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904)
904화
화르륵!
아까와는 다른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평범한 화염과는 질적으로 다른, 응축된 파괴력을 가진 불꽃.
물질이 공기와 결합하여 열을 뿜어내는 게 일반적인 불꽃이 일으키는 연소 과정이라면 청염은 말 그대로 ‘태운다’는 개념과 정보가 결집된 마법적인 불꽃이었다.
방화(防火) 대비가 되어 있는 장비부터 시작해서 태울 수 없는 물질까지 연소시켜버리는 불꽃.
2차 관문과 3차 관문까지 통과하자 조르직 교수의 황홀함은 절정에 도달했다.
벌써 머릿속에서는 이런 제자를 키운 조르직을 에인로가드 교장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모임 참가자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훌륭하네!”
“지적하실 부분은 없습니까?”
이한은 집중을 유지하며 물었다.
만약 개선점이 있다면 바로 고쳐야 했던 것이다.
“그런 게 있었다면 바로 말했겠지. 만점일세. 워다나즈 학생!”
팟!
유지하던 청염을 해제하고 이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덕분에 예상대로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교수님.”
“어, 어? 그러도록 하게.”
“다음에 뵙겠습니다!”
재빨리 인사한 뒤 이한은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어찌나 빨리 끝냈는지 다른 선배들은 아직 도착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 뒷모습에 조르직 교수는 중얼거렸다.
“기말고사까지 단숨에 끝낸 이유나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게 됐군.”
생각해보니 워다나즈 같은 학생에게는 이유를 물어보는 것 자체가 우스운 짓일 수 있었다.
새한테 왜 날갯짓을 하냐고 물어보는 바보는 없지 않은가.
마법사가 마땅히 지식을 탐구하듯이, 저 소년도 지식을 향해 전력으로 전진하는 것이리라.
조르직 교수는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제자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과연 이 제자는 올해 얼마만큼의 성취를 조르직 교수에게 보여줄 것인지 벌써 두근거렸다.
* * *
시험을 빨리 끝내는 것에만 정신이 팔린 이한은 조르직 교수의 반응에서 새어나온 위화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신 곧바로 다음 시험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교수님. 여기 차원 지도입니다.”
“훌륭하군요. 그런데…”
밀레이 교수는 단안경을 고쳐 쓰며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이번 >고대 유물과 소환 마법의 비극적 역사> 시험은 학생들이 다른 차원에 직접 방문해서 지도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아르실의 도움을 받은 이한은 당연히 어떤 학년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게 지도를 완성했다.
그런데…
서리거인의 유물(확인할 것)
서리거인의 유물(넘어가지 말고 확인해야 함)
서리거인의 유물(정말 넘어가지 말고 반드시 확인해야 함)
지도에 이상한 메모가 있었다.
바로 ‘서리거인의 유물’이라고 적힌 메모였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몇 번이고 반복해서 쓴 메모!
마치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가야 하는 사람이 꾹꾹 눌러 쓴 것 같은 글씨였다.
저번에 학생들이 ‘서리거인이 지키는 유물을 찾았다’나 ‘어떻게 훔치지’ 등등 떠들었던 걸 떠올린 노교수는 이상해하며 물었다.
“이게 뭐죠? 저번에 학생들이 떠들던 유물이 혹시…?”
“맞습니다.”
“지도를 완성하라고 했지 유물을 찾아오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밀레이 교수는 평소처럼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혹시라도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시험을 착각했나 싶었던 것이다.
“예. 이건 그냥 제가 개인적으로 메모한 겁니다. 언젠가 확인해야 해서요.”
“직접 확인하기 위해 서리거인의 유물 위치를 메모해놨다?”
“예.”
“……”
밀레이 교수는 눈썹을 위로 치켜세웠다. 그리고는 빠르게 깃펜을 놀리기 시작했다.
“혹시 지도에 문제가 있습니까?”
“지도는 만점입니다.”
메모를 하면서 밀레이 교수는 번개걸음 교수를 떠올렸다.
요즘 워다나즈가 조금 미친 것 같다고 말하길래 무슨 소린가 했었는데, 이걸 보니 이해가 갔다.
서리거인처럼 강력한 종족이 지키는 유물을 저렇게 작정하고 가져오려고 하다니?
학생이 너무 똑똑하면 다른 의미로 걱정이 되기 마련이었다.
밀레이 교수는 예전 가르시아 교수를 가르쳤을 때 고민했던 게 생각이 나 잠깐 단안경을 벗고 콧등을 매만졌다.
‘아니. 가르시아보다 더 심한 것 같은데.’
“교수님. 그러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 남은 시험이 있습니까?”
벌써 해가 저물고 있는 저녁이라 이후에 시험을 잡아놓은 강의는 없을 줄 알았는데…
제자의 말에 밀레이 교수는 의아해했다.
“강철구두 가문의 자룬 선배께서 자신 있으면 일찍 제출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
밀레이 교수는 반 박자 늦게 이해했다.
강철구두 가문의 자룬은 욘라모 교수 밑에서 배우고 있는 4학년 학생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한이 말하고 있는 건 변환 마법 시험이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자신 있으면 일찍 제출해도 좋다’라고 한 건…
‘정말 빨리 제출하라고 한 게 아닐 텐데?’
밀레이 교수는 그 점을 지적하려고 했지만 이미 제자는 인사까지 마친 뒤 강의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교수는 고개를 작게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에인로가드 역사에 남을 속도로 시험을 격파해나가고 있었지만 의외로 이한의 이런 행적에 주목하는 사람은 적었다.
사실 교수들이 아니라면 알기 힘들기도 했다.
선배들 입장에서는 ‘워다나즈가 바쁘게 움직이는데?’ ‘쟤야 전 학파를 다 들으니까 그렇겠지’같은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디레트처럼 교수의 일을 돕고 후배에게도 관심이 많은 소수의 선배는 위화감을 느꼈지만, 그걸 묻기에는 이한이 너무 빠르게 움직였다.
“유크벨티레. 뭔가 이상하지 않아?”
“음.”
“시험 기간인데 저렇게 바쁘게 움직일 이유가 있어? 내가 시간표를 잘못 알고 있나? 저쪽으로 갈 이유가 없는데?”
“음.”
“지금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지?”
“음.”
“내가 널 한 대 때려도 될까?”
“음.”
찰싹!
“?!”
등짝을 맞고 황당해하는 유크벨티레 뒤로 이한은 다음 시험을 향해 달려갔다.
교수들은 ‘드디어 워다나즈가 자신의 진짜 능력을 한계까지 시험해보려는 건가?’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이한은 이한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었다.
먼저 끝내거나 빠르게 끝낼 수 있는 시험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시험도 있는 법.
놀랍게도 이한에게도 어려운 시험은 있었던 것이다.
이번 중간고사에서는 로지네 교수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제국의 언어들> 시험이 바로 그랬다.
‘이게 대체 무슨 문자야?’
“자자! 이번 주 안에 이걸 해석해오는 게 시험입니다!”
“너무하십니다, 교수님!”
“■ ■■■■■?”
“예?”
“안 들린다고 했어요. 자! 다들 응원하겠습니다!”
역사서에 이름도 남지 않았을 것 같은 소왕국의 문자로 길게 쓴 문서를 해독해오라는 시험은 아무리 이한이 광기에 찬 학년 수석이라 하더라도 바로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어서 한 글자씩 추측할 수밖에 없는 시험.
“워다나즈. 같이 도서관에서… 잠깐, 워다나즈 어디 갔어?”
“글, 글쎄?”
이한을 찾던 친구들은 갑자기 사라진 학년 수석의 모습에 당황했다.
당연히 같이 도서관에 앉아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한이 자리를 비운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떠올랐다.’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시험을 단숨에 돌파할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그건 바로 이 문자에 대해 잘 알 법한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워다나즈!
쭈그리고 앉아서 고개 앞을 지키고 있던 거인이 이한을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무슨 일로 왔나? 양 구경하러?
“아뇨. 시험 관련해서 여쭤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생각해보니 고대 시절 문자는 고대인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정확한 편이었다.
그걸 떠올리자 이한은 바로 미친 분신에게 연락을 넣었다.
-스승님. 여쭤볼 게 있습니다.
-어떤 마법이지?
-이 문서를 읽으실 수 있으십니까?
-…읽을 수 있긴 한데, 내용이 이상하군. 마치 어린 학생들의 시험으로나 나올 법한 예문인…
-맞습니다. 제 시험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어려워서 여쭤보려고… 스승님? 스승님?
>메아리의 돌> 너머에 있던 미친 분신은 매몰차게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이한은 포기하지 않았다. 원래 정성은 얼어붙은 마음도 녹이지 않던가.
거인도 이한의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워다나즈 똑똑하다! 모르는 사람에게 묻는 사람, 지혜롭다!
“하하. 감사합니다.”
-들어가라!
거인이 비켜주자 이한은 공방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다음으로 이한을 맞이해준 것은 시종장 인타렌달스였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어서 오십시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스승님께 여쭤볼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
인타렌달스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 워다나즈 가문 출신의 제자는 재능은 뛰어났지만 그 열정은 살짝 부족한 편이었다.
그래서 인타렌달스의 주인도 그런 점을 염려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올 줄이야.
역시 인타렌달스가 섬기는 주인의 품성과 지혜가 제자를 감화시킨 게 분명했다. 훌륭한 스승은 훌륭한 제자를 만드는 법 아니겠는가.
“들어오십시오! 무엇이 궁금해서 오셨습니까?”
“시험에서 고대 문자가 나왔는데 잘 몰라서 여쭤보려고 찾아왔습니다. 메아리의 돌로 여쭤봤는데 대답을 안 해주시더군요.”
“……”
하찮은 필경사나 할 법한 질문에 인타렌달스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찾아와서 열정적으로 묻는 건 좋은데 질문의 수준이…?
“…이런 건 그냥 혼자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만.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이라면 충분히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문장도 쉬워 보이는데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질문에는 수준이나 경중이 없습니다. 쉬운 질문이라고 해서 막는다면 나중에는 어려운 질문도 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걸 감안해도 너무 쉬운 것 같은데요?”
어지간하면 넘어가주는 인타렌달스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이번 질문은 너무 쉬웠다.
문서의 내용도 그런 인식에 한몫했다.
옛날 어느 마법학교에 착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착한 학생은 지팡이를 뺏겨서 울었습니다. 그러자 착한 교수가 나와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고나달테스 님께서는 잠깐 출타하셨습니다.”
“혹시 대답해주기 싫으셔서 자리를 비운 건 아니겠지요?”
“그럴 리 있겠습니까?”
불경 그 자체인 질문에도 인타렌달스는 화를 내지 않고 대답해주었다. 실로 자상한 시종장이었다.
“고나달테스 님께서는 주기적으로 이 주변의 마법을 확인하고 점검하십니다. 아무래도 마법이…”
-빌어먹을 꼬마 놈이 왔군.
햄스터가 억지로 사람 말을 흉내내면 나올 법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한이 시선을 돌리자 우리 안에 갇혀 있는 햄스터 하나가 살벌한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그 사이 사람 말을 배우신 겁니까?!”
-내가 마법만 쓸 수 있었어도 네놈을 반드시 햄스터로 만들어버렸을 텐데 말이지.
“잠깐. 전 잘못 없습니다. 제가 한 짓이 아니잖습니까.”
이한은 항변했지만 전 마법범죄자이자 현 햄스터는 그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원래 스승의 죄는 제자한테도 넘어가는 법.
“포도 넣어 드릴 테니까 화 푸십시오.”
-여긴 또 무슨 일로 온 거지?
“물어볼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마법이냐? 마법이라면 내가 알려줄 수 있지.
햄스터는 음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절대로 제대로 된 마법을 가르쳐 줄 생각은 없었다. 마법사를 파멸시키는 지식을 전수할 생각이었다.
“앗. 정말이십니까?”
-…?!
그러나 이한의 반응은 햄스터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럼 이것 좀 해석해주십시오.”
-…옛날 어느 마법학교에… 지금 뭐하는 개짓거리냐, 이 빌어먹을 꼬마 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