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42)
“그러면 두 사람, 잘 부탁하네.”
조선국 특명전권공사, 민영환은 친척 아우 민상호와 참사관 손병균(孫炳均)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재량 안에서 나름, 이곳 런던에 남길 수 있는 최대한의 인물들이었다.
‘마음 같아선 내가 남고 싶었지만.’
정중지와(井中之蛙)라고 했던가. 조선이 아닌, 여기에 오니까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원래라면 좀 더 많이, 영길리국의 발전된 사회를 몸으로 느끼며, 조선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대로 모색해 보고 싶었다.
‘차관을 받는 데 성공한 건 다행이지만, 결코 많은 양은 아니지.’
금상이 원하시는 군함 한두 척을 살 수나 있을까?
하물며 민영환이 확인한, 영길리처럼 학교나 병기창 같은 시설을 세우고 학생들을 교육시키려면 턱없이 부족했다.
말 그대로 차관을 빌려왔다는 생색이나 간신히 낼 수 있는 수준의 금액.
‘그래서 한슬로 진에게 가르침을 구해 볼까 했던 것인데.’
결국 그와는 만나 볼 수 없었다.
내심 이런 먼 곳에서, 그리고 수많은 사람 속에서 그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보다 어려울 것이란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막상 이러니 아쉬운 것도 사실.
민영환은 그의 품 안에 있던, 빳빳하고 단단한 종이 딱지─ 이른바, ‘카아드’라는 기물(奇物)을 떠올렸다.
암만 상공업에 둔한 양반이라고는 하나,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열광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진 않는다.
그다지 만들기도 어렵지 않아 보이는 종이 뭉치로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그의 상재(商財)는 확실히 대단해 보였다.
그게 노름이나 유희에 가까운 것이라면 또 민영환이라도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겠지만, 되레 제 나라의 역사를 알기 쉽게 쓴, 말하자면 소학(小學)을 즐겁게 배울 수 있는 글귀를 적었다지 않은가.
게다가 그렇게나 돈을 많이 벌면서, 막상 그걸 쓰는 방법은 교육이나 자선 같은 선행이라고 하니······.
만약 자기 글에 언문을 쓰지 않았더라도, 민영환은 그에게서 배울 점이 참 많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 슬슬 다른 나라도 들를 시간이다.
특히 아라사에서는 조만간 그가 초청했던 고문관(顧問官)이 조선으로 출발할 예정이라고 하니, 그를 안내할 필요가 있었다.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우. 나도 조만간 조선에 돌아가야 하니.”
“예, 대감! 알겠습니다! 반드시 한슬로 진을 찾아내겠습니다!”
심드렁해하는 민상호와 달리, 손병균은 당당하게 말했다.
민영환은 그런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둘에게 말했다.
“두 사람이 무사히 돌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할 일을 다 한 셈이야. 절대 무리하지 말고, 알겠나?”
“······알겠소.”
“예, 대감······!”
그때였다. 기차 화통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뱃고동 소리가 그의 등을 떠밀었다. 고개를 끄덕인 민영환이 배에 올랐다.
‘아마 다음에 오는 건 3년 뒤, 만국박람회 때겠군.’
물론 그때도 금상의 허락을 받긴 해야겠지만─ 어쨌든, 그때는 조금이라도 지금보다 더 이들과 가까워진 모습으로 다시 봤으면 좋겠다.
민영환은 그렇게 생각하며 부푼 마음을 안고 배에 올랐고.
“[후. 도착했군.>”
“[진짜, 그놈의 황제만 아니었어도 느긋하게 오는 건데요.>”
“[누가 아니랍니까, 작가님.>”
바로 그 타이밍에, 항구로 들어오는 누군가와 엇갈렸다는 것을. 아마도, 평생 알지 못할 것이다.
***
미국 유통권을 따낸 마크 트웨인은 그렇게 떠나갔다. 그리고 나는 뒤이어 벤틀리 씨에게 신경 쓰였던 점을 물어보았다.
“벤틀리 씨, 지금 출판사 지분이 벤틀리 씨보다 제가 더 많다고요?”
“아, 예. 물론 절차상 주주총회라던가 그런 게 있긴 하겠습니다만, 작가님이 원하시면 제 모가지는 그저 작가님 겁니다······ 허허.”
아니, 너무 그렇게 대놓고 씁쓸해하지 말고요.
내가 언제 모가지 자르겠다고 말이라도 했나? 이제까지 호흡 잘 맞춰 온 사람을 내가 자를 리 없잖아.
“그럴 건 없고요, 이제부터 간혹 돈 안 되는 책을 몇 권 내야 할 순 있을 것 같습니다.”
“예? 익명으로요? 단순 책을 뽑는 거라면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뭐, 그건 그렇지.
지금 내가 자비 출판을 못하는 수준도 아니고, 내 인지도를 생각하면 이 시대에 크라우드 펀딩 형식을 해도 충분히 수익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거론 내가 제책 방식이나 편집 같은, 자잘한 일에까지 시간을 써야 할 테니까.
그런 건 좀 사양하고 싶은 게 내 생각이다.
“일단 최대한 넓게 퍼트리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수익성은 보장이 안 되거든요.”
“으으음······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 그러면 바로 쓰시는 겁니까?”
“아, 지금 당장 쓴다는 건 아닙니다. 제가 쓴다는 것도 아니고요.”
나도 이래저래 할 일이 많은 사람이니까. 이번에도 협업해 볼 생각이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평소와는 다른 특수성이 있으니까 여러 외국어를 잘 할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당연히 문학적 수준도 있어야 하고.
그런 인물을 구하기 쉽진 않을 거 같으니, 이 부분은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거 같다.
아무튼 이것만 성공하면, 이 카드 게임 사업은 꿩 먹고 알 먹는 캐시 카우가 될 거니까.
동아시아도 은근히 전쟁이 잦아서 위인이 화수분처럼 나온 동네란 말이지.
그 얘기가 사람들한테 먹혀들어서 무식한 영길리 놈들이 해외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나와 벤틀리 씨가 해외 수출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을 때였다.
“──들여보내 주십쇼! ─작가님에게 ───이 있단 말입니다!”
“─되는 ──를 하세요! 신원도 ──하지 않─ 사람에게 ──게!!”
뭐야, 뭔 소리야? 나는 벤틀리 씨와 잠깐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벤틀리 씨는 마치 벼락이라도 친 듯 빠르게 움직였다.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작가님!”
“아, 예. 부탁드려요.”
상황이 궁금하긴 한데, 난 나가기 애매한 몸이란 말이지.
21세기에서도 버츄얼 너튜버와 이차원 아이돌의 정체는 빨간약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도 비슷한 상황이니까.
게다가 아까 말했듯 벤틀리 씨보다 내 지분이 높지 않던가?
회장님을 두고 월급쟁이 사장님이 가만히 앉아 있을 순 없지. 암, 그렇고말고.
그리고 잠시 후, 돌아온 벤틀리 씨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했다.
“어휴, 죄송합니다. 작가님.”
“무슨 일이래요?”
“뭐, 별거 아닙니다. 언제나 있던 잡상인이랄까요? 끝내주는 사업 아이템이 있다고, 작가님하고 연결해 달라는 사람들이죠. 성공에 따르는 유명세 같은 거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피터 패리>의 성공 이후로, 계속해서 저런 사람이 있었노라고 벤틀리 씨가 나직이 밝혔다.
“으음······ 확실히 별일 다 있네요.”
뭐, 그만큼 내가 떴다는 뜻이라고 받아들여도 되려나?
“참고삼아 묻겠는데 이번에 오늘 온 사람은 누구래요?”
“아, 예. 미국인인데, 헨리 포드라고―.”
“당장 데려와요, 이 양반아!”
***
역시 대영제국이야. 기대를 배신하지 않지.
나라가 크다 보니 잡상인치고 그 급도 상당하다.
헨리 포드면 잡아야지.
아니, 나 무슨 정상 대전 벌이냐? 강도귀족의 막내이자 독과점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돈은 TOP3급으로 벌었다던 그 자동차왕 헨리 포드? 그 형이 여기서 왜 나와?
그런 내 의문은 헨리 포드를 직접 만난 자리에서 풀릴 수 있었다.
“하하, 반갑습니다. 헨리 포드입니다. 에디슨 조명 회사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지요.”
아, 이때는 아직 회사도 안 세웠구나. 내가 아는 헨리 포드는 초롱초롱한 눈의 할아버지였으니.
올해 나이 서른넷의 헨리 포드는, 이마가 넓은 걸 빼면 젊고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 젊은 개발자였다.
그리고 그 미소를 헨리 포드는 ‘왜 이런 놈을······.’이라면서 내 옆에 앉은 리처드 벤틀리 주니어에게 승리감을 표출하는 데 썼다.
와, 확실히 어리다 어려.
나는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진한솔입니다. 한슬로 진이라는 필명을 쓰고 있죠.”
“아시아인이셨군요. 놀랐습니다.”
원 역사에서도 인종 평등(유대인 제외)을 외쳤던 사람이라 그런가? 나를 보고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뭐, 만약 인종 차별을 했다고 해도 지금의 나라면 돈으로 찍어 누를 수 있었겠다만.
“일단 듣고 싶군요. 포드 씨가 제 소설로 하고 싶으시다는 ‘그’ 사업이 뭡니까?”
무엇보다 내 궁금증이 우선적이었다. ‘그’ 헨리 포드 아닌가. 나에게 사업 제안을 온 거니까.
대체 어떤 아이디어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지.
“그 말씀을 드리려면, 제가 개발하고 있는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헨리 포드는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저는 에디슨 회장님 밑에서 자동차 엔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조명 회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자동차요?”
“회장님 별명 아시잖습니까?”
아, 뭐. 그렇지.
발명왕.
그러니까 각자가 원하는 걸 개발할 수 있게 지원한다는 뜻인가 보다.
그러다가 쓸 만한 게 나오면 그 특허를 뺏어 먹겠지.
뭐, 이때는 그게 그나마 저작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곤 하는데······ 솔직히 미래에서 온 내 입장에서는 영 사악해 보인단 말이지.
이래서 미개한 고전 자본주의 국가란.
“아무튼 그래서요?”
“예. 직업의 특성상 주석(朱錫)을 만질 일이 많은데, 그 주석은 작고 무겁다 보니 워게임(War Game)의 기물(piece)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요.”
“워게임이요?”
“예. 혹시 모르십니까?”
“아, 아뇨. 그거 자체는 압니다.”
워게임이라면 그거지? 세계 2차 대전을 다룬 만화에서 일제 해군 놈들이 주사위 굴리면서 자기네 항공모함이 9발 맞고 침몰하니까, 똥별 한마디에 심판이 3발 명중으로 바꾸고 되살아난다는 그 정신 나간 거.
게다가 그 꼴을 지켜보는 장교들이 이의를 제기하기는커녕, ‘역시 일본 해군은 강해’라면서 현실도피, 정신 승리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한국 국방부의 직계 선조가 어떤 놈들인지 잘 알 수 있지.
아무튼 이번에 내가 카드 게임을 만드는 데 나름의 도움을 얻은 그거였다.
뭐, 이건 어디까지나 하는 놈들이 병신들이니까 이런 거고, 실제로는 그 전쟁 애호국인 프로이센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적 인기와 실용성으로 칭송받고 있는 것이다.
듣기로 옥스퍼드 같은 곳에는 게이머 클럽까지 있다지.
나야 솔직히 큰 관심이 없고, 시간도 없어서 할 수 없긴 했지만. 밀러 씨도 살롱에 나가서 종종 했다고 하던데······.
그런데 그 워게임은 왜?
“부탁드립니다.”
헨리 포드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한슬로 진 작가님. 작가님이 만드신 카드 게임, [역사의 충돌>로 워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예?”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워게임? 이걸로?
“보자마자 딱 감이 왔지요. 이거, 워게임으로 해보면 더 재미있겠다고 말입니다.”
아니, 뭐 카드 게임이라지만 다른 걸로 보자면 곧, 전쟁 시뮬레이션이긴 하니까. 그런데 말이다.
아무래도 이쪽은 내가 문외한이라서 모르는데······.
“음, [역사의 충돌>로 워게임을······ 그게 가능한가요?”
카드 게임으로 만든 수치는 있다지만 그건 너무 제각각이라 하나로 통일하기 어려울 텐데.
내가 알기론 워게임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그거 아닌가?
그러자 그는 준비했다는 듯 물 흐르듯 말을 잇기 시작했다.
“주사위와 미리 정해 둔 설정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아, 물론 밸런스를 고려해서 중세 기사들이나 고대 전차 군단 간의 전투력 차이는 어느 정도 좁혀 둬야겠고, 그런 것을 고려하면 좀, 영령들에게 좀 더 많은 배분이 필요하겠지만― 모든 것은 주사위 신이 정해 줄 수 있지요.”
“어······.”
헨리 포드의 말을 들은 나는 무심코 무언가를 떠올렸다.
인터넷 시대에야 판타지 소설에 입문한 나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한국 자체가 이쪽으로는 융성화가 안 되다 보니 떠올리지 못했지만.
이건 동아시아 서브컬쳐 계열에서는 공통 조상님 격으로 모시고 있는 ‘그것’이 아니던가.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
[캐슬 앤 코아틀(Castle & Coatl)>.판타지 세계관에 규칙을 도입하여 게임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RPG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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