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879)
879화
고민 끝에 볼라디 교수는 입을 열었다.
“현재 익히고 있는 심화 속성이 많…”
“아. 잊을 뻔했군. 별하고도 계약했다면서? 벤도졸 교수한테 들었소.”
“……”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돌리더니 이한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그 사이에 사고를 치고 온 제자를 질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억울하군.’
설령 이한이 자의적으로 별과 계약했다고 하더라도 볼라디 교수한테 저런 질책의 눈빛을 받을 수는 없었다.
최소한 볼라디 교수는 이 부분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지 않은가.
“이 정도면 화염 원소의 심화 속성 정도는 충분하겠지. 워다나즈 학생. 안 그런가?”
“자신 없습니다만.”
“보시오! 겸손도 하지. 뛰어난 재능에 겸손함까지 겸비했으니 화염 원소의 심화 속성 정도는 순식간에 해치울 거요.”
“???”
이한은 혹시 자신이 ‘맡겨만 주십시오 헤헤’라고 대답했나 의문에 빠졌다.
분명 ‘자신 없다’라고 대답했는데?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조르직 교수도 결국 교수인 만큼, 학생의 말을 자기 편한 대로 알아듣는 저주가 핏줄 속에 흐르는 것이다.
이건 교수라는 자리에 오르는 순간 받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다.
“아마 워다나즈 학생은 이미 준비가 되었을지도 모르오. 다른 시험들을 미리 끝내놓는 것처럼 이 조르직의 시험도 그렇게 뛰어넘으려는 거지.”
“절대 아닙니다.”
이한은 단호하게 부정했다.
화염 원소의 심화 속성이고 뭐고 건드린 적도 없었다. 그만큼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두 교수는 이한의 말을 무시했다.
워낙 겸손한 학생이라 입으로는 무슨 겸양을 하더라도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볼라디 교수는 깊게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워다나즈는 예전부터 하기 힘들다고 겸손하게 말해놓고 곧바로 익히는 일들을 종종 보여줬었다.
그 짧은 사이에 별과 계약한 걸 보니, 워다나즈 특유의 겸양을 볼라디 교수가 이해하지 못하고 지레 걱정한 걸 수도 있었다.
“그럴지도 모르겠소.”
“……”
어이가 없는 수준을 떠나 야차왕이 있는 구산팔해 차원까지 가버리는 감각을 느끼며, 이한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따끔하게 한 마디는 무슨…!’
역시 교수들은 기본적으로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학생으로서 교수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더더욱 힘이…
힘이 필요하다.
미친 분신의 목소리에 이한은 놀라서 지팡이를 떨어뜨릴 뻔했다.
“뭐… 뭐라고 하신 겁니까, 방금?”
네 힘이 필요하다고 했다. 천것.
빠릿빠릿하지 못한 제자의 반응에 미친 분신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번에 마법의 극의를 깨우쳐 대륙의 유혈과 상흔을 없애라고 했더니 ‘그냥 5서클 10개 익히면 안 될까요’라고 헛소리를 지껄였던 게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 스승님께서 말입니까?”
그래.
‘내 마음을 읽은 건 아니었군.’
순간 고대의 미친 마법사가 사악한 본색을 드러내며 두 교수를 쓰러뜨릴 힘을 주겠다고 꼬드기는 건가 싶었던 것이다.
여기서 가장 두려운 점은 이한이 그런 제안을 받으면 1초 정도 고민할 것 같다는 점이었다.
“아니… 스승님께서 제 힘이 필요하시다고요? 도움이 될까 싶습니다만…”
미친 분신이 가진 마법적 능력은 그야말로 초월적이었다.
제국에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마법사들은 여럿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 고대 분신의 경지는 손에 꼽힐 거라고 이한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미친 분신이 이한의 힘이 필요하다니.
어떤 일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음 주가 시험인데.’
원래라면 그랬겠지.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영지에 침입자들이 들어왔으니 대응할 손도 여럿 필요하군.
“!?”
이한은 한층 더 놀랐다.
침입자라니?
‘…잠깐. 엄밀히 따지자면 이 사람도 침입자인데.’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이한은 일단 이 부분은 넘어가기로 했다.
“침입자가 누구입니까? 그보다 데스 나이트들을 부르겠습니다.”
그 기사들은 믿을 수 없다. 찌꺼기에게 바치는 거짓 충성심 때문에 눈이 멀어버린 존재들이니.
‘말이 너무 심하시군.’
더군다나 기사들은 영지의 하찮은 수련생들을 수호하느라 왕족의 공방에는 여력을 두지 않을 것이다. 설령 나선다 하더라도 왕족이 허락하지 않겠지만.
“?”
상대의 이야기를 듣던 이한은 위화감을 느꼈다.
데스 나이트들이 학생들을 지키느라 미친 분신의 공방은 지키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애초에 미친 분신 본인이 침입자 아니던가.
데스 나이트들이 ‘허허 그래도 주인님의 분신이고 영지에서 지내시는 만큼 같이 지켜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가는 분노한 해골 교장이 영원히 징벌방에 가둬둘 수도 있었다.
이한이 위화감을 느낀 건 다른 부분이었다.
마치 침입자가 에인로가드 본관이 아닌 미친 분신의 공방을 노리는 것처럼 확정해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영지가 넓다지만 장벽을 넘어서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준비가 필요할 텐데, 그 고생을 하고서 굳이 노리는 게 에인로가드 본관이 아니라 미친 분신의 공방이라고?
“본관 건물을 노리지 않겠습니까? 스승님의 공방보다는?”
틀렸다. 놈들이 노리는 건 햄스터다.
“…예?”
아. 말하는 걸 잊어버렸군. 노예를 햄스터로 변형시켰다. 너절한 꼴이 보기 역겹더군.
미친 분신은 환영 너머로 우리 안의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햄스터를 가리켰다.
제국에서 악명이 자자한 마법범죄자, 안타곤달스라고는 믿기 힘든 귀여운 모습이었다.
“어… 그러니까… 저 햄스터를…”
놈의 동료들이 구출하러 들어온 거지.
“아하!”
이한은 그제야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
안타곤달스의 동료들이 이 마법범죄자를 구출하기 위해 들어온 거라면 본관 건물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는 게 이해가 갔다.
데스 나이트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게 당연했다. 외부인이 다른 외부인하고 싸우는데 무엇하러 참견하겠는가.
“스승님. 저는…”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밝히려던 이한은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안타곤달스가 풀려나면 나한테도 복수하는 거 아닌가?’
물론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안타곤달스의 복수 상대는 미친 분신이었지만, 원래 마법범죄자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특히 공방에서 당한 꼴을 생각해보면 미친 분신의 제자한테도 복수하려고 들 수 있었다.
“…당연히 가서 도와드려야죠. 마법범죄자는 영원히 쳇바퀴, 아니 창살 안에 갇혀 있어야 합니다.”
그럴 줄 알았다.
미친 분신은 제자가 스승을 도우러 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는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흥미롭게 듣고 있던 조르직 교수가 말을 걸어왔다.
“워다나즈 학생. 이 조르직도 같이 가도 되냐고 물어봐주겠나?”
“예? 대체 어째서 말입니까?”
이한은 교수의 제안에 당황했다.
자신은 피하고 싶어서 온갖 핑계를 대고 있는데 직접 방문하려고 하다니.
게다가 미친 분신의 성격상 에인로가드 교수들은 해골 교장의 하수인으로 취급해 공격할 수도 있었다.
‘설마 교장 자리 때문에?’
조르직 교수가 에인로가드 교장 자리에 관심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친 분신하고 접촉을 시도할 줄이야.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이한은 단호하게 말하려고 했다.
“교수님. 교…”
“고대의 대마법사를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건 그리 흔한 기회가 아니지. 더군다나 교장 선생님의 분신이라면 일반적으로 대화가 불가능하지 않나.”
해골 교장의 분신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닌 관념적인 존재였다. 한 번 강림하면 자신만의 규율로 움직였기에 대화나 교섭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분신은 어째서인지 워다나즈를 제자로 들였고 덕분에 대화나 교섭도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마법사로서 대면해 지혜를 얻고자 하는 것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 그런 거였군요.”
“그런데 방금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가, 워다나즈 학생?”
“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한은 재빨리 하려던 말을 바꿨다.
생각해보니 조르직 교수도 마법사인 만큼 학문적인 욕심이 있는 게 당연했다.
“나도 물어보도록.”
같이 듣던 볼라디 교수도 입을 열었다.
“교수님도 여쭤보고 싶은 마법이 있으십니까?”
“아니.”
“…어, 그러면 왜 같이 가시려는 겁니까?”
“가르치는 방식을 지적할 생각이다.”
“……”
* * *
미친 분신은 의외로 허락해줬다. 심지어 조우린이나 에안두르데의 동행까지 흔쾌히 수락했다.
‘…괜히 데려왔나?’
마중 나온 인타렌달스의 지시를 따라 공방 앞에 도착한 이한은 갑자기 걱정이 됐다.
조르직이나 볼라디 교수는 정신이 튼튼한 어른들이니 괜찮다지만 조우린 같은 경우는 미친 분신의 폭언 때문에 깊이 상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고귀한 혈통의 후예시여. 제 거처는 당신의 거처고, 제 보물은 당신의 보물입니다.”
그러나 미친 분신은 조우린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갖췄다. 이한은 경악해서 눈을 부릅떴다.
“아, 아니. 스승님. 전하와 아는 사이셨습니까?”
“무슨 소리지?”
“전하에게 너무 공손하셔서…”
“…천것. 이건 예의범절이라고 하는 거다.”
미친 분신은 경멸과 한심이 섞인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용에게 마땅히 갖춰야 하는 예의범절에 이렇게 놀라다니.
‘아. 그렇군.’
이한은 그제야 해골 교장이 소싯적에 용들에게 마법을 배웠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미친 분신이 용들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스승의 일족이자 후예인 셈이었으니.
조우린은 격식 갖춘 대접에 싱글벙글 웃었다.
미친 분신은 일행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에안두르데를 가리켰다.
“저쪽은?”
“제 후배입니다.”
“튼튼하군.”
“멋대로 제자로 거두시면 안 됩니다. 에안두르데의 의사도 있지 않습니까.”
“…천것. 혹시 너는 왕족의 가르침이 저잣거리에서 나눠주는 싸구려 잡동사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무나 튼튼하다고 나눠 주는?”
“어…”
이한은 ‘강제로 가르치시길래 그런 건 줄 알았는데요’라고 말하려다가 눈치껏 멈췄다.
“하하. 그럴 리 있겠습니까.”
“이쪽은…”
“안녕하십니까. 대마법사 님. 저는 벤말파 가문의 조르직이라고 합니다. 에인로가드의 교수로 일하고 있지요.”
조르직 교수가 인사하자 볼라디 교수도 옆에서 같이 간단히 인사했다.
미친 분신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왜 너희의 동행을 허락했는지 알겠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가르침을 주시지요.”
“너희에게도 가르침을 주려고 불렀다. 너희의 느슨하고 게으른 가르침이 여기 천것의 성장을 더디게 만들고 있다!”
“……”
옆에서 가만히 듣다가 날벼락을 맞은 이한은 경악했다.
“스승님. 마법범죄자의 동료들이 침입했는데 지금 그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용히 해라. 천것. 제자를 가르치는 일과 비교한다면 그런 일은 하찮기 그지없으니.”
볼라디 교수는 동의한다는 기색을 표했다. 이한은 어이가 없어서 교수를 쳐다보았다.
‘지금 누구한테 뭘 동의하는 거야?’
마음 같아서는 해골 교장에게 내통죄로 투서를 넣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대마법사 님. 감히 말씀드리자면 워다나즈 학생의 성장은 제국에서도 손꼽는 수준입니다.”
“더 빨랐을 수도 있었지.”
“위험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볼라디 교수는 조르직 교수를 도와 냉정하게 지적했다. 그러나 미친 분신은 괜히 미친 분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위험한 일이 일어났나? 세간의 하찮은 굴레에 얽매여서는 진리를 얻을 수 없는 법.”
볼라디 교수가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기자 이한은 진심으로 두려워졌다.
설마 미친 분신 때문에 볼라디 교수가 미친 볼라디 교수로 진화라도 한다면…
‘진지하게 다른 마법학교로 전학을 요청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결과만 보고 위험성을 경시할 수는 없습니다.”
“전 교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한은 울컥 감격해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