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14)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 1114화(1114/1114)
1114
화
“?”
물론 황당한 건 이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자리에 얼마나 많은 마법사들이 있는가.
원추리 마탑의 마법사들이 전도유망한 마법사 인재를 한 명 데리고 오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규모의 희극을 펼치고 있었지만, 절대 호락호락한 이들이 아니었다.
당장 평소 안 입던 답답하고 화려한 옷을 억지로 낑겨서 입고 있던(더러운 연구용 마법사 복장을 입고 환영했다가는 워다나즈가 안 올까봐 걱정됐다) 마탑주 을랑담도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환복할 정도였다.
-백양목 기사들과 그림자 계곡의 수호자들이 추적한 유물이라? 결코 만만히 볼 수 없겠군. 내가 직접 지휘하겠네.
-잠, 잠깐. 다음 행사 준비하신 건 안 하십니까?
-다음 행사가 뭐였지?
-원추리 마탑 무도회…
-이름만 들어도 끔찍하기 그지없군. 다들 춤 춰본지가 10년은 됐을 텐데.
-예? 하, 하지만 을랑담 님께서 밖의 귀족 가문들이 하는 그대로 준비하라고 하셨…
-됐네, 됐어! 마탑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 앞에서 이런 행사를 할 때가 아니지. 그리고 오히려 이런 마법적 능력을 보여주는 게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다른 마법사들은 그럴듯하다며 감탄했지만, 정작 행사를 준비한 몇몇 마법사들은 의심스러운 눈빛을 던졌다.
그렇게 준비해놓고 화를 내시더니 이제 와서 저러는 건 아무리 봐도 이상했던 것이다.
…혹시 본인도 참기 힘들 만큼 지루하고 지겨워서 저런 것 아닐까?
이유야 어찌되었든, 을랑담은 마법사들을 배치해서 완벽한 포위망을 구축해놓았다.
평소라면 이런 일에 나서지 않았을 마탑 마법사들도 신나서 나섰다. 지루한 행사보단 이게 훨씬 더 나았다.
그렇기에 이한은 유물의 사슬을 풀고 개방을 하는 동안에도 별 생각이 없었다.
원래도 교수들의 무력을 믿고 있었는데 원추리 마탑의 마법사들까지 추가되니, 이건 뭐 가만히 있어도 해결되는 수준 아닌가.
그런데 밖에 나온 정령이 여러 강자들은 내버려두고 이한한테 말을 걸다니. 매우 찜찜한 일이었다.
‘게다가 생각보다 거물이고.’
떠돌아다니는 추방자 정령도 급이 천차만별이었다.
사라탄은 자칭 왕(王)인 것 치고는 전적이 그리 좋지 못했다. 심지어 다른 정령들에게 본신마저 제압당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한은 사라탄이 어떻게 패배했는지 몰랐다. 계략이나 배신을 당했을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결국 패배자 아닌가. 왕을 자처하는 만큼 기본적인 힘은 있겠지만, 그걸 결과로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왕의 작위는 의미가 없었다.
그에 비해 저 화천장군이란 정령은 스스로를 왕으로 일컫는 데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보였지만 몇 배는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정령으로서 자신의 영역을 다스리거나 꾸미는 대신 오로지 다른 일에만 관심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원추리 마탑 마법사들이 즉시 기록에서 찾아낸 건 물론이고…
“사라탄. 저 정령이 왜 관심을 보이는지 짐작이 가나?”
-저…
“저?”
-저 정령일 줄은 몰랐는데…!
사라탄은 기겁했다.
유물 안에 갇혀 있던 정령이 설마 화천장군이었을 줄이야.
자기보다 몇 세대 이전의 고대 정령이자, 난폭하기로는 훨씬 더 난폭한 정령 아닌가!
유물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봤을 때 아무리 높게 쳐도 자기와 동급이거나 그 이하의 정령일 줄 알았는데…
“지금 그게 중요하냐?”
이한은 답답하다는 듯이 힐난했다.
이 정령은 참으로 도움이 안 됐다.
화천장군에 대해 아는 걸 말하고, 왜 저 정령이 이한한테 관심을 가지는지 추측해줘야 할 것 아닌가.
마력을 좋아한다거나 마력을 좋아한다거나 마력을 좋아한다거나…
‘음. 안 물어봐도 되나? 왠지 이게 정답일 것 같은데.’
사라탄은 결의를 다졌다.
사실, 호전적인 심성만 놓고 보면 사라탄도 절대 어디 가서 밀리는 정령이 아니었다.
막상 생각해보니 만나본 적도 없는 고대 정령에게 겁을 먹었다는 사실이 화가 났던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나도 한 번 겨뤄보고 싶었다! 나를 소환해다오!
“……”
이한은 지팡이를 한 대 발로 찰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까부터 자꾸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소환이 아니라 저 정령이 왜 나한테 관심을 보이냐ㄱ…”
좋아, 좋아! 어차피 돌아간다면 너 같은 존재를 태워보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순간 정령의 몸이 형태를 잃어버리더니 거대한 불꽃의 기둥으로 변했다.
현재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공간은 마탑 지하 5층에 위치한 <봉인의 방>.
수백 개가 넘는 마법진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이곳은 강한 외차원 존재를 봉인할 때 사용하는 곳으로서, 한 번 마법진을 가동하면 지독한 압력이 가해져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즈바그니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말도 안 되는 선택을 보여줬다.
자신의 몸을 전부 태워버리면서 마법진을 돌파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손해였지만 즈바그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 말도 안 되게 이상한 마법사와 한 번 붙어보고 싶은 마음이 현재 즈바그니가 느끼는 욕망의 전부였다.
정령과 별에게 사랑받는 필멸자야, 정령과 별에게 증오받는 이 화천장군을 상대해보려무나!
-미친 놈!!
사라탄이 비명을 질렀다.
지금 즈바그니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것이다.
유물 안에 갇혀 있던 건 즈바그니의 본체가 아니라 화신(化身)이었다.
이런 화신은 분신 같은 것이어서 한 번 패배해서 소멸한다 하더라도 정령계의 본신까지 소멸하진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화신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일부였고, 이 화신이 역소환되는 이상 타격이 없을 수가 없었다.
즈바그니가 유물 안에 오랫동안 갇혀 있던 것도 그래서였다.
봉인되는 것보다 죽음을 선택해 역소환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손해를 볼 바에는 그냥 언젠가 봉인이 풀릴 때까지 잠깐 기다리는 게 훨씬 나은 것이다.
물질계에서야 긴 시간이지 정령계에서 이 정도 시간은 충분히 기다릴 만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즈바그니는 그 모든 선택을 헛되이 만들었다.
자신의 화신을 전부 태워서 마법진을 돌파한 다음, 부족한 힘은 본체에서 끌어낸 것이다.
타차원의 존재가 힘을 끌어올 때 세계의 거부로 인해 얼마나 손해를 보던가.
화신을 날리고 그것도 모자라 본신의 힘까지 끌어다 썼으니 즈바그니 정도 되는 정령이라 하더라도 이런 손해는 간과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선택에서 가장 황당한 점은, 이 모든 막대한 손해를 감안하고서 즈바그니가 얻은 거라고는 아주 잠깐 싸울 기회라는 점이었다.
마법진을 뚫고 돌파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
지금 이 근처에 쌩쌩한 마법사들과 기사들이 수백이 넘는데!
고작 저런 기회 하나를 위해 이 모든 손해를 감수하다니…
‘사라탄 이 자식!’
사라탄이 경악하는 동안 이한도 비슷하게 경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사라탄도 욕했다. 이 정령은 정말 도움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물론 저 유물에서 화천장군 같은 정령이 나온 게 사라탄 잘못은 아니었다. 사라탄이 없었어도 기사단은 유물을 갖고 왔을 것이고 그 안에서 정령은 꺼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란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상하게 사라탄이 엮이면 운이 없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잠깐만 버티면 된다!’
-나를 꺼내라! 같이 싸우겠다!
-내가 널 어떻게 꺼내냐! 스승님도 아니고!
이한은 일갈하며 마법을 끌어올렸다.
젊은 왕자야 마법의 대가(大家)인 만큼 손가락 하나로 사라탄의 부족한 육신을 만들어서 소환시킬 수 있었다지만 이한은 그럴 능력도 없고 지금 그럴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그럴 힘이 있다면 버티는 데에 써야 했다.
다행히 주변 곳곳에서 원군이 즉시 나서는 걸 보니 조금만 버티면 될 것 같았다.
즈바그니가 뚫고 나온 순간 곳곳에서 강자들이 바로 움직였다.
볼라디 교수와 가르시아 교수, 마탑주 을랑담, 백양목 기사 바만담…
…그림자 계곡 수호자의 주테와 분노해서 드래곤으로 변신하는 조우린까지!!
‘안 돼!!’
이한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전자 때문이 아니라 후자 때문이었다.
주테가 같은 흑마법사 후배인 이한을 아끼고 챙겨주려는 건 조금 부담스럽고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언제 한 번 날을 잡고 흑마법사 모임을 열어서 다 같이 주테의 심리 상담을 해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아마 디레트 선배가 있다면 충분히 설득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조우린이 드래곤으로 변신하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마탑의 다른 마법사들은 몰라도 마탑주 을랑담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당연히 상황을 깨달을 것 아닌가.
제국에는 틀로 찍어낸 것마냥 수많은 황족이 있었지만 그 중에 용족은 오직 아홉 뿐.
그리고 그 용족이 졸졸 따라다닌다는 건…
좋구나, 좋아! 사랑받는 자를 태울 때 더 기쁜 법이지!
이한은 생각을 멈추고 현실로 돌아왔다. 상대 정령이 내뿜는 지독한 악의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수옥탄!’
중급 마법 축장에 저장된 수옥탄 마법이 즉시 시전되며 쏘아져나갔다.
단순히 현란한 궤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한은 중급 공간 이동을 시전해 이 사악한 정령에게 직격시키려고 했다.
마력과 상관없이 극도로 발휘되는 집중력 때문에 뇌가 불타는 것 같았지만, 그 동안 쌓은 마법적 경험은 기적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완벽하게 마법을 시전한 것이다.
동시에 이한은 지팡이에서 사라탄의 힘을 끌어냈다. 사라탄의 본체를 만들어낼 수는 없었지만 권능은 가능했다.
완강의 권능!
-날 믿어라, 마법사!
서로 계약하고 나서 처음으로, 사라탄은 이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법사의 마력을 샘물처럼 받아먹은 사라탄은 포효하며 완강의 권능을 폭발시켰다.
단순히 지팡이의 내구도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앞에 불패의 방벽이 만들어졌다.
앞은 막히고 뒤에서는 수옥탄으로 타격을 입었지만 화천장군은 웃으며 육신을 잘라냈다.
어차피 역소환되기 전에 최대한 싸워보고 싶었던 만큼 상관없었다.
정령에게 사랑받는 만큼 참으로 강하도다! 더욱 더 널 태우고 싶구나!
“…이 개자식아. 누가 정령한테 사랑받는다는 거냐!”
어지간해서는 상대와 싸울 때 감정낭비를 하지 않는 이한이었지만 이번에는 울컥했다.
이제까지 정령과 계약할 때 했던 고생들이 빠르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절절한 감정이 담긴 이한의 말에 화천장군은 멈칫했다.
저 필멸자 마법사는 필시 만인에게 사랑받는 자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떻게 저리 절절한 억울함을 보일 수 있을까?
마치 상대가 자신 같은 존재인가 싶을 정도였다.
‘혹시 내가 착각한 부분이 있나?’
하지만 생각과 별개로 화천장군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주변 상황을 생각해봤을 때 앞으로 한두번 정도가 기회의 끝이었다.
화천장군의 몸이 마치 불씨가 꺼지듯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그건 속임수였다. 마치 싸울 시간을 벌려는 듯 주변에 거대한 화염의 장벽이 생겨났다. 동시에 화천장군이 다시 허공에서 몸을 드러냈다.
또 한 번 본체에서 힘을 끌어낸 것이다!
사라탄은 욕설을 내뱉었다.
-저 미치광이 노친네!! 곱게 늙을 것이지!!!!
으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이걸 한 번 막아봐라!
화염 장벽 안쪽에 불로 된 수많은 역사(力士)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한은 사라탄처럼 욕할 시간도 없었다.
일단 지팡이의 흑자석을 최대한 가동해 역마법으로 더 이상의 시전을 훼방 놓은 뒤 있는 역사들을 제거하기 위해 수옥탄을 최대한 불러왔다.
그러나 회전하는 물의 구슬들은 역사들이 뿜어내는 맹렬한 열기 앞에서 그저 새벽이슬 같은 존재였다. 순식간에 그 크기가 줄어들고 희미해졌다.
이한이 이를 악물고 다시 시전하려고 할 때, 갑자기 접근하던 역사들이 형체 없이 사그라들었다.
아니!
즈바그니도 당황할 정도였다.
어떤 준비도 징조도 없이 자신의 군대를 그냥 무효화시켜버리다니?
‘에우앙겔리온!’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이한은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수많은 평행차원에 나눠져 각인된 겉옷이 주인을 보호하고 있었다.
스승의 힘이 자신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자 여유가 돌아왔다. 이한은 다시 한 번 수옥탄을 불러왔다.
방금 전 시전한 수옥탄이 아니었다. 평범한 수옥탄으로는 적을 깰 수 없다는 걸 이미 느낀 뒤였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회전시켜서 파괴력을 만들어내는 게 아닌, <워다나즈의 뇌화>처럼 추가적인 사상(思想)을 담은 수옥탄.
아까보다 그 크기는 작고 회전도 그리 맹렬하지 않았지만 즈바그니는 패배를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