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68)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 1168화(1168/1204)
1168
화
당연히 상대의 마력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귀한 공격을 낭비한 셈이었지만 목소리는 후회하지 않았다.
이 마법사는 이상할 만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기분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이런 유치한 짓을 잘 하지 않는 목소리에게, 방금 일은 꽤나 신선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꼭 사악한 자여야만 광신도들과 어울릴 수 있는 건 아니지.
‘음. 은근히 그럴듯하군.’
이한은 머리를 문지르며 생각했다.
당장 해골 교장도 붙잡은 크삭사리골 교단의 광신도를 활용해 적의 계획을 염탐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 생각에는 해골 교장이 사실 사악한 자일 수도 있다는 맹점이 존재하긴 했다.
“한쪽과 손을 잡으란 건, 음… 그러니까, 프라흐갈 교단과 손을 잡고 생귀로스 교단을 치란 겁니까?”
꼬마가 원하면 반대로 하려무나.
당연히 아니었다. 이한은 생귀로스 교단을 최우선으로 치고 싶었다.
손을 잡으라고 해서 진짜로 잡으란 게 아니란 건 알고 있겠지? 손은 잡아야하니까 내버려두더라도, 나머지는 살코기를 발라내란 소리란다.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손을 잡고 싶다고 해서 프라흐갈 교단이 응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절대 믿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한이 악신숭배자들을 안 믿는 것처럼 악신숭배자들도 이한을 매우 불신하고 있을 터였다.
특히 프라흐갈 교단은 몇 번이고 엿을 먹지 않았는가.
갑자기 이한이 연락해서 친한 척 굴면 ‘이 자식이 토벌대를 준비하고 함정을 파나?’라고 생각할 게 뻔했다.
그리고 사실 그게 맞기도 했다. 이한은 언제든 뒤통수를 때릴 수 있었으니까. 죄책감 따위는 전혀 없었다.
‘어차피 상대도 그럴 텐데.’
그것도 생각하지 않고 조언을 했겠느냐. 당연히 다 생각해 둔 방법이 있단다! 바로 이 할머니가 둘 사이를 중매하는 거지.
“!”
놀랍게도 목소리는 자신이 프라흐갈 교단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이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외차원의 강자라면 악신숭배자들과도 어느 정도 안면이 있을 테니까.
“정말 그래주실 수 있다면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 좀 귀염성 있게 구는구나. 물론 그래줄 수 있지. 하지만 몇 가지 기억해야 할 게 있단다. 절대 잊으면 안돼요. 알겠지?
“어떤…”
하나. 일이 끝나는 즉시 촉수쟁이들을 배신해야 한다.
“끝나기 전에도 배신할 수 있습니다.”
즉시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이한의 모습에 목소리는 살짝 말이 꼬일 뻔했다.
둘. 그럴 경우 촉수쟁이들에게서 거둔 전리품은 이 할머니에게 바치도록 하려무나. 설마 추가로 바치는 전리품 때문에 불평을 하진 않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 조건도 이한은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생귀로스 교단을 치는 게 중요하지 프라흐갈 교단에게서 뭘 얻느냐가 중요한 게 아닌 것이다.
솜씨 좋고 교활한 외차원의 강자를 자기편으로 둘 수 있다면 저 정도는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었다.
셋. 마지막으로… 주기적으로 바콴탈라나의 마법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보고하도록 해라.
목소리는 놀랍게도 바콴탈라나가 남긴 마법에 대해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바콴탈라나에게 흑마법을 전수했다는 존재가 저런 호기심을 보이자 이한은 놀라서 물었다.
“바콴탈라나 님의 마법에서 얻으실 게 있으십니까?”
배움은 별다를 게 없겠지만, 이 할머니는 원래 필멸자들의 멍청한 마법을 구경하는 걸 좋아한단다. 가르침을 받은 바콴탈라나가 과연 어떤 마법을 완성했을지 궁금하구나.
목소리는 바콴탈라나가 마법을 굳이 징표인 석판에 남긴 이유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이 뛰어난 마법사는 후대의 마법사가 석판을 이어받았을 때, 본인처럼 지혜를 전수받을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게 분명했다.
목소리 입장에서는 아주 터무니없는 행동이었다. 바콴탈라나가 눈에 든 것도 기적 같은 일이었는데 그게 두 번 일어나길 빌다니.
원래라면 그런 의도를 킬킬 비웃고 석판을 회수하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적극적으로 조언까지 하게 되어버렸다.
‘객성하고 계약했단 사실에 너무 웃어서 허술하게 굴어버린 걸지도 모르겠어.’
솔직히 안 웃기가 힘든 조합이었다.
온갖 차원의 강자들과 인연이 있는 놈이 아르나까지 계약한 상태라니.
마치 안 그래도 활활 타오르는 촛불이 스스로 기름통까지 찾아 자기 자신에게 부어버리는 내용의 희극 같았다.
확실히 이건 지혜에 대한 욕심으로 눈이 벌게진 다른 필멸자들과는 구분되는 희소성이었다.
심지도 남지 않을 만큼 활활 타오르면서도 멈출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필멸자를 또 언제 볼 수 있겠는가.
목소리는 이렇게 된 이상 바콴탈라나가 남긴 마법까지 한 번 지켜볼 생각이었다.
‘지혜를 받아간 만큼 제대로 된 후인을 골랐는지 못 골랐는지 어디 한 번 보자꾸나.’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익히겠습니다.”
분명 ‘주기적으로’라고 할머니가 말하지 않았니? 어린놈이 귀가 더 먹으면 어떡하려고!
“죄송합니다.”
이한은 사과했다.
에인로가드에 오래 있다 보니 마법을 앉은 자리에서 뚝딱 익히는 데에 너무 익숙해진 것이다.
외부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거만한 마법사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럼 얌전히 기다리고 있거라. 촉수쟁이들의 볼기짝을 두들겨서 불러올 테니까.
“앗.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
“어떤 호칭으로 그쪽을 부르면 되겠습니까?”
……
목소리는 새삼 상대 마법사의 불균형에 놀랐다.
강함과 상식의 불균형은 보통 지나치게 빠르게 성장했을 때 도드라지곤 했다.
저렇게 강하고 여러 차원의 강자들과 인연을 맺은 자가 목소리가 누군지도 모르다니.
킬킬. 괴팍한 마귀할멈이라고 부르거라.
‘함정인가?’
“예. 할머니…”
마귀할멈은 묻고서 딴소리하는 이한이 얄미웠는지 한 대 더 때리고 사라졌다.
석판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순간 꿈이라도 꿨나 싶었을 것이다.
“……”
이한은 캐튼을 쳐다보았다.
아는 선배들 중 가장 날카로운 육감을 가진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캐튼은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대단하다. 어떤 권능인지 짐작도 안 가는군.’
아까 마귀할멈이 친 장막 때문인 건 알겠지만 그 장막이 대체 어떤 마법으로 만들어진 건지는 이한도 가늠이 안 됐던 것이다.
대륙 바깥, 다른 차원의 마법은 일반적인 규칙과 법칙을 벗어나는 혼돈과 변화의 총체였다.
아마 마귀할멈이 보여준 권능도 이런 마법의 일부였으리라. 바콴탈라나가 괜히 지혜를 구한 게 아니었다.
‘잠깐. 그래서 마법 안 물어보냐고 했던 건가? …그냥 마법 물어볼 거 그랬나?’
이한은 갑자기 후회가 됐다.
요즘 자꾸 사악한 자들이 파리떼처럼 꼬여들어서 그것부터 물었는데, 생각해보니 상대가 어이없어하는 것도 당연했다.
신비로운 외차원 마법의 달인에게 인생 상담을 했으니 얼마나 이상하게 들렸겠는가.
그냥 흑마법에 대해 물었더라면…
‘…아니다. 이미 지난 일이다.’
괴팍한 차원의 강자들에게 괜히 구질구질하게 ‘바꾸면 안 될까요’해서 좋을 게 없었다.
이한은 이미 야차왕으로부터 교훈을 얻었던 것이다.
“선배님. 실은 방금 이 석판의 주인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마마마마마말도 안 돼!”
캐튼은 펄쩍 뛰었다.
설마 아까 그 이상한 감각이 정말로?
“생각해보니 사라탄. 너 아까 마력의 변화나 차원의 왜곡 같은 거 없었다고 호언장담하지 않았나?”
-…상대가 너무 나빴다.
사라탄은 시무룩해져서 변명했다.
그냥 잊은 김에 넘어가지 이걸 또 꼭…
* * *
지젤은 언니인 지클린과 같이 장식 하나 없는 살풍경한 북부 성채의 복도를 걸어가며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짐짓 겸손한 듯 말하고 있었지만 뽐내는 기색을 완전히 숨기기는 어려웠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이번에 여러 수배범들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할렌켄을 잡았는데 꼭 자랑하는 건 아니다…
지클린은 엄격한 얼굴에 한 줄기 미소를 띠웠다. 동생의 성취만큼 지클린을 즐겁게 하는 것도 드물었다.
굳이 꼽자면 거대 괴수의 목을 일격에 베고 그 혈향을 맡는 것도 있었지만 동생의 성취가 조금 더 즐거웠다.
“과연 그렇군. 잘했다.”
지클린은 단둘이 있을 때는 편하게 동생을 대했다. 남들은 볼 수 없는 가족의 모습에 지젤은 평소와 달리 자랑을 늘어놓았다.
“오러도 이제 완전히 다룰 수 있게 됐어요.”
“!”
이건 지클린도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검에만 몰두하는 또래들 중에서도 이렇게 빠른 속도는 흔치 않았던 것이다.
“정말 대단하구나!”
“별 거 아니에요. 운이 좋았죠.”
“어떤 상황에서 깨달았지? 혼자 수련하다가? 아니면 전투 도중?”
“전투 도중이었어요.”
지클린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의 고양감은 검사를 더 집중하게 만드는 법이다. 가문의 검술은 역동적이어서 더더욱 그럴 테고.”
검술과 검사의 특성에 따라 혼자 수련하다가 깨닫느냐, 혹은 전투 도중에 깨닫느냐로 나뉘기 마련이었다.
“상황을 자세히 말해보도록.”
“그러니까 그게…”
지젤은 자랑을 멈추고 선배 검사에게 조언을 얻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악신숭배자들과 그 권능도 잘 훔치는 이상한 친구가 있는데 얘가 전투 도중에 한눈을…
“워다나즈?”
“워다나즈라고는 안 했는데요.”
“다른 사람인가?”
“…워다나즈가 맞긴 해요. 근데 그건 별로 안 중요하잖아요.”
“감사인사는 했나?”
“예? 감사인사요?”
지젤은 황당함을 느꼈다.
정말 많이 양보해서, 이걸 제외한 에인로가드의 모든 상황에 대해서는 감사인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 과제, 시험, 탈주한흰호랑이탑학생추적 등등에서 워다나즈가 많은 역할을 맡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지젤이 잘 싸워서 지킨 것 아닌가!
“그건 알지만 검술에 대해 깨달음을 얻은 건 훨씬 더 대단한 일이잖나. 감사하게 여겨야지.”
“…예… 감사인사 할게요.”
“언제?”
‘아차.’
지젤은 후회했다.
언니인 지클린은 언제 한 번 같이 식사하자고 하면 그 자리에서 몇시 몇분 몇초까지 정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번 의뢰 접견 끝나자마자 바로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친구는 소중히 여겨야지.”
‘오히려 이상하게 볼 거 같은데.’
“영지에는 별다른 일 없나요?”
지젤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말했다. 지클린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기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참으로 적은 것 같구나.”
“…마법사도 마찬가지죠.”
자연은 언제나 필멸자보다 위대한 법이었다.
차원이 뒤틀리고 지역 곳곳에서 이상현상이 일어날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현재 북부 기사들은 일정 규모 이상 되는 몬스터들을 소탕하고 갑자기 나타난 유적이나 던전을 관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지만 완전히 소란을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맞아. 영지에 흑마법사들이 와있던데, 에인로가드 흑마법사들은 안 왔나요?”
“초대를 받았는데 안 왔다고 하더구나.”
“그래요?”
지젤은 의아함을 느꼈다.
워다나즈도 그렇고 같은 탑의 그랄도 그렇고, ‘에인로가드 흑마법 학파는 초대만 받으면 어디든 간다’며 궁핍함을 어필하던데…
‘과장인가? 하긴. 워다나즈가 과장 잘 하는 편이지.’
“이들이 북부의 이상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해서 다들 고민중이다.”
“들어보니 흑마법 관련 현상 같긴 한데…”
“흠. 흑마법사들에게 부탁해 워다나즈를 그들의 회의에 참석시키는 건 어떻게 생각하지?”
“저희 아직 2학년인데요!”
지젤은 기겁해서 말리려고 했다.
아무리 지젤이 평소에 친구의 등을 밀어버리고 싶어해도 그렇지, 기라성 같은 흑마법사들 사이에 밀어버리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랬다가는 처절한 피의 보복이 이어질 것이다.
“2학년이어도 좋은 의견을 내놓을 수 있지 않나?”
“절대 그럴… 수 없는 건 아닌데, 그래도 제발 하지 마세요. 제가 시켰다고 오해받는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