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882)
882화
-워다나즈. 이거 마신다. 분노 사라진다.
착한 거인들은 일단 이한을 달래기 위해 큼지막한 표주박에 담긴 거인술을 건넸다.
산맥파괴양의 젖을 발효시켜서 만든 이 술은 독하고 화끈해 한 모금만 들이켜도 분노를 달래줄 수 있었다.
화르륵!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불타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맞다! 그래야 더 화끈하다!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거인들의 어처구니없는 음주습관을 듣자 분노가 조금 사그라들었다. 이한은 기운을 차리고 돌아섰다.
“다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마법사가 수상하다.
“거인들이여! 이 인타렌달스는 절대로 주인님의 제자를 해하지 않…”
“저 사람 잘못도 조금은 있긴 합니다.”
“?!”
갑작스러운 이한의 말에 인타렌달스는 경악했다.
자신이 뭘 잘못했단 말인가?
-절벽에 던지자! 절벽에 던지자!
“그 정도는 아닙니다. 대신 화내주실 필요 없습니다.”
-워다나즈, 관대하다! 너무 착하다!
거인들은 이한의 등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실제로 두드렸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저번에 해서 알고 있었다) 칭찬해줬다.
‘그래. 벌써부터 절망할 필요는 없다. 예언은 절대적인 게 아니니.’
이한은 마음을 다잡았다.
예언은 절대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예언에 맹목적으로 휘둘리는 그 태도가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타렌달스도 일개 마법사 아닌가. 얼마든지 해석이 틀릴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객성 아르나가 그 사이 궤도가 틀어지고 법칙이 바뀌어서 에인로가드의 선량한 학생들을 도와주는 별이 되었을 수도…
‘내가 생각했지만 진짜 말도 안 되는 개소리 같군.’
마법을 배우다 보면 지능이 올라가서 스스로를 속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거인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이한에게 누명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인타렌달스는 지적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주인의 제자를 제대로 모시지 못했기에 저런 말을 들은 것 아니겠는가. 스스로 반성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같이 설득…”
-워다나즈. 양이 새끼를 낳았다! 구경하러 가자!
-워다나즈. 새 냄비 마련했다. 구경해라!
-내가 먼저 말했다!
-양이 새끼 낳는 건 당연한 일이다! 냄비가 훨씬 더 중요하다!
우당탕콰당!
거인들이 멱살 잡고 다투기 시작하자 이한은 재빨리 말렸다.
“둘 다 가겠습니다! 둘 다!”
싸움을 말린 뒤 거인들과 함께 훌쩍 떠나버리는 이한의 뒷모습에, 인타렌달스는 뒤늦게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 설득은…?”
* * *
거인들의 야영지에서 혼자 외롭게 수레들을 지키며 이한을 기다리는 인타렌달스 뒤로, 낮고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특이한 손님이시군. 이 어르신보다 더 오래 살았다니?
‘야차!’
인타렌달스는 야차 늙은이를 보고 가볍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고나달테스 님의 명을 받아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 찾아온 시종장 인타렌달스입니다.”
-고나달테스…? 아. 그런 것인가. 편하게 대해주시오.
“주인님의 명으로 찾아왔는데 그럴 수는 없지요.”
-그럼 이쪽도 예의를 갖추겠습니다.
야차 늙은이는 상대가 해골 교장이 아닌 미친 분신의 하수인이라는 걸 짐작했다.
해골 교장의 하수인 중에 저렇게 부활한 시종장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여기 혼자…?
“그게 말입니다.”
인타렌달스는 푸념하듯 상황을 설명했다.
거인들과의 협상이 길고 힘들 거란 각오는 했었지만, 이런 식으로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었다.
지금 한창 협상하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기다리고만 있으니 푸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 거인들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을 꽤나 좋아합니다. 오랜만에 방문했으니 이야기할 게 많을 테지요.
“거인들이 저렇게 사교성 있는 종족이었습니까?”
-그렇진 않죠. 그냥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특이한 것 아니겠습니까.
야차 늙은이의 말에 인타렌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고나달테스의 제자인 만큼 이한은 비범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게 거인들과 친한 부분에서 드러날 줄은 몰랐지만…
“여하튼 협상을 해야 하는데 언제쯤 돌아올지 모르겠습니다.”
-협상이라니요?
“말씀드렸잖습니까? 산맥 공방을 지키기 위해 경호원이 필요한데…”
-아. 뜻을 이해 못한 게 아닙니다.
야차 늙은이는 짊어지고 있던 지게와 바구니를 내려놓고 말했다.
-거인들은 그냥 워다나즈가 부탁하면 들어줄 텐데요.
“하하.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잠깐. 농담이 아니었습니까?”
-예.
“무슨… 말도 안 됩니다.”
인타렌달스는 부정적인 반응을 내보였다.
물론 이한이 거인들과 친한 건 직접 봐서 알고 있었지만, 공과 사는 원래 구분해서 봐야 했다.
친하다고 해서 아무 대가 없이 일을 맡을 만큼 거인들이 너그러운 종족이 아닌 것이다.
-정말입니다만. 돌아오시면 확인해보십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인들이 마지막 방문을 끝내고 이한과 함께 야영지로 돌아왔다.
-우리 조각상 멋지지 않나!
“예… 정말 멋집니다…”
-동쪽 봉우리에도 만들어 놨다! 그것도 보러 가자!
“…그건 다음에 보도록 합시다. 원래 걸작은 몰아서 보는 게 아닙니다. 감동이 약해지니…”
-역시 워다나즈! 똑똑하다!
거인들은 요즘 조각에 취미가 붙었는지 산맥 봉우리마다 거인 조각상을 삐뚤빼뚤 만들어놓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데리고 다니면서 하나하나 구경을 시켜주려고 하니 이한 입장에서는 지칠 수밖에 없었다.
“엇. 안녕하십니까.”
야영지에서 야차 늙은이를 발견한 이한이 인사했다. 야차가 대답하기도 전에 거인들이 분노에 찬 비난을 내뱉었다.
-우우! 야차 늙은이!
-너 때문에 워다나즈 화났다! 워다나즈 고생했다! 책임져야 한다!
-???
졸지에 뜬금없는 비난을 받은 야차 늙은이는 당황했다.
거인들이야 원래 헛소리 많이 하는 놈들이라지만 워다나즈가 고생했다는 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무슨 헛소리냐? 내가 뭘 했다고?
-워다나즈 야차왕 만났다! 그것 때문에 고생했다! 야차 늙은이가 책임져야 한다!
-…야차왕을 만났다고?!
야차 늙은이는 오늘 놀랐던 것 중 가장 놀랐다.
여러 차원에 야차 종족들이 흩어져 있었지만 그 중 야차왕이라고 불릴 만한 존재는 하나밖에 없었다.
모든 야차들이 공경하며 섬기는 가장 지혜로운 야차!
-그 지혜로운 왕을 만났단 말인가?
“지혜롭긴 뭐가 지혜롭단 말입니까?”
이한은 잔뜩 날이 선 목소리로 투덜댔다.
상대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를 알아차린 야차 늙은이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야차왕 전하를 만났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란 말이냐? 그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기회인데!
가장 지혜로운 야차인 왕은 범인(凡人)들이 감히 접할 수 없는 차원의 궁전에 머무르며 지혜와 비의를 관리한다고 했다.
이 야차왕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눈이든 심장이든 바칠 자들이 수두룩할 정도로 왕의 현명함은 놀라웠다.
-옛 야차 전설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여행자가 한밤중에 집을 발견해 문을 열었는데, 안에서…
“전설이고 뭐고 하여간 저한테는 도움 안 됐습니다. 죽을 뻔했단 말입니다.”
-우우! 못됐다!
-야차 늙은이가 사과해라!
‘가르침이 혹시 조금 과격했나?’
야차 늙은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야차왕은 길 잃은 방랑자들에게 자신이 가진 지혜를 베풀기 좋아하는 선량한 왕이었지만, 그게 어린 마법사한테는 약간 과격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야차 늙은이는 참으로 안타까웠다.
분명 왕이 선의로 한 일을 저렇게 곡해해서 받아들이다니.
‘괜찮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왕의 뜻을 깨닫고 감사히 여기겠지.’
이한이 들었다면 바로 거인들 시켜서 멱살 붙잡았을 생각을 하며 야차 늙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위기가 있었나보군. 그래도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니…
“다음에 다시 방문하라고 했습니다만.”
-아니! 그러면 당연히 방문해야지, 이 어린 마법사 놈아!
야차 늙은이는 자신도 모르게 발끈했다.
왕께서 초대했다면 ‘감사합니다’하고 방문해서 지혜를 받아갈 것이지 어린놈이 고마운 줄도 모르고!
“뭔 헛소리를 하십니까? 전 안 할 겁니다.”
-잘 생각해봐라. 왕께서는…
-워다나즈 방문 안 한다! 야차 늙은이 조용히 해라!
-…이 어린 놈들이 진짜!
야차 늙은이는 자신이 쌓은 선업을 담아 커다란 나무 회초리를 휘둘러댔다. 거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왕께서는 다 너를 생각해서 가르쳐주신 거다. 알겠느냐?
“참고로 교장 선생님의 미친 분신도 저를 생각해서 가르쳐주시고 계십니다.”
-……
야차 늙은이는 새삼 눈앞의 소년에게 뛰어난 스승이 너무나도 많다는 걸 깨달았다.
보통 한 명 있어도 평생 만날까 말까한 스승인데 그런 스승들이 앞다퉈서 가르치겠다고 싸우니 제자 입장에서는 그저 피곤한 것이다.
‘왕께서 이런 대접을 받을 분이 아니신데!’
“저, 거인 여러분.”
기다리다 못한 인타렌달스가 결국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슬슬 협상을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지금 시작해도 이틀은 더 걸릴 텐데 슬슬…”
-어? 아니다.
-우리 아까 다니면서 이야기 끝냈다. 지금 도우러 가겠다.
거인들은 그렇게 말하더니 성큼성큼 공방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인타렌달스는 커다란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하다가 겨우 한 마디를 내뱉을 수 있었다.
“…이 시종장이 늙어서 더 이상 주인님의 일을 돕지 못하겠구나!”
“아니. 또 왜 그러십니까. 거인들이 그냥 친절해서 그런 거죠.”
이한은 충격 받은 친구의 선조를 급히 달랬다.
* * *
칸글라의 조영(照影)이라고 불리는 이 사악한 모험가 일당은 예전부터 안타곤달스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 하더라도 모든 일을 혼자서 할 수는 없는 법. 마법범죄자인 안타곤달스 또한 그랬다.
안타곤달스의 의뢰를 조용히, 솜씨 좋게 해내는 모험가들이 필요했고 칸글라의 조영은 그 중 가장 뛰어난 이들이었다.
대가로 안타곤달스는 파티에게 강력한 마법을 지원해줬다.
뛰어난 모험가들에게는 언제나 모험을 도와주는 지혜로운 마법사가 있기 마련이었는데 이 칸글라의 조영에게는 안타곤달스가 바로 그 지혜로운 마법사였던 것이다.
그런 만큼 이 모험가들이 안타곤달스의 연락이 끊기고 구조 요청이 날아오자 진지하게 나서는 것도 당연했다.
‘단순히 지원이 끊겨서가 아니다. 놈이 가진 마법 아이템들을 더 얻어낼 기회야.’
막말로 파티에게 마법을 지원해주는 마법사는 새로 찾으면 됐다.
안타곤달스만한 대마법사는 없겠지만 아예 못 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곤달스가 갖고 있는 수많은 보물들은?
거물 마법범죄자인 안타곤달스가 얼마나 많은 보물을 모으고 아티팩트를 수집했는지 이 모험가들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밑에서 일한 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만약 안타곤달스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열쇠나 접근 권한은 회수해서 가지고 나와야 했다.
“그런데 안타곤달스가 순순히 내줄까?”
“안 되겠다 싶으면 끝장을 내는 것도 생각해봐야지. 에인로가드에 갇혔으니 놈도 보통 약해진 게 아닐 거다. 어지간한 놈도 흐물흐물해지는 곳이니까.”
한밤중의 그림자를 새겨 넣은 외투와 복면으로 전신을 가리고 있는 열쇠장이가 말했다.
칸글라의 조영에 소속된 모험가들은 서로 신분이나 이름을 밝히는 걸 꺼렸다. 만약의 일이 생기면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칼잡이라고 불리는 모험가가 의견을 내놓았다.
“아예 죽인 다음에 시신만 갖고 나오는 건?”
“그건 최악의 경우에나 할 선택이지. 사망 시 보물들이 전부 묶여버릴 수도 있어.”
“빌어먹을. 에인로가드에 방문하게 되다니. 할아버지한테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할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하셨지?”
활잡이가 중얼거리자 다른 모험가들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예전에 에인로가드에 침입했다가 잡히신 적이 있다. 간신히 풀려나셨지.”
“오. 우리한테는 행운 아닌가? 에인로가드에 대해 들었을 테니.”
“아니. 에인로가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셨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영혼에 금제가 걸리셨거든. 하실 수 있는 말은 에인로가드에 가지 말라는 공포 섞인 말뿐이셨어.”
“……”
“……”
산전수전 다 겪은 사악한 모험가들 사이에서 본능적인 두려움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