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10)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당당하게 답할 수 있었다.
숙취해소제라고.
“브웨에에에에.”
여명, 여명이 필요하다! 808인지 909인지 하여간 그게 필요해!
속이 뒤집힌다.
“허, 이래서 젊은 놈들은! 겨우 맥주 마시고 뻗다니! 일어나게!”
“아니, 영어 잘 하시잖─ 우웨에에엑.”
“완벽하게는 못하네. 작가로서 마음을 터놓고 문학에 대해 진솔하게 얘기하려면 자신에게 편한 언어로 해야지. 그러니 한잔 더 받게! 이젠 자네가 러시아어를 배울 차례야!!”
“아, 안 돼!!”
“돼!!”
세상에, 꼰대력이 술자리에서까지 작용하다니! 이래서 어른들하고 술 마시면 안 된다는 건데!
모름지기 러시아인은 술을 좋아하고, 문호 중에서도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둘에 모두 해당되는 러시아 대문호인 톨스토이는?
“자! 한 잔 더!”
살인적으로 잘 마셨다. 아니, 젊었을 적에 인싸 난봉꾼으로 살았다고 할 정도니 지극히 당연한 일인가.
보드카 마셔 놓고 물이라고 주장하는 민족답다.
뭐, 그나마 다행이라면.
“선생님, 실례하겠습니다.”
“호오. 자넨?”
“아서 코난 도일이라 합니다.”
이곳에 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는 거지.
코난 도일 선생은 모자를 벗으며 내 자리를 대신하였다.
“아, [셜록 홈스>인가! 좋지. 취향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글이더군!”
“감사합니다. 저도 선생님의 글을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호, 뭐가 제일 좋았나?”
“[세바스토폴 이야기(Севастопольские рассказы)>.”
“하,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뒤틀리지!! 젠장, [크림 반도는 지옥이었네! 2시간 전만 해도 고결했거나, 비열했거나······ 가지가지의 꿈과 욕망에 차 있던 그 사람들이!! 몇백이나 되던 사람들이 피범벅이 된 굳은 손발을 팽개친 시체가 되어 땅바닥을 뒹굴거렸지! 니콜라이, 그 병신 새끼의 알량한 욕심 하나 때문에! 그놈의 해양 진출이 뭐라고!!>”
“······음, 콘래드 씨?”
“아니, 나도 좀 쉬면 안 되우?!”
아서 코난 도일만이 아니었다.
다른 작가들이 조금씩, 쭈뼛대면서도 모여들고 있었다.
내가 술 자체를 좋아하진 않지만, 술에 방심을 유도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무는 효과가 있다는 건 인정한다.
그리고 그건 톨스토이와 우리 작가 연맹 작가들 사이의, 어마어마한 경력의 벽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 저도 끼어도 되겠습니까!?>”
“[자넨 뭔가? 러시아어를 제법 잘하는군.>”
“[서, 서머싯 몸이라고 합니다. 아직 등단은 못했······.>”
“[큰 소리로!! 안 들리잖나!! 그 목소리로 작가가 될 생각을 하는 겐가, 지금!?>”
“[윌리엄 서머싯 몸입니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있는데, 혹시 좀 봐주시겠습니까!?>”
“[좋아! 아주 활기차군! 가져와!!>”
이미 한번, 나와 아서 코난 도일에게 맹랑한 질문을 했던 문학청년 윌리엄 서머싯 몸이라든지.
“그대가 오니 내가 할 일이 없군. 아예 나 대신 대표 안 하겠나?”
“뉘시오?”
“조지 맥도널드라 하네.”
“맥도날드 선배······?! 살아 있었소!?”
“하나님의 은혜로 말일세. 후! 디킨스 선배가 살아 있었다면 오죽 좋아했을까.”
“디킨스 선배라······ 그리운 이름이군. 나도 진심으로 존경했소.”
“신께서도 무심하시지. 어찌 오래 살아야 할 사람을 그리 쉽게 데려가시고 나 같은 늙은이를 살려 두시는지······ 후!”
우리 작가 연맹 대표, 조지 맥도널드라든지.
그 외 하나둘씩, 존경하는 업계 대선배이자 살아 있는 전설을 영접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래, 딱 내가 19세기 처음 와서 아서 코난 도일이나 쥘 베른하고 만났을 때도 저런 반응을 보였겠지.
그리고 톨스토이는 한때 최고 인싸였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하겠다는 것인지, 금세 작가 연맹 소속 작가들과 가까워졌다.
저게 원래의 그 꼬장꼬장했던 사람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작, 사인, 작품 첨삭 같은 가벼운 것부터 진지한 정치나 경제, 그리고 문학에 관한 진지한 토론까지.
저 위업을 아무렇지 않게 달성하는 걸 보면 한창땐 진짜 어마어마하게 날랐던 사람이구나, 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아무튼.
“저, 이만 잡니다······ 으어.”
쿵.
마지막에, 꽐라가 되어 쓰러지는 날 받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
그다음 날부터, 톨스토이는 멀끔한 차림으로 작가연맹에 나타났다.
어제의 모습이 거짓말같이 말이다. 이에 관해 묻자 그 답은 무척이나 단순했다.
“단 하루만일세. 어제는 나의 내면의 미혹을 날리기 위해 그랬을 뿐. 원래 술이란 이성을 마비시키는 독과 같은 것이니 말일세.”
아니, 그런 것치고는 겁나게 잘 마시던데요······ 마비가 안 되는 거 같던데.
아무튼 그 말처럼 그는 이후로는 술은 입에 대지도 않고, 종종 다른 이들에게 금주를 권하기까지 했다.
하긴 그의 글 중에서는 술을 통해 인간을 타락시키는 악마의 이야기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저런 반응도 이상한 것은 아니지.
그는 그렇게 작가 연맹에서 수개월 머물며 매일같이 토론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게 무슨 뜻이냐.
숨만 쉬어도 영국인들의 국뽕을 채워 줄 기사가 충분히 흘러나왔단 뜻이다.
[톨스토이, 작가 연맹에서 수일째 문학 토론!!> [루이스 캐럴과 톨스토이, 문학의 두 거장이 한자리에 모이다!!> [톨스토이, “찰스 디킨스는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 빅토르 위고(1802~1885)와 비견되는 참되고 선한 예술가.”> [톨스토이, “문학의 미래는 러시아의 안톤 체호프와 막심 고리키, 영국의 한슬로 진에게 달렸다.”>“크으으으!!”
“이거제!!”
“당장 서명하시오! 영국은 진정한 문학의 종주국이며······!”
“여기, 톨스토이가 얘기한 책 전부 주시오!!”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의 1896년 에디션이 순식간에 완판되었다.톨스토이가 극찬한 실러의 극본과 빅토르 위고의 [장발장>, 그리고 찰스 디킨스의 책들도 오랜만에 재판되었고, 출판사들은 도스토예프스키와 안톤 체호프, 그리고 막심 고리키의 책들의 저작권을 사들이고 번역에 들어갔다.
작가 연맹의 작가들은 톨스토이를 찬미하고, 톨스토이는 찰스 디킨스를 칭찬했으며, 다시 디킨스의 후계자로서 한슬로 진과 작가 연맹의 인지도가 올라가는······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지도 상승의 선순환 바퀴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리고 이 말은.
정작 이 일의 시초였던 왕립문학회가 뒷전이 되고 있었단 뜻이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오!?”
“······이미 바람은 저쪽을 향해 불고 있소. 일단은 견뎌야지.”
“지금 그 바람에 쓸려나갈 판이란 말이오!!”
“······.”
왕립문학회 고문, 러디어드 키플링은 이를 악물었다.
대체 왜 일이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톨스토이가 디킨스를 존경하고 한슬로 진의 글을 좋아했다고? 그런 정보는 없었는데!
“아직.”
키플링은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말했다.
“아직 아니오.”
“그게 무슨 말이오!?”
“생각해 보시오. 우리가 적대하는 건 작가 연맹이지 톨스토이가 아니지.”
깊은 한숨을 쉬고, 키플링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고르며 말했다.
“예정대로 톨스토이에게 상을 줍시다. 그리고 그 명성을 이용해 예정대로 빅토리아 문학상을 그 자체로 최고의 문학상으로 만드는 것이오.”
“그렇다면······!”
“작가 연맹 수준은 아니더라도, 그 후광을 조금이라도 업을 수 있겠지!”
물론 아니다.
키플링은 알고 있었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하지, 2등만 기억하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 저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리고 있는 올림픽인가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결국 금메달만 기억할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부 전환용이다.
‘내년까지만 버티면 된다.’
올해에 이렇게 큰 소란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내년, 정말 진짜로 왕립문학회의 입맛에 맞는 작가를 뽑자. 그리고 그 작가가 왕립문학회의 비위에 맞는 말을 해 준다면, 그때는 제대로 된 수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톨스토이의 영향 정도는 가볍게 날려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속보! 톨스토이, 빅토리아 문학상 거절!> [“귀족에게는 지나치게 과분하나, 작가에게는 지나치게 성가신 상······.”> [극비! 톨스토이, 찰스 디킨스 문학상 공모전의 심사위원장 자리 응낙!>“으아아아아!! 대체 왜!!”
때려치워 버릴까.
키플링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다.
***
1896년, 6월 9일.
“축하하네, 젊은이.”
“가, 감사함니드아······!”
“자자, 웃으세요! 치-즈!!”
찰칵.
애 기절하겠네. 나는 작가연맹 건물 앞에서 톨스토이에게 직접 상을 건네받고, 그와 함께 사진을 찍는 육사생도가 얼어있는 것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제1회 찰스 디킨스 문학상 공모전 대상자, [황무지의 봄>을 쓴 에드워드 플런켓이다.
육사생도라······ 그러고 보니 처칠은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나이로 보면 벌써 재작년에 졸업해야 정상일 텐데, 이상하게 이번 공모전 1차 통과작 중에 이름이 있어서 크게 놀랐다.
설마······ 1년 꿇었나? 하긴, 공부는 지지리도 못했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때 그렇게 생각하는 내게 아서 코난 도일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들었나? 저 친구, 이제 겨우 이튼 칼리지 졸업해서 샌드허스트 1학년이라던데.”
“들었습니다. 저희 집 몬티가 말하길, 자기 많이 도와줬던 연극부 선배라데요.”
“허, 그래?”
세상 참 좁다니까. 아니, 귀족 기득권들이 좁은 건가?
뭐, 장르문학도 결국 문학이니 가진 집이 하기 좀 더 편한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 이튼 칼리지-샌드허스트는 이 시대 귀족들의 정규 루트 중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 동생분도 샌드허스트 졸업했다고 하셨죠?”
“음, 졸업하느라 고생했으니 몇 년 쉬다가 임지로 가겠지. 그동안 적당한 혼처를 알아봐서 독립시킬 생각이긴 한데······.”
말을 하다 말고, 아서 코난 도일은 나를 보았다. 뭐야. 왜 동생 이야기하다가 나를 봐?
“자네는 대체 언제쯤 혼인을 할 생각인가?”
“아니, 저 같은 아시안이 이 영국에서 어떻게······.”
“웃기는 소리. 밀러 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중매해 달라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네. 이참에 우리 막내는 어떤가? 자네도 만나 봐서 알겠지만 참 참하고 착한 아이일세.”
“아니, 저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애잖아요.”
게다가 미성년자고. 아니, 올해로 만 19살이니 딱 민증 나올 나이인가? 이 시대 영국엔 민증 같은 게 없기는 하지만.
“저런, 안 되지! 남자는 혼인을 해야 신께서 주신 사명을 이행하는 거라네!!”
그리고 그런 우리 사이로, 언제 들어왔는지 톨스토이가 다가와 웃었다.
‘어라, 축사는?’이라고 생각해 보니 어느새 조지 맥도널드 대표님이 기자들 앞에서 일장 연설 중이시다.
“뭐 하면, 내 딸이라도 소개받겠나? 보자, 마리아는 결혼했고, 알렉산드라가 아직 미혼이군.”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데, 몇 년도 생이죠?”
“84년생.”
초등학생이잖아!
나는 물론이고, 아서 코난 도일 역시 우리 집 매지보다 더 어린 애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아니, 그보다 대체 이 영감님은 그럼 대체 언제 자식을 보신 거야? 정정하시네, 진짜.
“뭐, 농담일세. 결혼은 자네 선택이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는 걸 명심하게. 결혼해야만 삶의 의미와······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네.”
의외네. 나는 톨스토이의 가정불화에 대해 알고 있었다 보니 그의 이런 태도가 뜻밖이었다.
그러고 보니 돌아온 탕아가 개심하기로 결심한 원인 중 하나가 결혼이었으니,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아주 이상하진 않지.
“그야······ 하고 싶기는 한데, 이래저래 바빠서요. 아직은 글에 집중하고도 싶고.”
“흐음. 작가로서는 좋은 마음가짐이군.”
다만, 하고 톨스토이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렇다고, 글을 쓰는 것만이 목적이 되진 말게.”
“······예?”
“자네는 숨을 쉬기 위해 사나?”
아, 이해했다.
그냥 숨 쉬듯이 자연스러운 걸 굳이 목적으로 두지 말라는 거구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What Men Live By). 하지만 그것과······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What Men Live For). 그것은 다른 문제지.”
톨스토이는 내 눈을 똑바로 보았다.
“자네가 내게 했던 말은 틀리지 않았어. 자네보다 글을 잘 쓸 작가, 자네보다 더 ‘옳은’ 말을 할 작가는 많겠지만, 그들조차 자네보다 ‘많은’ 동의를 얻긴 어렵겠지.”
그야, 그게······ 대중적인 거니까.
하지만 톨스토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는다는 건 불가능하고, 그래서도 안되네. 그러면 그럴수록 자네 ‘개인’의 목적은 점점 옅어질 테니.”
익살스럽게, 그리고 진지하게.
인생의 평지풍파를 전부 겪어본 인생의 대선배로서, 대문호는 나에게 충고했다.
“스스로를 되짚어보고, 삶의 목적을 찾아보게, 한슬로 진. 내가 보기에, 자네에게 필요한 건 그거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