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35)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바이마르.
매주 토요일 그랬던 것처럼, 그날도 시의 한 편에 있는 작은 2층짜리 집에선 화려한 사교 파티가 열렸다.
집의 현판에는 당당히 니체 문서 보관소(Nietzsche─Archiv)라고 적혀 있었으나, 그들 중 그 누구도 그 문서 보관소에 일체 문서 보관을 위한 밀폐 시설도, 책을 보호하기 위한 유리 관물함도 거의 없다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들, 이렇게 저희 오빠를 위해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우리야말로 영광입니다, 푀르스터(Förster) 부인!”
“위대한 독일의 철학자와 한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파티의 호스트부터가 딱히 그런 걸 신경 쓰지 않고 있으니까.
화려한 옷을 입고, 값비싼 와인을 들이고, 서적 보관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음식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았다는 점에서 이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런 쓸데없는 것 대신, 호스트─ 엘리자베스 푀르스터─니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저.
‘후후. 멍청한 녀석들. 덕분에 오늘 장사도 성황이네.’
결코 적지 않은 파티 참가비를 아낌없이 지불하며, 만날 수도 없는 그녀의 오빠를 만나는 상상을 하는 망상가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후원금을 빨아 먹을까.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사실, 저희 오빠는 참 불쌍한 사람이지요.”
푹 파인 옷을 입고, 다 드러난 가슴에 손을 얹으며 하는 말도 반쯤은 대본이었다.
“저희 아버지는 정신이상자였어요. 독실한 목사면서도 설교 도중에 발작을 일으키는 등 간질이 있었고, 그럴 때면 폭력을 마구 휘둘렀지요. 그 바람에 저희 동생 요제프도 일찍─.”
거짓말이다.
그들의 아버지, 카를 루트비히 니체가 종종 발작을 일으키긴 했겠지만, 그것도 어머니에게 주워들은 것일 정도로 어렸을 적의 일.
남매가 기억이 생기기 전에 이미 진즉 돌아가셨다.
루트비히 요제프 니체가 죽은 것도 아마 다른 이유였을 것이다.
“슐포르타에서도 학교 폭력에 시달렸지요. 그 수도원과 군대를 합쳐 놓은 것과 같이 엄격한 학교에서, 오빠는 향수병을 앓았고, 폭력적인 유대인들은 저희 오빠를 괴롭혔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고,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천재성을 드러내서 수석을 차지했죠─.”
이 역시 거짓말이다. 슐포르타에서 향수병을 앓았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프리드리히 니체는 곧 적응했다.
학교 폭력의 피해를 입은 적도 없다. 엘리자베스는 그 학교에 유대인이 다니고 있었는지 어떤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숨도 쉬지 않으며 그런 레퍼토리를 자연스럽게 끄집어냈고, 교묘하게 반유대주의까지 끼워 넣었다.
“흐흑, 죄송해요. 눈물이 북받쳐서 더 이야기할 수가 없군요. 잠시 세수 좀 하고 올 테니, 여러분은 자유롭게 즐겨 주시기 바래요.”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부인.”
왜냐하면.
“허어, 위대한 천재에게 그런 아픔이 있었을 줄이야!”
“맙소사, 역시 유대인들은 위인을 핍박하는 천박한 민족이군요!”
“슐포르타도 그렇지요. 이젠 다 낡은 그런 학교가 뭘 안다고!!”
사교 파티에 모여든 저 파리 떼들이 그걸 원하니까.
세수하는 척, 파티장의 문밖에서 엿듣던 엘리자베스는 유대인과 기존 독일의 구태를 씹고 헐뜯으며 과열되어 가는 사교 회장의 분위기에 히죽 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니체이즘(Nietzscheism)을 이해할 머리도, 생각도 없다.
그저 자신들이 원하는 ‘니체’라는 철학자 우상에게, 각자 원하는 이상적인 철인(哲人)을 끼워 넣고, 멋대로 기대할 뿐.
‘머저리들.’
그러니 그런 이들의 돈을 조금 공유받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테지.
엘리자베스 니체는 그런 그들을 속으로 조롱했다.
감히 책으로만 얼핏 철학을 배웠을 뿐인 그들이 대체 뭘 안다고.
역시 니체라는 성인의 후계자, 베드로이자 사도 바울이 될 인재는 오로지 그의 여동생인 자신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곳을 니체에게 봉헌된 바티칸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오라비의 사상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친히 주석을 달고 니체이즘을 퍼트리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파티장으로 들어가던 그때였다.
그녀의 눈에 평소에도 이상했지만, 평소보다 더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작자가 보였다.
만약 그가 저명한 호른 연주가의 아들이자,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작곡가이자 지휘자가 아니었다면 당장 쫓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름값과 돈은 이용해야 하기에, 엘리자베스 니체는 경멸을 숨기고 웃으며 다가가 말했다.
“어머나, 슈트라우스 씨? 안색이 안 좋으시군요.”
“아, 예. 그······ 엘리자베스 씨. 하, 하하. 요즘 일이 좀 바빠서요.”
“흐음.”
엘리자베스는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독일 음악계의 유명인 혹사는 유명하긴 하니까.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작곡하신 교향시를 연주하시는 걸 들었어요. 정말 훌륭하던걸요?”
“예? 아, 하하하. 가, 감사합니다.”
“뭘요. 그런 명곡을 저희 오빠에게 헌정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 음?”
그때였다. 그녀는 그제야 슈트라우스의 옆에, 처음 보는 동양인이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얼굴을 확 일그러트렸다.
‘더러운 원숭이가 왜 여기에?!’
단번에 쫓아내지 않은 이유는, 그나마 그 동양인의 얼굴이 꽤 하얀 편인데다 이목구비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젊은 남자라는 점.
그리고 한눈에 봐도 굉장히 잘 차려입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자는 둘째 치더라도, 후자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뜯어먹을 돈이 많다는 뜻이니까.
그렇기에 엘리자베스 니체는 애써 만든 웃는 낯으로 슈트라우스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슈트라우스 씨, 옆에 계신 동양 신사분은 누구시죠?”
“아, 이분은, 그, 한─.”
“한?”
그때였다. 슈트라우스가 짧게 비명을 지르는 듯하더니, 동양인의 옆에 있던 금발 여인이 영어 억양이 많이 나는 독일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분은 일본 출신의 사업가로, 타케 이테아시(武井手足)라는 분입니다. 저는 이분의 비서인 로웨나 그린이고요.”
“아······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반괍숩네다.”
빙긋 웃은 동양인은 기묘한 억양의 독일어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할 줄 아는 말은 딱 그것뿐이었는지, 곧이어 영어로 비서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일본에서도 니체 선생님의 명성이 드높은지라, 독일 쪽으로 출장을 오시면서 꼭 한 번 이 파티에 참여해 보고 싶었다 합니다.”
“정말인가요? 일본에도요?”
“예. 그러니까······ [선악의 저편>을 무척 재미있게 읽으셨다고 하시는군요. [도덕의 계보>도요.”
“일본에는 아직 출판 계약을 딴 적이 없는데······ 아무튼 알겠습니다.”
이상한 점은 있지만,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썼다간 이 장사를 못 한다.
그렇기에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주제로 대화를 나눠보려 했다.
그때.
“엘리자베스 씨! 여기 와인이 다 떨어졌다는데요!”
“······죄송합니다. 저는 잠시 가 봐야겠네요.”
“괜찮습니다. 다녀오시지요.”
그렇게, 엘리자베스는 일단 잠시 주방으로 가보아야 했다.
그래서.
“······[슈트라우스 씨.>”
“[아, 아앗 죄, 죄송합니다! 작가님!>”
“[됐고요.>”
타케 이테아시라는 젊은 일본인 사업가가,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을 듣지 못했다.
“[긴장이나 좀 푸세요(Take it easy). 예?>”
***
며칠 전, 프랑크푸르트 로스차일드 본가.
“[슈트라우스? 정말 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씨란 말이오?>”
“[하하, 처음뵙겠습니다. 로스차일드 남작님.>”
“[반갑소! 아버님은 잘 지내시오? 지난 음악회에서 신작 정말 잘 들었소!!>”
분야도 다르고 연령대도 다르지만, 어쨌든 같은 나라의 셀럽이라 그런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빌헬름 로스차일드는, 마치 원래부터 잘 알던 사이처럼 정겹게 독일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건 그렇고, 두 사람이 무슨 일로 같이 오셨소?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이미 [페터 페리>의 연극 일로 만났다고 했던가?>”
“아, 예. 그러잖아도 그래서 말씀드릴 생각이었습니다만, 그러니까─.”
처음에는 빌헬름 폰 로스차일드도 나와 슈트라우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었다.
영국에서 어떻게 만났는가부터 시작해서, 오스카 와일드에 관련된 이야기도 가볍게 했는데도 재밌어했고.
문제는 니체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부터.
‘유대 금융 음모론’의 중심이자, 아마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남자일 그는 충격과 공포, 그리고 불신의 눈으로 나를 보기 시작했다.
“[그게······ 사실이요?>”
“제가 아는 바대로라면 그렇습니다.”
“[아니, 나도 프리드리히 니체는 알고 있고, 그가 극심한 병환을 앓고 있는 것까진 알고 있었소. 알고는 있었지만······.>”
음모론 같죠? 나는 쓰게 웃으면서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금융으로 세상을 주무르니 뭐니 해도, 결국엔 이 양반들도 평범한 도덕률을 가진 그냥 사람이라니까.
그리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슈트라우스가 급발진하며 말했다.
“[그래서, 저는 역시 니체 선생님을 구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출 말씀이오?>”
“[예!>”
잠시 혼란스러워하던 빌헬름 폰 로스차일드는 이내 안색을 딱딱히 굳혔다.
그리고 숙고한 뒤 천천히 ‘글쎄,’라고 말했다······ 고 로웨나 양에게 통역을 들었다.
“[물론 나도 니체의 상황에는 더없이 동정적이오. 그런 참혹한 일이 그 어떤 자유인에게도 있어선 안 되지.>”
“[그렇다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 일이 법률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오.>”
법률을 피해 가려면 법률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금융인인 빌헬름 로스차일드는 반쯤 법률가이기도 했고, 그래서 진지하게 말했다.
“[일단 한슬로 진 작가에게 묻겠소. 프리드리히 니체가 인사불성인 것은 확실하오?>”
“거동이 불편한 건 확실할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입증할 방법은?>”
“······없죠.”
그건 그냥 미래에서 알게 된 정보니까.
사실 지금 슈트라우스랑 로스차일드가 내 말을 듣고 있는 것도 오로지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인 나를 믿고 있는 것에 가깝다.
이래서 사람이 평소에 정직해야 한다니까.
“[그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면 우리는 그녀를 건들 수 없소. 아니, 잘못했다간 오히려 말벌집을 건드는 셈이 되겠지.>”
그런 부정적인 말에 슈트라우스의 어깨가 내려앉는 순간.
그는 이어서 ‘하지만’이란 사족을 붙였다.
“[만약 그 증거만 얻을 수 있다면, 우리 로스차일드의 법률가들이 그 여동생을 가정학대로 고소, 고발해서 탈탈 털어 버릴 수 있소.>”
그러니, 라고 로스차일드는 말했다.
“[뭐든지 좋소. 니체의 친필로 적힌 도움 요청,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니체 본인······ 그 무엇이든 가져오시오. 그것만 있다면 뒤처리는 우리 로스차일드 가문이 모두 처리해 줄 터이니.>”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아니, 뭘 알았다는 거야.
로웨나의 통역을 들은 나는 빌헬름 로스차일드와 함께 어이없다는 눈으로 슈트라우스를 보았다.
그러자 슈트라우스는 당당히 말했다.
“그러면 작가님, 가시죠!”
“······어딜요?”
“어디긴요, 당연히 잠입이죠!!”
이어 [던브링어>와 [셜록 홈스>에서 보고 꼭 한번 따라 해 보고 싶었다는 슈트라우스의 말에, 나는 진지하게 저 오스카 와일드 mk.2의 뒤통수를 후려갈겨야 하나 고민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