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06)
조지 버나드 쇼는 스스로의 근 40년 인생에 두 가지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첫 번째는 20살 때. 더블린을 떠나 집 나간 어머니를 찾을 겸, 둘째 누이 아그네스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런던에 갔을 때.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었다.
성악가인 어머니의 음악적 스승인지, 아니면 진짜로 아버지가 의심하던 대로 내연남인지 하는 조지 반달러 리의 집에 얹혀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는 버나드 쇼 자신을 아껴 주었고, 스스로도 좋은 사람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를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스스로 조지라는 이름을 쓰지 않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르겠다.
혹시 어머니가 자신의 이름을 지은 것이, 아버지 조지 카 쇼가 아니라 그의 이름을 딴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그 추잡한 불륜에 소름이 돋으니까.
하여튼, 그거 자체는 그에게 굉장히 심란한 일이긴 했었지만.
별개로, 런던은 그렇지 않았다.
대영박물관. 그리고 수많은 도서관.
어쨌든 런던으로 간 이후 생활은 안정되었기에, 14세 때 중단된 학업을 대신해 읽지 못했던 책을 읽고 또 읽을 수 있었다.
틈틈이 대학을 도강(盜講)하고, 각종 논쟁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몰랐던 것을 알아가며, 비어 있던 머릿속을 채워 넣는 그것이 더없이 보람찰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마음속에는 여전히 텅 빈 무언가가 얹힌 듯 불편했고,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다.
그것이 무엇인지 안 것은, 두 번째 터닝 포인트 때였다.
─그래! 왜 많은 사람은 가난한가! 생산수단을 가진 자들의 시초 축적이 지금까지 이어진 결과로다!
자본론(Das Kapital).
그것은 그가 지금껏 불편해 왔던 것. 즉, ‘런던은 이렇게 부유하고 여유로운데 어째서 더블린은 가난한가?’라는 의문점을 해소해 주었다.
기존 영국인들은 그렇게 말했다. ‘런던 시민들이 더 근면 성실하고, 더블린 사람들은 게을러서’라고.
이는 심지어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만민이 평등한 세상에서, 근면 성실만이 부의 근원이며, 백인 / 도시인 / 런던 시민들은 인종 자체가 근본적으로 근면 성실하고, 유색인종 / 농민 / 더블린 사람들은 게을러 빠졌기에 일이 그렇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그것이 그저 특정 시대, 초기 자본을 집중하는 폭력적인 과정이 성공했기에 이루어진 결과일 뿐, 사람의 근면 성실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버나드 쇼는 아일랜드 독립운동가가 되었고,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그래서, 갑자기 자신의 그런 고리타분한 과거가 왜 떠올랐느냐 하면······.
“······망할. 더블린보다 더하군.”
러시아, 모스크바.
긴 여행이었다. 런던에서 출발해 프랑스, 독일, 폴란드를 거쳐서 러시아로 들어왔으니.
그가 지나쳐 온 모두 하나같이 문명의 중심이라 할 만한 도시들이었고, 벨 에포크를 즐기고 있다는 분위기가 확연히 느껴지는 도시들이었으나.
1896년의 도시, 모스크바는 그렇지 않았다.
런던을 상징하는 것이 안개의 도시, 혹은 노란 콩 수프였다면, 모스크바의 상징은 그림자와 혼돈, 그리고 잿빛 구름이었다.
거리에는 어수선한 인파가 무리 지어 다니며, 몸을 비틀대고 걸었으며 흐트러진 표정을 숨기지도 못하고 있었다.
러시아 문화의 중심이라던 아르바트 거리는 어두운 그림자로 가려져 있었고 멀리 보이는 볼쇼이 극장은 그나마 석조라 낫긴 하지만, 그렇지 못한 건물들은 그들의 옛 영광을 상실한 듯 무너져 가고 있었다.
“후우······.”
심각하구먼. 그나마 숨쉬기는 런던이나 베를린보다 쉽다는 것에 위안을 얻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실례합네다. 영국에서 오신 조지 버나드 쇼 동지이십네까?”
뒤에서 러시아 말투가 잔뜩 묻어나는 영어가 들려왔다. 버나드 쇼는 말을 건 이에게 고개를 돌렸다가, 그 거대한 체구에 잠깐 눈을 깜빡였다.
‘불곰?’
다시 보니, 사람이었다. 침을 꿀꺽 삼켰던 버나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지는 빼 주시게. 그래, 러시아의 동지이신가?”
“그렇습네다. 러시아 사회 민주 노동당에서 나왔습네다.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시모프(Aleksey Maksimovich Peshkov)라고 합네다.”
페시모프라······ 익숙하지 않은 이름에 잠시 입에서 그 이름을 굴려 보던 버나드 쇼는 문득, 고개를 팍 들고는 그의 필명을 떠올렸다.
“막시모비치? 혹시 당신, 막심 고리키(Maxim Gorky) 아니시오?”
“하하하. 이거, 들켰습네다.”
“허 참, 이렇게 사람을 놀리다니!”
버나드 쇼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알렉세이, 필명 막심 고리키와 재차 악수를 나누었다.
톨스토이가 현 러시아 문학의 거인이라면, 막심 고리키는 이제 겨우 20대 후반의, 지금 한창 떠오르고 있는 러시아 문학의 유망주.
같은 좌익 계열이기도 한 그의 소설은 조지 버나드 쇼도 인상 깊게 보고 있었다.
물론 지나치게 호전적인 건 아무래도, 온건 사회주의 계열인 그의 입장에선 조금 맘에 안 들긴 했지만······.
‘꼴이 이러니 러시아 동지들이 과격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겠지.’
버나드 쇼는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두 사람이 열심히 영어로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가는 대중들은 일절 관심을 갖지 않고 있었다.
프랑스나 독일, 폴란드에서는 경멸이든 호기심이든, 뭐든 반응을 보였는데, 모스크바에서는······ 낯선 외국인에 관심을 가질 수조차 없을 정도로 지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이동하시지요. 톨스토이 동지를 찾아오셨다 들었습네다.”
“아, 그러지.”
고리키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발을 옮겼다.
순간 마차를 타지 않는 건가 생각했지만, 애초에 러시아 사정을 보아하니 차라리 안 타는 게 나을 것 같긴 했다.
“러시아 사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군.”
“황제, 그 반동 노무 시키가 문제입네다.”
“들었네.”
버나드 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니콜라이 2세.
1894년 아버지 알렉산드르 3세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제위에 오른 젊은 황제.
그가 대관식을 치르는 동안 많은 자유주의자와 공화주의자들이 최소한의 개혁은 해 주겠지, 하고 기대를 걸어 보았지만. 고작 2년밖에 안 되는 시간에 그는 ‘피의 니콜라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러시아를 더욱 끔찍한 지옥으로 몰아가고 있다.
“덕분에 우리 러시아 인민들은 다들 도탄에 빠져 있지요. 오죽하면 사이비 괴승의 소문까지 들려 오겠습네까.”
“괴승?”
“고거이, 있습네다. 이름이 라스푸틴(Grigori Rasputin)이라나, 라스푸티차(Rasputica)라나······.”
허, 참. 별의별 괴소문이 다 있군. 버나드 쇼는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그 반응에 고리키는 침울하게 말했다.
“지금이야 고저, 할 일 없는 지방 귀족들의 가십거리입니다만.”
“사이비란 것들이 그렇지. 그저 혹세무민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세나.”
“그야 그렇습네다.”
설마, 그런 사이비가 정부의 중추까지 들어오기라도 하겠나. 버나드 쇼는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러시아의 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최악이다.
노동자들의 노래를 파묻어 버리는 시끄러운 공장과 작업장의 소리가 귓가에 이어졌다.
지나치는 모스크바 시민의 눈에는 피로와 절망이 고스란히 비추어졌고, 그들의 얼굴은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칙칙한 잿빛으로 보였다.
이들을 보고 있자면, 조지 버나드 쇼는 문득 자신들이 너무 편하게 투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들의 적이야 나름대로 조금이라도 앞서 발전한 자본주의자들이지만, 이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무자비한 힘의 정체는 봉건귀족과 그들의 황제.
그들을 알아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대놓고 사치스러운 상품을 품은 마차로 거리를 거닐며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반면 길을 걸어 다니는 빈곤한 이들은 굶주림과 어려움에 시달리며 굽은 등을 펴지 못하고 있었다.
버나드 쇼는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억압받고 있는 이들일수록, 스프링처럼 더욱 크게 터진다.
그게 10년 뒤일지, 20년 뒤일지 알 수 없지만······ 이들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여길 때,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 줄 누군가를 위한 장작으로 아낌없이 혁명의 불길을 피워 올리리라.
그 누군가가 누구일진 아직도 모르겠지만, 되도록 그가 러시아인들이 기다리는 초인이자 세계 혁명을 위한 참된 혁명가이길 빌어야겠지.
버나드 쇼는 그런 상념을 멈추고 물었다.
“그래, 그래서 톨스토이는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소?”
“이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200km 정도 가면 툴라(Тула)라는 도시가 있습네다. 그 근교에 있는 톨스토이 동지가 보유한 영지인 야스나야 폴랴나(Ясная Поляна)의 저택이 동지의 집이니, 그쪽까지는 기차를 타고 툴라에서는 마차를 타면 될 겁네다.”
“흠, 그렇구려.”
꽤 걸리겠군, 버나드 쇼는 그저 막연하게 그렇게만 여겼다.
솔직히 조병창에도 별로 관심이 없는 그에게 툴라라고 해 봐야 그냥 그런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는 고리키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늦으셨구려.>”
“[아니, 소피야 동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네까? 늦었다니요?>”
“[알렉세이, 그놈의 동지나 그런 거 하지 말랬잖아요.>”
“이보게, 고리키 군. 부인께서 지금 뭐라고 하신 겐가?”
그 질문에 막심 고리키는 난처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하, 이것 참. 톨스토이 동지가 집에 없으시답네다.”
“아니, 어째서?”
“고거이, 이게······ 저로서도 당황스럽습네다만─.”
영국에 갔다고 합네다.
고리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말에 톨스토이를 찾아 수천 마일을 여행해 온 버나드 쇼는 입을 딱 벌려야만 했다.
***
런던, 서머싯 하우스.
“키플링!! 너 이 개자식!!”
“으, 으어억!”
“살려 줘!!”
마치 성난 불소 같군.
아서 코난 도일은 왕립문학회원들을 마치 종잇장처럼 날려 버리는 조지 뉸스를 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업가라지만, 조지 뉸스는 동시에 뜨거운 정열을 가진 언론인이기도 했다.
왕립이든 뭐든, 골방 글쟁이에 불과한 회원들이 막기에는 그 기세부터가 차원이 다르단 얘기다.
그러니, 그를 막으려면.
“흐음, 오셨소? 생각보다 늦었군.”
“키플링!! 이 개자식, 네놈이 감히 날 배신해!!”
같은 저널리스트 출신, 그것도 저 흉폭한 기세로 절대 눌리지 않을 인재뿐이다.
키플링은 한때 그를 고용했던 회사 사장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배신이라니, 말씀이 이상하시군.”
“뭬야!?”
“우리는 그저 계약 관계였을 뿐이잖소. 나는 댁에게 글을 팔고, 댁은 내게 돈을 주고. 딱 그 정도에 불과했을 텐데.”
“이······!”
조지 뉸스의 안 그래도 붉은 얼굴이 더더욱 붉어졌다.
아, 이거 안 되겠네.
한숨을 쉰 아서 코난 도일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앞으로 나섰다.
“이리 뵙는 건 처음이군. 키플링 씨.”
“그래, 그러는 그대는 그 유명하신 아서 코난 도일이겠구려.”
“그렇소.”
키플링은 훗, 하고 웃으면서 아서 코난 도일과 눈을 마주쳤다.
“들었소. 그대가 내 전임이었다지.”
“후임으로 그대가 올 줄은 몰랐소.”
“글쎄, 대충 짐작하지 않았소? 그래서 날 작가 연맹 만들 때부터 안 부른 걸로 알았는데.”
“변명할 생각은 없지만, 좀 다른 문제이긴 했소.”
아서 코난 도일은 그렇게 얼버무렸다.
키플링은 그런 코난 도일의 말에 피식 웃었다.
“뭐, 나도 딱히 아쉽단 이야기는 아니오. 덕분에 나는 이렇게 왕립문학회를 차지하게 됐으니.”
“그건 축하드리오. 그러면, 상호 간에 각자의 자리에서 피차 영국의 문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는데······.”
잠시 뜸을 들이고, 아서 코난 도일이 물었다.
“그럴 순 없겠지?”
“당연히 그럴 수 없지.”
키플링이 단호하게 답했다.
“이미 아시잖소? 그대들과 우리는 불구대천의 원수나 다름없소.”
“서로의 시각이 너무나도 다르니까.”
문학 관념의 차이.
이것만으로 서로는 경쟁 관계이며, 불구대천의 원수나 다름없다.
시장이라도 크면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좁은 게 문학 시장이요, 브리튼 섬 아닌가.
둘이 공존하기에······ 이 나라, 대영 제국은 너무 좁다.
“톨스토이가 그대가 주는 상을 받을 거라 생각하시오?”
“받든 안 받든 상관없지. 그건 그거대로 큰 가십거리니까.”
“하, 대담하기도 하군.”
“그리고, 효과적이지.”
우월감을 느끼며, 키플링은 말했다.
“알겠소? 이것이 기득권이고, 권위요. 아서 코난 도일, 이제라도 우리 품으로 돌아오시오.”
“그럴 수는 없지.”
이미 알아 버렸으니까.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디서 기쁨을 느끼는지.
아서 코난 도일은, 어쩌면 자신이 갔을지도 모를, 그러나 가지 않은 길을 간 문학가를 보며 말했다.
“우리는 기꺼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들어갈 것이고, 그들과 함께 뒹굴 것이오. 인제 와서 그 고독한 자리에서 독야청청하기엔······ 그 자리가 너무 외롭지.”
“그 고독함이야말로 위대한 자의 권능이라는 것을 정녕 모르는군.”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서로가 서로의 평행선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 노려보던 그때.
“키, 키플링! 키플링!! 큰일 났소!!”
“무슨 일이오.”
황급히 들어온 왕립문학회원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키플링과 대처하고 있는 아서 코난 도일과 그 뒤에서 며칠 굶은 멧돼지처럼 숨을 몰아쉬던 조지 뉸스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키플링은 성가시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됐으니 말씀하시오. 무슨 일이오?”
“토, 톨스토이가 입국했소! 지금 도버로 들어오고 있단 말이오!!”
“······뭐?”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아서 코난 도일도, 키플링도, 조지 뉸스도.
예상치도 못한 사태에 그저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