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30)
뜬금없는 독일 출장.
당연하지만 내 입장에서 이건 굉장히 짜증 나는 일이었다. 사보이 극장 보러 간 몬티뿐만 아니라, 고돌핀 스쿨도 임시 휴일이라 올라온 매지도 있었다고! 모처럼 애들한테 점수 딸 기횐데!!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서울에서 올림픽을 하는데 회사에서 해외 출장을 보낸다?
아, 당연히 사표 마렵지!
하지만 그게 밀러 씨다. 어떻게 그러겠냐. 사실상 가족인데.
게다가 그것을 제외하고도 내가 출장에 군말없이 나선 이유가 무려 셋이나 있다.
첫째는.
“후우우우······.”
“밀러 씨, 배 타야 하니까 좀 내리세요.”
“클라라······ 보고 싶소.”
“하여간 주책은······.”
그 밀러 씨도 같이 간다는 것.
회사원의 입장에서, 회장이 대동하는 출장에서 빠지는 건 불가능하다.
심지어 딱 봐도 나보다 훨씬 심하게 상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고 있자니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달까?
둘째는.
“정말 죄송합니다, 작가님! 본가에서의 호출이다 보니 이게 어쩔 수가 없어서······!”
“승낙한 건 저잖아요. 됐으니까 밀러 씨 좀 뒤에서 밀어 봐요.”
“공자님, 작가님. 표 끊어 왔습니다.”
그렇다. 지금 우리와 함께 독일로 가는 라이오넬과 로웨나 로스차일드.
여기까지만 들어도 대충 감이 오겠지만, 이번 일의 주체가 바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로스차일드 본가라는 점이었다.
즉, 천하제일 금융세가의 공식 요청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21세기에선 런던의 로스차일드가 본가가 된다지만, 그것은 ‘유대인 죽인다맨 콧수염’이 등장했기에 그렇게 된 것.
아직은 그렇지 않기에 저쪽이 대빵이다. 그런 만큼 저쪽에서 ‘각을 잡고’ 공식적으로 요청한 것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듯하다.
현재 런던의 로스차일드 분가와 거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로써도 진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거지.
마지막으로 셋째로, 그 무려 프랑크푸르트 본가에서 영국에 있던 나까지 불러야 하는 안건이 바로.
“이게 이번······ 기밀 경매에서 출품되는 물건이란 말이죠?”
“그렇습니다.”
“허, 참······ 오페르트의 비밀 컬렉션이라니.”
참 별게 다 나돈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한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할지도 모르는, 그리고 하필 그게 악명이라는 점이 참으로 독일인답다면 다운 독일인─ 에른스트 오페르트.
그가 조선에서 가져왔다고 주장했던 유물들이, 이번 베를린의 VVVIP급 기밀 경매에서 나온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오페르트다.
명색이 고종의 아버지이자, 당시 정권의 수장이었던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묘를 파헤쳐서 ‘통상 할래, 아니면 이거 부술까!?’라고 협박해서 역사에 남은 희대의 패드리퍼.
척화비를 ‘시대를 보지 못한 어리석은 행적’이라고 욕하는 한국인들조차 내면의 유교드래곤을 이기지 못해 ‘아 고건 좀’이라고 고개를 돌려 버리게 만들던 그 인간 말종.
물론 그 당시 조선의 석관(石棺) 기술을 뚫지 못해서 그냥 도주했다지만, 어쨌든 묘를 파헤친 것만으로도 당시 조선 기준으로나, 지금 영국 기준으로나 미래 한국 기준으로나.
천하의 개쌍놈 기준은 여유롭게 통과한다.
그런데 그 인간이 조선에서 가져온 유물 컬렉션이라니, 확실히 한국인으로서 한 번쯤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내 심리가, 로스차일드의 ‘수요’와 일치했다.
─제대로 된 정보조차 없는 나라인 조선의 보물이라니.
─대체 이런 건 어떻게 감정해야 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이런 기밀 경매에서 제일 중요한 건 출품되는 물건의 신용도다.
그냥 VIP도 아니고 VVIP급, 독일에서 치면 최소 슈탄데스헤어(Standesherr)급의 최상위 융커들이 돈을 내는 데 그게 가짜다? 그것은 이니시에이팅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행기조차 개발되지 않은 이 시기, 참으로 아쉽게도 날고 기는 로스차일드 본가조차 동양미술 전문가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심지어 존재 자체도 잘 알려지지 않아, 은둔의 나라라고 불리던 조선의 미술은 더더욱.
그런데 어머나 세상에, 옆 나라인 영국에 그 조선인(이라고 알려진) 감정 전문가를 데리고 있는, 이 업계에서 유명하기까지 한 화상(畵商)이 있고, 심지어 런던 분가랑 나름의 인연도 있네?
그렇게 로스차일드는 어마어마한 보상을 약속하며 나와 밀러 씨를 독일로 호출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프랑크푸르트.
“[어서 오시오, 영국에서 오신 손님들! 빌헬름 카를 폰 로스차일드(Wilhelm Carl von Rothschild)요.>”
“처음 뵙겠습니다. 프레데릭 알바 밀러입니다.”
“진한솔입니다.”
“[반갑소. 페르디난드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소. 한슬로 진.>”
무려 천하제일 금융세가의 가주, 검이 아니라 금으로 세상을 오시하는 황금의 군주가 직접 우리를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빌헬름 로스차일드는 놀랍게도 먼저 나에게 고개부터 숙였다.
게다가.
“제 정체를 아시는군요?”
“[물론이지, 그대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오. 처음 들었을 땐 꽤나 놀랐지. 현재 가장 뜨거운 감자인 한슬로 진의 정체가 말이요.>”
아무튼 그가 이후 이어서 했던 말은······.
“[일단 이 말부터 해야겠소. 참으로 미안하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주님.”
아, 이 시기에 뜬금없이 불러온 게 미안하다는 뜻인가?
내가 그렇게 물어본 것을 로웨나 로스차일드가 통역하자, 빌헬름 로스차일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물론 그것도 미안하지. 하지만 내가 미안한 것은, 그 오페르트란 놈이 그대의 나라에 저지른 죄에 관한 이야기요.>”
“······으음.”
“[물론 그는 이후 우리 프로이센 본국으로 돌아와 실형을 언도받기는 했소. 다만 고작 몇달 정도였고, 아무리 머나먼 타국이라고는 하나 왕족의 무덤을 파헤친 처벌이라 보기엔 지나치게 솜방망이였지. 같은 독일계 유대인을 대표해, 그대에게 사죄하오.>”
어, 음 좀 갑작스럽네. 이걸 ‘그 로스차일드 가문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과연 그 로스차일드 가문인가’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감정 일로 잠깐 같이 일하고 헤어질 사람에게 칠하는 기름칠치고는 상당히 과하고 파격적인 언사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심지어 그 가주가 말이지.
문제는.
“죄송하지만, 남작님. 그건 남작 각하께서 제게 할 사과가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가해자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가해자를 대신할 순 없습니다. 이건 마찬가지로 피해자의 경우도 그렇죠.”
솔직히 오페르트가 유대인인 건 잘 몰랐다. 그리고 그게 인종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결국 인성 빻은 사람이 터트린 잘못 아닌가.
그것도 솔직히 내 입장에선 역사적 사건 중 하나일 뿐이니까 아, 그렇구나 싶은 정도라 더 와 닿지 않는 것도 있고.
그래도 가주라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말하니까 묘하게 기분이 누그러지는 것 같다. 이게 세상을 주름잡는 명가의 언변인가? 싶기도 하고.
하여튼 굳이 이 부분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그러니 굳이 그러시길 원하신다면······ 안 그래도 지금 영국 런던에 조선인 사절단이 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쪽으로 사람을 보내시는 게 어떨까 싶네요.”
“[······후후, 그렇군. 당신은 그런 사람이란 거군. 알겠소. 그리하리다.>”
빌헬름 로스차일드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이쪽을 응시했다.
흐음,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밀러 씨와 눈빛을 교환했다.
─이거, 시험한 거죠?
─그렇지. 훌륭히 통과했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여러 가지가 담긴 언사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름 이쪽 업계에서 밥을 좀 빌어먹었던 경험으로 그 부분을 눈치챌 수 있었지.
뭐, 대충 그런 거 아니겠어? 내가 진짜 조선인인지, 그리고 이번 일에 사적인 감정을 담지 않고 제대로 참여할 수 있는지 같은 거.
아까도 말했듯, 이번 경매는 정말 중요하다. 수많은 융커들의 ‘체면’이 오가는 자리고, 이를 주관한 게 그들이기에 그들의 ‘체면’이 오가는 자리기도 하니까.
아무튼 그 결과는 보기 좋게 통과인 듯하네.
오페르트에 대해 감정을 담지도 않았고(실제로 있을 리가 없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 의미 없다는 듯하지 않고, 조선의 사절단으로 그 방향을 돌렸으니까.
나는 내친김에 거기다 쐐기를 박기로 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 저는 오페르트가 가져왔다는 조선의 유물 중에 그렇게까지 대단할 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건 어째서요?>”
“일단, 에른스트 오페르트의 도굴은 실패했으니까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오페르트가 애초에 도굴을 목적으로 입국했는지, 아니면 나중에 떠올린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거 하나는 기억한다.
도굴은 했는데, 석회로 만든 관에 막혀 실패했다는 거.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조선의 문물 중에서 진짜로 값나가는 건 그러면 오페르트가 챙겨서 가져올 만한 가치가 있을 부장품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건 당연히 시신과 함께 있는 관 안이다.
“[흠. 그러면 제대로 된 부장품도 못 챙겼을 거라는 얘기군?>”
“그렇습니다. 만약 어떻게든 유물을 챙겨서 독일로 돌아왔다고 하면, 그건 아마 민간에서 구했거나 또 다른 무덤을 파헤쳐 가져온 부장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찌 됐든 남연군의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2000년대 후반, 한국에서 국뽕 열풍이 불었을 때 해외 반출 문화재 관련 컨텐츠로 예능을 한 적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독일로 반출됐던 문화재 얘기가 안 나온 건 아닌데, 그 얘기 중에 오페르트 얘기는 없었지, 아마?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러면 큰 기대는 안 하는 편이 좋겠군.>”
“물론 제가 직접 보고 감정한 것은 아니니, 확정은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아는 바대로라면 그렇다는 겁니다.”
“[물론이오. 무엇이든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지.>”
빌헬름 로스차일드는 웃으면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뭐야, 저 눈. 왜 저렇게 끈적끈적해.
“[좋소. 그러면 슬슬 식사를 하지요. 아, 라이오넬 군과 밀러 씨는 잠깐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남아주시고.>”
“알겠습니다.”
“작가님, 안내하겠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밥이라. 그렇잖아도 슬슬 배고팠다. 보자, 독일하면 소시지지?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걸까. 나는 문이 닫히기 전, 나와 로웨나 양이 빠지고, 거상(巨商) 셋만 남은 자리를 잠시 보았다.
흐음. 저러니까 꼭 진짜 유대인 음모론에 나오는 비밀 경제 회의 같은데.
에이, 착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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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보니 선남선녀로군. 이 자리에 프랑스 놈들이 없는 게 아쉬워. 기깔 난 로맨스 한 줄 뽑아냈을 텐데 말이오.”
한슬로 진과 로웨나 로스차일드가 일어난 자리, 빌헬름 로스차일드는 그렇게 말하며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워낙 노골적인 표현이라 밀러가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모르지요. 로웨나 양에 비해 우리 한슬이 좀, 너무 숙맥이라.”
“허허, 책임 회피요?”
“뭐, 그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란 사실은 잘 알 것 아닙니까?”
둘에 그런 대화에, 라이오넬 로스차일드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물론 그도 나름대로 로스차일드의 후계자로서, 금융가들의 ‘언어로 이루어지는 펜싱’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방금의 대화는 그로서도 숨이 막힐 정도였다.
당연하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히 웨나 로스차일드와 한슬로 진의 연애 전선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거기에 담긴 것은 가문의 정략적인 부분과 더불어 더 큰 목표가 담겨 있었다.
시오니즘. 그리고 유대계의 인권 증진.
그러나 최근, 그들이 원하던 목표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보자면 프랑스.
유대계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가 유죄 선고를 받은 바로 그 나라였으며, 영프독 3국의 경제를 장악한 로스차일드는 암중에서 백방으로 이 선고를 되돌리려 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로스차일드는 거기에 한슬로 진의 도움을 청하고 싶었으나. 그것을 중간에 자른 사람이 바로 프레데릭 알바 밀러.
“태풍은 맞서는 게 아니라, 피하는 거니까요.”
밀러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행을 다녀온 뒤 한슬로 진이 프랑스의 인종 차별이 심했다며 투덜거린 것에서 볼 수 있듯, 지금의 프랑스는 정상이 아니다.
보불전쟁의 패배와 리슐리외가 두려워하던 독일 통일.
이에 따른 경제적 불안을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어 했고, 그로 인해 발생한 국가적 린치가 바로 드레퓌스 사건이다.
그런 건 함부로 개입하는 게 아니지.
게다가 알게 모르게 한슬로 진의 작품에서는 유대인에 긍정적인 묘사가 많았다.
[빈센트 빌리어스>나 [딕터 박사> 등에서도 유대 자본의 힘을 빌리고 있는 대목이 있고, [던브링어>에서는 아예 유대인 서브히어로가 등장한 적이 있으니까.······그가 보기에 한슬은 그런 것을 의도하고 쓰는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저들의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는 것은 그냥 세상이 미쳐 돌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좀 더 장기적이고, 또 확실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밀러는 담담하게 말했다.
로스차일드는 반유대주의에.
밀러는 우생학과 사회진화론에 맞서기 위한 싸움을.
그것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라도, 장교 하나 때문에 설레발을 쳐서는 안 된다.
그런 밀러의 단호한 말에 빌헬름 로스차일드는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인지는 아오. 다만 나도 영국의 여왕 폐하만큼이나 늙었으니, 그날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게 한이군.”
“하지만 장미 방패는 영원할 테죠. 저 역시 돕겠습니다.”
“좋소.”
빌헬름이 손짓했다. 그러자 그의 하인이 다가와, 밀러에게 명함이 올려진 쟁반을 내밀었다.
“그대가 요청한 사람들이요.”
“감사합니다.”
밀러는 명함을 뒤집었다.
거기엔 두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독일 사민당 대표,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그리고.
“막스 베버(Max Weber).”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