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49)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 1149화(1149/1149)
1149
화
이한이 한밤중에 깨있던 이유는 간단했다.
거인들은 밤에 쿨쿨 자도 됐지만, 의뢰를 받은 마법사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낮 동안 진행한 마법에 문제가 없나 확인하고, 수도 석공 길드원들에게 진행 상황을 보내고, 거인들한테 음식을 만들어주고, 학년을 거꾸로 먹는 것 같은 5학년 선배가 투덜거리는 것도 달래주고, 수급해 온 물자나 재료의 품질이나 숫자가 부족하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그러다가 물속에서 부글거리며 불쑥 나타난 세이렌과 마주쳤으니 아무리 이한이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뭡니까? 무슨 일로?”
-……
세이렌 파르테노페는 눈을 깜박였다.
원래라면 바로 노래를 불러 상대를 잠재운 뒤 도망쳤겠지만, 하필이면 눈앞의 마법사는 세이렌의 노래가 통하지 않는 괴물이었다.
몇 번이고 당한 적 있는 만큼 파르테노페는 감히 도박을 걸지 못했다.
“잠깐. 얼굴이 낯이 익은데… 앗. 혹시 저번에 만난 세이렌 파르테노페인가!”
이한은 모처럼 아는 세이렌을 만났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했다.
다른 세이렌들과 달리 파르테노페는 이한과 친분이 있었다.
작년에 지하 통로로 거인들을 몰래 옮길 때 이 세이렌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그 때 서로의 가교 역할을 한 게 바로 파르테노페였던 것이다.
부탁을 들어준 만큼 이한은 자신이 이 세이렌과 어느 정도 친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산맥의 거인들과 친한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물론 파르테노페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절레절레!
파르테노페는 황급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파르테노페가 아니라고?”
끄덕.
“이런… 미안합니다. 또 착각한 모양이군요.”
아무래도 평소 접할 일 없는 낯선 종족의 이목구비를 구분하는 건 조금 더 요령이 필요한 일이었다.
저번에도 세이렌을 착각했는데 이번에도 착각하다니. 이한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쪽을 뭐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아. 이름이 어려우시다면 저번에 파르테노페한테는 ‘가이난도’란 인간용 별명을 지어주려고 했었는데 혹시 그쪽이 대신…”
절레절레절레!
파르테노페는 미친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번에도 거절했던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다시 받게 될 수는 없었다.
세이렌은 최대한 서둘러 석판을 꺼냈다. 그런 뒤 ‘페노테르파’라고 썼다.
“과연. 페노테르파 씨. 혹히 파르테노페를 불러줄 수 있습니까? 저희가 친분이 있어서 이야기하기 편할 겁니다.”
-……
파르테노페의 지느러미 끝이 파르르 떨렸다.
마음 같아서는 분노와 고통의 노래를 귀에 고래고래 불러주고 싶었다.
누
군
지
몰라
하지만 노래로 승부해봤자 불리한 건 세이렌이었다. 파르테노페는 꾹 참고 석판에 글씨를 썼다.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그런데 페노테르파 씨.”
-?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
파르테노페는 자신도 모르게 딸꾹질을 할 뻔했다.
이한은 고민하다가 혹시나 싶어 물었다.
“혹시 등대를 짓는 게 너무 시끄러워서…”
도
우
러
왔어
“앗. 그게 정말이십니까?”
예상 밖의 말에 이한은 놀랐다.
세이렌은 정령에 가까운 존재라 이런 건설 때문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설마 도와주러 왔을 줄이야.
“저는 시끄러워서 온 줄 알았는데. 이거 감사합니다. 혹시 파르테노페가 추천했습니까?”
-……
페노테르파, 아니 파르테노페는 그냥 바다 밑으로 영원히 가라앉고 싶은 기분이었다.
대체 일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그러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세이렌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기사가 가네, 화살에 맞고 죽네!
-철퇴에 맞고 죽네, 검에 찔려 죽네!
아침이 밝자 거인들은 힘차게 노래를 부르며 일을 시작했다.
그보다 일찍 새벽부터 일하고 있던 세이렌들은 지상에서 들려오는 돼지 멱따는 소리에 양손을 귀에 가져다대며 괴로워했다.
-♪♩!!!!!
-♩♩♪!!!!!!
‘음. 세이렌 어는 아직 못 배웠지만 욕이란 건 알겠군.’
이한은 세이렌들이 분노해서 공격을 개시하는 것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됐다.
세이렌들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파르테노페를 쳐다보았다.
한 방 먹여주려 왔다가 일을 돕는 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파르테노페가 저 마법사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들도 저 마법사를 두려워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세이렌의 긍지까지 모욕하는 듯한 저 노랫가락을 보라!
-♪♩♩♩♪…
결국 참지 못한 세이렌들은 파르테노페의 지휘에 맞춰 반격에 나섰다.
종족 특유의 구슬픈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자 등대 주변에 있던 학생들도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세이렌이잖아? 세이렌이 왜 여기에?”
“화나서 습격하러 온 것 아닌가?”
“…아니, 일을 돕고 있는데? 저기 나룻배를 끌고 있잖아. 물론 지금은 거인들하고 합창하고 있긴 하지만…”
만약 세이렌들이 합창이란 말을 들었다면 스스로 목을 졸랐을 것이다.
지금 이 광경이 합창이라니!
이건 거인들의 추악한 노래를 밀어내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이었다.
-흥!
-생선들! 우리 노래를 방해하고 있다!
–
기사가 가네, 화살에 맞고 죽네…
–
철퇴에 맞고 죽네, 검에 찔려 죽네!
그러나 놀랍게도 이 거인들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작년 익명의 한 마법사가 노래를 가르쳐 준 뒤부터 노래에 관심이 많아진 이 거인들은 오랫동안 꾸준히 연습해왔다.
양을 몰 때도 노래를 부르고 돌을 치울 때도 노래를 부르고 야차 늙은이가 와서 제발 잠 좀 자자고 할 때도 노래를 부르고…
그런 합창 연습이 오늘 여기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노래의 종족인 세이렌의 음률에 맞서 팽팽히 버티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재빨리 대응에 나섰다.
“귀 막아!”
“청각 보호 마법 모르는 사람 있으면 빨리 와서 받아가라!”
세이렌의 노래든 거인의 노래든 학생들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전자가 이기면 학생들이 반쯤 최면 상태에 빠질 것이고 후자가 이기면 학생들은 음악을 증오하게 될 테니까.
“그만! 그만!”
이한은 두 종족의 음악적 경쟁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재빨리 중재에 들어갔다.
“둘 다 다시 작업에 집중해주십시오. 지금 시간이 없단 말입니다.”
파르테노페는 석판에 거인들의 저주를 금지하면 정말 최선을 다해 일하겠다고 적었다.
“저주? 아. 노래.”
-저주라니!
-생선들은 언제나 저렇다! 맨날 물가를 시끄럽게 만들면서!
당연히 거인들은 분기탱천했다. 그들은 힘을 모아 이한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우린 노래와 같이 일할 거다!
-노래 없으면 일도 없다! …그렇다고 요리가 없진 않지?
설마 마법이 아니라 이런 종족 다툼이 문제가 될 줄이야.
석공 길드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 실제 현장에서는 언제나 마법보다 다른 지혜가 중요했다.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찡그린 이한은 새로운 제안을 꺼냈다.
“세이렌의 노래를 들으시면서 일하시는 건?”
-우엑!
-……
파르테노페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물이 다 넘치지만 않는다면 저 덩어리들을 호숫가에 빠뜨려버리는 건데!
“음. 그럼 제가 연주를 해드릴 테니 그건?”
-그건… 음. 요청곡도 되나?
“안 됩니다. 그리고 따라 부르시는 것도 안 됩니다.”
-힝.
거인들은 아쉬워했지만 이한은 철벽같았다.
이들이 따라 부르는 순간 두 종족 사이의 전쟁은 다시 시작될 테니까.
한쪽을 설득한 이한은 다시 세이렌에게 돌아와서 말했다.
“제가 연주해드리기로 했는데 이건 괜찮겠죠?”
-……
파르테노페는 의심과 불신이 가득한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니 작년 저 거인들에게 저 흉참한 노래를 가르친 게 이 마법사 아니었던가!
그런 자가 대신 연주를 하겠다니 믿기질 않았다. 끔찍한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해야 한다면 그게 거인이 불렀든 인간 마법사가 연주했든 별 차이가 없었다.
이한은 세이렌들이 고민하는 사이 불길한 바이올린을 꺼냈다. 느껴지는 흉흉한 기운에 세이렌들은 더더욱 경계심을 보냈다.
뭐 저런 악기를…?!
세이렌들의 시선을 느끼며 이한은 집중했다.
‘할 수 있다. 내 실력도 많이 늘었다.’
고작 <에인로가드 신입생을 찬미하라>나 <그림자 요새로의 피신> 정도가 연주할 수 있는 음악 마법의 전부긴 했지만, 음악 마법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이것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 맞았다.
무엇보다 음악 마법은 한 곡을 얼마나 잘 연주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거지 얼마나 많은 곡들을 연주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닌 것이다.
‘진심으로 연주하는 거다!’
미친 분신과 해골 교장의 결투를 보고 <그림자 요새로의 피신>에 대한 영감을 얻었던 것처럼.
이한은 세이렌들과 거인들을 중재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연주했다.
그건 실로 웅장한 행진곡이었다.
몰래 조용히 따라 부르려고 했던 거인들도 입을 헤 벌리고, 귀를 막고 있던 선배들도 슬며시 마법을 풀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란 건 세이렌들이었다.
저 멍청한 거인들하고 같이 지내는, 거인 수준의 교양과 감성을 가진 마법사가 저런 연주를??
단순히 음률이 아닌 엮인 마력이 주변의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작업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연주가 끝나자 거인들은 신나서 박수를 쳤다. 이런 연주라면 대만족이었다.
그리고 연주가 끝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파르테노페는 자신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대
체
무
슨
노
래
지???
“아까 거인들이 부르던 노래입니다.”
-……
세이렌들은 자신들이 이런 노래에 감동했다는 사실에 혀를 깨물 정도로 수치심을 느꼈다.
* * *
이번에 에인로가드를 방문한 수도 석공 길드원들은 책임감 있는 이들이었다.
그런 만큼 이들이 이번 의뢰를 걱정스러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에인로가드 내에서 하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는데, 그걸 더 단축해서 끝내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으니…
괜한 간섭은 실례가 될 수 있어서 조언만 했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서 보는 게 낫지 않겠나?”
“그럴 순 없지. 마법사들을 못 믿는다고 오해하면 어떡하나.”
마법사들을 너무 풀어주는 것도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간섭하는 것도 실례였다.
맡기질 말던가 한 번 맡기면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앗. 편지가 왔군. 학생들을 예정대로 모았다는데.”
“그거 다행이군! 에인로가드 마법사들을 원하는 만큼 모았으니, 절반은 성공한 셈이야.”
그리고 얼마 후.
다음 편지가 왔다.
“뭐라고 적혀있나? 공사는 시작했겠지? 날짜를 생각해보면 바로 시작했어야 할 텐데.”
“…드래곤의 힘을 빌려서 부지를 정리하고 거인의 힘을 빌려서 건설을 시작했다는군.”
“???”
마법사들은 지식을 원하는 이들에게만 전수할 수 있도록 암호나 은유로 적어놓곤 했다.
혹시 이것도 그런 경우인가?
“글쎄… 나중에 결과를 보면 알 수 있겠지.”
그리고 또 얼마 후.
다음 편지가 날아왔다.
“내놓게! 이번엔 내가 읽어볼 테니. 음. 세이렌이 도와줘서 기간이 단축될 거 같습니다. 거인들과 다투긴 했는데 제가 연주로 화해시켰습니다…”
“지금 나하고 장난하나?”
“자네가 읽어보게!”
동료가 장난하는 줄 알았던 길드원은 편지지를 뺏은 뒤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직접 가서 보도록 하지.”
길드원들은 모두 다 고개를 끄덕였다.
관례고 뭐고 이건 정말 두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