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33)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어서 오십시오, 밀러 씨.”
“처음 뵙겠소이다.”
진한솔이 베를린으로 갔다고 생각했던 프레데릭 알바 밀러는 사실 고작 100km 정도 조금 더 떨어진, 은근히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다만 아닌 척하면서 은근히 눈치가 좋은 직원에게서 행적을 숨기기 위해, 적당히 둘러댔을 뿐이다.
그리고 그 하이델베르크에서 만난 사람.
“막스 베버 교수.”
밀러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알베르트-뤼드윅스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막스 베버에게 모자를 벗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베버는 그런 밀러를 보며 빙긋 웃었다.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아, 오해는 하지 말아 주십시오. 다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조금 뭐랄까······ 금욕적인 집안 출신이었다 보니 말입니다. 미술 쪽은 잘 몰라서요.”
“오해하지 말란 얘기는 내 쪽에서도 해야겠군. 내 직업이 미술상 일이기는 하오만, 딱히 오늘은 미술과는 관련이 없는 일로 찾아뵈었소.”
“허어, 그냥 일개 경제학 교수를요?”
일개가 아니지.
밀러는 막스 베버의 말에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 카를 마르크스에 비견될 경제학의 차기 주자.
그리고 그에 미치진 못하지만, 그래도 그 못지 않은 여러 교수들과 함께 독일 경제학 최고의 커뮤니티라 불리는 ‘베버 그룹’을 형성한 중심적인 인물.
이전의 경제학이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그들에 맞선 알프레드 마셜의 시대였다면, 그다음은 아마도 그들의 시대일 것이다.
밀러는 그렇게 말했고, 베버는 난처하다는 듯 볼을 긁적였다.
“그것참······ 굉장히 부담스러운 평가로군요. 어느 분께서 그런 평가를?”
“테오도르 몸젠 교수님이시오.”
“아하, 박사 학위 딸 때 신세를 많이 졌지요.”
“저 알프레드 마셜 교수님 역시, 귀하를 고평가했고.”
“······으음.”
베버는 신음성을 흘리며 밀러를 보았다.
마셜 교수가 자신을 고평가했다는 것은 물론 기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알프레드 마셜이 있는데도 왜 굳이 독일에 있는 나를?’
아무리 자신이 지금, 나름대로 경제학에서 입지를 다지고 성장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밖에 있으니 그렇게 보일 뿐이다.
마셜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둘의 격차는 제국으로서의 로마와 포에니 전쟁 시기의 공화국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밀러는 담담하게 파이프 담배를 물며 말했다.
“의아하신 모양이구려.”
“그야······.”
“솔직히 말하지. 나는 어떤 목적을 위해 당신들 경제학자들이 어떤 이론을 검증해 줬으면 좋겠소. 다만, 이 목적 자체가 영국의 높으신 분들의 심기에 거슬릴 게 뻔하더군.”
“목적을 위해 연구를 맡긴다는 것 자체가 학자들에게 썩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지.”
밀러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치익, 하고 꽤 구수한 담배 냄새가 베버의 코를 간질였다.
“그래서, 어떤 목적입니까?”
“인종. 그리고 식민지 문제.”
“······예?”
베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런 그를 향해, 밀러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식민지는 정말로 제국의 경제에 긍정적인가, 그리고 인종 차별은 사회경제에 이익이 되는 현상이 맞는가.”
이것을 검증해 달라.
밀러는 그렇게 말했다. 잠시 그를 멍하니 보던 베버는 생각했다.
차라리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걸 증명하는 게 낫겠다고.
***
“그러니까, 밀러 씨가 불러서 왔다고요?”
“예! 작가님이 독일에 계신 동안, 마치 집에 계신 것처럼 편안한 관광이 되도록! 제가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흐으으음.
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위아래로 훑었다.
내가 이 양반이 영국에 있는 동안 오스카 와일드랑 노는 걸 보면서 확신을 한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천재들은 자기 분야 외에는 굉장히 어수룩하다는 거다.
솔직히 파울리네 부인 같은 참한 사람을 만났으니까 이 철부지 도련님이 사람 꼴 하고 다니는 거지, 아니었으면 오스카 와일드 mk.2······ 음, 이건 좀 심하니까 대충 음악 싸는 기계 정도로 퉁 치자.
아무튼.
“뭐, 현지 안내인이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긴 하겠습니다만.”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뮌헨으로······.”
“아니, 이쪽 일 아직 안 끝났는데 뭘 벌써 움직여요.”
일이 끝나도 독일 로스차일드 본가 쪽에 감정의견서도 제출해야 한다.
내가 정식 감정사는 아니라서 그렇게 중요하거나 정해진 양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밀러 씨나 로스차일드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이런 건 필수라고.
게다가 이게 나름 초대받아 온 것인 만큼, 빌헬름 총가주나 라이오넬에게 인사도 하고 움직여야 하기도 하고.
물주이기도 한 만큼 걸리는 부분이 꽤 많단 말이지.
“으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작가님께 새로 낳은 아들을 한번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예? 득남하셨습니까?”
“예! 저희 슈트라우스 가문을 이을 후계자입니다! 사진은 찍어 왔지요!”
리하르트는 그렇게 말하며 아주 귀여운 남자 아기 사진을 보여 주었다.
흑백인데다 지쳤는지 쿨쿨 자고 있는 사진이지만, 귀엽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쁘네요. 이름은요?”
“프란츠(Franz)입니다. 프란츠 한스 슈트라우스요.”
······한스?
나는 잠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보았다. 그러자 슈트라우스는 정말 아쉽다는 듯 말했다.
“사실은 한스 프란츠 슈트라우트로 짓고 싶었는데, 아버지 눈치가 보이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작가님.”
“그······ 아뇨. 됐습니다.”
내 소설 주인공 이름이 왕족 이름에 붙더니, 이제는 내 이름이 독일인 이름으로 붙는구나······ 나름 발음이 비슷하다지만 참. 허허.
아무튼 남은 오페르트 컬렉션 감정 일을 끝내고 돌아온 뒤에 마저 이야기를 들어 보니, 슈트라우스는 독일에서 나름 잘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오페라단과 계약해서 [피터 페리>의 사보이 오페라도 대규모로 재편해서 공연해서 성공했고, 그 경험을 살려 새로 작곡한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과거의 실패를 묻어 버릴 만큼 아주 고평가를 받았다고.
흐음······ 그 교향시가 그거지? 영화나 애니에서 가끔 웅장한 등장에 쓰이는 빠밤~ 빠밤~ 빠! 밤!하는 팡파르.
명작 SF 영화 오프닝 OST에서 쓰여서 전설이 된 음악이라고 알고 있다.
게다가 이름이 ‘차라투스트라’란 말이지.
나는 내심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목을 보니, 여전히 니체 철학을 공부하고 계신 모양이군요.”
“아, 예! 그러고 보니 작가님도 니체이즘(Nietzscheism)에 조예가 깊으셨지요.”
“대단히 인상 깊은 철학이긴 하니까요.”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21세기에서 대중예술, 특히 한국에서 웹소설을 업(業)으로 하는데 니체 철학을 반대할 수는 있어도 모를 수는 없다.
일단 슈퍼맨(Superman)부터가 니체 철학의 위버맨쉬(Übermensch)에서 유래한 이름이기도 하고, 일본 만화도 90년대부터 여러 S급 명작들이 그쪽 철학을 담아서 성공했었지.
한국에서도 1세대 판타지의 개파조사께서 니체 철학을 주제로 하시면서 상업성까지 잡은 케이스니까 말이다.
당연히 나도 그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었고······.
“특히 [던브링어>에서 주인공의 철학을 보았을 때는 정말 감탄했습니다! 아를레키노(Arlechino)가 주인공을 조롱할 때 이렇게 말했었죠? ‘오, 친구여! 그대는 어찌하여 이 죄악의 도시를 감싸는가. 그렇게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하얀 뼈가 드러나 바람에 스치면서도! 그대가 경애해 마지않는 신을 위하여?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가치 있는 전리품과 승리를 주는 강대한 적이라서? 그도 아니면, 그 저주받을 고행이 추한 복수를 정당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인가! 말해 다오, 친구여!’라고요. 그러자 거기에!”
“예?”
어? 음······ 뭐?
그 순간이었다.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슈트라우스가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그저, 사랑하기에.”
······뭐야. 저거? 설마 [던브링어>에 나오는 대사인가? 근데 난 저런 걸 쓴 적이 없는데?!
뭐가 저리 중2 병스러워?!
내가 혼란에 빠진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슈트라우스는 독일인인지 이탈리아인인지 모를 정도로 열정 넘치게 이어 말했다.
“‘그저 이 도시를 사랑하고, 그런 운명이 되어 버린 나의 업을 사랑하고, 그 업에 휘감긴 것마저 나이기에, 그저 사랑하는 것을 지킬 뿐이다. 사랑을 모르는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허깨비들아······!’ 아아, 그 문구에는 정말 감탄했습니다, 작가님!! 오랜만에 감정이 이끄는 듯했지요. 격정, 이라 해야 맞겠네요. 덕분에 영감이 마구마구 떠올랐습니다!”
그러니까, 그거 뭐냐고.
나는 제멋대로 책의 어구를 읊으며 제멋대로 흥에 겨워하는 슈트라우스를 잠시 멍하니 보았다.
뭐지? 내가 쓴 건 그렇게 길지 않은데······.
아니, 물론 자기 운명을 긍정하는 주인공의 대사인 건 맞다. 하지만 내가 쓴 건 그냥 ‘내 다리가 아직 서 있으니까.’ 정도였고, 그걸 지문으로 그런 자신을 긍정한다는 정도로 끝냈다고!
대체 이게 무슨······ 아 혹시?
“······혹시 독어판이었습니까, 슈트라우스 씨?”
“예! 아니, 저도 교향시 작곡하느라 좀 바빴었단 말이죠. 하하. 파울리네도 출산하느라 정신이 없다 보니, 아버지께 수집을 잠시 부탁드렸었습니다!”
“예에······.”
“후후, 주변에서도 평이 매우 좋습니다. 다들 좋아하더군요. 이런 식으로 삶의 고뇌와 인간으로서 사는 법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은 드물다고요.”
아아······ 무슨 일인지 대충 알겠다.
간혹 언어 넘어가면 이런 일이 생기지.
없던 어머니가 생긴다거나, 사랑을 속삭이는 말이 달이 아름답다고 변하거나 슈퍼울트라 화이트 티쓰가 백옥처럼 하얀 이가 된다거나······!
아무튼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나한테도 일어날 줄은 몰랐네.
하는 수 없잖아? 해외에 팔리는 작품들은 정말이지 극소수니까. 독일인들의 감성에도 잘 맞았다니 좋은 일이라면 좋은 일이겠다만.
‘이게······ 맞나?’
묘하게 복잡한 기분만은 어쩔 수 없었다.
“하여튼 그래서 작가님, 혹시 이런 것이 있는데, 관심이 있으십니까?”
“예? 이게 뭡니까?”
나는 슈트라우스가 내미는 팸플릿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나 독일어 모른다니까.
결국 난 그것을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로웨나 양에게 넘겼고, 그녀는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이번 주 토요일, 당신의 위버멘쉬와 영적인 하루를 즐겨보시겠습니까?>라고 되어 있습니다. 작가님.”
“······위버멘쉬요? 영적인 하루?”
뭔가 굉장히 사기꾼스러운 단어 조합인데······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로웨나는 참가비로 꽤 많은 돈을 내야 한다는 얘기까지 했다.
“이거, 사기 아닙니까?”
“아하하. 아닙니다. 그저 후원금의 일종이죠.”
그게 더 사기꾼스러운데. 정확히는 뭔가 사이비스러운 뭐시기 같은······ 그렇게 떨떠름한 나에게, 슈트라우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사실 매주 토요일, 바이마르에 있는 니체 선생님 댁에서 사교 파티가 있습니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거기서 니체 선생님을 뵐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뭐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