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81)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 1182화(1182/1204)
1182
화
그러거나 말거나 이한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정말 흑마법사들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게 진실히 느껴졌다.
대신 머뭇거리며 현재 듣고 있는 강의에 관한 마법책들을 꺼낼까 말까 고민했다.
<흑마법의 금지된 비술들>이나 <영체 사용 분신의 기초>, <원소 마법 강해(講解)> 등등의 강의 목록이 얼핏 드러났다.
“음, 이런 부탁을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하찮은 마법들이라.”
-전혀요, 제자님.
해골 교장이라면 ‘그럼 꺼져라’라고 했을 것이고 미친 분신이라면 ‘감히 스승의 시간을 낭비하다니’하며 호되게 혼쭐을 냈을 테지만 젊은 왕자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제자를 믿고 스스로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제자님의 표정에 초조함이 여실하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이야기하자면 깁니다만…”
-시간은 있으니 말해보세요. 하찮은 지혜라 하더라도 제자님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젊은 왕자는 기다리는 동안 그림 속에서 손수 찻잎을 덖어냈다. 차의 향을 확인한 왕자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은 잠깐 고민하다가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그게… 이 제국에서 제일 사악한 잡놈들과 충돌했는데, 하필 이놈들 중에 교수님하고 옛 원한이 있는 자가 있어서…”
-혹시 볼라디 제자님이 사라졌나요?
“?!”
다 듣지도 않고 차분하게 정답을 말하는 왕자의 모습에 이한은 깜짝 놀랐다.
혹시 이 안에서 밖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던 것일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자님이 이렇게 초조해하면 당연히 짐작할 수 있죠. 제자님. 마법사는 감정을 숨길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답니다.
젊은 왕자는 볼라디 교수가 사라졌다는 말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대륙 전역을 돌아다니며 혈투를 벌인 왕자에게 이런 소식은 찻잔을 기울이며 들을 정도에 불과했다.
제자가 공격받으면 스승이 나서는 법.
사문의 의리란 것은 원래 이런 것이었다.
하물며 예전부터 스승의 원수였다면 더더욱…
-제자님의 실력이 뛰어났다면 동행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 덜 다듬어진 부분이 있으니 동행하지 않은 거겠지요.
“그래도 보통 말은 하고 갈 수 있지 않습니까?”
-글쎄요?
왕자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스승은 원래 제자에게 다 설명하지 않는 법이랍니다. 그 뜻을 알아서 짐작하는 건 제자의 몫이죠.
“하긴 교수님들이 말 안 해도 알아서 잡일을 끝내놓는 게 제자의 역할이긴 합니다만…”
-…조금 이상하게 이해한 것 같지만, 핵심은 전달이 됐을 거라 믿겠어요. 제자님.
젊은 왕자는 선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절대 꺾이지 않는 완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사제 관계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한은 그 부분에 대해 괜히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젊은 왕자를 자극해서 미친 분신처럼 화를 내게 만들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제 마법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란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무례한 자군요.
“……”
사실 해골 교장이 한 말이었지만 이한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물론 제자님의 마법 실력이 부족해서 동행하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사제 관계의 특수성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런 부분만을 꼬집어서 말하다니요? 아주 악의적이네요.
“…크윽.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이한은 반성했다.
결국 마법 실력이 부족하단 건 사실이란 소리 아닌가.
젊은 왕자는 괜찮다는 듯이 이한을 달랬다.
-다들 부족한 때가 있답니다. 제자님. 그렇기에 지혜를 위해 정진하는 것이고요. 제자님에게는 좋은 스승들이 있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스승은 바로 눈앞에 있고요.
“…그, 그렇군요.”
이한은 말을 듣다가 자연스럽게 홀릴 뻔했다.
-현재 제자님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겠네요. 상책(上策)은 스승의 실력을 믿고서 가만히 기다리는 겁니다.
“이미 추적할 준비 다 했습니다만.”
-그럴 줄 알았답니다. 그렇다면 중책은 방법을 총동원해서 직접 추적에 나서는 거겠군요.
“그럼 하책은 뭡니까?”
-하책은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제자님 혼자서 계획을 꾸미는 건데, 제자님이 그러진 않겠죠?
“제가 죄송합니다…”
젊은 왕자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강한 압박감을 내뿜었다.
‘차라리 화를 내시면 안 되나?’
미친 분신은 물리적으로 공격하긴 했지만 적어도 뒤끝은 없었다.
이한은 갑자기 옛 스승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들고 온 마법들은 무엇인가요? 그 마법들을 전부 익혀야 추적에 나설 수 있나요?
“맞습니다.”
-좋아요. 제자님.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 테니, 여기 있는 어린아이 장난 같은 것들을 빨리 끝내보도록 하죠.
“예?”
-농담이랍니다. 농담.
“……”
* * *
-네놈은 참 배짱도 좋구나.
이한의 개인실 탁자 위에 놓인 우리 안에서 햄스터가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에 이한은 순간 멈칫했다.
‘뭘 말하는 거지?’
최근에 하도 저지른 일들이 많아서 햄스터가 뭘 말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 사념체를 겁도 없이 만나러 가는 거 말이다.
“아. 난 또.”
이한은 안심했다.
솔직히 최근 벌이고 있는 일들이 남들에게 지적을 들었을 때 ‘이 정도는 할 수 있지’라고 말할 수준이 아니긴 했던 것이다.
“스승님은 그쪽 같은 사악한 마법범죄자한테나 엄격하시지 저한테는 친절하신 편입니다.”
-정신 나간 헛소리를 잘도 늘어놓는군.
햄스터는 어이가 없어서 찍찍댔다.
물론 햄스터도 본인이 선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주장하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고나달테스의 사념체보다는 훨씬 더 멀쩡하고 상식적인 사람일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선악의 선을 그어놓고 스스로가 부서질 때까지 투쟁하는 마법사가 어떻게 정신적으로 멀쩡하겠는가.
차라리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자신이 더 멀쩡할 것이다.
햄스터의 이런 주장에 이한은 옆에 있는 찬물을 끼얹는 걸로 대답했다
-악!
“자기 욕심 많다는 걸 그런 식으로 포장하다니.”
-포장? 날 포장한 게 아니다! 내가 뭐가 아쉬워서 날 포장하겠나. 그 사념체가 무시무시하단 소리지. 잘 생각해봐라. 정말 그 사념체에게서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는지.
“……”
이한은 무심코 생각에 잠겼다.
가끔 젊은 왕자에게서 서늘함을 느낀 적이 없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 될 터였다.
처음에는 모든 부분이 완벽한, 해골 교장의 상위 호환이라고 생각한 왕자였지만…
…가끔 서늘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정령 사라탄을 대할 때가 바로 그랬다.
바콴탈라나의 차원 막대 마법을 시전할 때 왕자는 분명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사라탄을 희생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사라탄이 선한 정령은 아니었다.
처음 만남도 위협적이었고, 난폭한 과거까지 생각해보면 젊은 왕자가 이 정령을 억누르는 것도 머리로는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 살짝 서늘함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차. 내가 사악한 마법범죄자의 수작에 당했구나.’
이한은 옆에 있는 먹물을 햄스터에게 끼얹었다. 햄스터는 분노해서 욕설을 찍찍댔다.
“어디서 그런 헛수작을.”
-이런 빌어먹을 놈 같으니. 믿기 싫으면 안 믿으면 그만이지 이게 무슨 짓이냐!
순식간에 검게 염색된 털의 모습에 햄스터는 수염을 부르르 진동시켰다.
-계속 그 사념체와 어울리고 싶으면 알아서 해라. 어차피 내가 막는다고 네놈이 들을 생각이라도 있느냐?
“그건 아닙니다만 기분이 나쁘잖습니까. 그리고 스승님은 이렇게 도와주고 계십니다. 그쪽은 뭘 해줬습니까?”
이한은 빼곡하게 글씨가 적힌 마법책을 흔들었다.
자기가 변신시켜서 우리에 가둬놓고서 ‘넌 왜 해준 게 없냐’고 따지는 게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지만 햄스터는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이미 이 마법사 놈과 어울린 경험으로 봤을 때, 따져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그게 뭐냐?
“이번 중간고사에 대해 적어주신 조언입니다. 미리 끝내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혼자서 다 준비하기에는 좀 난이도가 있어서요.”
-……
사념체를 겁도 없이 잘도 만나러 간다고 생각했는데, 간 이유가 저런 하찮은 이유였을 줄이야.
햄스터는 말문이 막혀서 찍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한 번 보시겠습니까?”
-…그러지.
솔직히 심심하기도 했겠다 햄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들을 위한 연금술 심화>라는 걸 보니 연금술 강의인 모양이었다.
‘마법사가 꽤 배배 꼬인 자로군.’
강의 이름만 봐도 그 마법사의 심성을 알 수 있었다. 저런 강의 이름을 걸어놓은 걸 보니 햄스터 본인마냥 배배 꼬인 심성을 가진 게 분명했다.
…다음과 같은 지견향(知見香)은 예지 마법 학파의 일종으로서, 마법사의 오감을 강화시키고 점술의 정확도를 올리는 효과가 있다.
이 지견향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승향(乘香), 단사(丹沙), 잠쑥, 30년 이상 된 마수의 뼈…
-흐음. 그 사념체가 적어준 것치고는 꽤 심심하고 평범한데.
햄스터는 살짝 놀랐다.
고대의 강력한 마법사인 만큼 자신도 예측하지 못할 만큼 기상천외한 마법이 나올 줄 알았던 것이다.
“아. 그건 교수님이 적어주신 거고, 스승님께서 적어주신 건 그 뒷장입니다.”
-그렇군.
“안 보십니까?”
이한은 햄스터가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자 의아해했다.
그러자 햄스터가 분노를 폭발시키며 외쳤다.
-넘겨줘야 볼 거 아니냐!
“아.”
이한은 속으로 성질 참 더럽다고 투덜대며 종이를 넘겼다.
…다음과 같은 지견향(知見香)은 예지 마법 학파의
일종으로서
(엄밀히 따지자면 원리를 연금술에 접목시킨 거지 예지 마법 학파라고는 할 수 없음)
마법사의 오감을 강화시키고
ㄴ미각은 실질적으로 무의미함
…점술의 정확도를 올리는 효과가 있다…
이 지견향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승향(乘香),
단사
(미량이더라도 황금을 쓰는 걸 추천)
잠쑥, 30년 이상 된 마수의 뼈
ㄴ30년 이상 된 마수의 뼈를 구하는 걸 저렇게 쉽게 말하다니 어이가 없음. 이래서 연금술사들이란. 암흑 원소를 뼛조각에 불어넣는 걸로 대체가 가능할 거임.
-……
햄스터의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역시 미친 고대의 대마법사답게 사정없이 난도질을 해놓은 것이다.
만약 햄스터가 이 조합법을 작성해놓은 연금술사였다면 분노와 굴욕으로 뒤로 쓰러졌을 것이다.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조합법은 연금술사의 취향 차이도 분명 있을 텐데.’
마법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특히나 연금술은 그게 더 심했다.
더 강하고 정순한 효과를 위해 비용을 감수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마법사의 노력으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난이도 높은 방법을 제안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어느 정도 여유를 뒀겠지만 이 대마법사는 마치 제자의 답안을 채점하듯 사정없이 난도질을 해버렸다.
“참 친절하시지 않으십니까?”
-너한테는 친절하겠지. …혹시 상대 마법사한테 이걸 보여줄 생각이냐?
“제가 무엇하러 그러겠습니까? 완성된 결과물만 보여드리면 그만인데.”
-그렇지? 다행이군.
햄스터는 문득 멈칫했다.
자신이 이걸 왜 다행이라고 여긴단 말인가?
에인로가드 마법사가 굴욕으로 구르든 말든 무슨 상관이라고!
‘…최, 최대한 빨리 원래대로 돌아가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