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693)
693화
자신의 말에도 선배가 계속 눈을 감고 환상 마법에서 탈출하려고 시도하자, 이한은 선배의 뺨을 때렸다.
짝!
“악!”
“선배님! 정신 차리십시오! 현실입니다!”
별다른 마법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환상 마법을 깨기 가장 좋은 방법은 자극을 주는 것이었다.
강한 집중력이나 자극이 미세하게 마력의 흐름을 틀어 환상에서 깨어나게 만드는 것이다.
이한은 한 방 더 뺨을 때렸다. 이번에는 반대쪽이었다.
짝!
“잠깐, 잠깐! 현실인 것 같다!”
“다행입니다.”
얼데는 양쪽 뺨을 매만졌다. 얼얼한 게 아무리 봐도 현실이었다.
‘이 자식 되게 무섭네…’
물론 상대가 환상 마법과 관련된 혼란에 빠졌을 경우에는 최대한 빨리 도와줘야 하는 게 맞았다.
우스워 보이지만 꽤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환상 마법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환상 마법에 걸렸다고 착각에 빠지게 되면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져 미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선배의 양쪽 뺨을 전력으로 후려갈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과연 네 개의 탑 1학년들을 모아서 밀수 작전을 시도하는 걸물다웠다.
얼데는 새삼 눈앞의 후배에 대해 궁금해졌다.
이제 2학년으로 올라올 텐데 이런 녀석이 안 유명해질 리는 없을 테고…
“너, 어느 가문이라고 했냐?”
“선배님. 계획에 대해 좀 더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어, 응.”
이한은 준비한 계획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 이한이 노리는 통로는 1학기 때 가르시아 교수와 같이 외출했던 지하 통로였다.
에인로가드의 수많은 지하 통로들 중 몇몇 통로는 외부 상단 일꾼들이 오가는 길로 사용되었다.
그 중 이한은 지하 창고의 숨겨진 비밀 벽돌문과 연결된 통로 위치를 알고 있었다.
“알겠다.”
얼데는 고개를 끄덕였다.
“뭘 아신 겁니까?”
“너, 그 책을 발견한 거군. >에인로가드의 비밀스러운 길들>. 그거, 교장 선생님이 만든 함정이다. 거기로 머리 들이밀면 징벌방이야.”
“……”
도대체 해골 교장이 책을 몇 권 만들어서 뿌렸나 어이없어하며 이한은 대답했다.
“제가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본 통로입니다.”
얼데는 입을 뻐끔거렸다.
지금 얼데는 사람이 하루에 너무 많이 놀라면 더 이상 말도 잘 나오지 않는다는 걸 직접 느끼고 있었다.
“상단 마차는 세 대고, 도착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시간은 3월의 첫째 날 새벽입니다.”
“잠, 잠깐.”
“?”
“자꾸 방해해서 미안한데, 상단의 마차 숫자나 도착 예정 시간은 어떻게 아는 거냐?”
“찾아가서 물어봤습니다.”
“그냥 말해줄 리가 없잖아!”
“교장 선생님과 교수님의 사인을 위조해서 추가로 심부름 온 척 했습니다.”
“……”
이한은 해골 교장의 가짜 사인과 버두스 교수의 가짜 사인을 들고 상단에 방문했다.
원래라면 확인 절차를 거쳤을 상단도, 지하 통로의 위치나 과정을 워낙 잘 알고 있는 이한에게 속아 일정을 털어놓은 것이다.
“잠깐만. 3월의 첫째 날 새벽에 마차가 도착하면…”
“맞습니다.”
3월의 첫째 날은 에인로가드 학생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날이었다.
바로 에인로가드의 새 학기가 시작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아침에 다들 정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새벽이 마차 도착 예정 시간이라면?
“저희는 새벽에 지하를 통과해서, 마차의 물품을 안전하게 보관한 뒤, 다시 빠져나와 정문에 도착해야 합니다.”
“힘들겠군…!”
얼데는 몸에 열이 올라 옷깃을 펄럭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건 정말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흥분한 것이다.
“그래서 선배님이 필요한 겁니다. 전 지하 통로 길은 알지만 2학년 때 검문 상황을 경험해 본 적 없으니까요.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시간이 부족하겠다 싶으면 검문 시작을 늦춰야 합니다.”
“어떻게?”
“저도 모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죠. 악마를 소환하던가…”
“악마로는 무리야. 에인로가드가 악마 같은 놈들 상대로는 대비가 너무 튼튼해서 검문 쪽에서 눈길도 안 줄 걸.”
학생들이 친 소환 사고가 늘어날 때마다 에인로가드의 마법 방어도 늘어나기 마련이었다.
이한은 씁쓸해하며 말했다.
“임기응변을 발휘하지 않길 빌어야겠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보자.”
얼데는 이제 완전히 이한의 계획에 홀리듯 빠져들어 있었다.
후배라고 얕잡아보던 태도는 완전히 사라졌고, 이 계획에 참가해서 성공시키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지금 그랑덴 시에 있는 학생 밀수꾼들 중 이 방법이 가장 가능성 높은 계획처럼 보였던 것이다.
“물어보십시오.”
“창고지기가 지하에 없다는 건 어떻게 알지?”
얼데도 창고지기는 잘 알았다.
사실 창고지기를 모르는 에인로가드 학생은 드물었다.
입학하고 나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지하 주방과 창고를 찾아 돌아다니다보면 멀리서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발걸음 소리.
마력탐지능력을 갖고 있는 해골 교장의 추적자, 창고지기!
입에 빵과 치즈를 와구와구 쑤셔넣다 잡힌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데스 나이트한테 확인했습니다. 이번에는 검문에 참가한다더군요.”
“검문 쪽은 큰일났군! …야. 잠깐. 누구한테 확인했다고?”
* * *
남은 기간 동안 이한과 친구들은 물자를 점검하고 계획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찾아왔다.
2월의 마지막 저녁.
달도 구름에 가려서 유난히 캄캄했다.
“모두들, 행운을 빈다.”
“해골이 부서지길!”
얼데는 자신감 있게 축원했다.
후배들이 당황해서 얼데를 쳐다보기 전까지.
“…너, 너무 심하신 말 아닌가요?”
“어… 너, 너희들은 이런 말 안 하냐? 우리들은 뭐 하기 전에 이랬는데…”
얼데는 세대 차이를 느끼고 쭈그러들었다.
‘멋지지 않나…’
“다들 마셔라.”
꿀꺽!
요네르와 시아나가 만든, 변장용 물약을 마신 학생들의 모습이 변화했다.
종족까지 변화시켜주는 고난이도 물약은 아니었지만 밀수 작업용으로는 충분했다.
이한은 수염이 덥수룩하게 올라오고 몸이 울퉁불퉁 두꺼워진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하자. 내일 정문에서 만나는 거다!”
이한 일행은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직접 에인로가드의 지하 통로를 통과해서 창고로 들어가는 조.
이한과 얼데는 여기에 참가했다.
다른 하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후방에서 대기하는 조.
더르규와 닐리아가 이들을 이끌었다.
덜컹덜컹-
“마차 세 대 분량의 밀수품이라니. 성공만 하면 올해 에인로가드 암시장은 풍족하겠어.”
이한 옆에서 마부 역할로 변장한 얼데가 중얼거렸다.
1학년 때는 1학년들끼리만 교류하는 만큼 에인로가드 내 시장경제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지만, 2학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당장 암시장의 규모부터 커지고 식당도 생겨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장경제도 상황의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었다.
주방 클럽이나 물자를 확보하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몇몇 학생들이 징벌방에 들어가면 물가가 바로 상승했으니까.
어떨 때는 은화가 있어도 필요한 걸 못 살 수도 있는 게 에인로가드였다.
그런데 마차 세 대 분량의 밀수품이라니!
여기 참가한 학생들이 넉넉하게 나눠 가지고 남는 물건만 암시장에 풀어도 한동안 에인로가드에 훈풍이 불 터였다.
“후배. 넌 성공하면 뭘 할 지 생각해봤냐?”
“저 말입니까?”
“그래. 저 많은 물자들 말이야. 네가 한 학기 동안 먹고 쓸 만큼 쟁여놓고, 남은 걸로는 뭘 할 생각이지?”
“요리해서 친구들한테 팔 생각이었습니다만.”
“그것도 좋지.”
얼데는 역시나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노련한 녀석이 잉여상품을 판다는 생각을 안 할 리 없었으니까.
“얼마에 팔려고?”
“끼니 한 번에 은화 하나 정도?”
“…뭐?”
믿기 힘든 가격에 얼데는 귀를 의심했다.
“어, 너무 비쌉니까?”
“아, 아니. 너무 싸지. 농담이냐?”
“농담 아닙니다만.”
얼데는 후배가 뭔가 착각하고 있나 싶었다.
양을 속이거나, 싸구려 재료를 쓰거나(사실 그래도 은화 한 개는 너무 쌌지만).
그러나 아니었다.
들어보니 이 후배는 그냥 배부르게 먹게 한 다음 은화 하나를 받으려고 하고 있었다.
“미쳤냐?! 왜 그렇게 팔아!? 주방 클럽 놈들이 들으면 심장마비 걸리겠다!”
“이것도 원가하고 비교하면 비싼 편입니다만…”
“원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에인로가드에 원가가 어딨어! 원죄는 있겠다. 입학한 게 원죄지. 그리고 죄를 지었으면 호밀빵 하나를 은화 다섯 개 주고 사먹어야 하는 거야.”
‘그 정도인가?’
이한은 선배의 말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본인은 나름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아니었다니.
“잠깐. 혹시 네 친구들은 은화 하나 내고 배부르게 먹은 적이 있냐?”
“제가 음식을 만들었을 때는 그런 편이죠.”
“주로 어떤 음식들이었는데?”
쌀과 밀, 호밀들을 사용한 곡물류 요리.
텃밭이나 오두막에서 갖고 온 양파, 생강, 옥수수, 버섯, 완두콩 등은 물론이고 산양 젖이나 우유, 달걀. 포도, 복숭아, 호박, 무화과까지.
소스나 향신료로 가면 메이플 시럽부터 꿀, 마멀레이드, 고추, 육두구, 올리브 오일, 통후추, 토마토소스 등.
각종 말린 생선이나 절인 정어리, 고등어, 청어. 고기로는 커다란 생햄 덩어리와 소, 돼지, 양고기. 소시지와 베이컨 등등…
“…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제가 요리사는 아니라서 메뉴는 소박했죠.”
“……”
얼데는 방금 후배가 한 말을 믿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욕구와, 이걸 먹고 배부르게 지낸 후배들을 전부 다 발드로가드로 쫓아버리고 싶은 미친듯한 충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1년 일찍 들어온 자신에 대한 폭력적인 증오를 느꼈다.
“차라리 듣지 말 걸 그랬군…”
“이쪽입니다.”
이한은 작년 왔던 길을 따라 마차를 움직였다.
혹시 몰라 몇 번 사전답사까지 한 길이었다. 마차가 아무 특징도 없는 두 나무 사이로 지나가자 갑자기 마력 변화가 일어났다.
“!”
얼데는 뒤늦게 마법을 느끼고 경악했다.
정말로 여기 길이 있었던 것이다.
쿠르르르릉-
갑자기 앞쪽 길이 아래로 꺾이더니 지하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얼데는 시작됐다는 생각에 침을 삼켰다.
에인로가드에서 도둑질을 해본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긴장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특히 이 정도 규모의 도둑질은…
-예상보다 일찍 오셨군.
얼데는 익숙한 데스 나이트들의 목소리에 심장이 멈출 듯한 충격을 느꼈다.
‘어떡할 거냐?’
‘가만히 계십시오.’
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얼데는 책임자로 분장한 후배가 가만히 있자 초조함을 느꼈다.
자신이 뭐라도 해야 하나?
-일꾼들에게 말 걸지 말게. 두려워하잖나.
“!”
이한은 이미 경험으로 여기 온 일꾼들이 다 입을 다물고 묵묵히 있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데스 나이트들한테 겁먹은 것처럼 가만히 있으면 저들이 알아서 해석해주리라.
-예상보다 일찍 왔다고 말했을 뿐입니다만.
-일찍 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안 그래도 올해 검문에 손이 많이 들어가는데 일찍 끝나면 좋은 일이지.
-아마 그 소년 때문이겠지요?
-그렇겠지.
-주인님께서는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을 너무 괴롭히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제자들처럼 훼까닥…
-어허. 불경한 소리 하지 말게.
데스 나이트들은 대충 마차를 통과시켰다.
천천히 다시 굴러가는 바퀴 소리에 얼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일 위험한 위기를 성공적으로 돌파한 것이다!
이제 계획은 반쯤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얼데는 흥분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 미친 자식. 네가 해냈어. 네가 해낸 거라고!”
그러나 이한의 얼굴은 행복 대신 고통과 증오로 일그러져있었다.
“왜, 왜 그러냐?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저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