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40)
다행히, 뜬금없이 귀국 첫날에 게이트가 열리거나 얼어붙어 있던 초고대 바이러스가 부활한 것은 아니었다.
다이아몬드 주빌리가 끝나자마자 그런 일이 터졌으면 진짜 대영제국 망하지.
다만 그저.
“······놀다가 마감을 펑크 냈다고요? 그것도 몇 달 치를?”
“그렇다네.”
그 아서 코난 도일마저도, 짙은 다크서클이 드리운 얼굴로 손으로는 원고를 하고 있었을 뿐이다.
듣기로 그 조지 뉸스가 불같이 화를 내면서 작가 연맹을 전부 뒤집어엎었다는데, 알 만하구만······.
“허허. 이리되니 내가 은퇴한 게 차라리 다행으로 느껴지는군······.”
맥도날드 대표님의 뼈 깊은 말이었다.
물론, 이분도 딱히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마감이 없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멀쩡해 보인다는 거지. 그 역시 며칠 밤샌 기색이 역력했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이 대규모 마감 펑크 사태와 좀비 양성에 무언가가 있음을 직감했다.
물론 만화, 소설, 시를 막론하고 ‘작가’라는 생물은 마감(데드라인)을 잘 지키지 않는 본성이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다.
작가는 근본적으로 현실에 불만이 있으니까, 그 불만이 해소된 무언가를 자꾸 망상, 공상, 상상하면서 창작력을 단련해 온 사람들이 그것을 아예 업(業)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태생부터가 반골이고, 사회성이 개판이 되는 것이다.
톨스토이를 보라. 그 양반이 얼마나 반사회적이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독자들은 의외로 연재가 펑크 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작가의 상성 상 우위에 있는 존재, 편집자들이 ‘진(眞) 데드라인’을 만들어 두기 때문이다.
데드라인을 어기더라도, 진 데드라인만 어기지 않으면 어떻게든 펑크는 안 낼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진 데드라인을 최대한 숨기고, 데드라인을 진(眞) 데드라인으로 꾸며서 작가를 압박하고, 어떻게든 그 사이로 원고를 잘 뜯어내는 편집자가 훌륭한 편집자다.
이런 편집자들의 노력이 있는 덕에, 어떻게든 작가들은 무사히 자신들의 작품들을 독자들에게 내보일 수 있는 거다.
그런데 그 편집자들이 작가들을 이렇게 될 때까지 방치하다니······ 아까도 말했듯 반사회적인 작가들은 방치하면 백수, 날건달, 방구석 폐인과 구분할 수 없게 된다고!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한 짓을!
“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겁니까······.”
“그걸 자네가 묻나?”
엥.
나는 조지 맥도날드 대표님의 애증 어린 기이한 시선에 눈을 깜빡였다.
뭐지, 저 내가 잘못한 거라는 눈은. 아니, 그럴 리 없잖아? 난 방금까지 로웨나 양과 라이오넬 로스차일드 때문에 독일까지 갔다 왔다.
너무 급하게 오느라 독일 특산품 슈니발렌만 간신히 확보한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는데.
예? 니체를 구출하는 바람에 영국과 일본, 독일 사이에 갑자기 이상한 기류가 흐른 거요?
그건 일본인 사업가 타케 이테아시 때문 아닌가? 선량한 미술 감정가 진한솔이나 인기 작가 한슬로 진과는 전혀 관련 없다.
그러니까 나 때문이 아냐. 암튼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거, 자네가 제안한 거라던데?”
“앗.”
이거, 벌써 나왔구나!
나는 조지 맥도날드가 내민 한 뭉치의 종이 더미.
즉, 내가 쓴 단편인 [승리의 여왕> 원작의 카드게임.
[역사의 충돌(Clash of History)>의 실물을 확인했다.***
내가 독일 출장에 가기 직전.
나는 벤틀리 씨에게 그 제안서를 넘겨주었다.
“······카드게임이요?”
“예.”
21세기에는 있고, 19세기에는 없어서 가장 답답한 것이 무엇인가?
만화, 애니, 영화······ 이런저런 것들이 많긴 하지만, 21세기의 MZ세대였던 나로선 이거 이상으로 답답한 것이 없었다.
그건 바로, 전자오락.
아닌 말로, 21세기가 어떤 세계인가?
아예 딥다이브 가상현실 게임이 나오는 게 아닌 이상, 세컨드 라이프 오픈 월드라는 개념에서 창출할 수 있는 갓겜이 나온 시대가 아니던가.
아무튼 난 그런 시대에서 살다 왔고, 게임이란 개념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그게 이 시대는?
그래. 존나 노잼이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지. 최대의 보드게임이 그나마 체스 종류고, [카탄>이나 [시타델>, [카르카손> 같은 것도 안 나왔으니까.
비슷한 걸로 치자면 기껏해야 사관들이 행하는 워 게임(Wargame) 정도려나?
그, ‘아카기에게 9발 명중은 너무 많다’라며 침몰한 배를 부활시키는, ‘강하다, 일본 해군은 강해!’의 그거 맞다.
도상연습, 실상 게임이라기보다는 모의 전투에 가까운 그거.
아무튼 그래서 만든 거다. 진짜로 펀하고 쿨하고 섹시한 카드게임을.
“음, 카드는 총 세 종류. 군주 카드와 영령 카드, 그리고 사건 카드라는 말씀이지요,”
소설에서는 군주와 영령들만 나왔지.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묘사하기 빡세니까.
“그렇죠. 거기에 카드는 양초용 파라핀 같은 걸로 코팅하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서 [승리의 여왕>의 주인공 문명인 영국 문명의 카드는 이랬다.
─부디카(Boudica)
─소속 문명 : 영국
─카테고리 : 군주
─방어도 : 5
─턴 당 마력 : 3
─특수 능력 : 여왕의 가호
1턴에 1번, 플레이어가 컨트롤하고 있는 영령 1체가 효과/공격으로 파괴될 때, 그 파괴를 무효로 한다.
[1세기, 고대 브리타니아의 젊은 여왕. 남편을 배신하고 자신과 딸들을 능욕한 로마 제국을 징벌하기 위해, 동료 왕들을 이끌고 저항을 시작한다.>─흑태자 에드워드(Edward the Black Prince)
─소속 문명 : 영국
─카테고리 : 영령
─필요 마력 : 7
─공격력 : 2500/수비력 : 2100
─특수 능력 : 흑태자의 슈보시(Chevauchée: 약탈 행진)
이 영령이 상대 영령 카드를 전투로 파괴했을 때, 상대는 3턴간 해당 영령 카드가 놓여있던 존(Zone)을 사용할 수 없다.
[플랜태저넷 왕조 제5대 국왕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이자, 제6대 국왕 리처드 2세의 아버지. 백 년 전쟁의 영웅. 푸아티에 전투와 카스티야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늘 검은 갑옷을 입었기에 ‘흑태자’라는 별명이 붙었다.>─둠스데이 북(Domesday Book)
─소속 문명 : 영국
─카테고리 : 사건
─필요 마력 : 1
─내 필드 위의 모든 영령 카드의 수비력을 500 낮춘다. 그 수만큼 마력을 1씩 회복한다.
룰은 [여관돌멩이>와 [유흥왕>을 적당히 짬뽕했다.
마나라는 개념은 1983년 [디스크월드>에서 보편화되기 때문에 마력(Ether)으로 대신했고.
“오호오······.”
그리고 그런 내 제안에, 벤틀리 씨가 감탄한다.
나름 사업가이자,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인 벤틀리가 물건의 진면목을 눈치챈 것이다.
“네, 작가님 이겁니다. 듣기만 해도 알 거 같아요. 이거, 분명 성공합니다.”
“네, 그러겠죠.”
아무렴요. 카드게임 20년 차의 고인물이 세계에서 제일 잘 팔린 두 게임을 모아 만든 건데.
그렇게 틈틈이 설정집도 내고, 그 과정에서 가챠 상자도 내고, 소설하고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것들을 팔면서 착착 빌드 업을 쌓아둔······. 그것들이 이렇게 나온 것이다.
물론, 그게 전부가 아니기도 했다.
이전 소설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 단점을 고쳐서 냈는데, 그것이 바로······.
“이거······ 소설에 나온 영웅들만이 아니군요?”
“카드게임을 내려면 확장성이 필요하니까요.”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등장하는 문명은 소설에서만 나온 영국과 로마만이 아니었다. 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프랑스와, 조지 워싱턴의 미국.
심지어 같은 영국인데도 부디카가 아니라 아서 왕을 주제로 한 문명도 ‘영국 문명 II’이라고 등장시켰다.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벤틀리 씨는, 내가 말한 ‘확장성’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겠지.
이미 그 준비도 충분하다.
지난번 해적판 출판사들이 난립하면서 우리 손에 넘어온 인쇄 기계들.
사실상 우리의 전담이 되어 있는 아르누보풍 일러스트레이터인 안나 무하.
게다가 이건 내 나름대로 역사를 고증해서 만든 게임이고, 난 나름 학습도서도 쓴 사람이란 말이지.
‘카드게임을 했더니 우리 애가 역사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어요!’
이 캐치프레이즈, 참을 학부모가 있을까?
장담한다. 이 정도면 흥하면 흥했지, 절대 망할 일은 없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러면 작가님이 독일 다녀오시는 동안 시제품을 만들어보도록 하지요.”
“로열티는 말씀 안 드려도 되죠?”
“작가님.”
벤틀리 씨가 심각하게 내게 말했다.
“작가님께서 갖고 계신 회사 지분이 저보다 많습니다.”
“······크흠. 다녀올게요.”
내가 언제 그렇게 많이 잡아먹었나. 내심 미안한 마음으로, 나는 독일로 출국했다.
그리고, 내가 독일에서 천하제일 금융세가 총가주도 영접하고 헤르만 헤세도 만나고 우당탕탕 슈트라우스와 함께 니체 구출 대작전도 펼치는 사이.
“다이아몬드 주빌리 기간 특별 행사입니다! 한번 즐기고 가세요!”
“[승리의 여왕>을 게임으로! 한슬로 진 작가님이 고안하신 신규 게임! 모든 문명을 쓰러트리고 승리자가 되어 보세요!!”
“한슬로 진 작가?”
“그 사람이 게임까지 만들었다고?”
“흐음, 한번 해볼까? 처음은 꽁짠데.”
마케팅이라면 도가 터버린 벤틀리 씨가,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사람들이 ‘찍먹’을 하게 만들었고.
“아잇, 운빨좆망겜!!”
“캬, 이거. 은근히 쫄깃한 맛이 있네.”
“게임을 하면서 역사를 배울 수도 있다고? 우리 애도 한 번?”
광기가 런던을 덮쳤다.
“여기 카드 팩 세 개요!”
“난 다섯 개!! 내가 오늘 무조건 카이사르 뽑고 만다!!”
“다 팔렸습니다! 오늘은 매진이에요!!”
“떴다, 떴어!! SSR 멀린이다!!”
벤틀리 출판사의 입김이 닿는 서점에서만 임시로 판매를 개시한 사상 최초의 트레이딩 카드 게임은 순식간에 한슬리언을 비롯한 독자들에게 퍼져나갔다고 한다.
게다가 다이아몬드 주빌리가 어디 보통 행사인가?
앞으로 60년 내에는 절대 있을 리 없는 대영제국 최대의 행사. 이 행사를 보기 위해 영국 내외에서 관광객이 모여들었고, 비즈니스로 온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은 모두 작가 연맹이 빅토리아 여왕 폐하에게 헌사한 잡지, [코이누르>를 읽었고, 이 광풍을 직접 목격했다.
런던뿐 아니라 플리머스, 에든버러, 더블린. 파리와 뉴욕.
모든 대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취급 권한을 달라며 아우성을 쳤고, 번역이 필요 없이 유통이 가능한 곳에서는 빠르게 대박을 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영국 전역을 장악한 이 게임에, 같은 동료인 작가연맹이라고 전혀 가만히 있을 리 없었고…….
“······그래서 마감을 놓칠 정도로 게임에 빠져들었다는 거예요?”
“그렇다네.”
아니, 이 양반들이 진짜.
나는 나 없는 사이 내가 만든 게임으로 실컷 즐겼단 말에 새삼 질투심이 솟았다. 돈도 돈이지만, 내가 듀얼하고 싶어서 만든 게임인데!
그런데 그때.
“핸슬! 자네, 이제 왔군!!”
“어라? 마크 트웨인 작가님?”
미국에 있어야할 마크 트웨인이 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어째, 눈이 휘번뜩 거리고, 다크서클이 짙은 게 다른 연맹 작가들하고 똑같은데─ 설마.
그리고 그런 내 걱정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현실화되었다.
“핸슬, 긴말 않겠네.”
“아, 예.”
“이 게임, 미국 유통권을 내게 맡겨주게! 억만금이라도 주겠네!!”
“……예?!”
“미주리! 코네티컷! 내가 사랑하는 고향의 동포들이 이 위대한 게임을 기다리고 있어! 제발 부탁하네!!”
“아니, 그게.”
“허락해줄 때까지 여기서 움직이지 않겠어!!”
아니, 이 사람이.
그렇게, 나는 숫제 땡깡을 피우는 마크 트웨인을 일으키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여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