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703)
703화
다른 학생이었다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물었겠지만 디레트는 5학년 학생답게 빠르게 이해했다.
“혹시 교장 선생님께서 마력 너무 많다고 안 걸어주셨어?”
“네.”
“……”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디레트는 안 그래도 힘든 이 후배를 어떻게 위로해줘야 하나 깊이 고민했지만 뭐 하나 떠오르지 않았다.
“전 괜찮습니다. 선배.”
“…야. 괜찮으면 안 돼… 이게 괜찮으면 어떡해?”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 그리고 선배도 5학년 하시잖습니까. 저도 할 수 있습니다.”
“그건 같지 않은데…”
디레트는 ‘내 자유의지로 선택한 5학년하고 해골 교장의 악의로 강제선택된 고난이도가 같니’라고 말하려다가 포기했다.
자세히 지적해봤자 후배의 마음만 쓰라릴 것 같았다.
“후. 그래. 이건 그만 이야기하자.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네가 걱정되어서야.”
“음, 정확히 어떤 부분이 걱정되시는 겁니까?”
“……”
너무 짚이는 게 많아서 후배 본인도 어떤 건지 짐작하지 못하는 모습에, 디레트는 손끝으로 이마를 짚었다.
“…일단 강의 일정표부터 시작하자고. 오늘 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 그런데 선배. 저 오늘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는데요.”
“오늘부터? 뭔데? 연구? 의뢰? 혹시 어떤 ㅂ… 미친 교수가 부르진 않았지?”
디레트는 물으면서도 불길함을 느꼈다.
눈앞의 후배라면 첫날부터 부르는 교수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아뇨. 밀수해 놓은 물건들을 좀 옮겨놓으려고 합니다.”
“…진심이야?”
디레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번에 그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검문이 있었는데 밀수품을 갖고 들어왔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어떻게 갖고 들어왔어?”
“운이 좋았습니다.”
“이번 검문은 행운으로 넘길 수준이 아니던데… 하여간 잘 됐네. 그래. 성공했다니 다행이야. 옮기는 거 도와줄게.”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디레트는 선선히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도와주면서 해줘야 할 이야기도 같이 할 생각이었다.
“양이 좀 되는데요?”
“상관없어. 어차피 소환수 시킬 거니까.”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참. 선배도 좀 가져가시죠.”
“됐어.”
디레트는 손을 내저었다.
2학년의 코 묻은 밀수품을 탐내서 무엇한단 말인가.
애초에 5학년부터는 학생보다는 교수에 절반쯤 가까워지는 만큼 물자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확 줄어들었다.
게다가 올해는 검문 난이도가 높아서 갖고 들어온 양도 얼마 안 될 텐데…
* * *
“…너 마법사였나?”
“선배도 마법사잖습니까.”
디레트는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마법사라면 하지 않을 질문을 내뱉었다.
수레 몇 개를 써서 갖고 온 것 같은 밀수품의 양에 디레트는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아냐. 나중에. 궁금하긴 한데 오늘 그거 들었다가는 시간 다 갈 것 같아.”
디레트는 집중하기 위해 고개와 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궁금하긴 했지만 오늘은 걱정스러운 후배를 도와주기 위해 온 거였지 에인로가드 밀수의 전설을 듣기 위해서 온 게 아니었다.
아마 다음에 시간이 나리라.
‘…나겠지?’
순간 디레트는 여유를 확신할 수 없는 5학년의 비애를 느끼고 어깨가 축 쳐졌다.
오늘 이후부터 밖에 나오지 못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게 5학년이었던 것이다.
“어둠 속에 숨어서, 짐을 옮겨라.”
“앞을 감시해라.”
“적의를 느껴라.”
디레트는 다양한 언데드 소환수를 소환해 작업을 준비했다.
간단한 저녁 산책이지만 에인로가드는 언제나 방심할 수 없는 법.
적의 감지부터 시야 확장, 은신이나 위장은 기본이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건 없습니까?”
“됐어. 선배로서 체면이 있지. 강의 일정표는 준비했어?”
짐꾼 골렘들이 뒤에서 따라오는 동안 복도를 앞장서서 걸어가며, 디레트는 질문을 던졌다.
“예.”
“역시. 칼렌다리움을 썼지? 유크벨티레가 만든 거대한 시계 아티팩트.”
“선배도 아십니까?”
“그야 알지. 그렇게 편리한 아티팩트인데. 동급생 중에서 그 아티팩트 훔치려고 시도한 사람도 있었어.”
“……”
알고 싶지 않았던 선배들의 추잡한 역사였다.
디레트가 강의 일정표를 달라고 손짓하자 이한은 적어 놓은 일정표를 꺼냈다.
“일단 이렇게 받았습니다.”
“흐음… 거의 똑같네. 걱정했는데 역시 유크벨티레가 만든 아티팩트가 정확하긴 해.”
“몇 번 오작동하긴 했습니다.”
“뭐? 왜?”
“강의를 너무 많이 들어서…”
“……”
디레트는 못 들은 척 하며 화제를 원래대로 돌렸다.
“그래도 정확히 완성됐다는 게 중요한 거지!”
“예. …잠깐, 선배. 거의 똑같다는 게 뭡니까?”
이한은 의아함을 느꼈다.
똑같다는 건 이제 비교할 대상이 있어야 나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한의 강의 일정표는 오늘 유크벨티레와 대화하면서 짰는데 무엇과 비교한단 말인가?
“아. 교수님들이 짠 거.”
“…?”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배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교수님들이… 뭘 짭니까?”
“응? 그, 교수님들이 네 강의 일정이나 내용 서로 안 겹치게 하려고 상의하시잖아?”
“예?!?!?!”
정말 오랜만에 이한은 경악의 감정을 느꼈다.
어디서 그런 사악한 흉계가 비밀리에 꾸며지고 있었단 말인가?
“몰, 몰랐어?”
“당연히 몰랐죠!! 대체 어디서 그런 사악한 흉계가 꾸며지고 있었단 겁니까?”
후배의 기세가 워낙 흉흉했기에 디레트는 살짝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교수 휴게실에서?”
“……”
생각해보니 교수들이 대화하는데 무슨 사악한 악마 대공의 성에서 할 리 없었다.
당연히 교수 휴게실에서 대화하리라.
이한은 조금 침착을 되찾고 물었다.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선배. 그 지옥의 가장 사악한 악마들이 꾸미는 음모에 대해서.”
“으응… 교수님들이 나눈 대화에 가깝지만…”
5학년으로 올라오면서 디레트가 얻은 권한 중에는 교수 휴게실 방문 권한도 있었다.
사실 권한보다는 의무에 가까웠다. 교수한테 찾아가 연구부터 시작해서 강의 관련 보고를 해야 하는 만큼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이번에 교수 휴게실에 방문한 디레트는 특이한 방을 하나 발견했다.
사실 방 자체가 특이하다기보다는 그 안에 있는 게 특이했다.
나무를 깎아 만든, 방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시판 하나가 전부였던 것이다.
월요일
9:00~11:00
11:00~1:00
1:00~3:00
다들, 작년과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런가? 내 강의 순서가 바뀌었는데?
…휴식 시간을 말한 거였습니다. 버두스 교수님.
작년에도 없었는데 괜찮았잖아?
내가 어지간해서는 비블레의 편을 들어주고 싶진 않지만, 올해는 정말 어쩔 수 없네. 정말 필요한 강의만 넣어도 이 모양이야. 가르시아 교수도 쉬운 강의 몇 개를 빼지 않았나?
저는 이한 학생이 쉬라고 뺀 거거든요!
그랬겠지. 하지만 어려운 강의를 빼도 됐을 텐데, 쉬운 강의를 빼지 않았나. 가르시아 교수. 인정하게. 자네도 다른 교수들과 본질적으로 비슷한 사람이란 것을.
그 밑은 주먹으로 누가 후려쳤는지 거대한 박살 자국이 남아있었다.
또 그 밑에는…
…다들 가르시아 교수를 자극하지 말도록.
“이런 게시판이 있었던 거지.”
‘…이상하다? 왜 어디서 본 거 같지?’
이한은 기묘한 낯익음을 느꼈지만, 지금은 그 정체를 파악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요? 어떻게 됐습니까?”
“교수님께 여쭤봤지. 자꾸 교수님들끼리 서로 시간 뺏으려고 싸우다 보니까, 아예 처음부터 이렇게 합의를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는데.”
꽤 합리적인 방식이었다.
교수들이 비열하게 자기 강의 시간을 멋대로 늘려서 다음 시간 교수를 방해하는 대신, 미리 합의된 시간 안에서 적절한 강의를 준비할 수 있었으니까.
…이한의 자유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아니 왜 자기들끼리 합의를 합니까?!”
“그… 그렇긴 해.”
디레트는 후배의 너무나도 타당한 지적에 할 말을 잃었다.
생각해보니 그 때 교수 휴게실에서 이상함을 느꼈어야 했는데, 후배가 워낙 특이한 존재다보니 ‘하긴 쟤는 학파 맞추려면 저렇게 해야겠구나’하고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후배 너는 강의 일정표 맞추려면 거의 정해져 있는 수준 아니야? 쉬운 강의는 빼고 어려운 강의 위주로만…”
“어려운 강의를 뺄 수도 있잖습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최대한 네게 도움이 되는 강의를 들어야지.”
디레트는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이 넘겼다.
이한은 새삼 눈앞의 선배도 5학년 학생이라는 걸 느꼈다.
“그래서 제가 아티팩트한테 받은 일정표가 교수님들이 짠 일정표하고 일치하단 거군요.”
“응…”
“……”
이한은 보기 드물게 의기소침해졌다.
물론 효율을 추구하는 만큼 이한이 멋대로 강의 일정표를 바꾸지는 않았겠지만, 사실 이미 자신의 운명이 정해져 있었을 줄이야.
디레트는 언제나 씩씩하고 당당하던 후배가 의기소침해지자 당황해서 날개를 퍼덕였다.
“그, 그래도. 여기… 여기 빈 구석이… 아, 빈 구석은 없구나. 여기 이 강의하고 이 강의는 교수님들이 고른 강의가 아니니까 원하는 다른 강의하고 바꿀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선배.”
이한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정신을 차렸다.
패배감으로 가슴이 쓰라렸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 좌절하고 있을 수는 없다.’
차라리 몰랐으면 조금 더 나았을 것 같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달라지는 건 거의 없었다.
들어야 하는 강의들을 다 듣고 최선의 성적을 받아낼 뿐.
“좀 괜찮아졌어?”
“예. 선배. 이쪽입니다.”
이한은 허공에 물 구슬을 불러온 뒤 손으로 잡고 몸을 거꾸로 세워 천장을 몇 걸음 걸었다.
디레트가 할 말을 잃고 쳐다보는 사이 이한은 마저 걸어갔다. 그리고는 주문을 외웠다.
“명예로운 에인로가드 학생으로서 나는 맹세하노니, 절대로 교수를 믿지도, 매수되지도, 밀고하지도 않으리라. 특히 교장 선생님은 더욱 더 의심하리라…”
“……”
후배의 한 맺힌 주문에 디레트는 눈을 깜빡이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에 숨겨진 방이 있었나?’
디레트가 몰랐다고 해서 놀랍진 않았다. 에인로가드에 숨겨진 방들은 해골 교장의 나이보다 더 많을 테니까.
“이 방은 어떻게 알아냈어?”
“예전에 졸업한 선배를 징벌방에서 만났는데, 제가 불쌍하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으응…”
생각보다 너무나도 처절한 이유에 디레트는 시선을 피했다.
하긴 디레트도 징벌방에서 눈앞의 후배를 만났으면 뭐라도 챙겨줬을 것 같았다.
어지간한 죄수들 사연으로는 승부 자체가 불가능한 불쌍함이었던 것이다.
쿠르릉!
‘꽤 괜찮은데?’
디레트는 깔끔하게 정리된 비밀기지 안쪽을 보며 감탄했다.
옛날 졸업생들이 썼던 만큼 꽤 괜찮은 곳이었다. 곳곳에 복잡한 마법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갖고 온 밀수품은 이쪽 창고에 놔주시겠습니까?”
“그래.”
디레트는 소환수들을 시켜 짐을 정리했다. 기지 구석 창고 안에 차곡차곡 밀수품이 쌓였다.
‘무슨 주방 클럽 창고보다 더 풍족한 것 같네.’
“이건…?”
마법의 흔적을 둘러보던 디레트는 탁자 위에 고정된 빈 노트를 발견했다.
어디서 많이 본 형태의 노트였다.
“이게 뭐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그 선배께서 저 흑마법 듣는지 알아보라고 말해주셨던 통신 아티팩트입니다.”
“……”
디레트는 괜히 말을 꺼냈다고 속으로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