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02)
버킹엄 궁전.
“그래. 작가 연맹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고.”
“예, 여왕 폐하.”
고개를 숙이며 보고하는 레이스 대위의 말에, 빅토리아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상대의 계획을 역이용해 국위를 선양하고, 오히려 그 주목도를 빼앗아 오자라.
‘상당히 재미있는 수작도 부릴 줄 아는가.’
매끄럽지는 않다. 하지만 정치인이 아닌, 최대한 대중들에게 좋은 면만 보여야 하는 작가 연합의 입장에서 보면······ 이 이상의 부드러운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대중의 입맛이라는 것도 참, 까다롭기도 하군.’
차라리 귀족 입맛을 채워 주는 게 편할 것 같다. 제일 중요한 소수 몇만 만족시키면 그 밑의 것들은 알아서 채워 오지 않는가.
“그래서, 버나드 쇼는 러시아로 출발했나?”
“그제 새벽, 칼레행 상선에 올라탄 것을 확인했사옵니다.”
“그다지 멀리 가진 못했겠군.”
중얼거리며, 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러시아 영국 대사관에 연락하여, 최대한 편의를 봐주라 이르라.”
“편의······ 를 이르시옵니까.”
“개인은 불쾌하고 무엄한 놈이긴 해도, 최소한 작가 연맹은 왕립문학회처럼 내 이름을 도용하진 않았으니.”
빅토리아는 심술궂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녀가 보수적이더라도, 그리고 한슬로 진 개인의 팬이라 하더라도 그녀는 이 정치판에서 평생을 보낸 노괴, 어느 한쪽이 완전히 우위를 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두 단체가 서로 싸우면 싸울수록, 대영제국의 문예 산업은 점점 발전할 테니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감히 내 이름을 멋대로 쓰다니.’
제 이름을 멋대로 도용한 것엔 조용히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걸 경애와 존경을 담은 거라면 모를까, 고작 계책이랍시고 쓴다?
고작 체스 말 주제에, 어딜 감히 주인의 이름을 멋대로 쓴단 말인가.
원래라면 불벼락을 내려 줄 생각이었다. 감히 제 위치를 모르고 날뛰는 녀석들에게 손수 제 위치를 알려 줄 예정이었으나······ 생각보다 작가연맹 측의 대응이 빨랐다.
심지어 생각보다 재미있어 보였다.
‘이렇게 되면 확실히, 취소시키는 쪽보다 좀 더 구경해 보는 게 좋겠군.’
여왕은 그럴듯한 경기가 계속 이어지는 것을 원하는 까탈스러운 관객.
애초에 의회의 능구렁이들이 서로 물어뜯는 것만 보다가, 왕립문학회와 작가연맹이 열심히 용을 쓰는 모습을 보면······ 이건 이거대로, 참으로 귀엽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그러면, 한슬로 진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지? 그저 기다리고만 있나?”
“그것이······ 묘하옵니다.”
“무슨 말인가.”
“그것과는 별개로, 갑자기 납 사용 규제 법안에 이름을 올렸사옵니다.”
“······뭐?”
납?
빅토리아 여왕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대체 왜 거기로 튀는 거지?
***
나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내가 납을 암살 소재로 쓰긴 했지만, 납이 유해하다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 아닌가? 그런데 대체 왜 거기서 굳이 내가 필요해?
그러나 아서 코난 도일이나, 과학계와 연관이 있는 작가연맹의 SF 작가들을 통해 전해 들은 얘기로, 이건 결코 그렇게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태의 근원은 지난번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했을 때로 되돌아간다.
─찾아라! 비밀의 열쇠!!
─뭐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뜬다면······!
─우리도 뢴트겐처럼 대박 하나만 건지자!!
1890년대, 벨 에포크 말기.
과학 발전이 눈부시게 발전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더욱 많은 명성과 더욱 많은 ‘업적작’을 위해 눈을 켜고 인류의 지식에 대한 공백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러시아의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1870년 전후에 고안한 원소 주기율표다.
수헬리베붕탄질······ 로 시작하는 그거 맞다.
아마 자기가 직접, 아니면 학원에서 친구들이 정신 나갈 것처럼 중얼거리면서 외우는 것을 한번쯤 봤을 만한 바로 그거.
문과인 나는 그게 그냥 나열 순서 아닌가 가볍게 생각했지만, 그 순서는 단순한 순서가 아니라, 원소 입자에 들어있는 양성자를 비롯한 화학적 특성에 따라 붙인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조합표에 가깝단다.
그래서 원소 번호 43번을 비롯한 구멍이 많았던 거고.
이런 식으로, 19세기 후반에는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과학의 공백이 많았고, 과학자들은 이걸 채우고 무한한 영광과 명성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문제는, ‘어떻게?’였다.
원소 발견은 그나마 주기율표라는 ‘예상 답지’라도 있지, 그 외 분야는 이렇다 할 가이드라인이 거의 없는 분야가 많았으니까.
그런 와중에 내가 쓴 [던브링어>를 통해 X선이 발견되었다는 예시가, 과학자들에게는 방향에 대한 지푸라기가 되었다······ 고 한다.
으음······ 확실히 아무리 내가 문과라도, 미래인인 이상 알고 있는 게 다른 사람들보다 많긴 하니까.
납도 그 예 중 하나였다.
다만, 그 납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고.
“이 사람일세.”
“으음.”
나는 아서 코난 도일이 내민, [급성 및 만성 형태의 납 중독에 관하여>라는 논문 제목과 그 논문이 쓰인 날짜, 그리고 저자를 보았다.
[1891년, 에든버러 왕립학회 회원, 토마스 올리버(Thomas Oliver).]같은 에든버러 왕립학회의 의사이자 아서 코난 도일의 스승, 조지프 벨을 통해 내게 자문을 구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19세기에도 납 사용을 개탄하는 이런 선구자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선생님, 선생님은 의사이시기도 하시잖아요? 그러면 납 중독에 대해서는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일세. 납은 물론이고 중금속 일부가 위험하다는 건 의학계에서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지. 하지만 그게 명확하게 납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독성이 있는 물질 때문인가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했는데 그 연구가, 아무래도······.”
“아, 확실히.”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납에 대해 검증하고 연구해 보려고 해도 결국 인체실험인 데다가─ 결과적으로 납 관련 기업들을 적으로 돌릴 수밖에 없으니까.
현대라면 그게 그렇게까지 큰일인가? 싶을지 모른다. 납이 삶에 녹아 있는 지금 세상에서는,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힘을 지니고 있다. 안 들어가는 업종을 찾기가 더 어려운 수준이니.
그런데.
“자네 소설이 게임 체인저가 된 거지.”
아서 코난 도일은 [템플 바>, 정확히 말하면 [빈센트 빌리어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납을 이용한 암살. 자네의 인기를 생각하면, 납 중독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이 급격히 늘어나는 건 뭐······ 당연한 거 아니겠나?”
“······으음.”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납이라······.’
확실히 문제는 문제지.
우리 집 메리가 애거사 크리스티고, 밀러 씨가 요절한다는 걸 알기 전에도 나는 되도록 매지나 몬티가 건강에 안 좋은 것들을 접하지 못하도록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어쩔 수 없잖아? 페리스 그린이라던지, 석면이라던지, 수은이라던지. 21세기에서 온 나는 굉장히 무서운데 일상적으로 쓰이는 물질은 수도 없이 많다.
앞으로 DDT나 라듐도 나오지? 정말 정상적으로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리고 나는 이게 전부 밀러 씨가 공기 좋고 환기하기 좋은 애쉬필드에서 살고 있고, 내 이야기를 전적으로 신뢰해 주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조치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는 어떨까. 아이들이 앞으로 런던에서 살게 된다면? 일상에서 이런 독극물, 발암물질을 접하게 된다면?
웬만해선, 당연히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긴 하겠는데······ 문제는.
“이거,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도 되는 문제일지 모르겠네요.”
“왜 그러나? 이제껏 재단이라던가, 학습 도서라던가. 이것저것 많은 이슈몰이를 했던 사람이.”
“아니, 그거야 뭐······ 간접적인 자선 사업에 가깝지 않습니까.”
앨리스와 피터 재단 같은 것도 뭐,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분명 있긴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루이스 캐럴 선생님이 원해서 한 것에 가깝고, 어디까지나 재단에 돈을 넣고 있을 뿐이지 직접적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청산하는 느낌은 아니다.
근데 이건 까닥 잘못하면 단순히 개인 사업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가지로 얽히기 좋은 이야기란 말이지······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팔짱을 끼고 고민하는 나에게, 아서 코난 도일이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뭐, 자네 마음은 나도 이해가 가네. 나도 홈즈를 쓰면서 시사 관련 이야기를 쓰지 않았으니까.”
“역시 그렇죠?”
“솔직히 대중 문학가 중에 정치랑 깊게 얽히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아, 버나드 쇼 같은 친구들이야, 작가이긴 하지만 본질은 언론인에 가까우니까.”
그들에게 있어 문학은 사상의 도구라는 아서 코난 도일의 말에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참여문학(參與文學), 저항문학이라는 건 그런 식으로 발전해 온 거지.
메인 컬쳐에 대한 반역. 굳이 붙이자면 안티-메인 컬쳐랄까.
반면 대중문학, 특히 서브컬쳐는 근본적으로 두루뭉술하다.
철저히 대중예술이고, 대중의 관심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대중은, 대중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하긴 하지만 어떤 성향을 공유하는 이익집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대기업에서 월급 받는 샐러리맨도 대중이고, 하루하루 벌어먹는 막노동자도 대중이다. 집에서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이 기다리는 가장(家長)도 대중이며, 우리 몬티나 매지 같은 10대 학생도 대중이다.
이를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아서 코난 도일과 같은 장르문학의 선구자들은 물론, 21세기의 웹소설 작가 중에 자기 정치색을 대놓고 드러내는 작가는 드문 편이다.
아니, 드러낸다 해도 자기 작품에서는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거기에 동지애를 느끼며 따라오는 독자들이 있다면, 적대감을 느끼며 멀리하는 독자들도 있을 테니까.
‘게다가.’
이번 일로는 기업가들이 붙을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 이 시대의 납 관련 기업은 현대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정말 삶의 모든 곳에 들어가기 때문에, 정말 많은 업계가 얽힌다.
대충 이거 하나로 석유화학과 설탕, 기호 식품업계가 그레이트 합체를 할 소재라고 할까.
농담 삼아서 말하는 연구 결과를 조작한 논문을 이용해서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대중을 선동하는 빅브라더 같은 도시 전설 그거.
그것도 납 관련 카르텔에서 진즉에 했던 거다. 반박 논문을 냈던 사람 하나를 아예 묻어 버리려고 했지.
아마 당시 미국 정부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애먼 사람 하나가 멕시코만에 가라앉았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참여문학 작가라면 모를까, 대중문학 작가가 대놓고 맞서기엔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뜻이지.
그때 아서 코난 도일이 내게 한마디 붙였다.
“만약 자네가 껄끄럽다면, 내가 대신 나서도 상관없네.”
“예?”
나는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는 아서 코난 도일을 보았다.
“선생님이 왜요?”
“뭐, 일단은 나도 의사이긴 했고······ 슬슬 우리 메리가 학교 다닐 때가 돼서 말일세.”
“예? 메리가요?”
“밀러 씨네 메리 말고, 내 딸 메리 도일 말일세.”
아차. 그러고 보니 아서 코난 도일의 첫째 딸 이름도 메리였지.
우리 집 메리보다 한 살 위의 귀여운 아이였다.
“솔직히 말하면, 자네 글을 보고 나도 가슴이 철렁했지. 왜 아니겠나? 나도 의사로서 아이들을 납 같은 위험 물질에서 멀리 떼어 놓긴 했지만······ 초등학교 같은 곳에선 어쩔 수 없이 접하고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 선생님의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 해도, 내 아이들에게 납투성이 런던을 물려줄 순 없다고 생각하네.”
굳은 얼굴로, 아서 코난 도일은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너무 부담 갖지 말게. 자네가 빠져도, 내가 대신하면 되니까.”
“······에휴, 그럴 수야 있겠습니까.”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긁어 부스름 만든 사람이 뒤로 뺄 수는 없긴 하지.
게다가.
“저도 함께하지요.”
이쪽으로는 아마 내가 아는 게 더 많을 테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