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12)
“삶의 목적이라······.”
톨스토이의 말에, 나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야 그런 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걸.
초중고등학교 모두 집에서 가까운 데니까 골랐다.
재밌는 것에 끌리는 게 사람이니 책을 읽었고, 만화를 봤으며, TV를 봤더니 어느새 아마추어 글쟁이에서 프로 작가가 되어 있었다.
만약 작가를 안 했다면 뭐, 예전에 아서 코난 도일에게 말했던 것처럼 이냥 저냥 공무원이나 했겠지. 아니면 적당한 중소기업에 취직하거나.
마법사가 되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결혼이나 연애는 생각이 없었다. 일일 연재에 찌들어 살다 보니 생활 사이클이 직장인들하고 다르기도 했고.
아무튼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삶의 목적이라······.
물론 당시는 대박작을 하나 써 보고 싶었다는 것 정도는 있었다.
부귀영화? 한강 뷰 고층 아파트? 애니메이션화? 뭐 그런 것을 원하긴 했다. 덕질을 하던 내가 덕질의 대상이 되는 성덕의 꿈이라거나.
밤새 자체 통조림하면서, ‘언젠가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어렴풋하게 고민하고 꿈꾸던 나날이 있었다.
하지만 그거······.
‘이미 다 이룬 거 아니야?’
우습게도.
여기 와서 충족한 듯 아닌 듯한, 그런 느낌이 든다.
돈이야 자선 사업을 할 정도로 벌었고. 시대가 시대다 보니 막, 유튜브나 TV에 나와 모든 이들이 얼굴을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한 나라의 슈퍼스타가 되어 있고.
덕질? 아마 세상 그 누구보다 나처럼 확실하게 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걸?
‘억’ 소리가 나는 작품들로 가득 차 있는 내 지하 창고는 그야말로 웬만한 문학,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꿈에 그리던 이상향이나 다름없다.
수많은 대문호의 초판본에 미래에는 박물관에야 가야 있을 법한 그림 등의 예술 작품으로 꽉꽉 채워져 있으니까.
가끔은 거기 가서 책 향기만 맡아도 배가 부르기도 할 정도다.
게다가 대중 문학은 이제야 시작하는 태동기.
앞으로 수없이 많은 작품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아는, 혹은 모르고 있던 작품이 나올지도 모르지. 그것들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뛸 수밖에.
“후, 이런 걸 보면 나도 참, 어디 가서 한국인 아니랄까 봐.”
성실해 빠져 가지곤. 아무튼, 이 인터넷의 개념조차 없는 동네에서도 어느덧 6년 차를 보내고 있었다.
왔을 때는 땡그랑 몸 하나만 있어서 항만 노동자로 개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그런 내게 삶의 목표라······.
그런 것들까지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자, 나는 결국 결론을 내렸다.
“음, 모르겠다!”
나는 달력을 보았다.
1896년도 절반 이상 가고 있다. 바꿔 말하면 이 19세기도, 내 20대 청춘도 고작 3.5년가량밖에 안 남았단 얘기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지만, 나는 아직도 고작 20대란 말이지.
이 시대 사람들이야 결혼이다, 어른이다, 한다지만 나 때는 20대에 결혼한다고 하면 뭐가 바쁘다고 그리 빨리하냐는 소리도 들었었다.
30대에도 안 한 사람들이 수두룩했고.
그리고······ 사람의 삶이라는 게 꼭 그렇게 엄청난 사명감으로 움직이기만 하는 건 아니잖나.
뉴턴도 물리학자로 유명하지만, 그 자신은 신학자로서의 자아가 더 강했다.
심지어 그의 생애의 반은 다른 인물에게 휘둘리다시피 했었고. 결국 그의 진짜 재능이 꽃핀 것은 페스트 창궐로 2년간 고향으로 돌아갔던 ‘창조적 휴가’ 이후였다고 하니까.
즉, 사람 일이 어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과연 삶에 대한 강력한 목표를 지닌 것만이 의미가 있을까? 그게 없다면 과연 그게 무의미한 걸까?
좌푯값을 고정했는데 그게 틀린 거였다면?
그리고, 반대로 그걸 찾아가는 과정 역시도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찾듯 말이지.’
그렇게 내 마음에 파문을 던지신 톨스토이는 그런 내 결론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셨느냐 하면.
“뭐, 그런가? 그것도 나쁘지 않지.”
“화내진 않으십니까?”
“내가 어떻게 뭐라고 하겠나. 내가 자네 나이일 적엔······ 어휴! 말을 말지.”
그렇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꼰대면서 자기 혐오자라니······ 이 할아버지도 참 독특한 캐릭터란 말이야.
그리고.
“그러면 한슬로, 건필하시게.”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그와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다음에 때가 되면 제가 러시아로 찾아가겠습니다.”
“하하하! 무리해서 립서비스하지 말게.”
아, 들켰나? 나는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었다.
그렇지만 그 동네 무서운걸.
앞으로 생길 일들을 생각하면 잘못하다간 장대에 매달릴 수도 있단 말이지.
“뭐, 이해하네. 지금의 러시아는 자네 같은 친구가 오고 싶어 할 만한 나라는 아니니 말이야.”
“······행운이 있기를 빕니다.”
“하하. 립서비스하지 말랬다고 바로 집어치우는군.”
“아니요, 이건 진심입니다.”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톨스토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놓아주었다.
“그래······ 고맙네. 자네 덕에 나도 다시금 깨달은 게 있거든. 아니, 어쩌면 이미 알곤 있었지만, 비겁하게 도망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지.”
“선생님.”
“아무 말 말게.”
굳은 얼굴을 한 채, 내 눈을 마주 본 톨스토이가 그렇게 말했다.
“자네는 자네의 할 일을 하게. 나는 내 할 일을 할 테니.”
“제 할 일이라면······.”
“일단은 전에 말했던 목표 찾기지, 아니겠나?”
거참, 아닌 듯하면서 끝까지 자기 의견을 밀어붙이는 게 참 그답다면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내가 그만큼 마음에 들었다는 걸까?
그렇게 껄껄 웃은 채, 톨스토이는 몸을 돌렸다.
“그럼 가 보겠네! 정말 다음에는 러시아에서, 그다음에는 가능하다면 자네 고향에서 봤으면 좋겠군!”
“네, 가능하다면요. 그럼 조심히 가십쇼!!”
그렇게, 영국에 평지풍파를 놓고 톨스토이는 떠나갔다.
그리고 그를 대신하듯.
“나 돌아왔네.”
“버나드! 이제 오나?”
“아니,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톨스토이와 길이 엇갈렸던 조지 버나드 쇼가 돌아왔다.
아니, 갈 때도 엇갈리더니 올 때도 엇갈리시네, 이분은.
“너무 늦었잖아요. 정말이지, 덕분에 이번 총회는 당신 없이 우리끼리 준비해야 했다구요.”
할 말이 제일 많았던 네스빗 여사가 주먹을 날릴 듯한 자세로 그렇게 말했다.
하긴, 요 반년 동안 톨스토이를 접대하랴, 페이비언 협회랑 조율을 맞추랴. 그녀가 오죽 고생이 많았지.
“하하, 그래도 형님도 그만큼 손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버나드 형님, 이게 뭔지 아십니까? 톨스토이 작가님이 제 글을 읽고 첨삭해 주신 거라구요! 굉장하죠?”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윌리엄 예이츠가 깐족거리며 자랑했다.
저분도 참, 아직 명성을 얻기 전이라 그런가? 아직 굉장히 피 끓고 이상한 데에 기웃거리던데.
최근엔 나한테도 신지학이나 오컬트 쪽으로 자꾸 캐묻고 다녀서, 하는 것만 보면 저게 나중에 노벨문학상을 탈 위인이 맞나 고민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미안하네. 잠시 쉬고 싶군.”
“예?”
“형님, 괜찮습니까?”
“괜찮아······ 후. 미안하네.”
놀랍게도, 러시아에서 돌아온 조지 버나드 쇼는 평소의 예리함과 의욕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전의 그였다면 톨스토이와 만나지 못했다는 점에 불같이 화를 내거나 탄식을 내뱉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묘하게 고뇌에 가득 차 있는 느낌.
그런 그의 모습에 다른 이들도 웅성댔다.
“배를 너무 오래 타서 여독(旅毒)이 쌓인 걸까요?”
“글쎄요······.”
에디스 네스빗 여사와 윌리엄 예이츠는 잠시 서로를 마주 보았지만, 그런다고 조지 버나드 쇼가 의욕을 찾을 방법을 구하진 못했다.
그리고 지금 작가 연맹도 그걸 신경 쓸 만큼 여유로운 상태가 아니기도 했고.
“뭐? 해리스 씨가 갔다고?”
“저런, 세상에. 그 젊은 나이에.”
일단 웨스트엔드에서 부고가 전해졌다. 미래인이자 활동한 지 얼마 안 된 난 잘 몰랐지만, 어거스터스 해리스(Augustus Harris, 1852~1896)는 사보이 극장의 도일리 카르테보다 한 끗발 위, 드루리 레인의 스타 극장주이자 사업가였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 연맹에도 그 은덕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고, 그 장례식을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비는 한편 그 후계자가 될 만한 이들과 접촉하느라 정신이 없던 것이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밥은 먹고 살아야지. 그 사람들도 나름 열심히 자기 작품을 어필해야 먹고 사는 걸세.”
“선생님은 관심 없으십니까?”
“나? 난 별 상관없지.”
아서 코난 도일은 짐짓 여유를 부리며 말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하는 눈치로 그를 보았고, 그는 파이프 담배를 움켜쥐며 말했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그놈의 [제인 애니> 하나 망했다고 내가 희곡을 못 쓴다고 생각하진 말게. [셜록 홈스>도 무대 위에 올리겠다는 사람은 많아.”
“오, 진짜요?”
나는 기대감에 되물었다.
요컨대 자기가 잘나서 저렇게 영업할 필요가 없다는 나름의 자기 자랑이었지만, 진짜로 아서 코난 도일은 그 수준이 맞다.
게다가 나 역시 로다주나 오이 형 주역의 영화판 [셜록 홈스>를 꽤 재밌게 봤었단 말이지.
과연 이 시대의 연극판 셜록 홈스는 어떤 맛이 있을까? 이건 이거대로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뭐, 지금은 연재 재개 전에 마지막으로 출간할 장편 하나를 다듬고 있어서 시간을 못 내고 있지만 말일세.”
아서 코난 도일의 말에 나는 기대감이 샘솟았다. 무려, 역사에 없었던 아서 코난 도일의 다섯 번째 [셜록 홈스> 장편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그것도 심지어 제목이 [수학 교수의 탄생(The Birth of The Mathematics Professor)>이니까!
그래, 제목으로 예상할 수 있겠지만, 무려 제임스 모리어티의 탄생을 다루는 오리지널 소설이다.
아, 이걸 대체 어떻게 참아?
“그보다 자네는 어떤가? 톨스토이 선생님이 러시아로 돌아가시고, 자네도 여기저기 바빴잖나.”
“아, 뭐······ 그야 그렇죠.”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일단 대문호님을 접대해야 하니 비축분 쌓기는 올 스톱.
런던에 계속 있으면서 글과 접대를 병행하는 생활을 해야 했기에 간신히 연재 분량 따라가기 급급했다.
그러니 당연히 다시 비축을 만들어야지.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허버트 조지 웰스가 [모로 박사의 섬>을 썼고,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가 초연되기 시작했으며, 우리 덕에 재기에 성공한 리처드 도일리 카르테는 자신을 배신했던 길버트&설리반 콤비의 신작 오페레타 [대공(The Grand Duke)>의 공연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각자 할 일 하다 보니, 조지 버나드 쇼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는 게 결론이다.
뭐, 저 양반도 나름 용수철 같은 사람이니 좀 쉬고 나면 알아서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아무튼 나도 다음 할 일을 하러 가야 했으니까 말이지.
“자, 끊습니다!”
“와아아아!!”
한때 이스트엔드라고 불렸던 화이트채플 지역.
어느덧 재개발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나, 마침내 [앨리스와 피터> 재단의 첫 번째 통합 운영 학교(기숙사 포함)가 문을 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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