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1294)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 1294화(1293/1304)
1294
화
“가이난도. 잘 생각해봐라. 물론 디레트 선배님이 알려주시긴 했지만, 그 자리에… 모르툼 교수님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냐?”
포기하지 않고 이한은 친구의 기억을 조작하려고 나섰다.
원래 사람의 기억이란 게 푸딩처럼 말랑말랑해서 왜곡되기가 쉬웠다. 특히 가이난도의 기억은 더더욱.
“아닌데? 그런 기억 없는데?”
“잘 생각해보라니까.”
“없어. 모르툼 교수님은 맨날 이한한테 귀찮은 일 시켜요. 아니면 디레트 선배님이나.”
“내 내 내 이럴 줄 알았다!”
탕!
흑마법사들은 탁자를 거세게 내리치며 외쳤다.
안 그래도 모임 때 제자 자랑한 원한이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가이난도의 고발은 아주 좋은 꼬투리였다.
“이번 기회에 제국 흑마법사들 사이에서 제명을 시켜버려야 해!”
‘망했군.’
이한은 포기했다.
생각해보니 이건 모르툼 교수의 탓이기도 했다. 제자들에게 평소 인망을 잃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에서 가이난도가 고발할 일도 없었다.
“흑암관으로 가자! 모르툼 교수를 권좌에서 끌어내야겠다!”
“잠깐! 내 마법은?”
버두스 교수는 흑마법사들이 이한을 데리고 나가려고 하자 당황해서 외쳤다.
흑마법사들에게 마법의 비전에 대해 듣지도 못했고, 이한에게 아직 소세계를 전수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아흐락의 후예들은 서로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재빨리 바닥에 불을 질렀다. 아까 가이난도가 지른 불보다 훨씬 크고 강력한 불이었다.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야!!”
“흥. 널 태우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라. 가자!”
“……”
버두스 교수가 다급히 불을 끄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이 흑마법사들은 이한과 가이난도를 데리고 마탑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에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제국 흑마법사에 대한 편견은… 조금 근거가 있을지도 모른다.’
* * *
디레트는 힐끗 거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처음 보는 언데드인데?’
잠시 후 디레트는 처음 보는 언데드가 아니라 자신의 상태가 맛이 갔다는 걸 깨달았다.
‘아차. 흑마법사가 거울 속에서 언데드를 보게 되면 갈 때까지 간 거라던데.’
아무래도 잠깐씩 쉬는 걸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좀 길게 휴식을 취해야 할지도 몰랐다.
‘3분… 너무 긴가? 2분 55초 정도 쉬어야지.’
얼굴에 찬물을 끼얹은 디레트는 창가에 쌓인 종이새를 대충 훑어본 뒤 휙 불태웠다. 현재 수도로 향하고 있는 유크벨티레가 보낸 편지였다.
‘얘는 왜 그런 거에 꽂힌 거야…’
원래라면 가장 바쁠 겨울 방학 시간을 유크벨티레는 이상한 곳에 쓰고 있었다.
바로 수도에서 일어난 <드래곤 조각상 소동>이었다.
누군가 유크벨티레를 사칭해서 살아 움직이는 드래곤 조각상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편지로 계속 날아오자, 자존심이 제대로 긁힌 유크벨티레는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헛소문을 잠재울 계획을 세웠다.
사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마법사로서 자부심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으니까.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사칭해가며 마법 작품을 만들었다면?
그리고 그 마법 작품이 지금 자신의 마법으로는 만들 수 없는 것이라면?
디레트도 신경이 쓰여서 밤잠을 설칠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걸 직접 확인하겠다고 수도로 떠나다니.
‘편지가 얼마나 많이 왔으면…’
아까운 휴식 시간이었지만 디레트는 결국 생각을 멈추는 걸 포기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과연 이 사건의 진상은 어떻게 된 것일까?
가장 가능성 높은 건 겁 없는 사기꾼이나 사칭범으로 인한 헛소문이겠지만, 그렇게 넘기기에는 찜찜한 부분들이 있었다.
유크벨티레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들의 신분이 확실하고 또 그 증언이 구체적이었던 것이다.
‘증언이 일치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아. 무언가 소문의 근원이 될 만한 마법이 확실히 있었던 걸지도.’
만약 헛소문이 아니라면…
현재 유크벨티레를 사칭할 만큼 악감정이 있고, 또 살아 움직이는 드래곤 조각상을 만들 만큼 부여 마법 실력이 있는 마법사는 누가 있을까?
‘페트로가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괴짜 부여 마법사들이 모이는 마법학교였다.
여기 마법학교는 에인로가드 부여 마법 학파 교수를 싫어했고(사실 모든 마법사들이 싫어했지만), 살아 움직이는 드래곤 조각상을 만들 만큼 뛰어난 부여 마법사였다.
특히 후자가 중요했다.
이들은 원시 부여 마법을 깊게 파고드는 자들이었고, 미(美)의식에 따른 영감과 행운으로 현재 제국 마법으로는 구현하기 힘든 마법을 완성해내려고 하는 자들이었다.
그 특징 중 하나가 저런 생명을 부여한 듯한 마법 작품이었다. 유크벨티레의 마법과는 정반대의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페트로가드 마법사들이 갑자기 와서 시비를 걸 이유가 있을까? 생각해보니까 많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들의 약점은 잘 알고 있을 텐데.’
페트로가드 마법사들의 약점은 그 재현성에 있었다.
그들 본인도 영감이나 행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고점을 찍지 못하는데 무엇을 믿고 시비를 건단 말인가.
자리에서 그걸 본 사람들도 그 정도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진짜 누구지? 페트로가드에 새로운 천재라도 나왔나?’
공방 아래로 내려온 디레트는 탁자 위에 간식이 놓여 있는 걸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온 마법이 걸린 햄과 달걀 샌드위치, 뜨끈한 채소 수프, 홍차와 벌꿀 파이까지.
처음에는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흑마법사를 도와주는 괴물(다른 학파는 요정이 도와줬지만 흑마법 학파는 보통 괴물이 나왔다)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그럴 리 없었다.
언제나 소환하면 뒤통수를 칠 궁리부터 하는 언데드들이 기특한 일을 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이건 후배의 짓이었다.
‘그러고보니까 얘도 방학 때 갇혀 있는다고 했었지…’
방학 때 나가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니 저번에 화를 낸 게 괜히 더 미안해졌다. 디레트는 깊게 반성했다.
선배. 선배의 다음 학년을 응원합니다. 참고로 저기 있는 교수님용 식사는 절대 드시면 안 됩니다. 정말로 절대 드시면 안 됩니다.
“……”
디레트는 자신도 모르게 모르툼 교수의 탁자 위에 놓인 음식을 쳐다보았다.
차갑게 말라비틀어진 고기 조각에 빵 색깔도 어쩐지 거무튀튀해보였다.
‘설마 독 탄 건 아니겠지?’
조금 고민이 됐지만 디레트는 후배를 믿기로 했다. 후배 성격에 독까지 타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쿵쿵쿵쿵-
‘누구지?’
누군가 흑암관 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에 디레트는 수프 그릇을 내려놓고 창가로 걸어갔다.
아래에는 너무나도 의외의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
“문 열어주게!”
“…제대로 허가 받고 들어온 건 맞으십니까?”
디레트는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아흐락의 후예들을 쳐다보았다.
이미 저번에 북부에서 후배를 채가려고 했을 때부터 제국의 다른 흑마법 세력들은 신뢰도를 잃어버린 뒤였다.
흑마법 학파끼리 뭉쳐야 한다는 건 공허한 말일 뿐. 디레트는 해골 교장의 말이 요즘 조금 이해가 됐다.
‘언제 뒤통수를 칠 지 몰라!’
“제대로 허가 받았네! 여기! 이걸 보라고! 모르툼 교수 그 작자는 안에 없나?”
“교수님 밖에 나가셨습니다만.”
“이런 비열하고 교활한 놈 같으니.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도망쳤군!”
“???”
디레트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두려움을 느꼈다.
설마?
“교수님이 금화 빌리셨나요!?”
“아. 그건 아니야. 우리가 미쳤다고 모르툼에게 빌려주겠나.”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디레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던 도중 두 후배가 눈에 들어왔다.
“너희 왜 거기 있어!? 설마 납치당한 거 아니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우리를 버두스 교수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나?”
아흐락의 후예들이 항의했지만 디레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북부에서 있었던 후배 탈취 사건 이후 이들의 신뢰도는 저 깊은 무저갱에 위치했다.
‘진짜 너무하는군.’
늙은 흑마법사들은 속으로 투덜댔다.
물론 그들이 뛰어난 인재를 스카웃하려고 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법사로서의 본분을 다한 일이었다.
이제 지나간 일이니까 서로 잊고 화해해도 되지 않나?
“이분들이 방문하셨다가 잠시 만났습니다. 별 일은 안 당했…”
“참. 버두스 교수님 마탑에 불났어요.”
“조용히 해. 이 자식아.”
이한은 가이난도의 입을 닥치게 만들었다. 지금 디레트 선배가 흑마법사들을 보는 눈빛이 매우 날카로웠던 것이다.
“버두스 교수님 마탑에 불을 지르셨다고?”
“아닙니다. 오해가 조금 있었던 것 같…”
“…사실 그건 상관없긴 하지. 알겠습니다. 들어오도록 하시죠.”
디레트는 잠깐 고민하다가 흑암관의 문을 개방했다.
생각해보니 버두스 교수 마탑에 불이 났든 말든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후배들한테 불 지른 것도 아니고 뭐…
우르르 들어온 늙은 흑마법사들은 밖에서 기다리게 한 일에 대해 툴툴대며 말했다.
“디레트, 자네 알고 있나? 자네가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동안 밖에서는 어마어마한 음모가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저번에 유사성물 마법 논문을 보냈을 때는 그렇게 극찬하셨으면서 왜 갑자기 시간 낭비가 됐는지 의문이긴 합니다만… 그래서 음모가 뭡니까? 혹시 어떤 사악한 마법사들이 또 후배들을 탈취하려고 했습니까?”
디레트는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싸늘하게 말했다.
이한과 가이난도는 이 상냥한 선배가 이런 태도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심지어 버두스 교수한테도 저렇게 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아. 옛날 일은 좀 잊어버리게. 흑마법사들끼리 그럴 수도 있지.”
“참. 선배님. 아까 여기 분들이 저 칭찬 해주셨어요.”
가이난도는 뿌듯함을 담아 말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최악의 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디레트의 눈매가 즉시 사나워졌다.
“나가십시오. 탑 마법 가동하기 전에.”
“아, 아니야! 아니야! 정말 아무 의도 없는 순수한 칭찬이었다고! 제대로 설명해, 이 애송이!”
후예들은 가이난도를 의심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그냥 재능 뛰어나고 기특한 흑마법사인 줄 알았는데 말하는 걸 듣다 보니 이상하게 그들을 함정으로 몰고 가는 기분이었다.
혹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천진한 얼굴로 일부러 이러나?
“우리가 언제 널 데려간다고 했나!”
“네? 근데 초대해준다고 하셨잖…”
“
흑암관이여, 그림자의 힘을…
”
“백 년! 백 년 후에 초대한다고 했잖아! 백 년 후에!”
디레트가 주문을 외우자 늙은 흑마법사들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진 않았지만 디레트는 일단 주문을 멈췄다. 흑마법사들은 헉헉대며 자리에 앉았다.
짧은 사이 수명이 줄어든 기분이었다.
“그래서 음모가 뭡니까?”
“버두스 교수가 소세계 마법을 가르쳐주려고 하고 있었다니까!”
이한은 별 생각 없이 앉아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약간 맛이 간 흑마법사들과 달리 디레트 선배는 상식적이고 훌륭한 사람이니, 버두스 교수가 먼저 소세계 마법을 가르쳐주려고 했다는 사실로 화를 낼 리가 없었다.
오히려 호들갑을 떠는 흑마법사들을 준엄하게 꾸짖…
그러나 디레트 선배의 반응은 이한의 예상과 달랐다.
이 제국 최고의 선배는 당혹, 실망, 슬픔, 혼란 등등이 섞인 표정으로 후배를 쳐다보았다.
“…진, 진짜야?”
그 모습에 이한은 즉시 외쳤다.
“그 사악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마법사가 억지로 마법을 전수하려고 하지 뭡니까? 여기 흑마법사 분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꼼짝 없이 배워야 했을 겁니다. 다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 기특한 녀석. 제국 흑마법의 학통은 오로지 네 손에 있다!”
늙은 흑마법사들은 이한이 기특해죽겠다는 듯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