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844)
844화
짧은 대화 후 이한은 속으로 한탄했다.
‘이럴 수가. 내가 선배를 믿지 못하다니.’
다른 교수나 선배면 몰라도 디레트를 의심한 탓에 이런 꼴이라니 자괴감이 안 들 수가 없었다.
“크흑. 너무 괴롭습니다.”
“그,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아?”
디레트는 후배가 괴로워하자 당황했다.
물론 오해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마법을 지나치게 열심히 하긴 했지만, 그래도 스켈레톤 골렘을 익힌 건 대단한 성과였다.
자랑스럽고 뿌듯해해도 되는 것이다.
“후배. 봐봐. 스켈레톤 골렘 소환 가능해졌잖아.”
“안 해도 됐는데…”
“…골렘 좋지 않아?”
“선배 말을 제대로 들었어야 했습…”
휙!
디레트는 자꾸 징징대는 후배의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은 뒤 옆으로 돌려서 강제로 스켈레톤 골렘을 쳐다보게 만들었다.
“야. 보라고. 멋지지?”
“으윽. 멋집니다.”
“뿌듯하지?”
“뿌듯합니다.”
“그래. 강의 한 번에 스켈레톤 골렘을 완성한 건 아주아주 대단한 거야. 그렇지?”
“네…”
“대단한 거야. 그렇지!”
“예!”
“오늘 강의는 보람차고 뿌듯했지?”
“보람차고 뿌듯했습니다!”
(강제로 얻어낸) 후배의 대답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디레트는 갑자기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었다.
…혹시 지금 내가 에인로가드의 교수들처럼 굴고 있나?
* * *
강의가 끝나고 이한은 잠깐 흑암관에 방문했다.
이칼도렌 공작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공작의 상태가 나아졌다면 나하고도 이야기가 통할지 모른다.’
저번에는 공작이 너무 두려워하는 탓에 유크벨티레의 인공 차원 연구에만 서명하게 했을 뿐, 그 이외의 다른 거래는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디레트는 이칼도렌 공작이 겁을 먹은 이유가 이한이 가진 마령관의 제자라는 신분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이한은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선배들이 두꺼비 악마 속에 넣어서 납치한 것도 분명 이유 중에 있을 거다. 나만 겁을 준 게 아니야.’
어쨌든 간에 공작의 상태가 나아졌고 대화가 가능해졌다면 이한도 금화를 뜯어낼 가능성이 생겼다.
이한은 미리 생각해놓은 가짜 연구 제목들을 몇 개 떠올리며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고대 소세계 마법에 대한 연구>나 >수옥탄 마법 응용 연구>, >번개 원소 심화 변환과 정령 권능 연구>같은 거면 혹할지도.’
“계십니까?”
“제발 꺼져다오. 더 이상 달라고 하지 않겠다.”
“?”
지치고 굵주린 공작의 목소리에 이한은 의아해했다.
물론 흑마법사들의 마탑 지하 감옥에 갇힌 이상 누구라도 신경이 날카로워지겠지만, 지금 공작이 한 말은 조금 다른 의미로 들렸던 것이다.
마치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것 같은…
“공작 전하. 괜찮으십니까?”
“너… 너, 너는 황녀가 아니군!”
공작은 뒤늦게 이한의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창살을 탕탕 두드렸다.
“어서! 어서 와라!”
“???”
이한은 함정인가 싶어서 경계하며 내려갔다.
혹시 내려가면 옆에 숨어있던 공작이 덮치는 게 아닐까?
물론 공작은 창살 안에 곱게 갇혀있었다. 저번에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창백하고 비쩍 마른 모습이었지만.
“너…”
이한을 발견한 이칼도렌 공작이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또 마령관의 제자니 뭐니 날뛸 것 같자 이한은 조금 걱정이 됐다.
“공작 전하. 저번에 이야기하신 건 오해가 조금…”
“먹을 것 있나?”
“예?”
“먹을 거 말이다. 음식. 뭐든지 좋다.”
“죄송합니다. 전하. 제가 갖고 다니는 음식들은 평범한 것밖에 없어서요.”
만약을 대비해서 언제나 배낭에 일정량의 식량을 넣어 갖고 다니는 이한이었지만, 대부분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보존식품이었다.
음식 이름도 기억하기 힘들 만큼 사치스러운 식사를 즐기는 공작에게는 마뜩잖으리라.
“평범한 거면 돼! 평범한 거면 된다고.빵 있나?”
“빵… 있습니다만. 좀 굳었을 텐데요.”
“다오!”
“……”
이한은 약간 굳은 단단한 빵을 꺼내서 내밀었다. 포장을 벗긴 공작은 허겁지겁 입안에 쑤셔 넣었다.
“공작 전하. 여기 버터와 잼이라도 발라서 드시죠.”
“오, 오오!”
공작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이한이 내민 버터와 잼을 받았다. 나이프로 버터를 크게 숭덩 자르고 잼을 푹 발라서 빵에 묻힌 뒤 숨도 쉬지 않고 삼켜버렸다.
순식간에 빵 네 개를 끝낸 공작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이 식사에 대해 보답을 하도록 하지. 마령관의 제자. 자네는 무슨 연구를 진행 중인가?”
“예? 그, 고대 소세계…”
마령관의 제자라는 오해를 풀기 전에 이한은 일단 가짜로 정해놓은 연구 제목부터 말했다.
공작은 다 듣기도 전에 종이를 꺼내더니 연구를 후원하겠다고 서명했다.
“가져가라. 연구 이름은 여기에 알아서 써넣으면 된다.”
‘아니. 이렇게 쉽게 준다고?’
이한은 당황했다.
행운에 기뻐하는 것도 어느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쉽고 빠르지 않은가.
설마 빵 네 덩이에 버터와 잼을 줬다고 이걸 준 건 아닐 테고…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나?
‘혹시 계략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한이 고민하는 사이 공작이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먹을 것 더 있나?”
“예?”
“…공, 공짜로 달란 게 아니다. 교환하도록 하지. 자. 보도록 해라.”
공작은 재빨리 종이를 한 장 더 꺼내더니 연구를 후원하겠다고 백지수표를 만들었다.
“음식과 교환하자. 어떠냐?”
“…공작 전하. 그, 혹시 굶으셨습니까? 유크벨티레 선배님이 식사를 안 주셨나요?”
이칼도렌 공작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이한이 무슨 뜻으로 질문했는지 알 수 없어서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함정이라면…
“공작 전하. 마령관의 이름을 걸고 비밀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주십시오.”
“…그래. 굶었다. 아무래도 몰랐던 모양이군.”
“이해가 안 됩니다. 유크벨티레 선배님이 마음이 좁고, 옹졸하며, 인색하고 괴팍한 사람이지만 일부러 포로를 굶길 사람은 아닙니다만.”
선배를 따르는 후배치고는 수상할 정도로 험담이 많았지만, 공작은 지치고 힘들어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황녀가 일부러 굶기진 않았지. 하지만 일부러 굶긴 거나 마찬가지다.”
공작은 한숨과 함께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처음에 마령관의 제자와 사악한 흑마법 학파의 학생이 사라지고 유크벨티레만 남자 공작은 살짝 안심했었다.
그래도 저 셋 중 그나마 가장 명예롭고 믿음이 가는 마법사를 고른다면 역시 황족 아니겠는가.
그리고 유크벨티레는 공작의 기대처럼 예의를 갖춰서 행동했다.
-인공 차원 연구를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뛰어난 에인로가드의 마법사를 돕게 되어서 기쁠 뿐이군.
-원하시는 게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최대한 들어 드리겠습니다.
-흥. 그 대신 다른 연구도 더 후원해줘야 하겠지. 그래. 어차피 내야 할 금화라면… 에인로가드에 얼마나 더 갇혀 있어야 할지 모르니, 이번 기회에 식사라도 제대로 해야겠군. 죽음의 기사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은 영 심심했으니 말이야.
이번 주가 끝나고 죽음의 기사들이 지키는 독방으로 돌아가게 되면 또 재미없는 식사를 하게 될 터.
공작은 예전에 즐기던 사치스러운 식사를 주문했다.
뛰어난 마법사인 에인로가드 학생들이라면 충분히 준비할 수 있을 테니까.
그 판단은 거의 정확했다.
…하필 몇 안 되는 예외가 공작 앞에 있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트러플을 얹은 썩은 샐러드와 수확한 지 이틀이 지난 치커리 햄, 제국 남부에서 수확한 콩. 맞습니까?
-…다 틀렸네. 지금 농담하는 건가?
-죄송합니다. 전하.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러니까 트러플을 얹은..
처음에 황녀가 메뉴를 제대로 기억 못할 때만 해도 설마 싶었다.
그래도 에인로가드 고학년 학생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 설마는 곧 무자비한 현실로 다가왔다.
-준비해왔습니다. 드시죠.
-오오! 고맙… 이게 뭔가?
-트러플을 얹은 프로슈토 햄과 수확한지 이틀이 지나지 않은 치커리 샐러드, 제국 남부풍 버섯 콩소메입니다.
-…쓰레기가 아니라?
-전하. 그런 의미 없는 모욕으로 저를 도발하려고 하셔도 의미 없는 짓입니다.
-도발하려는 게 아니라! 아니. 이걸 보게!
공작은 정말로 기가 막혔다.
재료만 구하면 그렇게 만들기 어려운 음식도 아니었다. 이렇게 개판으로 만드는 게 더 어려워 보였다.
햄은 꽝꽝 얼어서 그릇에 붙어 있지, 치커리 샐러드는 뭔가 이상한 소스를 섞었는지 기묘한 냄새가 나지, 버섯 콩소메는 맑은 국물 대신 대충 자른 생선과 고기가 굴러다니지…
-햄이 얼었잖나!
-차갑게 먹는 게 진미잖습니까.
-…차가운 게 아니라 얼었… 그리고 이 샐러드 소스는 대체 뭔가!?
-샐러드의 핵심은 소스라고 들었습니다.
-콩소메는?! 대체 이 건더기들은 뭐란 말인가?
-남은 재료를 추가해서 맛을 풍부하게 시도해보았습니다만.
-……
공작은 황녀가 자신을 모욕하기 위해서 이런 짓을 했나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긴 대화 끝에 마침내 이해할 수 있었다.
황녀는 요리에 대해 정말 하나도 알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쓸데없이 자신감은 높아서 멋대로 요리를 하려고 하더군! 그걸 지적했더니 의미 없는 모욕으로 도발하지 말라고 하지 않나! 응!”
공작은 어찌나 억울하고 서러웠는지 목대에 핏줄을 세워가며 외쳤다.
그렇게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다
그냥 레시피 그대로만 해도 이것보단 훨씬 나았을 것 아닌가.
“그, 그랬군요. 그… 그런데 전하. 선배님이 요리를 개같이 못하시면 그냥 재료를 달라고 하면 안 됐습니까?”
“개같이 못한다고 하지는 않았네만… 여하튼 그렇게 말했지. 앞으로 다 필요 없으니, 자네가 먹는 식사만 그대로 달라고.”
공작의 말에 이한은 의아해했다.
그럼 문제가 해결된 것 아닌가?
‘왜 이렇게 굶은 거지?’
“잘 된 거 아닙니까?”
“…저거 보이나?”
공작은 창살 밖에 있는 탁자를 가리켰다. 탁자 위에는 얇게 자른 빵 한 조각이 있었다.
“보입니다.”
“저게 하루 치 식사야.”
“먹고 남은 겁니까?”
“아니! 저게 황녀의 하루 치 식사라고!!”
공작은 발작하듯이 외쳤다. 이한은 그 기세에 압도되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황녀가 저렇게 적게 먹을 줄 누가 알았겠나! 빌어먹을, 그러면 말이라도 해줘야 할 것 아닌가! 저것만 먹고 어떻게 사람이 버틴단 말인가!”
심지어 유크벨티레는 일이 생겨서 식량만 먼저 두고 며칠째 자리를 비워버렸다.
공작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따지고 싶어도 따질 곳도 없이 쫄쫄 굶어야 했던 것이다.
“음식을 내놓게! 제기랄!”
이칼도렌 공작은 진정한 굶주림 앞에서는 작위고 명성이고 아무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한이 급히 쇠고기 통조림을 꺼내서 주자 공작은 뚜껑을 따버린 뒤 손으로 퍼먹었다.
끼익-
“!”
위에서 들리는 문 열리는 소리에 이한과 공작은 둘 다 놀랐다.
이한은 선배 없는 사이에 후원 좀 따로 받으려고 했던 만큼 놀랐고, 공작은 그냥 놀랐다.
그러나 들어온 건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절름발이였는지 한쪽에는 목발을 하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식칼과 국자, 뒤집개 같은 조리 도구를 달고 있었다.
거기에 요리사 특유의 모자까지 쓰고 있으니 매우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요리사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상대는 이한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퉁명스럽게 물었다.
“네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냐?”
“…맞습니다. 누구십니까?”
“난 주방지기다.”
“!”
처음 보는 해골 교장의 하수인이었다. 이한은 놀라서 말했다.
“처음 뵙습니다.”
“그렇겠지. 나도 널 본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2학년 놈들도 본 적이 없다. 너 때문에. 덕분에 지팡이 수집도 못 해서 욕을 먹었지. 이것도 너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