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34)
영국, 런던.
“아구구구······.”
6월 22일. 경사스러운 60주년 당일에, 위대한 버킹엄 궁전에서 들릴 거라 예상하지 못한 소리였다.
그것이 심지어, 가두행렬을 마치고 돌아온 빅토리아 여왕의 목소리에서 나왔다면 더더욱 그렇다.
여왕의 막내이자 대영 제국의 제5 황녀, 베아트리스 공주는 그런 자신의 어머니를 부축하면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어마마마, 괜찮으세요?”
“후우, 후우······ 괜찮다. 베아트리스.”
빅토리아는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떠올리지 못할 따뜻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제 딸을 보았다.
베아트리스는 간곡하게 어머니에게 주청했다.
“역시 가두 행렬은 관두세요. 어마마마의 몸이 버티질 못해요.”
“후후······ 어쩔 수 없지 않으냐.”
애정 어린 손길로, 베아트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은 빅토리아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어렸을 때부터 참 착한 아이였지.’
염치도 없는 한량이라 제 아비를 잡아먹는 첫째 에드워드나, 감히 어미를 배신하고 지들 멋대로 결혼해서 나간 다른 자식들과 달리, 결혼해서도 끝까지 자신의 곁을 지킨 막내.
그런 막내의 걱정이기에, 빅토리아는 그녀의 걱정을 다른 흑심 없이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저 대중들의 외침도 마찬가지였다.
─와아아아!!
─여왕 폐하 만세!!
─만수무강하소서!!
빅토리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남편이 죽은 뒤,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행복감이 차올랐다.
지금도 아른 거린다. 거리를 지날 때마다 본,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박수를 치며 열정과 환희로 가득한 모습을.
‘이래서 대중, 대중했던 건가?’
그렇게 많은 이들이, 마치 지금의 베아트리스처럼 어떤 이해타산이나 흑심도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그녀 한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환호하고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
어렸을 때부터 이해타산으로 점철된 사랑만을, 그리고 그나마 예외가 죽은 남편이자 동갑내기 외사촌, 앨버트 공이었던 빅토리아에게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순수하고 거대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쳐 준 이가 바로.
─승리의 여왕! 우리의 여왕!!
─신이시여, 여왕 폐하를 보우하소서!!
“······얼마나 더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예? 아, 요즘 소설을 읽고 계시단 이야기는 들었어요. 눈 나빠지니까 하지 마세요.”
“후후. 아직은 멀쩡하단다.”
그보다, 하고 빅토리아는 말했다.
“너도 이제 가서 쉬어야 하지 않니. 그만 가 보거라.”
“그건 그렇긴 한데요······ 그 이상한 장교들은 또 부르지 마세요. 충성심이 깊은 건 알겠는데, 음습하기도 하고, 전례에도 없잖아요. 분명 문제가 될 거에요.”
“후후.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란다. 자, 이제 가서 코 자렴.”
언제까지나 애 취급이셔. 이제는 아들까지 있는 자신을 그리 대하는 어머니가 못마땅했던 베아트리스는 입술을 삐죽이곤 여왕의 방을 나갔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는 전혀 다른 문에서, 레이스 대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천천히 여왕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여전히 공주마마께선 저희를 못마땅해하시는 듯하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명심하라, 너희는 짐의 눈이고 귀다. 짐이 죽으면 그대로 역사에서 사라져야 한다. 알겠느냐?”
“명을 받드옵니다. 폐하.”
순장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고 있던 레이스 대위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딸을 볼 때와는 천차만별의 분위기로, 차갑게 콧방귀를 뀐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보다, 로스차일드의 소가주는 아직도 보고를 안 보냈느냐.”
“마침, 오늘 도착했습니다.”
레이스 대위는 로스차일드의 극비 라인을 통해 전해진 보고서를 펼쳐 읊었다. 빅토리아는 그것을 경청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독일에는 무사히 도착한 모양이군. 흠, 빌헬름은 밀러 쪽에 더 관심을 보였다고?”
“예. 물론, 이건 로스차일드 측의 정보 교란일 수도 있기에 그 부분을 상정해야 합니다만······.”
“그건 나중에 교차 검증해 보도록. 그럼, 추가적인 정보는 없나?”
“예. 그리고 이건 그 밀러라는 상인에 대한 것입니다만─.”
이어진 레이스 대위의 보고에, 빅토리아는 이마를 확 구길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의 경제성이라니······ 그런 걸 짚어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이 지구의 패권을 위해 인도는 반드시 영국의 것이어야 하거늘.
“어찌할까요?”
“······일단 내버려 둬라.”
설령 경제성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해도 뭘 어쩔 셈인가.
빅토리아는 자신이 있었다. 어쨌든 그녀가 평생을 가꾼 대영 제국이 남들 앞에서 떳떳하지 않을 리 없다는.
“예. 그리고 이건······ 음, 좀 독특한 보고입니다만.”
“뭐냐.”
“그가 시체, 아니 병자 하나를 납치······ 했다 합니다.”
“······뭐?”
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빅토리아는 어이가 없어서 잠시 허핍한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
미리 말해 두지만, 난 내가 슈트라우스보다 니체 철학을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내가 배운 건 건너 건너 들은 번역인데다가, 철학과 강의를 들은 것도 아니고 그냥 책을 읽은 정도니까.
잘 쳐 줘도 고등학생 수준의 이해겠지.
하지만 그것이 결코 지금 프리드리히 니체의 상황에 대해 슈트라우스보다 모른단 뜻은 아니었다.
매주 일요일 아침을 책임지는 언빌리버블 같은 것으로 단련된 나는, 과거 위인들의 쇼킹한 비하인드들을 깊게는 몰라도 제법 많이 알고 있었다.
물론 지나치게 난잡한 내용인지라, 이야기 나오기 전까지는 떠올릴 방도도 없지만.
아무튼 니체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알기로, 니체 철학에서 보수주의나 반유대주의로 해석될 만한 문구는 대부분 걸러야 한다.
왜? 그거, 염병할 가필이니까.
나는 찌푸린 눈살을 펴지 못하며 슈트라우스에게 물었다.
“슈트라우스 씨. 슈트라우스 씨도 여기 참가해 보셨습니까?”
“몇 번은요. 하지만 운이 좋지 않다 보니 선생님은 뵙지 못했습니다.”
“······돈도 냈고요?”
“예, 뭐. 일반적인 기준에선 비싸긴 하지만, 하하. 아시다시피 저희 아버지가 좀 성공하신 분이라.”
“하아, 그렇군요.”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 호구, 오스카 와일드에 이어 또 당했구만.
“사기입니다.”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마 앞으로 제아무리······ 설령 억만금을 주더라도 슈트라우스 씨는 니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을 거란 뜻이죠.”
“예,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왜냐하면─ 프리드리히 니체는 지금, 식물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니, 거기에 가깝다고 해야하나?
19세기가 낳은 인류 최대의 지성 프리드리히 니체는 철학자들이 흔히 그렇듯 말년에야 인정받는데, 정작 그 직전에 뇌연화증이 와 버렸다.
손을 씻어야 한다는 것도 나이팅게일 여사가 대가리 깨 가면서 확립해야만 지켜졌던, 이 19세기의 처참한 의학으로는 도저히 고칠 수 없었던 병이고, 그래서 인사불성이 돼서 10년 이상 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즉, 슈트라우스 씨가 명성을 듣고 탐구하기 시작한 시점에 이미 니체 선생님은 사실상 돌아가신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을 겁니다.”
“그, 그럴 수가?! 하지만 그러면 이 사교 파티는요?!”
“팸플릿을 자세히 봐주시겠습니까? 예, 그 호스트 이름요.”
“그, 그러니까······.”
엘리자베스 니체.
식물인간이 된 니체를 물심양면으로 간호한······ 뒤틀린 황천의 얀데레 브라콤 여동생이다.
오빠를 돌보면서 그의 저작들을 정리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문제는 그 뒤다.
빌어먹게도 니체의 글을 제멋대로 가필하거든.
심지어 거기다 반유대주의와 전체주의, 파시즘을 옹호하는 왜곡까지 더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간 저 세 문구와 독일이라는 키워드······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그 설마가 맞다. 엘리자베스 니체는 골수급 뻐킹 나치였으니까.
히틀러한테 오라비가 쓰던 지팡이까지 선물했었다지, 아마.
히틀러와 외계인이 들어가면 시청률이 뛰는 프로그램인 만큼 당시 그 에피소드를 보면서 벙쪘었지.
아무튼.
“그럼 이 사교 파티는······!”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니체 선생님을 동물원 판······ 원숭이 취급하는 파티겠죠.”
나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판다라고 하려 했는데, 이 시대에 판다가 알려졌는지는 몰라서 말이다.
그리고 이런 사기 수작질을 볼 때, 아마 진짜로 한 번도 안 나오진 않았을 거다.
대충 내가 먼저 풀어 버린 다단계 사기와 비슷한 느낌이겠지.
그러니까 공범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실적도 좋고 별 불만도 안 드러낼 것 같은 사람들에게만 ‘당신에게만 특별히’라면서 보여 준다거나 말이다.
말하다 보니 리딩방과 더 비슷하긴 하네.
아무튼 뭐, 아직 폰지 사기도 없는 시대니 그렇게 정교한 사기일지는 직접 확인해 봐야겠지만─
“뭐, 아무튼 대충 그런 겁니다.”
굳이 내가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으려나.
물론 니체의 사정이 무척 딱하긴 하다. 귓가에다가 헤일 뭐시기라고 외칠 것 같은 그 퍼킹 나치가 꼴 받긴 하지만─ 여기는 독일.
내가 무슨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도 아니고, 힘도 없는 만큼 이국에서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주변 인물을 챙기는 것일 뿐······.
그러니 슈트라우스도 이런 쓸데없는 데에 돈 쓰지 말고, 니체 철학을 연구하고 싶다면 어디 대학교 철학과 쪽을 알아보라고 하려던 그때.
“그렇다면, 역시 구출해야겠군요!”
“······예?”
뭐라는 거지, 이 음악가는?
어이없어하는 내 시선을 여과 없이 받으며, 슈트라우스는 당당하게 말했다.
“세상에, 니체 선생님 같은 위대한 지성이 그런 끔찍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니! 작가님 아니었으면 저는 애꿎은 사기꾼들만 후원하는 바보가 됐겠군요!”
아니, 지금도 충분히 바보 같은데요.
나는 그런 생각을 한껏 담아 말했다.
“슈트라우스 씨? 그, 구출하신다는 말씀인즉? 누굴요?”
“그야, 당연히 니체 선생님이죠!!”
슈트라우스는 젊은 패기라고 해야 하나, 이상주의라고 해야 하나······ 그것을 당당히 드러낸 목소리로 말했다.
예의, 별이 빛나는 눈을 반짝이면서 입으로는 똥을 싸니 내가 미치겠다.
“사람의 업적에는 마땅히 그에 따르는 보상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행히 저희 집은 돈은 좀 많습니다. 저도 아직 사람 둘, 셋 정도는 충분히 부양하면서 살 수 있을 정도로 잘 벌고 있고요! 거기에 한 사람 추가될 뿐입니다!”
당당히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내 골이 다 아파졌다.
아니 그거, 님 돈이 아니라, 님 부모님 돈이라면서요.
하지만 그거 이상으로.
“······일단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건지는 알고 계시죠?”
“왜 말이 안 됩니까?”
“아니, 그게 그.”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래, 금수저라 돈은 많아서 길잃은 고양이처럼 정신 잃은 니체 씨도 데려올 수 있다 치자.
하지만 세상에는 법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슈트라우스가 뜬금없이 여동생에게서 그 오빠를 말도 없이 데려오면, 법적으로는 아무리 해석해도 그냥 납치다.
“그리고 솔직히 뇌연화증이라는 병은 뇌 조직 자체가 붕괴, 사멸하는 병입니다. 사실상 거기 있는 건 니체 선생님이 아니라, 시체에 가까운 무언가지 니체 선생님이라기엔─.”
“작가님, 걱정해 주시는 건 알겠습니다.”
그때였다.
놀랍게도 슈트라우스가 내 말을 틱 끊고 말했다.
그 순딩이 호구 리하르트가! 내 말을 끊었다고!
“하지만 작가님, 솔직히 말해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세요.”
“물론 제가 니체 선생님을 구하려는 건 그 사람이 프리드리히 니체라는 위인이고, 개인적으로 존경하기 때문이 맞습니다.”
내가 충격에 빠진 사이, 슈트라우스는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제가 니체 선생님에게, 그리고 다름 아닌 작가님께 배운 도덕이 그래서이기도 합니다.”
예? 나요?
나는 뜬금없는 말에 멍하니 슈트라우스를 보았다.
내가 도덕을 가르쳤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지만 슈트라우스는 음악 얘기를 할 때 이상으로 반짝반짝 작은 별이 빛나는 눈으로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페터였다면, 그리고 에드문트 이어하트였다면─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이 이런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그냥 두고 보겠습니까?”
“······.”
나는 그 반짝이는 눈을 향해 ‘그건 소설 주인공이니까······.’ 따위의 말을 하지 못했다.
딱히 슈트라우스가 현실을 못 보는 과몰입 씹덕이라 그런 게 아니다.
그건 설사 현실성이 없다 하더라도 정론이었으니까.
심지어 내 작품에 녹아든 내 도덕을 진심으로 믿고, 그걸 직접 실천하려는 사람에게 도저히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보면 감동적일 수밖에 없기도 했고.
“안심하십시오. 말씀드렸다시피 돈은 많습니다. 작가님께 폐를 끼칠 일은 없을 겁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폐는 진작에 끼치셨으니까요.”
제 계획을 줄줄이 읊어 놓은 시점에서 끝난 거다.
후, 할 수 없지.
나는 한숨을 탁 쉬며 말했다.
“로웨나 양?”
“예, 작가님.”
“총가주님께 면담 좀 신청해 주세요.”
그래, 뭐. 까짓거.
안 그래도 일 끝나고 심심하기도 했고.
솔직히 니체, 만나 보고 싶긴 하잖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