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36)
“이럴 거면 그냥 저와 로웨나 양만 오는 게 나았겠네요.”
나름 극 연출도 한다는 사람이 이리도 발연기여서야······ 나는 싸늘한 시선으로 슈트라우스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그는 입술을 깨물며 의분을 토했다.
“죄송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이라는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끔찍한 거짓말을 늘어놓는다는 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흠.”
뭐, 심리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니체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도 눈에 보이거니와, 슈트라우스는 제법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눈치니까.
가족을 학대하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못 받아들인다고나 할까? 아니면 이해할 수 없다고 해야 하나.
나? 나도 물론 역겹기 그지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뭐······ 난 그래도 이런 쪽에는 이런저런 사례를 알고 있으니까 면역이 있다는 느낌?
왜, 뉴스 시사 면에서도 자주 나오고 개념 없는 부모나 가족의 사례를 보이는 프로그램들도 많았으니까.
게다가 슈트라우스, 이 사람은 모르겠지만 이쪽은 대놓고 ‘원숭이’ 취급하는 눈빛을 하더라.
가지각색의 레이시스트들이 난립하는 현대에서도 저런 직관적이고 순수한 눈빛은 본 적이 없는데······.
아무튼, 그런 내가 봐도 엘리자베스 니체의 모습은 굉장히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저 말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조차도 순간 혹할 정도로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는 게······ 내가 상대하는 게 엘리자베스 니체가 아닌 악마의 주둥아리를 가진 괴벨스가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들 정도였으니.
아니, 필드몹이 이러면 보스몹은 대체 어떻다는 거야? 라는 생각에 소름까지 돋더라.
아무튼 저건 명백히, 어떠한 ‘경지’에 오른 솜씨였다.
리플리 증후군? 아니면, 사기꾼답게 몇 번이나 반복해서 사기를 치다 보니 몸에 익은 걸까?
어느 쪽이든 실제로 보니까 더더욱 상황이 심각하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면 작가님.”
“예. 가죠.”
나는 로웨나 양과 함께 주변을 쓱 훑었다.
예상은 했지만, 아무래도 이 임무에서 박스에 숨은 잠입꾼 역할을 맡아야 할 건 나와 로웨나 양 쪽인 것 같으니까.
집안 구조를 모르는 게 좀 문제이긴 하지만 어차피 슈트라우스, 이 양반의 성향을 생각한다면 그런 쪽으론 알맞지 않다는 게 확연했으니까.
그 대신에.
“저는 그럼 그사이 저 여자를 붙잡아 두겠습니다.”
결연하게, 마치 [던브링어>에서 ‘여기는 내게 맡기고’라며 에드먼드를 앞으로 보내는 라이트레이 같은 표정을 지은 그는 다시 엘리자베스 니체에게 다가갔다.
이제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투어 콘서트에 대한 상담을 시작할 것이다.
저 돈에 미친 뒤틀린 황천의 브라콤이 그걸 무시할 수는 없겠지, 만.
씁, 솔직히 괜찮을라나 모르겠네. 슈트라우스 저 인간, 또 떠는 거 아냐? 발 연기 때문에 일을 그르치기 전에,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로웨나 양과 함께 화장실을 가는 척하면서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딱히 모습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 사람은 원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이해하려 하니까.
펼쳐진 게 백인 미녀가 동양인을 모시는 굉장히 PC적인 모습일지라도, 저들의 눈에는 그저 동양인 사용인을 데리고 다니는 특이한 영애 정도로 믿을 테니.
슈트라우스 씨였다면 밀회라도 하나? 여길지 몰라도, 그 대상이 나니까 정말 말 그대로 잠시 나갔다 오나 보다 하면서 넘어가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정말 편하네.
“그러면 작가님, 위층으로 가는 계단은 어디쯤 있을까요?”
“구조상으로 보면 대충 최소한 이쪽에는 공간이 있어야 할 겁니다.”
로웨나 양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래 보여도 작품을 쓰면서 건물 구조에 대한 조사는 꽤 많이 했다. 회사원물이었는데 거기가 건설회사였거든.
난 주변을 쓰윽 둘러봤다. 그러며 밖에서 들어오면서 봤던 형태를 생각해 보았다.
그륀더차이트(Gruenderzeit) 양식의 2층 건물. 볼록한 철(凸) 모양으로 튀어 나와 있는 이 건물은 구조상 단순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창문이 많은 특성상 채광이 좋을 수밖에 없는데.
‘2층에, 유독 어둡게 되어 있는 방이 있었지.’
그것도 검은 커튼까지 쳐 가면서.
누가 봐도 수상할 수밖에.
“자, 이쪽이 맞네요. 그럼······.”
“[거기, 누구시오!>”
그때 저 건너편에서 건장한 남자 하인이 이쪽을 손가락질하면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로웨나는 살포시 몸을 틀어서 복도의 안쪽으로 이동했다.
빠르다.
드레스 차림인데도 감쪽같은 몸놀림에, 저쪽은 그녀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 한 듯했다.
그리고 저쪽에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여긴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누군진 몰라도 당장 여기서 나가 주십시오.>”
역시. 나름 잠입하다 들킨 상황이었으나, 난 되레 작게 미소를 띠었다.
이렇게까지 지키고 대비를 한다는 것은 이곳이 우리가 찾던 ‘그곳’이 맞다는 소리니까.
보통 게임이었다면 머리 위에 느낌표!가 뜨면서 전투로 적을 침묵시켜야 할 타이밍.
그래서 난 재빠르게.
“아, 저, 그······ [화, 화장실······!>”
“[뭐야, 왜 이런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동양인이 이런 영광된 파티에 들어왔······! 크흠! 화장실은 저쪽이다.>”
나는 날 수상쩍게 보다가 마르크화 지폐 몇 장을 집어넣어 주자, 곧장 화장실 방향을 가리키는 하인을 보며 몰래 씨익 웃었다.
좋아, 이래서 슈트라우스가 아닌 내가 잠입하기로 한 거지.
저명한 인사면서 고풍스러운 독일어를 구사하는 슈트라우스가 어벙한 척 연기하는 것과 딱 보기에도 외국인, 그것도 동양인인 내가 어눌한 말투로 연기하는 것.
누가 봐도 얼버무리기는 쉽다.
“[가, 감사합뉘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호다닥 상대가 말하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아니, 가는 척을 했다.
그 순간.
쩅그랑!
“[뭐야, 무슨 일이야!?>”
“[꺄악!?>”
“[젠장, 어이, 동양인! 당장 화장실이나 가, 알았어!? 돌아왔을 때도 여기 있으면 혼쭐날 줄 알아!?>”
그리고 그사이 뒤쪽 꺾여 있는 복도 너머에서 로웨나가 장식되어 있던 도자기를 깨면서 시선을 분산시켰다.
관리자라 그런지는 몰라도 바로 문제가 생긴 곳으로 달려가는 하인의 모습이 매우 프로페셔널하다.
응, 아주 훌륭해.
동양인이 상대가 그런가, 정말 이상할 정도로 경계심을 잘 풀어준다.
조선시대에 괜히 노비가 누설하는 일이 많았던 게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덕분에 이쪽은 편하게 갈 수 있지만.”
나는 은근슬쩍 화장실이 아닌, 원래 향하려고 했던 복도를 지나 안쪽으로 쏙 들어가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윽.”
2층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악취가 잔뜩 풍기고 있었다. 나는 손수건으로 코를 막으며 천천히 발을 옮겼다.
1층과 달리, 2층은 마치 오래된 중세 RPG의 던전 같은 분위기였다.
어둡고 습하며, 무엇보다 손수건조차 뚫고 들어오는 끔찍한 냄새가 분위기를 지독하게 만들었다.
“아니, 무슨 어둠의 자식이라도 되나.”
나는 짐짓 투덜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창문세도 없는 동네에 창문을 저렇게 큰 걸 달아 놓고 커튼을 꼭꼭 다 쳐놨는지 모르겠다. 아, 엘리자베스 니체는 뻐킹 나치니까 어둠의 자식이 맞나?
난 품에서 작은 박등을 꺼내서,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이번 경매에 있던 컬랙션 중 하나인데, 크기가 주먹만큼 작아서 쓰기 유용해 보여서 빌렸다.
불을 붙이자 기름 냄새가 확 풍김과 동시에 원 모양으로 주변이 밝혀졌다.
그리고 2층의 어둠 속에서 비친 것은 다름 아닌······ 수많은 책과 편지 뭉치, 그리고 사진들.
서지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순수한 작가일 뿐인 나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감탄할 수밖에 없는 다수의 문헌으로 가득했다.
요컨대, 1층은 통째로 페이크. 엘리자베스 니체에게 있어, 진정한 ‘니체 문서 보관소’는 이 2층이란 뜻이다.
즉.
“이 중에 증거가 있다······는 얘긴데.”
우리가 엘리자베스 니체를 조져 버리는 승리 요건은 총 셋 중 하나다.
첫째, 프리드리히 니체에 대한 감금을 밝혀낸다.
둘째, ’니체를 만날 수 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사기를 쳤음을 밝힌다.
셋째, 니체의 사상을 왜곡했다는 사문서 위조의 죄를 밝힌다.
그리고 이에 대한 증거는 각각 다르다.
세 번째는 그녀가 멋대로 가필한 원고가 증거일 것이고.
두 번째는 인사불성이 된 니체 자신. 혹은 니체의 상태에 대한 의학 소견서 같은 것이 증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첫째는 좀 빡세겠지.
감금이라는 건 결국 니체 본인이 자유를 뺏겼다는 의사 표현을 법정에서 증언해야 할 테니까.
하지만 나는 니체가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안다.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못 하면 전자라도 후자와 마찬가지다.
아무튼, 제한 시간 내에 가능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래서 몇몇 외워 둔 필수 독일어들을 떠올리며 주위를 둘러 보는데······.
“새액─ 색.”
“······.”
악취와 함께 흘러들어오는 숨소리가, 자꾸 내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그 소리를 따라 눈을 돌리면, 침대에 누운 백발의 백인 노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머리와 콧수염이 제대로 정돈되지 않으며,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엉망진창에 초점은 맞는지 안 맞는지조차 알 수 없는 채 천장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내 직감이.
이 사람이 프리드리히 니체. 위대한 초월인 사상의 선구자이자, 아모르 파티(amor fati)의 개창자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반대로, 내 이성은 이 사람이 그렇게 위대한 사람일 리 없다고 외치고 있었다.
볼품없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는, 죽다 만 인간의 부스러기.
한때는 니체였을 지는 몰라도, 지금은 아닌 껍데기. 겉만 같아 보일 뿐 속은 전혀 다른 테세우스의 배가 바로 눈앞에 있는 살아 있는 시체라고 말하고 있었다.
“······후.”
어쩔 수 없지.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악취의 중심에 들어오니 손수건도 버티지 못할 정도라 호흡을 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긴 했지만, 어떻게든 해냈다.
“······선생님.”
나는 프리드리히 니체, 혹은 그런 것이었던 ‘것’에게 속삭였다.
어쩌면 부질없는 짓일 수 있다. 사실 뇌연화증이라는 병명을 생각하면, 내가 하는 짓은 고목나무에 말을 거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반응은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조심스럽게 욕창으로 악취가 나는 껍데기를 뒤로 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선생님.”
이미 늦었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쉬움을 참아내고, 박등의 불에 의지하여 서적과 서류를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최대한 빠르게, 하지만 그러다 놓칠 수 있으니 너무 서두르진 않게.
이것도 아니고······ 이건, 아니네. 끙. 이것······.
책장을 넘기고, 서랍을 뒤집는다.
그러다가.
“······빙고.”
난 책상의 구석에 꽂혀 있는 서류 뭉치를 발견했다.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은, 하지만 여기저기 니체 특유의 문구들이 어마무시한 악필로 적혀 있는 메모들의 모음.
그리고 마치 이를 따로 정리한 듯 반듯반듯한 전혀 다른 글자체로 쓰여 있는 종이였다.
찾았다. 역시 있었네.
1901년에 출간될 니체의 유고집, [권력에의 의지(Der Wille zur Macht)>.
정확히는 니체의 메모들을 모아 제 멋대로 기워 만든 엘리자베스 니체의 프랑켄슈타인.
본래 니체 철학의 요점 중 하나인 ‘힘에의 의지’는 쇼펜하우어의 ‘삶에의 의지’의 오마쥬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가 ‘욕망’이라면, 니체가 주목한 건 그 중에서도 더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 즉 ‘향상심’이다.
니체는 이 향상심을 토대로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고, 기존 가치를 멸시하라고 주문한다. 필요하다면 ‘폭군’의 배때지에 죽창을 찔러서라도.
괜히 니체가 망치 든 철학자란 얘기를 듣는 게 아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니체는 이 ‘힘’을 ‘권력’이라고 비틀고, ‘죽창 찔릴 상대로서 필요한’ 폭군을 ‘국가에 필요한’ 폭군으로 왜곡한다.
그리고 이게 파시즘과 섞이다가, 나치즘의 원류로서 니체가 오인사격 당하는 원흉이 되는 거지.
“괜히 뒤틀린 황천의 브라콤이 아니라니까······.”
나는 투덜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싶긴 했다. 책이 지나치게 빨리 나오긴 했으니까.
엘리자베스 니체가 히틀러의 의뢰를 받아 만든 글이라는 설도 있지만, 그렇다기엔 니체가 죽고 1년만에 나왔고.
무엇보다 엘리자베스 니체도 글을 쓰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그녀의 글은 조잡하다.
‘그’ 니체 철학의 힘을 빌려서 도작(盜作)했는데도 변변치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확실하지.
그러니 당연히 이쯤 초록이 있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 그 예상이 다행히 맞아떨어진 거 같다.
이 서류를 그녀의 다른 필적과 비교한다면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을 터.
“좋아, 이제 빨리 나가서 이걸 로스차일드 쪽에 전달만 하면······.”
그렇게 생각하며 서둘러 서류들을 품에 넣고는 박등의 불을 끄려고 한 순간.
“─뒤.”
“어?”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난 나도 모르게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뒤틀린, 황천(Twisting Nether)이라······ 확실히 엘리에게, 딱 맞는, 말이군.”
고개만 돌리고, 초점 잃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니체가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