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38)
당연하지만 니체가 죽은 건 아니었다. 다시 죽은 듯 잠이 든 것뿐이지.
19세기가 낳은 최고의 지성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1900년에야 마침내 영원한 잠자리에 들게 되니까.
뇌연화증은 미래에도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고, 이미 말기인 종료성 혼수상태까지 진행된 만큼 회복될 가능성은 희박하긴 하나······ 그래도 아직 3년 정도는 괜찮을 거다.
아니, 어쩌면 전보다 상황이 나아질 테니 조금 더 연명치료가 가능할지도 모르지.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전처럼 고통스럽게 죽진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래. 위대한 철학가에게 그런 쓸쓸한 죽음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자, 그러면 남은 문제는······.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난데.
독일어를 전혀 못 하는 나는 2층으로 올라온 독일 경찰들에게 붙들릴 뻔했다.
우악스러운 군사 국가의 경찰들이 군인이랑 크게 다를 리가 있나, 한국도 70년대에 그런 괴담 참 많았지.
다행히 그들은 내 몸에 접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딱히 나로부터 범접할 수 없는 거물의 기운이라든지, 흉흉한 살기 같은 게 있어선 아니었다.
그저 니체랑 너무 오래 붙어 있었더니 내 몸에서도 비슷한 냄새가 뱄을 뿐이다.
위버맨쉬의 가호 아닌 가호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
“[저분은 아니에요!>”
“로웨나 양!”
“[저분은 저랑 같이 온 사람입니다. 물러서 주세요!>”
로웨나 양이 꽤 높으신 분과 함께 올라와 준 덕에 별 탈 없이 빠져나올 수 있었다.
떨떠름하게 총칼을 내리는 경찰들을 보니 새삼 안도가 된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이것만으론 부족했을 거다.
19세기 유럽에서 유대인이 동양인의 신원을 보증한다니?
악마가 요괴의 보증을 서는 것과 비슷하다. 둘 다 네팔렘의 사냥감이란 소리지.
하지만 그게 통한 이유는 첫째, 로웨나 양이 어쨌든 ‘로스차일드’. 영·프·독에 추가로 오스트리아까지, 4개국의 경제를 장악한 천하제일 금융세가의 말석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아이고, 한······.”
“어허, 씁.”
“······작가님!! 괜찮으십니까?! 아니, 무슨 냄새가 이렇게······!?”
“죄송합니다, 슈트라우스 씨. 여기 갈아입을 옷 좀 찾아주세요. 외투만이라도.”
“아, 알겠습니다. [저기! 혹시 남는 옷 좀 찾아봐 주시겠습니까!? 사이즈는 이분 정도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하는 짓은 철부지지만, 어쨌든 이 양반도 독일 음악계의 차기 낭만파 장문인으로 손꼽히는 양반이란 말이지.
평범한 경찰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신분이다.
그런 슈트라우스가 나서서 나와 로웨나를 보증해 준 덕에, 우리는 무사히 폭주하려는 니체 팬덤의 시선에서 빠져나와, 바이마르 시 경찰서로 이송될 수 있었다.
사실 절차가 이송인 거지, 거의 호위에 가깝다.
그리고, 도착한 경찰서에는.
“오, 작가님!!”
“[어서 오시오! 두 분 모두 수고하셨소!>”
라이오넬과 빌헬름, 두 로스차일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입한 우리를 대신해서, 경찰이 내 신호를 빠르게 캐치할 수 있게 준비해 준 사람들이다.
이 모든 일은, 이들이 미리 바이마르 시 경찰서장을 포섭해 둔 덕에 이룰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솔직히 처음엔 반쯤 농담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오······ 설마하니 진짜로 이런 일이 있었을 줄은 꿈에도 상상도 못 했군.>”
보아하니 총가주님도 꽤 쇼크를 받으신 모양이다.
하긴, 그 유명한 철학자가 그런 고행을 겪고 있을 거라곤 예상하기 힘들지.
그는 뒤이어 무어라 중얼거림을 덧붙였다. 그러자 로웨나 양이 통역 대신 조용히 속삭여 주었다.
“엘리자베스 니체와 마주치셨다고 합니다.”
“아.”
로웨나 양의 말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까지 추하게 뭐라고 하긴 했었지.
그런 유대인 혐오자들이 제일 많이 퍼트리는 음모론 중 하나가 ‘로스차일드 배후중상설’이니, 그 로스차일드의 현 총가주 입장에서는 뭐랄까······.
버즈 올드린이 아폴로 음모론자를 팬 걸 생각하면, 가만히 계셨던 게 차라리 다행이겠지.
“[뭐, 그리 충격적인 건 아니오. 우리 유대인들이 받는 취급이라는 게 늘 그렇지.>”
빌헬름 폰 로스차일드는 쓰게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동양인인 나로서도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동양인이야 생긴 게 달라서 차별한다지만, 총가주도 그렇고 라이오넬 로스차일드도 그렇고. 서유럽 유대인은 그냥 생긴 것만 보면 그냥 영락없는 인도 아리아인이란 말이지.
로웨나 양에 이르러선 그냥 할리우드 금발 미녀라고 해도 믿을 지경인데······.
서로 안 밝히면 딱히 큰 차이 없는 사람들을 왜 그렇게 축구공 취급하는지 모르겠다.
외모지상주의면 차라리 이해라도 하지. 예쁘고 잘생긴 걸 좋아하는 건 사람의 본능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대에게 감사를 표하오.>”
빌헬름 폰 로스차일드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당황하고 라이오넬 로스차일드가 입을 떡 벌렸지만, 그럼에도 총가주는 그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저 끔찍한 여자의 무의미한 혐오가 니체의 위대한 사상을 타고 전 유럽에 퍼졌다면 우리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은 더더욱 심각해졌겠지. 그것을 막아 낸 것만으로도 우리 로스차일드는 귀하에게 크나큰 빚을 졌소.>”
“······제가 아니더라도, 진실은 언젠가 밝혀졌을 겁니다. 가주님.”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어쨌든 나도 수많은 언빌리버블 제작진을 비롯해, 진실을 밝히고 지식을 퍼트리려던 사람들 덕에 이 일에 개입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하지만 그런데도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 하지만 그것도 말 그대로 언젠가, 겠지.>”
그리고 그 사이,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는 그리 말하였다. 이번만큼은 나도 부정하진 못했다.
사실이긴 하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절 여기로 이끌었던 슈트라우스 씨에게 전하시는 게 어떠신가요.”
“[물론 슈트라우스 씨도 정말 감사하오. 하지만.>”
그리 말한 빌헬름 총가주는 고개를 들어 올리며, 씨익 웃어 보였다.
“[나로선, 당장 진실을 밝혀 준 자네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으니.>”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야 할 말이 없다만······.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빌헬름 폰 로스차일드는 껄껄 웃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잠깐 악수를 나눈 뒤, 빌헬름 총가주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러면 이제, 이번 일에 관한 보답을 해야겠는데.>”
“아니, 뭐······.”
“[자, 뭐든 말해 보시오. 우리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할 수 없는 것을 제외하곤 모조리 해 주지.>”
“어······ 음.”
글쎄, 뭐가 있으려나요.
‘그’ 로스차일드 가문의 총가주께서 그런 말을 하니까 되레 막연해서 뭐라 할 말이 없네.
대체 뭐가 필요하지?
그렇게 머리를 짚으며 잠시 고민을 하려는 찰나.
“한슬!! 이 사고뭉치가!!”
“미, 밀러 씨!?”
왠지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밀러 씨가 내 등짝을 후려치셨다.
“아니, 사고뭉치라뇨. 그렇게 말하면 제가 사고 친 것 같잖아요! 주범은 슈트라우스 씨라고요!”
“시끄럽네. 휘말려 들어간 시점에서 자네도 공범이야!”
“아니, 그건 그렇지만요!!”
나름 좋은 일을 한 건데, 정말 너무하시네.
아무튼 눈치 좋게 난입해 주신 밀러 씨 덕에 우선 당장 보답을 하겠다고 하는 내용은 보류가 되었다.
그래, 그런 건 원래 시간을 들여서, 잘 생각해서 청구해야 하는 법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 후회하지 말게.
─매 순간, 자네 스스로가, 제일 먼저 해야 한다고 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
병원으로 이송되기 전에 이야기 나눴던 니체, 그가 했던 말이 왠지 모르게 머릿속에서 감돌았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
그거라면 뭐─.
“······밖에 없겠지.”
영국에 돌아가면, 아무래도 할 일이 좀 많아질 것 같다.
***
물론 당장 영국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바이마르 경찰서를 들락날락하면서 증언도 해야 했고.
하지만 그렇다고 일이 안 풀렸다는 건 아니다.
되레 대체로 잘 풀렸다.
일단 프리드리히 니체 본인은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전액 치료비를 지원하여, 베를린의 프리드리히-빌헬름 대학교(Friedrich-Wilhelms-Universität) 대학 병원인 샤리테(Charité)에 입원했다.
듣기로 독일 최고의 명문 대학 병원이라는데, 혹시 모르지. 정말 좋은 병원에서 훌륭한 의사들의 힘을 빌리면 진짜로 조금이라도 깨어날 수 있을지도.
“[정말 고맙소. 덕분에 내 친구의 명예가 굴러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구려.>”
그리고, 간병인으로는 프란츠 오버베크(Franz Overbeck) 명예교수가 스위스 바젤에서 베를린으로 옮겨 왔다.
원래는 여동생인 엘리자베스 니체보다 훨씬 많이 프리드리히 니체와 깊이 교류했던, 말하자면 영혼의 친구 같던 분이라고 한다.
근데 엘리자베스 니체 때문에 그 교류가 끊겨 있었다고······ 무슨 편지를 보내든 그 망할 년이 왜곡할 게 뻔했다고 걸쭉하게 쌍욕을 하시더라.
“문서 보관소 쪽은요? 잃어버린 물건은 없나요?”
“바이마르 시 경찰들이 진정시킨 것도 있지만, 파티 손님들도 이성을 찾고 나선 질서 있게 행동해 줬다고 합니다.”
나는 라이오넬 로스차일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단순히 엘리자베스 니체의 사기 행각에 동조한 공범들이 아니다.
물론 그런 이들도 없진 않았겠지만, 그들 대다수는 단순히 속았을 뿐. 니체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소란스럽고 난장판이 된 상황에서도, 오히려 저서나 물건을 훔쳐 가거나 하진 않았다고 한다.
─여러분, 이성을 찾읍시다! 우리가 그 사기꾼에게 속아 헛돈을 썼을지언정, 니체 선생님께 배운 가르침은 헛된 것이 아님을 보여 줍시다!
그, 스웨덴에서 오신 금융인이라고 했나? 그분도 어지간히 충격받은 것 같던데. 그래도 어떻게든 이성을 차린 걸 보니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인물은 인물인가 보다.
“보관소 쪽은 아무래도 법적 사유재산이 맞다 보니 몰수와 경매까진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겠죠.”
“흠, 그런가요?”
“네, 보통은 그러겠지만······.”
저희가 누굽니까?
그는 빙긋 웃으며 그리 답하였다.
“저희 로스차일드 가문 뿐 아니라, 티엘 씨도 함께 나서면 시간이 좀 걸려도 무난하게 구매가 가능할 겁니다.”
“예, 그쪽은 믿고 있습니다.”
돈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일이라면 모를까, 돈으로 해결되는 일에 로스차일드가 나섰는데 해결이 안 될 리가 없지.
다만.
반대로 말하면, 돈으로 해결 안 되는 일들은 좀 있었다.
“그런데 그으······ 엘리자베스 니체 쪽이 선동을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그 아줌마 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나요?”
“아시잖습니까. 그런 쪽의 광기는······ 고작 이런 일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라이오넬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원래는 반유대주의 정도였던 그 아줌마가, 유대인인 로스차일드와 일본인인 내가 짜고 오빠인 니체를 납치했단다.
허허, 참. 웃기지도 않는 소리네.
“다행히 작가님의 신원이 드러나지는 않아, 대충 반일 쪽으로 흐르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아시다시피 유럽인들은 아시아인들의 구별을 못 하니까요.”
그는 조심하십시오. 라고 말을 덧붙이긴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냥 심드렁할 뿐이다.
그도 그럴 게······ 뭐야, 평상시와 다름이 없는 유럽이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이 시대 독일인들이 유대인 차별에 동양인 차별을 시작했다고 해서 얼마나 더 심각해질까는 잘 모르겠다.
아닌 말로, 50년 뒤엔 홀로코스트도 저지르잖아, 걔들.
그런 내 말속의 뼈를 느낀 라이오넬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하하, 뭐. 그렇긴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긴, 합니다.”
“뭔데요?”
“독일 제국의 황제, 빌헬름 2세가 엘리자베스 니체를 두둔하고 나섰답니다······.”
“······예?”
그 팔 병신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