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790)
790화
“교수님. 사실은…”
억울함을 가득 담아, 이한은 버드나무 교수에게 있었던 일을 고발했다.
이 지팡이에 깃든 나무 정령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 놈이었다.
여러 권능을 갖고 있는 뛰어난 정령이란 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지팡이에 깃든 이상 마법사의 사정을 배려해줘야 할 것 아닌가.
이한이 서리거인의 왕과 싸우고 구울의 왕과 싸웠는데도 ‘아직 부족하다’며 툴툴대다니.
이 정도면 나무 정령이 아니라 파멸의 정령이라고 봐야 했다. 이한이 파멸하기 전까지는 만족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그렇구나.”
버드나무 교수는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자기 지팡이를 법정에 세워놓고 고발하자 당황했다.
지팡이의 정령이 아직도 자신을 깨우지 못했다고 불만스러워하길래 한 마디 질문했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장문의 불평이 돌아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물론 정령들과 친분을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 정령의 피가 흐르는 나도 가끔은 막막함을 느끼거든. 하지만 주의 깊게 들어보면 정령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주인의 파멸?”
“…보통 그 정도까지는 안 가지. 흠. 내 생각에… 이 정령은 꽤나 고위 정령이었을 것 같구나.”
버드나무 교수는 이한의 지팡이를 유심히 훑어보며 말했다.
다수의 권능과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에 대한 강한 갈망.
이건 보통 고위 정령이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교수님.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고위 정령은 이런 식이 아니잖습니까?”
이한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되물었다.
중하급 정령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없는 이한이었지만 강력한 고위 정령들과는 친분이 있는 만큼, 이한은 그 둘의 차이를 잘 알았다.
정령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단순히 위력뿐만 아니라 자아와 지성이 올라가고 그 존재의 격 자체가 상승하는 것이다.
페르쿤트라만 봐도 그랬다.
다른 정령들과 달리 진명을 가지고 있고, 칭호를 가지고 있으며, 휘하에 부리는 정령들과 영역, 권능을 갖고 있지 않던가.
그에 비해 이한이 가진 지팡이의 정령은 한 마디 말을 한 적도 없고 어떤 뚜렷한 권능을 보여준 적도 없었다.
그런데 고위 정령이라니?
그건 마치 가이난도를 보고 흑마법 학파의 대마법사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게 들렸다.
“그렇다. 일반적이지는 않지.”
버드나무 교수는 수염처럼 자리 잡은 이파리를 툭툭 건드리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가끔 예외가 있다. 봉인되거나 유폐된, 힘을 잃은 고위 정령들이지. 이런 정령들은 힘은 잃었지만 품격은 남아있거든.”
“!”
교수의 설명을 들은 이한은 놀랐다.
별 생각 없이 하급 정령이겠거니 넘어간 나무 지팡이의 정령이 사실 진명을 가진 고위 정령이었다니.
“자신의 권능을 일깨워달라는 것도 그래서일 수 있겠구나. 주인과의 공명으로 힘을 회복할 수 있으니까.”
크게 타격을 입고 힘을 잃어버린 정령이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고, 그 중 하나는 계약을 맺은 마법사의 도움을 받는 거였다.
정령에게 남은 미약한 권능을 마법사가 빌려 사용하다보면 그 힘은 점점 증폭되기 마련.
길고 긴 여정이 되겠지만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으면 강력한 공명과 함께 정령은 원래의 힘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런. 그렇게 들으니 살짝 미안해지는군.’
이한은 버드나무 교수의 말에 반성했다.
일부러도 아니고 못 쓸 수도 있지, 지팡이 성격 참 괴팍하고 고약하구나 생각했었는데 상대방 입장에서는 아니었던 것이다.
주인으로서 권능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또 강화시켜줘야 정령 자신의 힘도 조금씩 회복할 텐데 그러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잠깐만요. 교수님. 다른 건 몰라도 완강의 권능 같은 경우에는 제가 마력으로 대체한 게 아니라, 정령이 더 강한 마법을 써야 한다고 하던데요. 회복하려면 약하더라도 조금씩 권능을 써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권능을 유연하게 쓸 정도라면 봉인된 정령이 아니겠지. 고위 정령이 격에 맞는 존재력을 회복하려면 마법사 또한 그에 걸맞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나무 정령의 권능은 그 사용 난이도가 높았다.
타협으로 약하게 완강의 권능을 쓰는 대신, 이한이 더 강한 마법을 익히고 더 강한 적을 만나 완강의 권능을 일깨워야 했다.
‘음. 미안한 건 취소다.’
이한은 바로 미안한 마음을 거둬들였다.
이건 이한의 잘못이 아니라 상대 정령의 잘못이었다.
미친놈이 에인로가드 2학년 학생한테 뭘 기대하고 있는 거란 말인가?
‘이쯤이면 정말 나무의 정령이 아니라 파멸의 정령이 맞는 거 같군.’
“과연. 감사합니다. 교수님.”
“이걸 깨우는 건 너무 서두르지 않는 게 좋겠구나.”
“하하. 예. 명심하겠습니다.”
서두를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에 이한은 버드나무 교수의 말에 바로 동의했다.
“이런 식으로 봉인된 정령들은 특별히 난폭하고 흉악하니까 말이다.”
“과연… 잠깐만요. 교수님. 고위 정령들은 다 난폭하고 흉악하지 않습니까?”
예시로는 페 모 정령이 있었다.
일단 힘을 가진 정령들은 기본적으로 거만하고 난폭한 것이다.
“그렇지 않지. 정령들의 성향은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꼬마 너와 계약한 뇌공왕은 점잖지 않느냐.”
“…?!”
이한은 페르쿤트라가 고상하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정령들 사이에서 페르쿤트라가 점잖은 편이라고??
‘말도 안 된다. 정령들이란 도대체?’
“네게 이 선물을 준 건 떡갈나무들이지? 떡갈나무들이 관리하고 있었다면 이 정령은 다른 정령들에게 봉인되었다는 게 된다.”
봉인된 정령들은 보통 둘로 나뉘었다.
사악한 적과 싸우다가 봉인된 정령과, 같은 정령들에게 봉인된 정령.
전자는 멀쩡한 정령들이 많았지만 후자는 난폭하고 흉악한 정령들이 많았다.
오죽 난동을 부리고 행패를 쳤으면 같은 정령들이 봉인을 해버렸겠는가.
“파… 파멸의 정령!”
“?”
버드나무 교수는 이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듣는 정령이었다.
“아니, 이런 걸 저한테 주다니. 그 떡갈나무들이 저하고 무슨 원한이 있는 겁니까?”
“아. 그런 건 아니다. 오해가 있구나. 오랫동안 반성하고 성질이 좀 죽었을 테니, 어린 마법사를 따라가 돕고 속죄하란 뜻으로 내줬겠지.”
“……”
설명을 들어도 이한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고뭉치 정령의 갱생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할 것이지 왜 이한을 끌어들인단 말인가.
“내가 보기에 네 능력이라면 충분히 이 정령을 설득하고 친해질 수 있을 거다. 하하…”
“하하, 하하, 하하하.”
이한은 가식적으로 웃으면서 결심했다.
‘지팡이 새로 만들 때 이 정령 의사는 무시해야겠군…’
* * *
“워다나즈. 이건 홍단풍이야.”
“그렇군.”
“이건 청단풍. 이건 흑단풍. 이건 옥단풍…”
“…단풍나무를 그렇게 엄밀히 구분해서 기억할 것까지는…”
온실 설명에 신이 난 닐리아는 이한의 말을 무시했다.
“내가 놀란 건 이 온실에 북부 산맥에서나 보던 나무들이 있다는 거지. 저쪽, 냉대 건조 기후 구역으로 가보자!”
‘닐리아 말고 다른 사람하고 올 거 그랬군.’
자기 좋아하는 식물 위주로 실컷 구경시켜 준 닐리아는 그제야 만족했는지 제대로 된 설명을 시작했다.
“저번 강의 때 각자 이 텃밭 구역을 맡았어. 이번 학기 내내 기르게 될 거야. 저번 주 워다나즈 네 구역은 친구들이 다 나눠서 맡았지.”
“닐리아!”
친구들의 배려에 이한은 살짝 감동했다.
삭막한 에인로가드에도 이런 우정은 있는 법.
이런 우정은 언제나 사람을 감동시켰…
“…잠깐. 이거 만드라고라 묘목 아닌가???”
이한은 누가 학년 수석 아니랄까봐 텃밭에 자리 잡은 나뭇잎 모양만으로 무슨 식물인지 알아맞혔다.
그 능력에 닐리아는 감탄했다.
“대단한데? 어떻게 맞혔어?”
“……”
그런 감탄에도 이한은 기뻐하는 대신 배신감으로 닐리아를 노려보았다.
“내가 없다고 내 텃밭에 만드라고라를 심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아무리 이한이 강의를 남들보다 한 단계 위의 난이도로 올려서 듣는다지만 친구들까지 교수 같은 짓을 할 줄이야.
이건 정말 배신감이 들었다.
“뭐? 아, 아냐! 나도 만드라고라야!”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받은 닐리아는 펄쩍 뛰며 부정했다.
다른 친구들도 텃밭에 다 만드라고라를 심었던 것이다.
애초에 버드나무 교수가 준 묘목이 만드라고라 묘목이었는데…
“아. 학기 과제가 그냥 만드라고라였던 거군. 잠깐. 닐리아. 아까는 별 거 안 했다면서.”
-별 거 안 했어. 첫 강의라서 무슨 강의인지 설명해주시고, 희귀하고 재밌는 식물들 보여주시고…
이한은 아까 닐리아가 했던 말이 떠올라 물었다.
닐리아는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별 거 안 했잖아? 묘목 받고 심기만 했는데.”
“…닐리아 너도 참 에인로가드에 익숙해진 것 같군. 만드라고라 묘목을 심은 걸 별 거 아니라고 표현하다니.”
“…!!!”
이한이 한숨을 쉬며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자 닐리아는 순간 억울함과 분노로 쓰러질 뻔했다.
‘야!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영지 외곽에 미친 분신이 노리고 있는데도 ‘조심해야지’로 끝낸 친구가 저런 말을 하니 정말 너무나도 억울했다.
“크으으윽…!”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봐. 만드라고라 묘목 관리하는 거 알려줄 테니까.”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경청했다.
책에서 배우긴 했지만 버드나무 교수한테 직접 들은 닐리아에게 듣는 게 훨씬 더 나을 터였다.
“먼저 이렇게 물을 줘.”
닐리아는 양동이의 물을 물뿌리개에 담아 만드라고라 묘목 위에 뿌리기 시작했다.
“물을… 준다.”
메모하던 이한은 문득 의아함을 느꼈다.
‘물 마법 쓰면 되지 않나?’
물 마법 잘 못 쓰는 가이난도와 달리 닐리아는 정령도 있고 물 마법도 기초적인 건 쓸 줄 알았다.
그런데 왜 저렇게 손수 움직이지?
“그렇군. 만드라고라는 마법이 닿은 물이 아니라 순수한 물을 좋아하는 거군. 몰랐는데.”
“어? 뭔 소린데?”
닐리아는 친구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 귀를 쫑긋거렸다.
“마법으로 물 안 불러오고 양동이로 시냇물에서 퍼오길래…”
“아. 그거.”
물뿌리개를 벌써 비운 닐리아는 허리를 한 번 쭉 편 다음 다시 물뿌리개를 채웠다.
“이 양동이로 다섯 번은 줘야 해서 마력 아끼는 거야. 물 너무 많이 먹어서 마법 쓰기 아까워.”
“…그냥 내가 물 불러올게.”
이한이 물을 불러오자 닐리아는 친구가 기특해죽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가장 존재감이 클 때는 이런 단순반복노동을 할 때였다.
첨벙!
허공에 불러 온 물 덩어리가 양동이를 계속해서 채웠다.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헉, 헉. 좋아. 대충 이 정도면 만드라고라 목이 채워졌을 거야.”
닐리아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만드라고라의 잎사귀는 촉촉해졌지만 닐리아는 그 사이에 살짝 마른 것 같았다.
“물 좀 마시고 하지 그래?”
“아. 다 하고 마실게. 그럴 시간이 없거든. 자. 다음은 이제 마력진딧물을 잡아내야 해. 만드라고라가 물 다 마시면 나타나니까. 이 자식, 투명하거든? 그래서 이 물약을 만들어서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어야 해.”
물뿌리개에 만들어 온 물약을 담은 닐리아는 묘목 근처에 숨은 해충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온실의 덥고 습한 공기 속에서 쉬지 않고 움직이는 닐리아의 모습에 이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강의, 보통 힘든 게 아니겠어.”
“무슨 소리야? 이 정도면 쉬운 강의지.”
“강의 시작 전에 쉬지도 않고 계속 일하고 있으면서 그런 소리가 나와?”
“근데 워다나즈 넌 이것보다 더 힘든 강의도 훨씬 많이 들으면서 뭘. 작년에는 텃밭도 관리했고 새벽마다 마구간도 관리했잖아. 올해는 클럽도 여러 개 가입했…”
“……”
친구한테 한 방 맞은 이한은 물뿌리개의 방향을 닐리아한테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