배나 교수를 데리고 가면 오히려 이한이 괴로워질 수도 있었다.
‘그래도 두 곳 정도면 뭐 괜찮겠지.’
모라디 가문의 영지를 다녀오고 요아넨의 공방에 방문한 다음에 외출하지 않으면 될 것 같았다.
“선배님. 편지 왔습니다.”
“이한. 여기 편지…”
“지붕 위에 편지 날아왔는데?”
“워다나즈! 네 방으로 종이새들이 날아들고 있다! 물건 넘어지기 전에 빨리 확인해!”
“……”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몰려오는 편지 세례에, 이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