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726)
726화
“흐음. 진짜 특이하군.”
책에 적힌 가능성 높은 질문들부터 차례대로 물어보던 3학년 학생, 엘발리 가문의 바르글리오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이 정도면 하나쯤 걸릴 법도 한데, 계속 부정의 대답만 나오고 있었다.
‘다행이다.’
이한은 대답을 얻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짝 안심했다.
천만다행으로 나무 정령이 화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앞으로 남은 이유들이 많긴 했지만, 일단 이제까지 나온 이유들로 화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에인로가드에서 배우다보면 누구나 구울의 왕이나 서리거인의 왕과 만나게 됐다.
이런 이들과 만나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악한 존재와 조금 계약도 하고 그러는 법인데…
“좋아. 이럴 때는 특이한 질문도 하나 해봐야지.”
“오. 뭡니까?”
“혹시 전 학파를 다 듣고 있어서 그런 겁니까?”
“……”
당연히 대답은 부정이었다.
이한은 선배를 노려보았다. 오크 학생은 머쓱한 표정으로 안경을 고쳐 썼다.
“특이한 질문이잖아. 원래 막혔을 때는 이런 것도 해봐야 답을 알 수 있다고.”
“너무 특이한 질문이잖습니까.”
바르글리오스는 그 뒤로도 몇 가지 질문들을 던졌다.
‘지나치게 강력한 마법이나 마력을 지팡이가 견디게 했느냐’나 ‘위험한 몬스터가 지팡이를 건드리게 했느냐’같은 가능성 높은 질문들에도 정령은 계속 부정했다.
“와. 진짜 뭐지?”
“사실 정령이 절 좋아해서 대답 안 할 수도 있습니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전 학파 다 듣는 녀석이 무슨 발드로가드 학생이나 할 소리를 하는 거야?”
바르글리오스는 마법에 관해서는 한 치의 타협도 없었다. 이한은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서 불만이십니까…잠깐, 이거잖아? 여기 봐봐!”
긍정의 대답이 나오자 바르글리오스는 깜짝 놀랐다.
이 질문은 책에서도 가장 뒤에 있을 만큼 가능성 낮은 질문이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최근 정령계의 권력 변화로 정치적 불만이 있으십니까’와 ‘혹시 마법사의 조상 중에 정령과 원한이 있는 친구를 둔 조상이 있었습니까’ 사이에 있을 정도였다.
“보통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일이 없는데? 혹시 이 지팡이를 어딘가에 오랫동안 버려뒀었나?”
“아닙니다. 매일 들고 다녔습니다.”
“이상하네. 으음. 잠깐만. 일단 정령의 능력부터 확인해볼까.”
소환 마법을 전공하는 만큼 오크 선배는 당황스러운 상황에도 침착하게 확인에 들어갔다.
몇 가지 마법을 걸어보니, 이 나무 정령이 가진 능력들은…
“회복의 권능, 생명의 권능, 완강의 권능. 이렇게 세 개군. 대단한데? 계약도 안 한 정령이 이렇게 힘을 빌려주다니. 잘 보였나보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뭐가?”
“우레걸음 교수님께서 말해주신 건 하나밖에 없거든요. 식물을 잘 자라게 한다고.”
분명 우레걸음 교수는 이한이 이 지팡이를 받아왔을 때 간단하게 설명해준 적이 있었다.
식물을 기를 때 참 좋을 거라고…
“그게 생명의 권능이긴 한데… 글쎄. 잘 모르겠다. 교수님들은 원래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으시잖냐.”
‘그런가?’
선배의 말에 이한은 의아했지만 일단 납득했다.
“먼저 회복의 권능. 너도 아마 몇 번 경험했을 거야. 마법사한테는 요긴한 정령의 권능이지. 마력을 회복시키거든.”
“?”
딱히 지팡이가 마력을 회복시켰던 기억이 없었다.
이한은 혹시나 싶어 기억을 되짚어봤지만 역시나 떠오르지 않았다.
“이건 아마 아니겠지. 자. 회복의 권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까? 봐봐. 회복의 권능은 발휘했다고 하ㅈ… 어?”
나무 정령은 매몰차게 권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 모습에 바르글리오스는 당황했다.
“안경의 마법 효과가 다 됐나?”
“아니. 제대로 보신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살짝 어두워진 목소리로 이한이 말했다.
생각해보니 나무 정령에게 마력 회복의 권능이 있다 하더라도 이한에게는 쓸 기회가 없었을 것 같았다.
권능도 마력이 줄어들어야 쓰지 그냥 계속 유지되는데 무슨 회복을 시킨단 말인가.
“다른 두 개는 설마 썼겠지.”
“생명의 권능은 방금 말하신…”
“응. 연금술사들이 좋아하는 권능이지. 식물을 키울 때 도와주는.”
“예. 그건 쓴 것 같습니다.”
“참 다행이군. 생명의 권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까?”
나무 정령은 생명의 권능도 발휘 못했다고 즉답했다.
“……”
“…너 정말 쓴 거 맞냐?”
방금까지 지적인 태도를 고수하던 오크 선배는 험상궂은 눈빛으로 안경 너머 이한을 노려보았다.
이 정도면 일 년에 지팡이를 먼지 닦을 때 정도만 쓴 것 아닌가 싶었다.
“제가 식물을 얼마나 키웠는데! 이건 누명입니다. 정령이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흐음. 혹시 마법사가 다른 수단으로 생명의 권능을 대체했습니까?”
나무 정령은 즉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한은 설마 싶어서 물었다.
“혹시 마력으로 대체했습니까?”
긍정의 대답.
이한은 급격한 허무감을 느꼈다.
이제까지 지팡이 덕분에 잘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저 플라시보 효과였다니.
그냥 스스로 지팡이 덕분에 잘 크는 거라고 믿었기에 주변에 마력을 흩뿌릴 때 효과가 증가한 거였다.
“지팡이의 힘을 쓴 줄 알았는데.”
“기, 기운내라. 가끔 그런 착각을 할 때가 있지. 그래서 무슨 수단으로 대체한 건데?”
“제 마력을 무의식적으로 흩뿌린 모양입니다. 나무 정령의 도움 때문에 잘 자랄 거라고 믿었는데 그게…”
“……”
바르글리오스는 미친 놈 보듯이 이한을 쳐다보며 슬쩍 한 걸음 거리를 벌렸다.
만약 바르글리오스가 정령이었다면 ‘무서워서 피했습니까?’란 대답에 긍정을 표했을 것이다.
‘이 자식 진짜 뭐하는 놈이야?’
물론 마법이라는 학문이 마법사의 굳건한 의지로 펼치는 변화인 만큼 저것도 일종의 원시 마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시 마법에 왜 ‘원시’란 단어가 붙겠는가.
그만큼 불안정하고 효과가 약하기 때문에 지금은 다른 방식으로 마법이 시전되는 거였다.
별다른 주문도 없이 스스로의 암시만으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을 계속 뿌려야 했다.
바르글리오스는 마법사 개인이 그 정도의 마력을 뿌렸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마지막 완강의 권능은 뭡니까?”
“수수하지만 이것도 쓸만한 권능이지. 지팡이가 버티게 해주는 권능이다. 충격이나 강한 마법을 시전할 때.”
“이건 진짜 썼습니다.”
“슬슬. 확신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완강의 권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까?”
매정하게도 발휘하지 못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한은 격분해서 외쳤다.
“내가 얼마나 많이 싸웠는데 그런 소리를! 구울의 왕이나 서리거인의 왕을 잊어버렸다고?!”
“…뭔 왕??”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배. 다시 물어봐주십시오.”
“다시 물어본다고 대답이 달라지진 않아. 그보다 완강의 권능을 발휘 못할 이유는 하나밖에 없는데. 혹시 아직 부족합니까?”
긍정.
부족하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이한은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
“뭐가 부족하단 겁니까?”
“어… 네가 더 강력한 마법을 써야 저 권능을 쓰는 보람이 있다는 소리지.”
“……”
이한은 미친놈 보듯이 지팡이를 쳐다보았다.
* * *
“음. 여하튼 힘내라! 나무 정령이 널 싫어하는 건 아니잖냐. 앞으로 활약을 시켜주면 그만이지.”
‘그게 가능할까?’
강의가 끝나고 오크 선배의 위로를 받으며 이한은 쓸쓸하게 일어났다.
나름 배운 건 많았지만 얻은 건 없는 기분이었다.
이제까지 정령의 힘을 사실상 안 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니.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회복의 권능을 쓸 일이 없다면 다른 권능을 추가해서 연결하면 그만이지. 마력 회복이 필요한 권능들이 있을 거야.”
나무 정령이 마력을 회복시키고 싶어한다면, 꾸준히 마력을 소모하는 마법을 지팡이 안에 추가해주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마법사로서는 환영할 만했다.
물론 제작 난이도는 더 올라가겠지만…
“마찬가지로 생명의 권능도 다른 권능을 추가해서 연결해.”
“완강의 권능은요?”
“그건 네가 더 강한 마법을 시전하는 것 말고는 모르겠는데.”
“…감사합니다. 선배님. 바쁘실 텐데 이렇게 친절하게 가르쳐주시다니.”
이한은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다.
다들 자기 강의 때문에 바쁘고, 심지어 선배들은 한 학년 더 많은 만큼 더욱 바쁠 터였다.
그런데 이렇게 성실하게 도와주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하. 남도 아니고 같은 후배니까.”
“푸른 용의 탑 소속이십니까?”
“아니? 소환 마법 학파 이야기였는데. 소환 마법 때 보자. 후배.”
“……”
생각해보니 지금 여기 있는 선배들 중 어느 학파 하나는 겹쳤다.
덕분에 도움을 받을 수 있긴 했지만 이한은 이상하게 씁쓸했다.
‘어째서인지 씁쓸하군.’
“야, 워다나즈!”
저 멀리서 앙라고가 이한을 발견하고 뛰어왔다.
“빨리 와! 지금 바로 가지 않으면 놓친다고!”
“뭘 놓친다는 거지?”
“그걸 몰라서 물어본다고?! 어휴. 일단 따라와! 빨리!”
“아니. 진짜 모르겠는데.”
앙라고는 이한의 등을 떠밀다시피 하면서 달려나갔다.
“너도 클럽 회원인데 왜 모르는 거냐고!”
“그야 가입한 클럽이… 됐다. 무슨 클럽인데?”
“당연히 격구 클럽이지. 어디 클럽이겠어?”
앙라고는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작년에 내내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에인로가드 격구 클럽 가입이었던 것이다.
“지금… ‘그’ 동물이 들어와 있대. 이게 믿겨져? 그걸 볼 수 있다니.”
“뭘 말하는 거지? 그리폰? 바실리스크?”
이한의 질문에 앙라고는 경악하며 외쳤다.
“뭔 그런 흉악한 소리를 하는 거냐?! 당연히 아니지! 너 격구 클럽이 뭔지 몰라? 탈 수 있는 동물들을 데리고 와야지!”
“그리폰도 바실리스크도 탈 수 있는 동물인데.”
소매 속에서 누군가가 동의한다는 듯이 쉿쉿 소리를 냈다.
앙라고는 이한이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는지 무시했다.
혹시 누군가 들을까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흰 호랑이 탑 친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교수님께서 유니콘을 돌보고 계신다고!”
“아하.”
이한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 방학 때 다친 유니콘을 구해서 에인로가드로 데리고 갔으니, 에인로가드에서 유니콘을 볼 수 있어도 놀랍지 않았다.
“그럴 수 있지.”
‘이 자식, 혈관에 혹시 차가운 마력만 흐르나?’
앙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나름 훌륭한 격구꾼이 유니콘이란 말을 듣고서 저런 차가운 반응을 보일 줄이야.
심장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럴 수가 없는 법이었다.
“워다나즈. 난 오늘 유니콘을 내 눈으로 볼 거야. 그리고 물어볼 거야.”
“뭘?”
“같이 격구하지 않겠냐고.”
‘유니콘이 들을 수 있는 질문 중 가장 멍청한 질문 같군.’
이한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친구가 너무 신나보여서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래. 물어보는 건 네 자유지. 강의는 괜찮고?”
“아. 물론이지.”
앙라고는 굳은 의지로 대답했다.
“강의는 그냥 안 들으려고. 유니콘이 더 중요해.”
“……”
이한은 친구를 걷어차서 강의실로 돌려보냈다.
* * *
격구 클럽 회원들은 조마조마한 눈동자로 멀리서 유니콘을 지켜보고 있었다.
키 작고 심술궂게 생긴 교수가 유니콘에게 애걸복걸하며 울부짖었다.
“내가 널 돌보게 해다오!”
“교수님. 유니콘이 저희가 필요한 모양입니다!”
“닥쳐라, 이 시끄럽고 못생긴 생물체들아! 저리 꺼지지 못해!”
벤도졸 교수는 격구 클럽 회원들에게 마법을 난사했다. 회원들은 예상했다는 듯이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