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15)
“야, 시드(Sid). 넌 나중에 뭐 할 거야?”
시드니 채플린은 그 말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룸메이트, 시릴 와일드가 그 질문을 한 이유는 알고 있었다. 오늘 개학한 학교에서 받은, 같은 반 숙제니까.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나이팅게일 간호학교에서 온 캔디스라고 합니다.
─첫날에는 다 같이 모두의 꿈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로 해요!
─내일 이 시간까지 고민해서, 다 같이 하나씩 발표하는 거예요!
뭔가 위에서의 지침 사항이었다곤 하는데······ 시드니에게는 그저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그래서, 시드니는 역으로 시릴에게 짐짓 물었다.
“그러면 시릴, 넌 뭐 할 건데?”
“글쎄? 정 안 되면 군바리라도 해야 하나.”
“얌마.”
시드니는 어이가 없어서 옆 침대로 읽던 책을 던졌다. 그러자 그것을 받은 시릴은 낄낄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도 우리 아버지 봤잖아.”
“그야······ 봤지.”
시릴 와일드의 아버지는 다름 아닌 ‘그’ 오스카 와일드다.
시드니 채플린은 한때 동생 찰리와 함께 그에게 신세를 지긴 했었지만, 그 유명한 극작가라고 보기엔 좀······ 많이 추했다.
─똑바로 서라, 오스카. 왜 원고가 이것밖에 안 된 거지?
─아니, 이번에 [살로메> 올리면서 시간과 예산이 부족······ 으아아악!!
─너희 작가란 놈들은 항상 말이 많아! 알겠나? 이건 자네 빚문서야! 네놈처럼 게을러 터져선 결코 빚을 다 갚을 수 없단 말이다!
─사, 살려 줘! 나 지금 세 작품을 동시 진행 중이란 말일세! 이대로 가다간 내가 죽어 버려!!
─죽어? 엉? 라떼는 말이야! 하루 5,000자 이상 쓰지 않았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단 말이지! 겨우 이 정도로 우는 소리 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대, 대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아니, 이건 단순히 상대의 격이 달라서 그런 건가?
물론 그것과 별개로, 쓰는 글이 확실히 재밌는 걸 보면 재능 자체는 명성대로였던 것 같긴 했지만.
아무튼, 하고 시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비비안도 그렇고, 나도 아버지한테 사랑을 못 받은 건 아냐. 그래도 아버지가 한량에 재능 낭비 삼류 건달인 건 맞단 말이지.”
“어······ 응.”
이게 정상적인 부자 관계인가? 시드니는 숨 쉬듯이 자신의 아버지를 말로 까는 시릴의 모습에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 자신도 정상적인 가족은 겪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할 말이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가 그러고 있자, 대신 시릴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커서 아버지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진 않단 말이야.”
“그래서 군대야?”
“응. 적어도 장교가 되면 나라에서 굶겨 죽이진 않을 테니까.”
“······흐으으음.”
뭐야, 의외로 제대로 생각하고 있는 거였잖아.
시드니는 시릴에게 내심 배신감을 느끼며 그렇게 생각했다. 나쁜 자식. 나름 동지라고 생각했는데.
“뭐야, 넌 아직 뭐 하고 싶은 지 안 정했어?”
“솔직히, 응.”
시드니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맥아리없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런 동갑내기 친구의 모습을 보며, 시릴은 태평하게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말했다.
“거, 뭐 하면 나랑 같이 군대나 가자. 적어도 밥은 먹고 살겠지.”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난 너희 집처럼 사관학교 갈 돈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가 가진 돈이······ 없지. 음. 그래도 내가 말하면 같이 보내 주지 않을까.”
그럴까. 하지만 시드니 채플린은 딱히 그럴 생각이 안 들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쪽이 자신의 꿈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느끼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꿈이라······.’
새삼스럽게, 이런 걸 고민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어렸을 때부터, 시드니 채플린은 그런 것이 허락되는 환경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천장도 있고 침대도 있고 베개도 이불도, 그리고 무엇보다 (룸메가 있을지언정) 자기 방이 있지만. 그는 그런 것들을 소유해 본다는 경험 자체가 굉장히 낯설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어머니는 정신이 나갔고.
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뭐든 하다가, 우연히 ‘어린이집’에 들어올 수 있었으며, 어찌어찌하다 보니 극장에 취직했던 그에게 꿈이라니.
‘찰리라면 몰라도.’
찰리는 진심으로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게다가 ‘그’ 한슬로 진이나, 오스카 와일드에게 천재라는 얘기도 들었다.
아쉽게도 자신의 연기는 거기에 전혀 미치질 않으니, 시드니로서는 굳이 연기의 길을 계속 가야 할까 라는 회의감이 들고 있기도 했다.
어쨌든, 어머니처럼 막살다가 못된 남자에게 걸리거나, 아버지처럼 인간 말종으로 사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하지만······ 솔직히.’
품에서 피어오르는 의문을 베개를 끌어안으며 속에 다시 욱여넣던 그때였다.
“시드니? 시드니 채플린 군?”
“앗, 넵.”
방문을 열어 보자, 간호학교에서 왔다던 간호사 복의 선생님이 복도에 서 있었다.
“지금, 괜찮나요?”
“예. 선생님.”
“좋아요. 그러면 간호부장 선생님의 호출이 있었으니, 교무실로 이동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시드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학생들의 방을 둘러보러 가는 간호 선생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대체 무슨 일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운동장으로 나가자, 입구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으, 으억······ 수, 술 딱 한 잔만 더······!”
“심하시군.”
“선생님, 마취 후 이송할까요?”
“그러지.”
뭐야, 흔한 주정뱅이인가. 시드니 채플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학교는 아직 빈 건물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인지, 간호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온 뒤로 예전 화이트채플에 살던 사람들이 옛 버릇 못 고치고 술에 취해 돌아다니는 걸 납······ 아니, 마취해서 잠시 쉬고 가는 장소로 쓰는 곳들이 있었다.
물론 학생들이 생활하는 기숙사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같은 학교의 안이다 보니 눈에 안 띌 수는 없었다.
‘뭐, 어차피 여기 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였었고.’
화이트채플이나 이스트엔드에서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주정뱅이, 성 노동자, 범죄자에 익숙해지곤 했었다.
그리고 시드니 채플린은 무심코 자신이 그것을 과거형으로 썼다는 것에 놀랐다.
어느 새부턴가. 확실히 그런 것들이 보이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긴 했다.
‘그러고보니 학교 밖도 꽤 깨끗해졌고.’
취객의 구토. 썩은 음식물. 들끓는 시궁쥐와 길고양이.
시드니 채플린은 그런 것이 그저 과거의 것들로만 느껴지는 자신에게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드니 채플린은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어느새 그가 교무실 앞에 도착해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부장 선생님, 시드니 채플린입니다.”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 있는 것은 간호부장 선생님 뿐만이 아니었다.
시릴 와일드의 어머니인 콘스탄스 와일드 교감선생님도 있었다.
“안녕, 시드니.”
“아, 안녕하세요.”
오스카 와일드에게도 신세를 졌던 만큼, 그 아내인 콘스탄스도 시드니와 구면이었다. 그녀는 시드니 채플린을 자리에 앉힌 뒤 말했다.
“시드니.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해있다고 들었단다.”
“……네.”
“그 분을 나이팅게일 간호학교로 옮겨서 돌봐드릴 예정인데, 어떻게 생각하니?”
“예?”
시드니가 크게 눈을 떴다. 갑자기?
하지만, 간호부장 선생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갑자기가 아닙니다, 시드니 채플린 군.”
“그, 그럼요?”
“한슬로 진 작가님의 특별 지시사항입니다. 특별히 위중한 학부모가 있을 경우, 간호학교에서 특별히 관리해 달라는.”
“예······!?”
“입원비는 걱정 안 해도 된단다. 재단에서 대신 내주기로 했으니.”
어째서,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대체 왜 이렇게 좋은일이 연달아 생기는 것인가. 시드니가 의아해하던 그때, 콘스탄스 와일드 교감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니, 이제 다른 걱정은 전부 내려놓으렴.”
“……무슨, 말씀이시죠.”
“너무……. 어른인 척 안해도 된다는 뜻이란다.”
콘스탄스 와일드가 시드니 채플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드니 채플린은 어째서인가, 자신의 눈에서 이슬방울이 절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일도.
눈에서 비처럼 눈물이 흐르는 일도.
‘그러면…….!’
그리고.
‘그러면, 나도!’
꿈에 솔직해질 수 있게 된 것 또한.
===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다.
일단 일을 해도 집부터 다스린 다음에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유명한 장 자크 루소조차 제 자식들을 고아원에 버리고 철학 설파하다가 볼테르한테 오지게 까였잖아.
그러니까 결국, 톨스토이를 접대하든, 납 규제에 성공하든, 학교를 세우고 나이팅게일이나 체임벌린과 손을 잡든······ 바깥일을 제대로 하려면, 일단 그 전에 집안일부터 제대로 끝냈어야 한다는 건데.
내가 그걸 못했다.
“흥. 한슬 미워.”
“아, 아가씨!?”
“난 한슬 같은 거 몰라.”
“아, 안 돼요!!”
“한슬보다 아빠가 더 좋아.”
“크으으윽!!”
아가사 메리 클라리사 밀러.
올해 6살.
새 학기가 시작되어 각자 학교로 간 몬티와 매지가 비어 버린 애쉬필드의 자리를 채워 주는, 밀러 가문의 청량제이자 하나 남은 비타민이······ 팔짱을 끼고 나를 외면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내게 하늘이 무너지는 일과 같았다.
“아, 아녜요!! 전 아가씨를 위해!!”
“흥. 몰라. 미워.”
“크하하학!!”
피를 토하면서도, 나는 스스로를 자아비판 할 수밖에 없었다.
똑바로 서라, 과거의 한슬로 진 이놈!! 어째서 메리 아가씨와 놀아 주지 않았지!?
물론 나도 나름대로 아가씨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는 핑계는 댈 수 있다. 핑계는!
하지만 과거 매지가 나한테 여행을 권하고, 나도 프랑스에서 푹 쉬고 온 뒤로 쉬었느냐 하면······ 그닥 못 쉰 것도, 메리와 못 놀아 준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나름 에디스 네스빗 여사나 조지 맥도날드 영감님 책을 가져다주거나, 사보이 극장에서 같이 연극 보거나 하면서 나름 점수를 땄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무래도 직접 같이 놀아 주는 것만큼의 효과는 없었던 모양이다. 크흑. 이런 불찰이······!
“저런. 그러니까 좀 더 자주 내려오지 그랬나.”
“밀러 씨······! 아니, 밀러 씨도 자주 런던 올라오셨잖아요!”
나이팅게일하고 연결해 주셨던 것도 밀러 씨였으면서!
하지만 밀러 씨는 당당하게, 메리를 자연스럽게 안아 들면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얄밉게도!
“후후후. 그래. 하지만 자네도 런던에 ‘올라갔다’고 표현하지 않았나? 즉, 난 주로 토키에 있었단 말이지! 자네와 달리!”
“아뿔싸!”
내가 이걸 놓치다니! 원통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나와 밀러 씨가 메리를 두고 꽁트를 찍고 있던 그때, 클라라 부인이 다가와 밀러 씨의 품에서 메리를 빼앗아 안으며 말했다.
“자, 자. 어른스럽지 못한 장난은 거기까지 해요.”
“해요~”
“······네.”
“흠, 흠. 난 원래 그만하려고 했다오. 부인.”
아니, 이 아저씨가 정말 치사하게.
다행히 정의가 무엇인지 아시는 클라라 부인은 고집을 부리는 밀러 씨의 옆구리를 가볍게 찌르셨고, 밀러 씨는 아픈 건지 좋아 죽는 건지 모르는 표정으로 녹아내렸다······ 어휴, 하여간 이 잉꼬부부.
“아무튼 한슬? 애랑 못 놀아 준게 아쉬우면, 내려온 김에 메리랑 한번 제대로 놀고 오면 어때요?”
“나도 그렇게 말하려 했다네, 핸슬.”
“놀러 가는 거야, 딱히 어려울 일은 아닙니다만.”
나는 주책맞은 아재는 무시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클라라 부인에게 말했다.
“놀러 갈만한 곳은 거의 다 가 봤다는 게 문제네요. 뒷동산이라든가, 앞바다 구경이라든가, 시내라든가······.”
그렇다고 또 런던에 데려가는 건 애매하단 말이지.
음, 아니다. 영국에 도심이 런던만 있는 건 아니잖아? 에든버러라든가, 맨체스터라든가, 버밍엄이라든가, 그런 곳에 가면 어떨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런 건 어때요? 엑시터에서 부인들이 많이들 이야기하던데.”
뭐지. 나는 심드렁한 속내를 숨기며 클라라 부인이 건넨 전단지를 받아 보았다.
아닌 말로 이 시대에 애들이 볼만한 구경거리래 봐야, 서커스 같은 게 전부 아니겠냐. 놀이공원이라도 있을 게 아닌 다음에야······.
[테마파크 신규 개장! 블랙풀 플레져 비치(Blackpool Pleasure Beach)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있네?”
놀이공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