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31)
“프레데릭 알바 밀러, 라고 했던가······.”
함께 의논하던 밀러마저 떠나고, 둘만 남은 자리.
빌헬름 폰 로스차일드는 라이오넬 로스차일드에게 떫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에 라이오넬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총가주님.”
“인물이군. 저런 자가 영국 같은 변두리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단 말이지······.”
변두리라니······.
나름 ‘그’ 변두리 분가의 소가주인 입장에서, 라이오넬은 내심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입 밖으로 낼 순 없었다.
본가 총가주와 분가 소가주의 입지 차이 같은 이유가 아니었다. 실제 영국이 유럽 본토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영국이 그렇게 혐성국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어떻게든 유럽의 패권국을 견제하려 하는가.
그건 당연히 유럽에 패권국이 등장하면 브리튼 섬이라는 한정된, 그리고 북서쪽에 치우친 국토를 가진 영국은 싸우기도 전에 그 패권국에 끌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전 신성 로마 제국 시기가 그랬고, 부르봉 왕조 프랑스가 그랬으며, 합스부르크 왕조 때도, 나폴레옹 때도 그랬다.
지금 그들이 러시아를 견제하는 이유도 러시아를 차기 패권국으로 예상했기 때문.
만약 독일이 유럽을 집어삼키려고 한다면? 당연히 독일의 다리든 셔츠 자락이든 붙잡아 가면서 어떻게든 막으려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한 수단이 바로 식민지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서의 대영 제국······ 이었을 텐데.
“라이오넬.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인종 평등론 말씀이십니까?”
“그래.”
“······글쎄요.”
라이오넬 로스차일드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물론 그가 그 선량한 의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으로서 로스차일드 가문이 당한 수모가 오죽 심한가, 가재는 게 편이라고 근본이 비슷한 그 이론을 나쁘게 보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인 측면으로 보면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으로서는 응원합니다. 하지만, 투자자로서는 그다지 매력적인 상품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그가 영국인이었기에 더더욱.
“영국인들은 너무 오래, 인종 차별이란 ‘편한 해결책’에서 얻은 이익에 빠져 있습니다.”
방금도 말했듯 브리튼 섬에 갇힌 영국에게 있어, 식민지는 유럽 본토에 지지 않기 위한 유일하다시피 한 수단이다.
그런데 그런 영국이, 과연 인종 평등이라는 허울 좋은 말을 받아들이려 할까?
‘무리겠지.’
상식적으로 너무 비현실적이다.
라이오넬 자신이 동물학에 빠졌던 것도 어느 정도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인간들보다, 동물이 더욱 순수하기 때문이다.
동물에게는 인간이 피부 밖의 무기로 뭘 들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피부 그 자체나, 피부 아래에 흐르는 피 따위는 딱히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자신들과 조금만 달라도 경계하고,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을 전혀 이해할 생각이 없는 짐승이다.
게다가, 설령 그것을 어떻게든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실이나 도덕을 왜곡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밀러 자신이 그 증거 아닌가.
“밀러가 인종 평등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그 스스로가 선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그의 곁에 한슬로 진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나서지 않았겠죠.”
“그렇겠지.”
결국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낙원을 찾는 것 같은 일이다.
어찌 보면 그들, 로스차일드의 이상보다도 더 고된.
“그렇다면 네······ 아니지. 런던 분가의 판단은 뭐지?”
“그야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가야지요. 우리 유대인들에게는 그것 이상의 답이 없습니다.”
라이오넬은 담담하게 말했다.
싸우는 동물들끼리는 떼어 놓는 것이 원칙이듯, 유대인들과 유럽인들도 떼어 둘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유대인에게 있어, 유럽에서 떨어져 가야 할 곳이라면 당연히 야훼께서 모세에게 내려 준 땅, 가나안.
지금은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는 예루살렘 일대가 바로 그곳이다.
라이오넬 윌터 로스차일드는 그곳으로 유대인들을 이주, 더럽혀진 유럽과는 전혀 상관없은 별개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만이 반유대주의의 씨앗을 뿌리 뽑는 것이 정답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다만.
“다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쪽에만 투자하는 것도 현명하지는 않지만요.”
“하하.”
빌헬름 폰 로스차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투자의 세계에서 언제나 진리로 여겨지는 말 중 하나다.
“확실히 인종 평등론 자체는 아마 100년이 지나도 완전히 구현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딱히 시오니즘과 상충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성과를 내면 낼수록 도움이 되면 되겠지요.”
“그리고 한슬로 진. 아니, 진한솔이라 했던가.”
빌헬름 폰 로스차일드의 눈이 금융인의 그것이 되었다.
그리고 로스차일드의 수장인 그는 결코 그 자리를 딱지 쳐서 올라온 게 아니다.
“프레데릭 알바 밀러를 제하고 봐도 상당히 매력적인 상품이더구나.”
“그렇지요.”
대중을 휘어잡는 데에 특화된 필력. 그것으로 성취한 영미권 문학계의 중심이라는 입지.
그런 것을 다 제쳐 두더라도······ 스스로의 견해를 이 로스차일드 본가에서 당당히 피력하고, 빌헬름 자신의 시험을 통과한 것만으로도 진한솔이라는 인간 자체가 빌헬름 폰 로스차일드가 투자할 만한 인간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무엇보다.
“모건도 접촉하려 했다지?”
“그렇습니다.”
“천박한 양키 따위에게 넘길 순 없지.”
경쟁자가 있다면 더더욱.
원래 임자 있는 물건이 더 탐스러워 보이는 법 아닌가. 그것은 마치 자신의 눈의 옳음을 증명시켜 주는 증거나 다름없으니까.
역시, 더더욱 우리 로스차일드가 품어야겠군.
빌헬름이 이를 드러내며 그렇게 말했다.
그 적극적인 모습에, 라이오넬은 침을 꿀꺽 삼키며 다급히 말했다.
“로웨나라면 충분히 그를 우리 로스차일드로 데려올 수 있을 겁니다.”
“아무리 똑똑하다지만 일개 고아로는 조금 불안하군. 혹 다른 분가에서 몰래 기르는 사생아 같은 아이는 없더냐?”
“하, 하하. 있더라도 동양인에게 시집가려는 아이가 있겠습니까.”
은근슬쩍 ‘런던 분가가 아니라 다른 곳에 맡길 수도 있다’라는 압박을 주는 빌헬름에게, 라이오넬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게다가 작가란 이들이 그렇게 쉽게 친화력이 생기는 이들은 아닙니다. 오히려 로이가 지금까지 노력한 것이 있으니,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하긴, 그건 그렇지. 알았다. 그쪽은 맡기겠다.”
“감사합니다. 총가주님.”
라이오넬은 고개를 숙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슬로 진을 포섭한 성과는 오로지 런던 로스차일드, 자신들의 공헌으로 독점해야 한다.
아무리 같은 로스차일드라고 하더라도 경쟁에서 밀려날 수는 없었다.
‘언제까지나 분가로 머무를 수는 없다.’
빌헬름 폰 로스차일드가 프랑크푸르트의 로스차일드 지부를 사위인 골드슈미트에게 넘기는 것 자체는 그렇다 치자. 그건 지부의 일이다.
하지만 로스차일드가 아닌, 골드슈미트-로스차일드가 되어 버린 ‘지부’를 본가로 계속 인정하느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
그때가 되면 분가들은 유쾌한 반란을 일으켜, 본가의 입지를 가져올 것이다.
파리와 나폴리, 그리고 빈의 분가를 누르고 런던 분가가 붉은 방패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라도 한슬로 진의 포섭. 그리고 시오니즘은 무조건 라이오넬, 자신의 업적이어야 했다.
그런 한편으로.
─무슨 수를 써도 좋다.
─다이아몬드 주빌리 기념 주간 동안, 한슬로 진을 런던 밖으로 돌려라.
유니콘과 사자, 그리고 방패의 문장이 찍힌 그 이름 없는 편지의 명령도 확실하게 해결했다.
이것으로 친구도, 런던 분가도, 로스차일드 본가도, 왕가도.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세계의 완성이다.
라이오넬 월터 로스차일드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다.
***
다음 날, 나는 로웨나 로스차일드와 함께 프랑크푸르트에서 조금 더 남쪽에 있는 튀빙겐(Tübingen)이라는 고풍스러운 대학 도시로 이동했다.
뭐, 흔한 일이었다. 비밀 미술품 경매인 만큼 정식 경매장을 이용하기도 어렵고, 대학교의 연구시설을 이용하면 미술품을 관리하기도 편하니까.
무엇보다 평범한 사람들은 대학원 주변에는 접근조차 하지 않으니, 기밀 유지에도 더없이 좋다.
예? 대학원생이요? 전 분명히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만?
아무튼.
“이 방에 있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작가님.”
“좋아요. 후딱 해치우고 갑시다.”
참고로 밀러 씨는 이 자리에 없다.
아니, 출장은 같이 왔는데 사장님하고 직원은 각각 다른 곳에 일한다니 이게 무슨 경우야? 치사하게 혼자만 베를린 관광이라니! 나도 베를린 보고 싶은데!
아무튼, 할 일은 잘하게 되었다. 그 문제의 오페르트 컬렉션인가 뭔가 하는 걸 내 눈으로 확인은 했는데······.
“이 그림의 가치는 어떤지고 묻고 있습니다, 작가님. 소재를 알 수 없는 독특한 화풍이 동양적인 매력이 있다고 좋아하고 있는데······ 같은 작가의 그림 시리즈로 구성하면 어떻겠느냐고 묻습니다.”
“흐음. 민화(民畵), 그것도 문자도(文字圖)로군요. 독특한 화풍일 수밖에 없는 게, 이건 전문 화가의 그림이 아닙니다. 나름 포장을 잘하면 어떻게든 가격 방어를 할 수야 있겠다만······ 그렇다고 해도 아마추어의 작품이라는 건 숨기기 힘들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이 책은 아직 해독을 못 했는데, 오페르트 가문에서는 무언가의 주술서 같은 건 아닌가 해서 은밀히 보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문자가 작가님이 지난번에 쓰신 것과 비슷하군요.”
“한글 소설······ 이긴 한데······ 어······ 내용이 크흠! [데카메론>이랑 비슷한 겁니다. 예, 아무튼 필사본인 것 같네요. 대충 읽어 보니 내용을 알겠어요.”
······이거.
“이것은 어떻습니까? 경매인들은 오페르트가 굉장히 귀한 도자기라고, 조선의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를 강조한 상감백자라고 하······.”
“······버리세요. 요강입니다.”
생각보다······ 별거 없다?
아니, 뭐 요강 같은 것만 빼면 미래인인 내 시점에서는 진품명품에 나올 정도의 가치가 있는 문화재들이긴 했다만, 그건 미래의 이야기지.
보이는 것 대부분이 현시점의 조선에 넘어가면 저잣거리에 널려 있을 물건들이었다.
뭐지? 오페르트 이 인간 혹시 사기꾼한테 당한 건가? 아니면 그냥 이 인간 자체가 사기꾼이었던 걸까?
대체 뭐 이런 것들만 들고 와서 팔아먹으려고 한 거야.
“작가님, 뭔가 가치가 있을 만한 물건은 없나요?”
“으음······ 글쎄요? 이 정도?”
나는 그나마 오페르트가 들고 다닌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 비스름한 지도를 가리켰다.
“근데 솔직히 이 채색 방식을 보면 아무래도 판화(版畵), 그러니까 찍어 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각각의 가치는 좀 떨어질 수밖에 없죠. 복사가 가능하다는 뜻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로웨나 로스차일드는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이런 이야기를 대놓고 전해 주긴 어렵겠지. 저쪽도 나름 기대를 많이 했던 모양인데.
그건 그렇고······ 끄으응.
나는 일어나 적당히 몸을 풀었다. 직접 돌아다니면서 유물을 만지다 보니까 영 허리가 안 좋네.
“로웨나 씨, 저 잠깐 주변 산책 좀 해도 될까요?”
“아, 예. 같이 가겠습니다.”
그럴 것까진 없는데, 라고 생각하려던 나는 내가 독일어를 1도 못한다는 걸 떠올렸다.
그나마 아는 독일어 단어가 죄 중2 병스러운 것들뿐이니 이걸로 회화는 무리겠지.
그렇게 나는 튀링겐의 대학교 근처를 로웨나와 함께 적당히 걸었다. 교외에 지어진, 대학교가 중심이 된 도시다 보니 확실히 경치가 좋았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독일 학문이 발전한 건 이런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연구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
그러던 중, 내 눈에 어느 건물이 눈에 띄었다.
“로웨나 씨, 저거 혹시 서점인가요?”
“아, 예. 맞습니다.”
“흐음.”
그렇다면 한번 들러볼 수밖에 없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갈 수 없듯, 작가는 책방을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법이다.
그게 설사 다른 나라라 해도 말이다.
“[아, 안녕하세요! 무슨 책을 찾으십니까?>”
서점으로 들어가자, 안경을 쓴 점원이 당황해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흐음. 고학생인가? 책상 위에 공부를 하고 있었던 건지, 독일어가 삐뚤빼뚤 쓰인 노트들과 책, 그리고 필기구가 마구잡이로 놓아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앳된 게 이제 겨우 갓 20살쯤? 그 정도로 어리다.
“[저희는 영국에서 왔는데요. 혹시 볼 만한 책이 없습니까?>”
“[아, 그거라면······!>”
청년은 최근 독일에서 인기가 있다는 책들 여럿을 늘어놓았다.
어디 보자······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도 있고, 게르하르트 하웁트만(Gerhart Hauptmann)도 있고······ 응? 이건?
“······[코이누르>가 벌써 여기까지 왔네요?”
출판 계약이 애매해서 해외 출판이 꽤 어려울 것 같았는데?
그렇게 말하는 내게 로웨나 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듣기로 독일에 작가님의 팬이 있어서, 꽤 빠르게 정발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쓰셨던 [피터 페리>를 비롯한 작품들 모두 인기가 상당했다 하니까요.”
“으음······ 그건 다행인데······.”
“다, 당신이 하, 한슬로 진 작가님?”
“······예?”
나와 로웨나 양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아까 그 서점 점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보고 있었다.
에, 어.
설마?
이 사람, 영어 할 수 있는 거야?
“맙소사! 한슬로 진 작가님이 저희 서점에 오시다니······!”
“아니, 저기.”
“아, 사인, 사인 좀 해 주세요!!”
“아······ 예, 뭐 그런 것쯤은 가능하긴 한데······.”
젊은 점원은 그렇게 말하며 황급하게 노트를 내밀었다.
당황해하는 나에게, 점원은 말했다.
“헤르만!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에게, 라고 적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잠깐······ 누구요?”
“헤르만 헤세입니다!”
이거······ 오히려 내가 사인해 달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