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819)
819화
잔뜩 위축된 이칼도렌 공작은 서둘러 깃펜을 붙잡고 ‘유크벨티레의 인공 차원 연구에 후원하겠다’고 서명을 시작했다.
그 모습에서는 평소 제국의 그늘진 곳에서 벌어지는 암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자신감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말년에 파산한 대부호가 손을 벌벌 떨며 유언장을 쓰는 것처럼 처절했다.
이한과 유크벨티레는 흐뭇해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행히 아직 제정신이었던 디레트는 둘의 어깨를 붙잡고 속삭였다.
“야. 잠깐만.”
“?”
“??”
둘은 왜 그러냐는 듯이 디레트를 쳐다보았다.
“…내가 좀 예의는 갖추자고 했잖아.”
‘해결됐잖아? 이제 이번 주가 끝날 때까지 계속 가둬놓으면 돼.”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배. 제가 끼니도 잘 챙겨주겠습니다.”
친구는 속을 박박 긁고 후배는 눈치 없게 다른 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디레트는 이를 악물고 인내를 유지했다.
“으므르그르드그르지…”
“디레트. 똑바로 말해. 품위 없게 그러지 말고.”
“제 생각에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만…”
이한은 말과 함께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유크벨티레는 후배가 왜 뒤로 물러나나 싶어 의아해했다.
딱!
디레트는 친구의 머리를 지팡이 끝으로 때렸다.
유크벨티레는 믿었던 친구의 배신에 하늘이라도 무너진 것 같은 눈빛으로 연신 눈동자를 깜박였다.
“어, 어째서?”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앞으로 마법 1년만 할 거야? 저기 공작도 언젠간 풀려나서 돌아가게 될 텐데, 제국 귀족들 사이에서 블랙리스트 오르고 싶어!”
“하지만…”
유크벨티레는 항변하려고 했다.
제국에는 대귀족이 여럿 있고, 이칼도렌 공작이 아무리 원한을 품고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린다 하더라도 뛰어난 마법 실력이 있는 한 관심 갖고 후원할 귀족들은 충분히 구할 수 있…
딱!
“그리고 네 연구 후원금 받겠다고 후배 손에 피를 묻히냐!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그건…”
유크벨티레는 다시 항변하려고 했다.
방금 이한이 한 협박은 유크벨티레 본인이 직접 명령한 게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유크벨티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왠지 여기서 말을 했다가는 지팡이 대신 저주가 날아올 것 같았던 것이다.
디레트를 믿고 지근거리 저주 대비를 하지 않은 게 실수였다. 유크벨티레는 자신의 순진무구 함을 반성했다.
“선배. 진정하십시오.”
이한은 유크벨티레 뒤에 숨어서 해명을 시도했다.
“솔직히 저 공작님은 설득이 불가능했습니다. 선배도 아시잖습니까.”
“…좀 겁을 먹고 횡설수설하긴 했지만… 그래도 설득을… 잠깐. 둘이 만난 적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었어?”
“초대 몇 번 받은 것밖에는 없습니다만.”
“그래? 그런 것치고는 반응이 너무 격렬한데.”
“마지막에는 교장 선생님하고 같이 체포하러 가긴 했습니다…”
디레트는 후배를 노려보았다.
그걸 가장 먼저 말해야 할 것 아닌가.
“어쩐지 마령관의 제자 어쩌구저쩌구 하더니… 에휴. 마법 오래가려면 원한 사서 좋을 거 없는데.”
“아무리 이칼도렌 공작이 원한을 품고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린다 하더라도 뛰어난 마법 실력만 있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
“넌 조용히 해.”
추가로 속을 박박 긁는 친구의 입을 닥치게 하고 디레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유크벨티레가 원수를 군단 단위로 만들든 말든 그건 알 바 아니었지만, 후배가 벌써 제국 공작과 원한을 쌓은 건 걱정이 됐다.
마법사 앞길에 원수 많아서 좋을게 하나 없는 것이다.
해골 교장도 그걸 알고 있을 텐데 이한을 데리고 체포하러 가다니.
누가봐도 소문내겠다는, 정말 고약하기 그지없는 심보였다.
디레트가 너무 한숨을 푹푹 내쉬자 이한은 살짝 걱정이 됐다.
“마령관의 제자란 소문이 그렇게 위험할까요…?”
“아냐… 나름 존경받겠지.”
“그만큼 증오도 받겠지만.”
“선배. 참으십시오!”
이한은 허겁지겁 디레트의 팔을 붙잡고 말렸다. 눈빛에서 녹색 섬광이 번뜩이는 걸 보니 최소 독이 들어간 저주가 준비되고 있었다.
유크벨티레는 이해 가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설명해줬는데 왜 그러는 거지?”
“전 알 것 같습니다만… 하여간 마령관의 제자란 소문이 좀 양날의 검인가 보군요.”
디레트는 ‘주인 방향으로만 날이 선 칼에 가깝지’라고 말하려다가 후배가 가여워서 꾹 참았다.
친구와 후배가 침울해하자 유크벨티레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줘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디레트. 후배가 그렇게 걱정된다면 방법이 있다.”
“…뭔데.”
“지금 이칼도렌 공작을 더 확실하게 협박하는 거다. 풀려났을 때도 감히 뜻을 거스르지 못하도록.”
이미 예의고 화해고 그른 상황인 만큼 차라리 확실히 겁을 줘서 뒤탈 없게 만들자는 이야기였다.
이한은 그 말에 솔깃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해보십…”
“야. 밖으로 나와.”
‘아니. 들어보고 싶었는데.’
싸늘한 디레트의 목소리에 이한은 속으로 아쉬워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유크벨티레한테 따로 자세히 들어봐야겠다 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부분은 버두스 교수의 제자인 만큼 매우 잘할 것 같아서 믿음직스러웠던 것이다
* * *
두 선배의 결투를 중재하고, 공작을 흑암관 지하의 따뜻한 침대(옆에 시체 태우는 난로가 있어서 제법 훈훈한 곳이었다)에 안내한 뒤 이한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기숙사로 돌아왔다.
7층에서 맹수의 눈으로 후원자를 노리던 친구나 선배들도 하나둘씩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게 보였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페르세 선배님.”
“그다지 고생하진 않았지. 격구클럽 후원자분들은 대부분 선량한 사람들이라. 그리고 우리는 제국 격구 협회 지원도 받고… 참. 후배. 따로 후원도 받았다면서? 역시 바실리스크와 그리폰의 주인이군.”
페르세는 뛰어난 실적을 낸 후배에게 존중의 눈빛을 보냈다.
설마 고대의 존재가 깨어나서 숨겨진 재산을 들고 찾아왔을 거라고는 차마 생각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한은 가식적으로 웃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어딨겠나. 참. 너희. 혹시 공작의 소문 들었나?”
페르세는 이한뿐만 아니라 뒤에 있는 다른 친구들까지 보며 물었다.
푸른 용의 탑 2학년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당연히 들었죠.”
“공작을 잡으면 진짜 자기 무게만큼의 금화를 뱉어내나요?”
‘소문이 얼마나 빨리 퍼진 거야?’
이한은 살짝 당황했다.
선배들은 몰라도 친구들까지 알 정도로 퍼질 줄이야.
페르세는 딱딱하게 각진 얼굴에 진중하게 걱정을 드리우며 말했다.
“혹시라도 말하는 건데, 안칼덴 공작에 대해 욕심내지 마라.”
“이칼도렌 공작입니다.”
“아. 이런. 이칼도렌 공작. 맞아. 이칼도렌 공작에 대해 욕심내지 마라.”
설명하던 페르세는 멈칫했다.
후배가 어떻게 이름도 알고 있는 거지?
‘하긴 전 학파 듣는 녀석이니 소문도 더 빨리 듣겠지.’
“교장 선생님이 돈 없는 사람을 굳이 가뒀다가 풀어놓진 않을 테니 금화를 엄청나게 내놓긴 하겠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할 거다. 심지어 5학년 선배들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
“너무한 거 아닙니까! 5학년이면 졸업이나 할 것이지!”
“그만! 말이 너무 심하잖냐. 5학년에 올라간 선배한테 존중을 보여라. 너는 동정심도 없나?”
‘페르세 선배말이 더 잔인한 것 같은데…’
이한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배님. 저희는 공작에 대해 별 욕심이 없습니다.”
“맞아요. 들어보니 6층 복도도 5학년들이 공작 때문에 싸워서 부서졌다고 하던데요.”
“……”
자신이 한 짓이 교묘하게 소문에 섞여 들어가는 모습에 이한은 전율했다.
소문이란 게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어쨌든 덕분에 2학년 학생들은 공작에게 가진 관심이 많이 사라진 모양이었다.
고학년 학생들끼리 치열하게 다툰다니 거기 낄 생각이 확 줄어든 것이다.
몇몇 친구들은 관심 없다고 말하면서 이한에게 속삭였다.
“워다나즈. 정말 관심 없어?”
“진짜 진짜 관심 없는 거지?”
“없다니까.”
“휴. 그렇군. 그럼 나도 관심 없어.”
“나도!’
“……”
혹시라도 이한이 공작 납치하려고 가면 함께 하겠다는 친구들의 든든한 우정에, 이한은 할 말을 잃었다.
“공작에 대해 관심 없다니 다행이군.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흰 호랑이 탑에 5학년 선배가 한 분 있다. 자한 가문의 캐튼 선배라고, 오러도 자유자재로 다루시는 대단한 검사지.”
“마법도 잘하시겠네요?”
“어? 어… 뭐. 그런 셈이지. 여하튼 이 분이 공작 쟁탈전에 참가했다가 팔이 박살 났다고 하더군. 그만큼 강한 학생들이 많이 참가하고 있는거다. 모두 조심해라. 알겠지? 괜히 공작 뺏으러 왔다고 오해받으면 징벌방이 아니라 치유실로 실려 갈 수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후배. 넌?”
페르세는 이한이 대답하지 않자 엄하게 물었다.
이 전 학파 수강 학생은 겁이 없어서 무슨 일에 끼어들지 몰랐다. 좀 더 강조를 해야 했다
“저도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됐다.”
“그런데 페르세 선배님. 자한 가문의 캐튼 선배가 팔이 박살 났다는 건 헛소문 아닐까요? 그분이 다쳤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만.”
이한은 정신을 차리고 여론 조작을 시도했다.
그러나 페르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냐. 내가 직접 들었어.”
“…누구한테요?”
누가 말했든 간에 거짓말쟁이로 몰 생각을 하며 이한은 다시 물었다.
“자한 가문의 캐튼 선배 본인한테 직접. 정말 대단한 적수였다고 몇 번이고 강조하셨다.”
“……”
이한은 남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아무리 클럽 주간이라 하더라도 강의까지 진행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학생들은 강의도 들으면서 후원자들도 납치하고 회유해야 했던 것이다.
특히 이한 같은 경우는 더더욱 바빴다.
‘주말에 일을 최대한 처리해서 망정이지.’
주중에 미친 분신이 보낸 고대 시종부터 시작해서 이칼도렌 공작까지 납치해야 했다면 일이 몇 배로 피곤했을 터.
그렇게 생각하며 이한은 발걸음을 옮겼다. 강의나 후원 때문이 아니었다.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잡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기르는 동물들을 돌보고(폰리그는 유니콘을 먼저 만나고 보러 가면 토라졌고, 유니콘은 바실리스크를 데리고 가면 토라지는 만큼 잘 계산해야 했다), 갖고 있는 텃밭과 선배들한테 받은 주방 클럽 구역에서 추가 식료품을 획득하고…
새벽이 다가오는 밤의 어둠을 틈타 은밀하게 움직이던 이한은 저 멀리서 익숙한 해적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멈칫했다.
“라게사 님!”
“어떤 애송이가… 너로군. 왜 이 시간에 투명화 마법을 걸고 쥐새끼처럼 돌아다니는 거냐?”
“이 시간에는 원래 기숙사에 있어야 하니 말입니다. 라게사 님은 여기서 뭘 하고 계십니까? 후원자분들이 묵는 곳은 이쪽이 아닐 텐데요.”
“심심해서 구경 좀 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해서.”
“확실히 선배들이 좀 불쌍하긴 합니다.”
이한은 깊이 공감했다.
그러자 라게사가 벌컥 화를 냈다.
“그깟 애송이들이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건방지고 불손한 놈들이야!”
“예? 선배들이 말입니까?”
“그래! 요 빌어먹을 애송이들.”
‘대체 선배들이 무슨 짓을 했길래?’
그 짧은 사이에 라게사가 진심으로 화를 내는 모습에 이한은 정말로 놀랐다.
“비블레한테 금화 좀 투자했다고 토르게르드의 딸을 아주 머저리로 알고 있어, 요 빌어먹을 애송이들! 설마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라게사 님. 저는 버두스 교수ㄴ… 교수의 제자입니다. 버두스 교수의 연구는 투자받을 가치가 충분하지요.”
“그건 아냐.”
“……”
“됐다. 내가 불쌍하다고 한 건 여기 신입생 말한 거다. 저기 봐라.”
라게사가 앞을 가리키자 이한은 시력을 강화하며 시선을 던졌다.
보아하니 저 앞에는 라게사가 던져둔 음식 바구니가 있었다.
‘무슨?’
잠시 후.
비쩍 마른 1학년 학생들이 후다닥 달려와서 음식 바구니를 붙잡더니 정신없이 퍼먹기 시작했다.
라게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굶기다니.”
“아, 아니. 원래 저 정도까지 굶주리진 않습니다만….”
“그래? 내가 알기로는 저게 보통일 텐데. 그 사이 달라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