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13)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 1113화(1113/1114)
1113
화
“이한 학생 흑마법 학파 맞아요…”
가르시아 교수가 대신 얼굴을 붉히며 대답해줬다. 볼라디 교수가 지적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하자 가르시아 교수는 다급히 말렸다.
“교수님. 제발!”
볼라디 교수가 무슨 지적을 하려고 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왠지 알 것 같았다.
아마 이런 이야기일 것이다.
-이한 학생이 흑마법 학파도 듣긴 하는데, 다른 학파도 다 듣고 있고… 그리고 굳이 따지면 모르툼 교수보다 우리하고 더 친하지 않나?
…사실 가르시아 교수도 방금 들었을 때 순간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배려심이란 게 있었다.
가르시아 교수는 안 그래도 힘들게 살아온 것 같은 칼라로가드 출신 흑마법사한테 추가 공격을 가하고 싶지 않았다.
“역시!”
“뭐?! 진짜 흑마법사라고?!”
“저런 인재가 대체 왜!? …아, 아니. 주테. 미안해. 노려보지 마.”
동료들은 친구의 원독 어린 시선에 사과했다.
사실 그들로서는 조금 억울한 일이기도 했다.
애초에 마법과 거리가 먼 그들은 ‘저런 인재가 왜 흑마법사를?’같은 말을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흑마법 학파가 제국 마법 학파에서 차지하고 있는 미묘한 위치를 알기 힘들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평소에 옆에서 주테가 계속 떠들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인재는 흑마법 학파에 안 오려고 한다’ ‘이러니까 흑마법사들이 괴롭다’ ‘흑흑 괜히 칼라로가드 갔어 외로워’같은 말을 해대니 그들도 자연스럽게 ‘아 좋은 인재는 흑마법 학파에 안 가나보구나’하게 되는 것 아닌가!
모험가 파티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한은 살짝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런데 제가 흑마법 학파 소속인 건 어떻게 아십니까?”
나름 명성을 쌓은 만큼 제국에서 자신을 아는 사람을 만나도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보고 ‘흑마법 학파 소속 아닙니까?’라고 묻는 건 조금 특이했다.
보통 소문이 그런 식으로 나지는 않았으니까.
뛰어난 에인로가드 출신 마법사가 있다고 나거나, 워다나즈 가문의 마법사가 뛰어나다는 식으로 날 텐데?
“흑마법사들 학회에서 모르툼 교수님에게 들었습니다.”
“……”
가르시아 교수의 표정이 흔들렸다.
왠지 모르게 모르툼 교수가 어떤 식으로 자랑했을지 짐작이 갔던 것이다.
그리고 가르시아 교수의 짐작이 맞았다.
-콜록. 이 새로운 언데드 융합 마법은 제법 흥미롭군.
-후후. 그야 당연하지. 우리 마탑이 이 마법을 위해 얼마나 투자했는지 아시오? 곧 에인로가드 흑마법 학파도 뛰어넘을지 모르겠군.
-…콜록, 사실 에인로가드 흑마법 학파에 새 학생이 들어왔는데. 그쪽이 알지 모르겠군.
심지어 한 번도 아니었다.
-이번 분리주의자 난동에서 저희 길드가 활약하신 거 보셨습니까? 하하하!
-…콜록, 사실 에인로가드 흑마법 학파에 새 학생이 들어왔는데…
-아, 아니. 저희는 도발도 안 했는데 왜 이러십…
자랑할 게 많지 않은 모르툼 교수는 자신이 가진 하나뿐인 검을 계속 휘둘렀다.
다른 흑마법사들은 더럽고 치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검이 정말로 날카롭고 강력했던 것이다.
‘음. 에인로가드 흑마법 학파를 탈퇴하고 싶어지는 건 처음이군.’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흑마법 학파에 돈이 없어서 디레트 선배와 같이 학파 금고를 채워 넣을 때도 탈퇴 생각은 안 들었는데, 모르툼 교수가 밖에서 한 짓을 들으니 매우 수치스러웠다.
왜 자랑은 교수가 했는데 부끄러움은 이한의 몫인가?
이한이 괴로워하는 사이 생각을 정리하던 주테는 멈칫했다.
미처 의식하지 못했는데 한 가지 생각이 더 떠오른 것이다.
“…잠깐! 그… 그러면, 설마 원추리 마탑의 마법사들이 이러고 있는 이유가… 교수님들을 초빙하려는 게 아니라, 여기 이 흑마법 학파의 학생을 초빙하려고 그런 거였습니까?!”
“그게… 음… 어… 아… 네… 맞아요.”
어떻게든 원추리 마탑의 명예를 변명해주려던 가르시아 교수는 어물거리다가 결국 인정했다.
여기서 어떻게 말을 돌릴 수 있겠는가.
그 말에 다른 모험가들은 물론이고 기사들까지 깜짝 놀랐다.
“아니, 학생 한 명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합니까? 원래 마탑이 이런 식입니까?”
“이 늙은 기사가 마법사의 일에 대해 뭘 알겠나 싶지만서도, 이건 좀 과한 것 아닌가 싶은데… 마법사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서 설득해야지 이런 식으로 현혹시키면 안 되지 않나?”
구구절절 맞는 말에 가르시아 교수는 대신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이한이 모르툼 교수 대신 수치스러움을 느꼈듯 가르시아 교수 또한 원추리 마탑 마법사들을 대신해 수치스러움을 느낀 것이다.
“그, 그게. 원래 안 그런데. 이번만큼은 좀 예외거든요. 원추리 마탑의 마법사들을 이해해주세요.”
듣고 있던 주테의 동료, 일리아네는 감탄한 목소리로 존경을 표했다.
“저 마법사 님은 실로 대단하시군. 어떻게 보면 자기가 가르치는 제자를 데려가려는 건데, 그걸 막지 않고 오히려 보내주다니.”
“보내주는 건 아닌데요.”
가르시아 교수는 오늘 처음으로 즉시 정색했다. 그 살벌한 기세에 산전수전 겪은 모험가들이나 기사들도 깜짝 놀라서 자세를 바로 잡을 정도였다.
“죄, 죄송합니다.”
“아, 아니… 죄송해요. 내가 무슨 짓을…!”
가르시아 교수는 깊게 반성했다.
상대가 중얼거린 말 한 마디에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인가.
사실 원추리 마탑의 마법사들이 추태를 벌이는 것도 굳이 거슬러 올라가면 해골 교장의 사악한 속임수가 그 근원에 있었다.
2대에 걸쳐서 사기를 쳤으니 원추리 마탑 마법사들이 얼마나 한이 맺혔겠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주테는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로 감격했다.
“흑마법 학파의 학생이 이렇게까지 대우를 받다니!!”
“……”
“…저기, 주테. 그…”
오크 전사 일리아네는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다른 흑마법사의 활약에 그렇게 심하게 이입해 대리만족하는 건 정신적으로 건강한 짓이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친구가 너무 심하게 감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내버려두자.’
‘맞아. 주테가 언제 저렇게 행복해하겠어.’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이한은 매우 어색함을 느꼈다.
사실 아까 전 학파 수강 사실을 밝혔어야 했는데 못 밝혀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저기… 음… 이제 이 유물을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아! 그러십시오!”
이한은 아까부터 우두커니 서있던 아파즈라곤을 불렀다.
고깃덩어리로 어색한 육신의 형태를 갖추고 있던 이 천사는 멍하니 기다리다가 이한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아파즈라곤. 혹시 이 안에 갇힌 정령을 상대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할 게 있나?”
원래 천사가 만든 검이라면 바로 유물에 찔러 넣어 타격을 입힌 뒤 이야기를 풀어갔겠지만, 검의 제작자가 다른 종족인 게 밝혀진 지금 그 전략은 막힌 셈이었다.
혹시 이 천사에게 다른 전략이 있을까?
“있다.”
“오. 뭐지?”
“여기 마법사들과 기사들로 포위망을 구성한 다음, 유물을 열어 안의 정령을 밖으로 끌어낸다.”
“그 다음은?”
“포위해서 공격한다.”
“……”
이한은 황당해서 천사를 쳐다보았다. 감동해서 울먹이던 주테도 어이없다는 듯 천사를 똑같이 쳐다보았다.
저게 무슨 전략이란 말인가??
다섯 살 먹은 꼬마도 ‘둘러싸서 두들겨 팬다’ 전략은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아파즈라곤은 당당했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조언을 한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하군…”
이한은 옆에 있는 든든한 전력들을 쳐다보았다.
볼라디 교수, 가르시아 교수…
“이, 이한 학생. 혹시 지금 절 전력에 넣어서 계산하고 있는 건 아니죠?”
가르시아 교수는 살짝 당황했다.
덩치와 달리 가르시아 교수는 싸움에 큰 자신이 없었다. 보조면 모를까.
“앗. 물론입니다. 안 넣었습니다.”
“휴. 고마워요.”
“안 넣었다고?”
아파즈라곤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천사의 상식으로 봤을 때 저 정도 강함을 가진 마법사를 전력에 넣지 않는 건 이상했던 것이다.
이한은 조용히 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아파즈라곤은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필멸자들의 행동은 가끔 천사를 너무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 혼란이 깨달음의 길인가?
“배그렉 교수님. 혹시 무력으로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차. 괜히 물었나?’
이한은 묻고서도 살짝 후회했다.
좀 덜 호전적인 사람한테 물어볼걸…
“나쁠 것 없겠지.”
볼라디 교수는 선선히 수긍했다.
딱히 볼라디 교수가 피에 미친 살인귀여서는 아니었고, 정말로 해볼 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원추리 마탑 안인 만큼 정령을 약화시키고 가둘 만한 공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기사들과 모험가들까지 동원해서 포위망을 만들면 왕(王)급 정령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토벌이 가능했다.
“그럼 혹시 모르니 원추리 마탑의 마법사 분들에게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잠깐. 이한 학생.”
“?”
이한이 호수에서 기기괴괴한 휴식 의식을 진행 중인 마법사들을 부르려 하자, 가르시아 교수가 재빨리 말렸다.
제자가 심부름 갔다가 못 돌아올까봐 살짝 걱정됐던 것이다.
“이한 학생 말고 다른 분들이 가주시겠어요?”
“…교수님…”
“뭐. 왜요.”
* * *
정령 중에서 불의 정령은 유독 난폭하고 사납다는 말이 많았다. 불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진 속성을 생각해봤을 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호전적인 정령이 하나 있었으니, 이 정령은 계(界)를 떠돌며 여러 싸움을 일으켰다.
본인의 무력뿐만이 아니라 교활함까지 겸비하고 있어 수많은 정령들의 우환거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령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싸움을 일으키고 영역을 불태우자 어느새 정령에게는 이런 칭호가 붙었다.
화천(火天)장군 즈바그니!
이한과 계약한 서어나무 정령 사라탄도 나름 난폭자였지만, 둘을 비교하면 그 피해 규모는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다.
사라탄은 호전적이었지만 적어도 자신과 부딪치지 않은 정령에게 시비를 걸진 않았다.
열이 받으면 사방을 다 때려 부쉈지만 화가 가라앉으면 더 이상 사고를 치지도 않았고.
그러나 이 화천장군은 ‘불’의 난폭한 속성을 그대로 응축시켜놓은 것처럼 행동했다.
부딪치지 않은 정령도 공격하고, 화가 나있든 없든 사방을 불태워버렸다. 봉인당한 사라탄과 달리 이 화천장군은 정령계에서 붙잡혔으면 그대로 소멸됐을 만큼 적이 많았다.
음?
즈바그니는 갑자기 자신을 가둔 유물이 풀려나자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정령이라면 지금 상황을 궁금해하거나 호기심을 느꼈을 법도 하지만, 즈바그니는 그 대신 다른 걸 준비했다.
바로 기습이었다.
상대가 죽으면 좋은 것이고, 죽지 않아도 손해 볼 것 없지 않은가.
정령의 혓바닥들이 날름거리더니 창으로 변해서 쏘아져나갔다. 일반적인 화염 마법사가 다루는 화염 창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의 힘이 느껴졌다.
그러나 상황은 즈바그니가 원하는 대로 풀려가지 않았다. 창이 허공을 가르자, 즈바그니는 유물의 쇠사슬을 털어내며 웃었다.
뭐냐, 마법사 놈들이 날 끝장내려고 열었던 거였나?
“어느 정령이지?”
정령 관련 고서를 들고 있던 마법사들이 즉시 외쳤다.
“잠시 확인을… 화천장군! 화천장군입니다!”
“화천장군?!”
생각보다 훨씬 거물의 칭호에 뒤에 있던 마법사들도 술렁거렸다.
내가 생각보다 많이 약해서 놀란 모양이지? 그야 용에게 물리고 악신에게 당했는데 힘이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니겠나! 원한다면 시간을 좀 줘도 좋겠군. 그럼 원래의 힘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
“절대 방심하지 마라.”
마탑주 을랑담은 바로 경고를 내렸다.
힘은 많이 약해져 있었지만 저런 정령은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됐다. 무슨 짓을 할지 예측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다른 정령들이었다면 굴복이나 타협을 선택했겠지만 즈바그니에게 그런 건 없었다.
즈바그니는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웃었다. 그러나 눈 위치에는 위협적인 불꽃이 번뜩였다.
여기서 패배해서 정령계로 역소환되든, 혹은 소멸하든 그건 상관없었다. 즈바그니는 그 전까지 최대한 많은 먹잇감을 태워버릴 생각이었다.
…잠깐. 넌 뭐냐?
덤비려던 즈바그니는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이한에게 말을 걸었다.
저 놈은 뭐하는 마법사인데 저렇게 정령들을 덕지덕지 달고 별까지 거느리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