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39)
─‘황상 폐하!! 지랄은 거기까지입니다!!’
지난 4년간 독일 제국의 수상, 호엔로헤 후작(Fürst zu Hohenlohe)이 가슴속에 늘 갖고 있던 사직서와 함께 내뱉길 갈망했던 말이었다.
바이에른 왕국의 수상으로 시작해, 그 지랄 같은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과 호흡을 맞추며 어떻게든 독일 제국을 수립시킨 노마(老馬).
그런 자신이 대체 왜 이런 수모를 견뎌야 하는가.
‘하지만, 그 비스마르크까지 없는 이 와중에 나까지 은퇴한다면?’
그땐 진짜 나라가 망하겠지.
안 봐도 명약관화한 이야기다. 왜냐? 상대가 ‘그’ 황상이니까.
그래서 그는 깊은 짜증을 꾹꾹 눌러 담으며 다시 한번, 인내와 노력을 담아 그를 수상 자리에 앉힌 자에게 간언했다.
“황제 폐하. 다시 한번 말씀드려야 하옵니까?”
“아니, 짐도 이해는 했소이다.”
그리고 그런 호헨로헤 후작에게 독일 제국의 3대 황제, 빌헬름 2세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짐은 그 모함당한 불쌍한 독일인 여인의 옆에 서겠노라.
─너희 중 죄 없는 자만이 그녀를 향해 돌을 던지라.
“이, 엘리자베스 니체를 두둔하는 공개 발언을 철회해 달라는 것 아니오.”
“바로 그렇습니다!!”
호헨로헤 후작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몇 주 전, 바이마르 시에서 알려진 니체 일가의 비극과 엘리자베스 니체의 실체가 까발려지고, 모든 신문사들은 이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특종! 철학자 니체, 사실은 식물인간?!> [어째서 우리는 위대한 현인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나? 오빠를 착취한 악랄한 마녀의 정체란?!> [끔찍한 감금과 왜곡! 차라투스트라의 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수모를 당하고 있었는가!>이미 작년 즈음부터, 유럽을 휩쓴 니체의 명성 덕에 독일인들은 그 이름을 칸트, 헤겔, 괴테를 잇는 대철학자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었다.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교향시조차 열풍에 편승한 것이라 치부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니, 그 인기는 카이저 빌헬름 2세나 수상인 호헨로헤 후작조차 집 밖에 한 번도 나오지 못한 니체를 인식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빌헬름 2세는, 당연히 그런 저명한 철학자의 이름을 그냥 놔둘 생각이 없었다.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열강으로서의 독일을 확립하기 위한 ‘그 무엇보다도 독일(Deutschland über alles)’.
그 기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은연중에 프로파간다로 써먹어 오고 있던 것이 바로 니체 철학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은근히 게르만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게 입맛에 맞긴 했는데······ 설마 그게 그런 마녀가 왜곡한 것이었을 줄이야.
호헨로헤 후작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다.
“지금 그 엘리자베스 니체란 여자에 대한 백성들의 민심이 어떤지 잘 아시지 않사옵니까! 폐하께서 직접 그 여자를 처형하셔도 모자랄 판에, 두둔이라뇨!!”
“물론, 다른 상황이라면 짐도 그랬을 것이오.”
빌헬름 2세는 그런 그의 말에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소.”
“어째서이옵니까!!”
“그, 엘리자베스 니체의 실체를 알린 자들이 누구요.”
실체를 알린 자들이라니······ 호헨로헤 후작은 더더욱 어이가 없어서 외쳤다.
“설마, 로스차일드 가문을 버리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절대, 절대 안 됩니다!!”
신문에 이번 일이 대서특필되는 이유가 뭐겠나.
일 자체가 자극적이고, 니체라는 이름이 워낙 유명한 것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호헨로헤 후작은 수상으로서 여러 신문에 은밀히 ‘보도자료’가 소정의 후원금과 함께 흘러 들어갔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보도자료를 뿌린 이들이 바로 로스차일드.
노골적으로 반유대주의를 공격하면 오히려 역풍이 불 수 있으니, 철저히 엘리자베스 니체가 얼마나 끔찍한 마녀인가, 그리고 니체라는 피해자가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아왔는가에 집중한 세련된 여론조작 솜씨엔, 호헨로헤 후작조차도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꿔 말하면 천하제일 금융세가 로스차일드의 힘이 그 정도라는 것.
진지하게 황권과 금권이 충돌하는 순간, 이 나라는 차라리 멸망이 나을지도 모른다.
호헨로헤 후작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끔찍한 일만은 막아야 했다.
“설마, 황제 폐하께서도 그 반유대주의에 혹하신 건······.”
“그게 무슨 소리요. 유대인이라도 독일인이라면 당연히 짐의 백성이거늘.”
빌헬름은 펄쩍 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모습에 호헨로헤 후작은 작게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아직 그 정도 정신머리는 남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왜?
로스차일드가 문제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호헨로헤의 머리를 무언가가 스쳤다.
“설마, 그 세 사람이옵니까?”
“그렇소.”
알려지기로, 그날 모험을 감행한 사람은 총 셋.
그중 한 명은 별문제가 없다.
저명한 작곡가이자, 유명한 니체의 팬, 그리고 독일 음악계의 미래로서 황제 역시 좋아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였기 때문이다.
빌헬름 역시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가 혼자서 엘리자베스 니체의 실체를 알렸다면, 나도 가만히 있었을 것이오.”
문제는 나머지 둘.
하나는 영국 로스차일드 분가 출신의 여인, 로웨나 로스차일드.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일본의 젊은 사업가─, 타케 이테아시라고 했던가?”
역시 일본인답게 해괴하기 그지없는 이름이다.
빌헬름 2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려 그, 일본 출신이라는 사업가가 영국도 아니고 우리 독일까지 왔소. 이게 무슨 뜻이겠소? 그만큼 우리 유럽의 정·재계에 깊게 뿌리를 내리겠다는 뜻이겠지.”
“그 말씀은······.”
“짐은 그가 단순한 사업가가 아닐 것이라 확신하오.”
황제다운 통찰력으로, 빌헬름 2세는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그는 필경, 저 건방진 일본 제국이 보낸 첩자가 분명하오.”
그게 정상적이었으면, 그가 후대에 최후의 황제로 불릴 이유도 없었겠지만!
“그가 로스차일드라곤 하지만 영국인과 함께 있었다는 게 무슨 뜻이겠소? 영국과 일본의 밀월관계는 예전부터 유명하잖소.”
“후우······.”
반박할 수 없게도 호헨로헤 후작 역시 그 정보를 입수했다.
설마 그 영국이 저런 작은 동아시아의 섬나라와 급에 안 맞을 교제를 할 리는 없겠으나, 그래도 요즘 양국의 교류가 많은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생각해 봐야 했다.
“정말로 자유 무역을 통해 건너온 사업가일 수도 있지 않겠사옵니까.”
“허! 설령 그렇더라도 팔은 안으로 굽지 않겠소?”
팔 병신이 저 소리를 하니 웃기긴 하네.
그러나 떨떠름해 하면서도, 호헨로헤 후작은 그런 빌헬름 2세의 주장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일본인들이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뒤로, 그들이 보인 행태가 자유 무역과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유럽과 일치해 본 적은 거의 없었으니.
그리고 일본은 마치 갓 알을 깬 병아리처럼······ 즉, 새대가리답게 맨 처음 개화시켜 준 영국에 목숨을 바치는 나라였다.
더 이상 좁은 북유럽과 북해에 갇혀 있을 게 아니라, 세계로 나가 열강으로서의 패권을 다잡을 독일 제국이 영국을 찍어누르기 위해서라도, 저들은 자신들이 살던 작은 바위 섬에 그대로 처박혀 있어야 할 종자들이었다.
그것이 빌헬름 2세가 신조차 모독하는 천재적인 외교술로 입안한 큰 그림, 세계 정책(Weltpolitik)을 위해서였으므로.
‘애초에 그 큰 그림 자체가 글러 먹었는데.’
호헨로헤 후작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물론 그 세계 정책의 일환,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을 다시 그 작은 섬으로 찌그러져 있으라며 러시아, 프랑스와 함께 압박하고.
베를린과 비잔티움, 그리고 바그다드 간 철도를 부설하는 3B 정책을 성공시켜 인도를 압박한 것.
그 모두가 다름 아닌 호헨로헤 후작 자신이 이룬 위업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은퇴한 비스마르크는 뭐라고 했지?
다른 나라들과 충돌하고 싶은 게 아니면 당장 이 망할 팽창을 멈추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역시 그 말이 맞다고 여겼다.
아직 독일 제국의 힘은 물론 애송이 일본 보다는 우위겠지만, 영국이나 그 영국이 필경 끌어들일 프랑스와 맞부딪치기엔 아직 모자라다.
보오전쟁과 보불전쟁의 영웅, 헬무트 폰 몰트케(Helmuth von Moltke)도 이미 6년 전에 타계하였으니.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저히 이 망할 ‘세계 정책’을 폐기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오토, 그런 건 자네나 할 수 있는 거야.’
그가 싫어도 이 망할 팽창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을 독일 국민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열강의 일각으로서 충분한 힘을 가졌다, 애초에 신성 로마 제국의 직계인 우리가 변방 국가인 영국이나 저 원수 같은 프랑스 놈들에게 굽혀야 할 이유가 뭐냐! 이제 우리도 식민지를 갖고 저 멀리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니체도 지금 해야 하는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물론 진짜로 니체라면 차라리 신 포도인 식민지에 욕심내느니, 비스마르크처럼 화학에나 집중하라고 대가리를 깼겠지만.
그 니체가 지금 식물인간인 걸 어쩌겠나. 게다가 비스마르크는 국민과 마찬가지로 팽창 욕구가 넘실거리는 빌헬름 2세에게 찍혀 낙향.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남아 있는, 그저 범용한 인간에 지나지 않은 자신이 최소한의 헛짓거리는 하지 못하도록 애써 말리는 수밖에.
“······하면 최소한, 그 오라비인 프리드리히 니체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로스차일드와 협의라도 할 수 있게라도 해 주소서.”
“뭐, 그건 알아서 하시오.”
짐의 적은 영국과 일본이지, 니체도 로스차일드도 아니니.
빌헬름 2세는 짐짓 ‘짐은 관대한 황제다’라고 주장하듯 그리 말했다.
그 꼬라지를 보던 호헨로헤 후작은 또다시 사직서를 그 면전에 처박고 싶은 마음을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아야 했다.
***
“······[라는 게 호헨로헤 후작의 설명일세.>”
“세상에.”
프랑크푸르트, 빌헬름 폰 로스차일드 남작에게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대충 역사상 평가가 ‘팔만 병신인 줄 알았는데 그냥 병신이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조선에 호의를 가졌던 사람이라고 들어서 조금은 괜찮은 사람일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그냥 반영, 반일하다가 얻어걸린 거였잖아?
괜히 병신이라고 불린 게 아닌 모양이다.
와 씨, 이 시대에 와서 뿔쟁이 학교 선도부의 심정을 이해하게 될 줄이야.
“[아무튼, 그래서 자네는 최대한 빨리 이 나라를 뜨는 게 좋을 것 같네. 지금이야 우리가 필사적으로 정보를 통제하고 있지만, 이대로 가다간 자네에게 귀찮은 일이 좀 많이 생길 게야.>”
“어쩔 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황제가 음습한 린치를 하려 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아니, 그보다······ 세상에, 내가 대충 둘러댄 가명이 이런 나비효과를 불러올 줄 누가 알았겠냐.
그렇게 우리는 빠르게 영국행 배를 타게 됐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속도이긴 했지만, 로스차일드 쪽에서 개별로 1등석 칸까지 뽑아 준 덕에 쾌적하게 올 순 있었다.
슈트라우스나 헤르만 헤세 등과 이별도 제대로 못 하고 뜨는 게 아쉽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그렇게 여름이 다 지나 도착한 영국, 그중에서도 작가 연맹은.
“저 돌아왔습니다! 다들 잘 지내셨어요!?”
“······.”
“······.”
뭐야, 왜 이렇게 조용해?
나는 커튼을 둘러쳐 빛이 들지 않는 작가 연맹 건물 안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불도 안 켜고 있네.
이상한 일이다, 전기료를 못 내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전기등 스위치를 올렸다.
그 순간.
“하, 한슬······!”
“한슬로 진이 돌아왔다······!”
“으, 으어어어······!”
“어, 어어?!”
뭐야 이건? 좀비 아포칼립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