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887)
887화
“혹시 다른 생각이 있으셔서 물어보시는 건 아니죠?”
슬쩍 떠보듯이, 요네르는 질문을 던졌다.
가이난도라면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속마음을 잘 숨기지 못했다.
만약 조우린도 다른 속셈이 있다면 숨기지 못하고 허둥대리라.
다른생각이라니? 조우린은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조우린은 시치미를 뚝 뗐다.
요네르가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면 그건 바로 조우린의 성장 속도였다.
에인로가드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이한을 따라다니며 사회적 능력이 빠르게 향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조우린이 이렇게 뻔뻔하고 당당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요네르는 그대로 속아 넘어갔다.
“보통 저녁때 사람이 없죠. 해가 가라앉으면 만드라고라도 비교적 손이 덜 가는 편이라…”
후후후.
“…전하?”
응? 왜 부르는 것인가?
“……”
요네르는 조우린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한데…
앗! 조우린은 저 열매가 궁금하도다.
“저건 열매가 아니라, 열매처럼 보이는 덫이에요. 저걸 건드리는 먹잇감을 칭칭 감아버리죠.”
…그, 그런 걸 대체 왜 마법사들이 있는 온실에서…?
화제를 돌리기 위해 아무 질문이나 던졌던 조우린은 그대로 압도당했다.
* * *
“흠. 썩 나쁘지 않군. 예상보다는 좀 부족하지만.”
“……”
“…???”
이한과 같이 온실을 나와 푸른 용의 밥 휴게실로 걸어가던 친구들은 미친놈 보듯 쳐다보았다.
현재 온실의 만드라고라 묘목 중 가장 성장이 잘 된 묘목이 있다면 바로 이한이 키우고 있는 만드라고라였다.
들인 정성과 시간도 있었지만 역시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건 주인의 마력 때문이었다.
우레걸음 교수의 뒷밭에서 식물들을 빠르게 생장시켰던 것처럼 만드라고라 또한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 친구가 ‘예상보다 좀 부족하다’는 소리를 하니 미친놈 보듯 쳐다보는 것도 당연했다.
갈림길까지 동행하던 시아나가 속삭였다.
“혹, 혹시 워다나즈 님께서 드디어 정신이 나가신 거 아닐까요?”
“워다나즈는 그저 강의를 너무 많이 들었을 뿐이야!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다 들린다.”
이한은 친구들을 노려보았다.
최근 들어서 느끼는 거지만, 요즘 친구들이 자신을 약간 미친 사람처럼 대할 때가 있었다. 매우 무례한 태도였다.
“내가 이상하게 예측을 한 게 아니야. 이번에 지팡이를 바꿨다고.”
그렇게 말하며 이한은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한쪽은 흑자석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다른 한쪽은 정령왕의 신목으로 구성된 지팡이였다.
그리고 단순히 신목이라는 점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 신목 안에는 강력한 정령, 서어나무의 투전승목왕이 봉인되어 있는 것이다.
‘분명 생명의 권능이 있지 않았나?’
“이한?”
“응?”
“난 네가 정령의 힘을 쓰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요네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물론 모든 학파를 수강하고 있는 친구는 워낙 바쁘게 돌아다니는 만큼 요네르가 못 보는 사이 정령의 힘을 썼을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적어도 요네르가 있었을 때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보통 마법사가 정령의 힘을 쓰려면 계약한 정령을 불러내서 대가를 치른 뒤 구체적인 명령을 내려야 하지 않나?
“내가 불러내서 명령하진 않았지만… 알아서 힘이 나와야 하지 않나?”
“?”
“??”
“???”
정령학의 근본적인 개념을 뒤바꾸는 참신한 주장에 친구들은 당황했다.
“시, 시아나 사제님 말이 맞는 거 아닌가? 워다나즈가 너무 강의를 많이 들어서 피곤한 것 같은데.”
“…아니. 들어보라고. 물론 일반적으로 정령한테 명령을 내리고 싶다면 정석적인 과정을 거쳐야겠지.”
만약 다른 정령이었다면 이한도 불러낸 다음 부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나무 정령은 지팡이 안에 완전히 봉인된 존재. 이한이 불러내서 부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쓰고 싶다면 지팡이 안에 깃든 힘을 이한이 자의적으로 끌어내서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여기 정령은 봉인된 놈이라니까? 심지어 저번에는 나한테 권능 제대로 못 썼다고 불만 가진 놈인데…”
“저번에 풀었다면서?”
“응?”
“저번에 습격받아서 제압했다면서. 습격했다는 것 자체가 봉인이 어느 정도 풀렸다는 거잖아?”
요네르의 질문에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봉인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겠지만, 정령이 의식세계에서 습격을 가해왔다는 것 자체가 봉인이 어느 정도 풀렸다는 걸 의미했다.
최소한 정령의 의식은 깨어난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마법사가 멋대로 힘을 끌어내는 게 아닌 정령과 대화해서 끌어내는 게 맞았다.
“……”
그러게?
요네르와 친구들의 설명을 들은 이한은 자신의 착각을 뒤늦게 깨달았다.
왜 이런 착각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이유는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다.
“잠깐. 이 정령은 의식이 깨어났는데도 나한테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는데.”
“……”
“……”
친구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 재빨리 이한의 시선을 피했다. 누가 자기 대신 먼저 말해주기를 바라는 태도였다.
“왜마저 설명을 안 해주지? 각자 자유롭게 의견을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어… 그러니까…”
“그게… 음…”
‘정령이… 까먹었을지도… 하하.”
워다나즈 가문의 친구가 정령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작년부터 꾸준히 봐왔던 학생들은 차마 진실을 말해주지 못하고 빙빙 돌렸다.
결국 요네르가 입을 열었다.
“음. 이한. 정령이… 조금 화가 났을지도.”
“과연. 우연이군. 나도 이 정령한테 방금 화가 났는데.”
이한은 지팡이를 붙잡고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흑자석이 아닌 신목 부분에 마력이 집중되자 주변으로 힘의 파동이 퍼져 나갔다.
평범한 소재였다면 마력을 견디지 못하고 벌써 비명을 질렀겠지만, 정령왕의 신목은 역시 용량이 달랐다. 마력을 아무리 퍼부어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령왕의 신목 못지않게, 이한의 마력도 비범함으로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끝도 없이 마력을 불어넣자 결국 정령왕의 신목도 마력 과포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안에서 잠든 척하고 있는 서어나무의 정령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아고고곡! 으가각각!
“살아있었군. 살아있었는데 왜 말을 안 한 건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가가가가각!
이한은 가차 없이 마력을 퍼부었다.
다른 정령이면 모를까 저번에 검은 책의 세계에서 살벌하게 덤벼든 놈한테 자비를 베풀어 줄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옆에서 보고 있던 친구들은 주변으로 휘몰아치는 강렬한 마력에 전율했다. 누가 보면 정령을 힘으로 찢어버리는 줄 알 광경이었다.
“워, 워다나즈 님. 이거 위험하지 않을까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시아나 사제. 지팡이는 이 정도로 부러지지 않거든. 흑자석도 연결되어 있고… 게다가 이 정령은 오만하고 건방진 놈이라 따끔하게 혼을 내야 해.”
이한의 말에 볼라디 교수가 잘하고 있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시아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말이 아닌데…’
지금 시아나를 비롯해 몇몇 학생들의 정령이 아직 소환된 상태였다.
학생들이야 이한과 친하니 이런 광경을 보더라도 전율하는 정도로 그치지, 이한을 잘 모르는 정령들이 보기에는 공포의 마도폭군 그 자체였다.
안 그래도 중하급 정령들이 무서워서 도망치는데 이런 소문이 퍼져 나가면 악명만 더 높아지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말해보려던 시아나는 머뭇거리다가 결국 참았다.
…솔직히 지금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시아나가 보기에도 조금 무서웠던 것이다.
원래 맞는 말도 기분 나쁠 때 하면 위험하기 마련, 시아나는 지혜롭게 침묵하기로 마음먹었다
-아고곡! 잘못! 잘못했다! 잘못했다니까! 항복! 항복!
이한은 멈추지 않았다. 높은 밀도의 마력으로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받은 서어나무 정령 사라탄은 갑자기 존댓말을 깨달았다.
-잘못했습니다! 마법사 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제 조금 잘못을 깨달았나 보군.”
-예! 예! 부디 멈춰주십시오!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던 거지?”
-마법사 님께서 저를 안 부르셨잖습니까?
“하하.”
이한은 웃음과 함께 다시 마력을 퍼붓기 시작했다.
볼라디 교수는 사악한 정령에게 흔들리지 않고 단호히 상대하는 제자의 모습에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가가가가가각!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뭘 잘못했지?”
-제, 제가 먼저 나와서 마법사 님을 불렀어야 했습니다! 제가 부를 수 있었는데 가만히 있었던 게 제 잘못입니다!
“이제 좀 기억이 돌아오나 보군.”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고통이 멈추자 서어나무의 정령은 치를 떨었다.
지팡이 안에 봉인되어 있다 하더라도 사라탄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려면 복잡한 과정을 거치거나 고등한 마법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 소년은 간단하면서도 무시무시한 방법으로 사라탄을 제압했다.
고작 고통을 주겠다는 이유만으로 이만한 마력을 낭비하다니!
‘미친 마법사구나! 더 성장하면 어지간한 폭군은 이름도 내밀지 못하겠어!’
“너 때문에 만드라고라를 더 키우지 못했다. 어떻게 책임질 거냐?”
-지, 지금도 충분히 빠르게 크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는 건 만드라고라를 키우는 걸 보고 있었다는 거로군?”
‘아차!’
사라탄은 아차 싶었다
아예 모른다고 잡아뗐어야 했는데, 지팡이 안에서 깨어난 채로 구경하고 있었다는 게 들킨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악!
다시 한 번 마력을 퍼부어 고통을 준 뒤 이한은 물었다.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예? 그아악! 그아아악!
“어떻게 할 거냐니까.
-아! 아! 알 것 같습니다! 만드라고라를 더 키우겠습니다! 권능을 쓰겠습니다!
“드디어 제대로 된 대답을 하는군.”
이한은 만족스럽게 마력을 거두었다. 사라탄은 고통으로 데굴데굴 구르며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그 때 확실하게 박살 냈어야 했는데!
“좋아. 만드라고라를 키우러 가도록 하지.”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왜지? 다시 고통받길 원하나?”
‘이 미친 마법사 놈!’
-그게 아닙니다! 만드라고라 같은 식물은 지력이 많이 필요해서 평범한 권능으로는 키우기 힘듭니다. 하루만 주시면 권능이 담긴 새순을 만들어오겠습니다! 그걸 꽂으면 순식간에 성장할 겁니다!
“흠. 설마 이러고서 못하는 건 아니겠지…”
-절대로 아닙니다! 믿어주십시오!
한 때는 투전승목왕의 작위를 갖고 있던 정령이 처절하게 외쳤다.
이한은 일단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믿어주도록 하지. 그런데 혹시 만드라고라의 잎 무늬를 만드는 방법도 아나?”
-예? 그런 쓸데없는 짓거리에 왜 관심을… 아가가가각!
“모르면 됐다.”
상대가 모르는 것 같자 이한은 더 이상 묻는 대신 깔끔하게 마무리 짓기로 했다.
마력은 조금 퍼부었지만…
“다들 고맙다. 너희들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이 교활한 놈의 속임수에 계속 넘어갈 뻔했군.”
“그, 그래.”
“워다나즈. 난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네 친구야. 걱정하지 마라.”
“맞아요! 정령이 이상한 소문을 퍼뜨려도 절대 개의치 마세요!”
“??”
친구들의 반응에 이한은 의아해했다.
“서어나무 정령은 지팡이에 갇힌데다가 본인도 사고를 친 정령이라서 딱히 소문을 못 퍼뜨리는데?”
“어… 그게… 다행이네! 하하!”
“싱겁기는.”
이한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다가 작은 위화감을 알아차렸다.
아까 강의실을 나올 때만 해도 같이 따라나왔던 친구들의 정령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사이 다 역소환시켰나?’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이한은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