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903)
903화
“우리가 사제님을 너무 나쁘게 생각한 걸지도 몰라.”
“그럴지도. 사제님이 저번에 포대자루 안에 든 밀과 쌀, 호밀. 말린 생선하고 절인 정어리. 둥근 치즈하고 소시지, 소금에 절인 고기하고 기름을 전부 훔쳐가긴 하셨지만…”
“그, 그걸 꼭 사제님이 했다는 증거는 없잖아. 푸른 지렁이 놈들이 했을 수도 있다고.”
“아직 멀었군.”
번개걸음 교수는 지나가면서 쯧쯧 혀를 찼다.
버두스 교수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귀여운 외모를 가진 수인이라 해서 방심하면 안 됐다. 오히려 더 치명적일 수 있었다.
저 1학년들도 몇 번 더 당하다보면 슬슬 깨달으리라.
‘그래, 값을 비싸게 치를수록 교훈이 깊게 새겨지는 법이지.’
번개걸음 교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옆구리에는 두꺼운 책 몇 권이 단단히 붙잡혀있었다.
낡은 책의 표지에는 >말 안 듣는 그리폰, 어떻게 달래는가?>, >악당도 할 수 있는 유니콘 양육법> 같은 제목들이 보였다.
제자가 대형 희귀 동물 문제로 자신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번개걸음 교수는 상담을 위해 추가로 도서관에서 책을 꺼내 온 것이다.
‘그나저나 워다나즈 이 녀석은 시험 기간에 그리폰이나 유니콘을 신경 써도 되나?’
교수야 시험 기간에 다른 짓을 해도 됐지만 학생은 입장이 달랐다.
아무리 학년 수석이라지만 이건 지나친 자신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으헉!”
번개걸음 교수는 산전수전 겪은 노련한 탐험가였다.
하지만 눈앞에 들어온 모습은 그런 탐험가도 기겁하게 만들었다.
벤도졸 교수와 볼라디 교수가 말없이 묵묵히 앉아 있는 모습이라니.
‘함정인가?’
대체 무슨 함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거기서 뭐하고 있나?”
“뭐요?”
벤도졸 교수는 질문에 통명스럽게 대답했다.
“뭘 묻는지 알고 있을 텐데. 대체 왜 학생들 기숙사 앞에서 그러고 있는 건가?”
불쌍한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수군거리면서 빙 돌아가고 있었다.
“전하를 지키고 있잖소.”
“그, 그렇군… 나오시길 기다리는 건가?”
번개걸음 교수는 조우린의 방문을 그제야 떠올렸다. 그러나 벤도졸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전하께서는 외출금지요.”
“외출금지라니?”
“후. 외출금지란 건 무슨 뜻이냐면…”
“아니, 미친놈아. 누가 전하를 외출금지시켰냐고.”
번개걸음 교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타박했다.
아무리 같은 교수라고 존중해주려고 해도 벤도졸 교수는 사람의 성질을 건드리는 재주가 너무나도 뛰어났다.
“누구긴 누구요. 그 불경한 워다나즈 놈이지.”
“…그, 그렇군.”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번개걸음 교수는 스스로도 조금 납득했다는 것에 놀랐다.
이상하게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했다고 하면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이다.
“네 성격에 잘도 참았군? 당연히 들어가서 구출할 줄 알았는데.”
“그러려고 했소.”
“…그런데?”
벤도졸 교수는 우울한 표정으로 턱짓했다. 그 끝에는 볼라디 교수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
자세히 보니 벤도졸 교수는 꼴이 엉망이었다. 평소에도 워낙 거지처럼 하고 다녀서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외투부터 바지까지 한층 더 난장판이었던 것이다.
마치 누군가한테 기습적으로 제압당한 것 같았다.
번개걸음 교수는 못 본 척 외쳤다.
“누가 한 건지 도저히 모르겠군!”
“……”
“그럼 난 이만.”
“살펴가시오.”
둘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던 번개걸음 교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교장 선생님이 그리워질 줄은 상상도 못했군!’
평소 교수들을 괴롭히기만 하는 괴팍한 마법사였지만 역시 사람이 없으면 빈자리가 느껴지는 법이었다.
그래도 해골 교장이 있었다면 모 교수가 벤도졸 교수를 습격하는 일은…
‘…있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중재는 했을 것이다.’
-마법 좀 풀어주시오.
-싫소.
-…다시 정정당당히 붙어봅시다. 기습 없이!
-싫소.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번개걸음 교수는 속도를 높였다. 뒤에서 들리는 대화를 듣고 싶지 않았다.
* * *
“교수님!”
이한은 자신을 돕기 위해 탑까지 찾아온 번개걸음 교수의 모습에 감동했다.
교수는 귀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래. 그리폰이냐, 유니콘이냐,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생물이냐?”
“예?”
“요즘 대형 희귀 생물 때문에 속을 썩인다면서.”
……
벽난로 옆에 앉아 있던 조우린은 울상이 되어 눈치를 봤다. 이한은 차를 끓여서 교수 앞에 놓은 뒤 말했다.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속이 썩은 적이 없거든요.”
조우린의 표정이 환해졌다.
“무슨 헛소리냐? 네가 한숨 푹푹 쉬고 다닌다고 하던데.”
조우린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번개걸음 교수는 설마 싶었다.
“잠깐, 그리폰이나 유니콘이 아니라…?”
이상한 외출금지에 묘하게 눈치를 보는 저 모습까지 번개걸음 교수는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는 감각에 전율했다.
그러나 이한은 시치미를 뗐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요. 물론 전하와 사소한 말다툼을 하긴 했습니다만, 바로 화해했거든요.”
그렇노라!
조우린은 반색하며 외쳤다.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이한이 확실히 화가 풀린 것 같았다.
사실 번개걸음 교수가 오기 전 이한이 먼저 돌아와서 사과했었다.
-전하.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화를 낸…
-우아아아아아아앙! 조우린이 잘못했어!!!
-…앞으로 정말 하지 않겠다고 믿…
-절대로 안 할게!!!!
-알겠습니다. 그럼 화해하죠.
-앗. 그럼 외출금지도 해제인 건가?
-아뇨. 그건 아니죠.
-…진, 진짜 화 풀린 거 맞아…?
외출금지가 아직 해제 안 된 탓에 정말 이한의 화가 풀린 게 맞는지 햇갈려하던 조우린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화는 정말 풀린 게 맞는 것 같았다.
-저만 완전 손해예요.
조우린의 목에 감겨 있던 새끼 바실리스크가 투덜댔다.
분명 화해했는데 외출금지가 끝날 때까지 이한의 소매 속으로 돌아가는 걸 금지당한 것이다.
하지만 조우린은 냉철한 드래곤답게 못 들은 척했다.
괜히 여기서 새끼 바실리스크를 소매 속으로 돌려보내달라고 부탁했다가 이한이 다시 화를 내면 엄청난 손해였다.
“화해를 했다니 다행이군. 흑시 그리폰이나 유니콘이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나?”
“없…”
이한의 말에 조우린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그리폰이나 유니콘은 사고도 안 치고 암전히 지내는데 조우린은…
“…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주 골칫덩이입니다.”
“야. 너 지금 억지로…?”
이한은 눈빛으로 ‘말 좀 맞춰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번개걸음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도와주러 왔는데 이게 무슨 장난이란 말인가.
하지만 옆을 보니 어린 드래곤이 너무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리폰이나 유니콘이 사고친 적 없다고 진실을 알려주면 펑펑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 그렇군! 하긴 내가 그 녀석들 사고칠 것 같긴 했지.”
“그러니까 말입니다.”
어떤 사고를 쳤는지 궁금하노라!
“……”
“……”
초롱초롱 빛나는 조우린의 눈동자에 이한은 결국 즉석에서 사고를 지어내야 했다.
다행히 가르시아 교수한테 들은 게 있었기에 그대로 활용이 가능했다.
“개인실에서 난동을 친 탓에 가구가 다 부서졌었죠.”
저런!
조우린은 입으로는 안타까워하면서 표정은 뿌듯해하고 있었다. 번개걸음 교수는 살짝 고민했다.
‘그래도 드래곤인데 자기 자신보다 사고 많이 친 짐승을 보고 기뻐해도 되나?’
이게 과연 올바른 인성교육인지 회의감이 들었다.
또, 또! 다른 사고는?
“어… 제 연구를 다 먹어치운 적도 있었습니다.”
-폰리그 씨가 그런 짓도 했어요?
새끼 바실리스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무리 봐도 그리폰은 그런 장난을 칠 나이는 지났던 것이다.
애초에 번개걸음 교수가 데려왔을 때부터 다 자란 상태였으니…
“원래 그리폰의 마음은 알 수 없는 법이지. 너도 날 속이고 시약주머니를 홈쳐갔잖니.”
-……
괜히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못 찾은 새끼 바실리스크는 쭈그러들어서 조우린의 품속에 파고들었다.
그래도 바실리스크는 저 그리폰보다 훨씬 착하노라. 우리 둘 다 훨씬 착해!
“기운이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하하.”
“그래… 그렇다니 다행이군…”
번개걸음 교수는 차를 홀짝거렸다.
물론 자리에 없는 애꿎은 그리폰이 누명을 쓰게 됐지만, 이 둘보다 휠씬 성숙한 짐승인 만큼 분명 이해해주리라.
“해결된 것 같으니 가보마. 그 전에 잠깐.”
교수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이한은 의아해하며 귀를 가까이 기울였다.
“전하께서 외출금지라고 들었는데, 맞나?”
“예.”
“너무 오래 시키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원래 드래곤은 외출금지와 어울리는 종족이 아니었다.
물론 제국에 외출금지와 어울리는 종족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 드래곤의 특성은 특히 그랬다.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한데다가 타고난 능력까지 뛰어나지 않은가.
학생이야 가둬놓으면 능력이 안 되서 나가지 못한다지만 드래곤은 조금만 고민하면 자기가 나갈 수 있다는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너무 오래 가뒤봤다가 괜히 삐뚤어지기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전하께서는 안 그럴 겁니다. 그리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 게, 제가 옆에 붙어 있을 생각입니다.”
“그래. 감시를… 잠깐만, 너 이번 주 시험이잖아?”
번개걸음 교수는 좋은 생각이라고 말하려다가 의아해했다.
이번 주에 시험인 학생이 어떻게 기숙사에 오래 붙어 있는단 말인가?
“최대한 빨리 보고 돌아올 생각입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봐라. 난 가끔 네가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 * *
“아무리 헛걸음을 했다고 하시더라도 너무 무례하신 것 아닌가?”
이한은 번개걸음 교수의 막말에 투덜대며 움직였다.
물론 기숙사 앞에는 아직도 벤도졸 교수와 볼라디 교수가 있는 만큼 빙 돌아서.
오늘따라 한층 더 멋들어진 갈매기 콧수염을 자랑하고 있는 조르직 교수가 이한의 도착을 반겼다.
“워다나즈 학생! 반갑다! 어서 들어오게.”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가장 먼저 왔군. 하긴 자네 같은 학생이라면 당연한 일이겠지?”
>원소 마법과 그 응용> 강의를 맡은 조르직 교수는 이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에게 기대가 매우 컸다.
화염 원소의 심화 속성인 청염(靑炎)을 학기 목표로 삼았을 정도로.
2학년 학생에게는 버거운 목표일 수 있었지만, 워다나즈가 다루고 있는 원소들과 응용을 생각해보면 조르직 교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워다나즈가 이번 학기 안에 청염을 다루게 되면 조르직 교수는 방학 때 바로 다른 마법사들의 모임에 나가서 제자와 스승의 멋진 상승(相承)을 자랑할 생각이었다.
“중간고사는 뭡니까? 청염입니까?”
“기억하고 있었군. 맞네! 물론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워다나즈 학생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걸세.”
“자. 이번 시험에서는…”
한시가 급한 만큼 이한은 바로 집중했다.
안 그래도 여러 원소를 깊게 파고드는 와중에 화염 원소까지 심화로 들어가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들렸지만, 다행히 충격은 덜했다. 이미 저번에 들은 덕분이었다.
혼자서 꾸준히 연습한 만큼 진행은 빨랐다. 허공에 피어오른 화염이 그 색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육고 푸른 불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염의 1차 관문인 완전한 색상 변환이었다.
“워다나즈 학생. 잘했네! 만ㅈ…”
“교수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집중이 흐트러지자 이한은 교수를 제지하며 외쳤다.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이런 어려운 마법을 준비할 때 상대가 말을 걸면 집중이 흐트러졌다.
준비된 시험을 멋지게 통과했으니 만점이라고 외치려던 조르직 교수는 감동했다.
‘단숨에 기말고사까지?!’
다른 강의처럼 시험을 먼저 보러 오지 않아서 의아했는데 이런 멋진 반전을 준비하다니.
학년 수석다운 제자의 패기에 조르직 교수는 콧수염을 매만지며 흐뭇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