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797)
797화
“저는 못 즐길 것 같습니다만.”
아무리 불확실성과 변화를 즐기려고 해도 화염 원소가 주변을 전부 다 태워버리려는 것까지(심지어 이한도 포함해서) 즐기는 건 무리였다.
이한의 대답에 해적 노파는 안타까워했다.
“키히히… 아직 고리타분하구나. 그럴 법도 하지. 에인로가드 안에만 갇혀 있으니. 네게 필요한 건 소금기가 듬뿍 섞인 바닷바람이야, 애송아! 그러면 자유가 뭔지 알게 되겠지.”
“해적 말씀이십니까?”
“그래!”
‘평생 자유 알기는 틀렸군.’
이한은 살짝 안타까워했다.
해적이란 직업은 이한이 목표로 하기에는 너무 불안정한 직업이었다.
언제 얻을지 모르는 수입을 기다리며 바다 위를 떠돌아야 한다니.
제국 관료와 비교해보면 완전히 반대편에 위치한 직업 아닌가.
“바다도 없고, 해적선도 없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가르쳐볼까?”
“괜찮습…”
“자. 눈을 감아봐라.”
“……”
‘왜 강한 마법사들은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는 걸까?’
허리춤에 찬 커틀러스를 절그럭대며 명령하는 라게사의 모습에 이한은 의문을 품었다.
마법이 강해지면 청력이 약해지는 건가?
“감았습니다.”
“너는 지금 바다 위의 배를 몰고 있는 거야. 알겠어? 해적선의 선장인 거지.”
“예. 저는 해적선의 선장입니다.”
이한은 스스로가 바보 같아지는 기분을 느끼며 말을 따라했다.
“뭘 하고 싶냐?”
“예?”
쾅!
라게사는 발을 구르며 화를 냈다.
“뭘 하고 싶냐니까! 해적 선장은 ‘예?’라고 묻지 않아! 해적 선장은 스스로 결정한다!”
‘이걸 그만하고 싶습니다만…’
이한이 대답하지 않자 라게사가 대신 말했다.
“뭐라고? 결투 클럽의 애송이들을 다 박살내버리고 싶다고?”
“그런 말 안 했습니다.”
“조용히 하시오, 선장. 자. 저 수평선에서 결투 클럽의 애송이들이 범선을 하나 몰고 오는군! 건방지게 새 돛을 쫙 펼치고 바람을 팽팽하게 받고 있어!”
“……”
바다에서 새 돛 펼치고 바람 팽팽하게 받는 게 왜 건방진 건지 궁금했지만 이한은 조용히 경청했다.
“바닷바람을 느껴봐라!”
“…?”
“여긴 바다가 아니란 멍청한 소리를 안 해서 좋군. 바닷바람은 분명히 있다. 자, 자, 자… 느낄 수 있어!”
라게사는 이한의 등짝을 찰싹 세게 두들기며 호통쳤다. 깊게 주름진 이마 아래 눈빛이 더욱 번쩍였다.
뒤에서 따라오던 쇠사슬 찬 해적들은 해적 노파를 미친 사람 보듯이 쳐다보았다.
원래 광기 넘치는 해적인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 보여주는 모습은 유독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법학교 복도에서 무슨 바닷바람이 분단 말인가?
그러나 이한은 상대의 미친 소리를 무시하는 대신 침착하게 집중했다.
아무 이유 없이 이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바닷바람을 느낄 수 있다니. 무슨 소리지?’
삭막한 에인로가드의 복도에는 바람 한 줄기 없었다.
들리는 거라고는 발걸음 소리와 쇠사슬 찬 해적들의 발목에 걸린 족쇄가 절그럭대는 소리뿐.
그리고…
‘아.’
이한은 한 줄기 마력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자연의 공간에는 마력이 차있는 게 당연한 만큼 의식하지 않으면 깨닫기 힘들었지만 원래 마력은 공간을 타고 순환하기 마련이었다.
마력을 인지하는 감각을 훈련하는 마법사는 이런 순환과 흐름을 잡아낼 줄 알았고, 그 중에서도 기민하고 예민한 감각을 가진 마법사는 특히 더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었다.
“느꼈습니다.”
“똘똘하고 교활한 녀석이 가르치기는 참 편하다니까.”
라게사는 만족스러워했다.
같은 마법사여도 바닷바람을 느끼란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놈들이 여럿이었다.
아무리 마법을 달달 외우고 배우면 무엇한단 말인가. 마법이 뭔지 이해를 못하는데.
“제가 교활하진 않…”
“쉿! 그 바닷바람을 더욱 더 강하게 느껴봐라. 몸을 맡기는 거야.”
“!”
이한은 그 말에 살짝 놀랐다.
보통 제국 마법은 이런 마력의 흐름을 인식했을 경우 통제하려고 들었다.
손아귀 안에 단단하게 움켜잡아야 마법을 시전할 때 별다른 변수가 일어나지 않고 증강시킬 수 있는 것이다.
변수를 싫어하는 게 마법사인데 오히려 변수에 몸을 맡기라니.
“…맡겼습니다.”
“그 바닷바람을 더 강하게 만들어라.”
라게사는 대뜸 말했다.
어떻게 강하게 만들지는 알려주지도 않는 뜬금없는 지시.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이런 지시를 받으면 당황해서 ‘어떻게’나 ‘말도 안 된다’ 같은 대답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이한은 그냥 받아들였다.
워낙 불합리한 가르침을 많이 받아왔던 만큼 이제 이 정도는 별로 불합리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더 강하게 만든다라.’
잠깐 고민하던 이한은 곧바로 움직였다. 잘 모를 때는 하나씩 실험해보면서 답을 찾아나가야 하는 법이었다.
‘마력의 흐름을 더 강하게 만들려면…’
마력을 통제하는 대신 마력의 흐름에 순응해서 동조한다.
흘러나온 이한의 마력이 주변 흐름과 정확히 합쳐졌다.
“켁!”
라게사는 깜짝 놀라서 소리를 냈다.
설마 이렇게 빨리 방법을 찾아내고 해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말이 간단하지,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어 흐름을 강화시키는 건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먼저 마력의 흐름을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읽어내야 했다.
대충 읽어내는 걸로는 힘들었다. 그랬다가는 흐름을 강하게 만들기는커녕 충돌해서 멈추기 십상이었다.
그런 뒤 자신의 마력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불어넣어야 했다. 방위나 속성이 틀릴 경우 바로 충돌이었다.
휘이이잉-
노련한 마법사만이 들을 수 있는 거센 풍랑 소리가 복도를 채우기 시작했다. 쇠사슬 찬 해적들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법사는 아니지만 마력의 흐름이 거세지자 본능적으로 불안함을 느낀 것이다.
“왜 그러십니까?”
이한은 라게사가 켁켁 소리를 내자 과정을 멈추고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계속해! 바다에 비해서 에인로가드가 좀 건조하군.”
대해적은 술통을 꺼내 꿀꺽꿀꺽 마시며 재촉했다.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건조한 날씨는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방금 한 방법이 맞은 것 같으니 이한은 계속했다.
흐름을 읽고, 읽고, 읽은 다음 때를 노려서 자신의 마력을 거기에 더한다.
그러자 마력의 흐름이 한층 거세졌다.
‘흐름이 거칠어졌군.’
흐름이 거세질수록 그 움직임 또한 난폭하고 거칠어지기 마련.
이한은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아까보다 더 집중해서 읽고, 때를 노려서 자신의 마력을 더하고…
휘이이이잉!!
몇 번 반복하자 마력의 흐름이 심상찮은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쯤이면 마법사 아닌 사람도 느낄 수준 같아 이한은 질문했다.
“괜찮은 겁…”
“계속해라, 선장!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보자!”
“……”
불안했지만 이한은 일단 상대가 하라는 대로 했다.
뛰어난 마법사이니 설마 말도 안 되는 짓을 시키지는 않을 것 아닌가.
이한이 눈을 감고 풍랑을 불러오는 동안 쇠사슬 찬 해적들은 공포에 찬 눈으로 복도를 쳐다보았다.
지금 바다 위에 미친 정령이 나타났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데 천뢰(天籟)가 들리고, 갑자기 밀려나거나 끌려오는 식으로 몸이 멋대로 움직이고, 공간이 뒤틀리고 시간 감각이…
그러거나 말거나 라게사는 흥분해서 발을 구르고 박수를 쳤다.
“더, 더! 어디까지 가나 보자!”
쇠사슬 찬 해적들은 두려움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오늘 여기서 죽는구나!
폭풍우와 격랑이 휘몰아쳐도 오히려 배를 몰고 들어가는 미친 사람답게 저걸 거들고 있었다.
‘제발 알아채라, 마법사 놈!’
쇠사슬 찬 해적들은 저 마법사 소년이 제발 눈을 뜨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깨닫기만을 빌었다.
이대로 내버려뒀다가는 정말…
‘진짜 계속해도 되나?’
뒤에서 흘리는 해적들의 눈물이 기적을 만들어냈는지, 아니면 이한이 생각하기에도 이건 너무 거세졌다 싶었는지 슬슬 마력을 멈추기 시작했다.
“선장, 네 마력의 한계를 향해 돛을 펼쳐라! 오늘 어디까지 쥐어짜낼 수 있나 보자!”
라게사는 안광을 쏘아내며 외쳤다.
한두번이면 모를까 이렇게 계속 반복해서 마력을 뿜어내는데 버티고 서있다니.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러나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마력의 한계를 향해 돛을 펼치는 대신 이성적으로 대답했다.
“제 마력의 한계는 제가 압니다, 라게사 님!”
“안다고?”
“예! 하루 종일 반복할 수 있습니다!”
“……”
라게사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오싹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건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게 사실이라면…
‘배그렉 이 놈, 대체 무슨 괴물을 키우고 있는 거야??’
“라게사 님. 더 이상은 슬슬 힘들 것 같습니다!”
이한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자신이 강화시킨 마력의 흐름이었지만, 그 흐름이 너무나도 강해지자 슬슬 몸을 맡기는 것도 힘들어졌다.
기분 탓인지 복도 천장과 벽에서 삐걱이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알겠다, 알겠어! 자. 이제 해적 함성과 함께 떠나보내라!”
“휘-익!”
이한은 세게 휘파람을 불며 거대한 마력의 흐름을 밀어냈다. 워낙 다급했던 만큼 목적이고 뭐고 이 해적 마법을 무사히 마무리 짓는 것에만 몰두했다.
————!
그리고 이한이 최근 들었던 것 중 가장 사나운 굉음이 복도를 휩쓸었다. 이한은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천장과 바닥, 벽이 모두 처참하게 박살나있었다. 마치 거대한 환수가 발톱을 휘두르고 날뛰기라도 한 것 같았다.
옆을 보니 라게사가 헐떡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토르게르드의 딸이 여기서 죽을 뻔하다니!”
“예??”
“아무것도 아니야, 애송아! 잘했다. 해적 마법에 멋지게 승선한 거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별 일 없었다. 해적 마법을 쓰다보면 가끔 이런 것도 나오고 그러는 거야.”
뒤에서 구슬픈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쇠사슬 찬 해적들이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감에 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하기 시작한 것이다. 라게사는 사나운 목소리로 외쳤다.
“닥치지 못해, 이 죄수 놈들아! 돌아가서 울어! 형기를 늘리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없었다니까! 너 지금 내 말에 반항하는 거야?”
“…알겠습니다.”
“애송이 넌 이제 막 작은 돛단배에 승선한 선장이다. 가슴이 벅찬 건 이해하지만, 겸손할 필요가 있어. 돛을 만지는 법, 바람을 느끼는 법, 별을 읽는 법을 배워야 하지. 하나씩 배워나갈 때마다 이 바다가 얼마나 넓고 네가 작은 존재인지 느끼게 될 거야.”
해적 마법에 대한 멋진 비유에 이한은 살짝 감탄했다.
평생 동안 바다 위에서 살아온 해적만이 할 수 있는 비유였다. 해적 마법에 관심 없었던 이한도 감탄하게 만들 정도로.
“그럼 제가 다음으로 해야 하는 건 뭡니까?”
“다음으로?”
라게사는 손수건을 꺼내더니 상처에 가져다댔다. 피를 흡수한 손수건이 상처를 치료했다.
“애송이. 네가 다음으로 해야 하는 건…”
이한은 귀를 기울이고 경청했다.
처음에는 이 해적 노파에게 배우는 걸 꺼려했었지만, 나름 운 좋게 배우는 데에 성공한 만큼 다루는 방법을 더 배우지 않으면 손해였다.
게다가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박살난 천장과 바닥, 벽과 통곡하는 해적들이 신경 쓰였던 것이다.
‘그냥 눈을 뜨고 볼 거 그랬나?’
이 불확실한 마법을 다루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
“…앞으로 백 년 정도는 이 해적 마법을 절대 쓰지 않는 거다!”
“……”
승선하자마자 바로 하선 명령을 내리는 라게사의 말에, 이한은 매우 서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