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47)
빅토리아 여왕의 거처이자 집무실, 버킹엄 궁전.
그곳에 근무하는 시종들은 다른 궁전 시종들에 비해 자랑 아닌 자랑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유럽 대부분의, 바꿔 말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귀빈에 대한 매뉴얼이 있고, 그것을 실제로 써먹어 봤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유럽의 할머니로서 가까이는 본적(本籍)이라 할 수 있는 독일부터, 저 멀리 유럽의 끝자락 러시아의 황제마저도 빅토리아 여왕의 가계에 속해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버킹엄 궁전에는 거의 매년 매달 매일, 유럽 제국(諸國)의 높으신 분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와 묵고, 또 떠나가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는 그야말로 얼마 전에 60주년을 맞이한, 현역 최장기 집권 군주를 모시는 시종들의 경이로우면서도 프로페셔널한 특이사항─이지만, 오늘만은 그 프로페셔널한 시종들조차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에, 그러니까 마차를, 어······.”
“차, 차는 뭘 준비해야 하죠!?”
“샌드링엄 하우스(Sandringham House)에서 급전! 오늘 오전에 식사를 세 번 하셨으니, 일곱 번만 더 하시면 된답니다!”
“······여왕 폐하께는 비밀로, 최대한 숨겨서 요리한다!!”
“Yes, Sir!!”
그날 초대된 손님은, 그들이 최근 몇십 년간 접대해 본 일이 거의 없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 때문에, ‘그럼 이번에만 오고 다음에는 올 일 없는, 대충 접대해도 되는 사람 아니냐-’고 착각할 수 있겠지만, 글쎄······
과연 그럴까?
이번 손님은 되레 그 정반대의 케이스였다.
“웬일이십니까? 하나님 곁에 가시기 전에는 평생 안 보실 것처럼 이야기하시더니.”
여왕의 앞에서 이렇게 이죽거리고도 살아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남자.
대영 제국의 차기 지존, 웨일스 공(Prince of Wales) 앨버트 에드워드(Albert Edward)가 몇십 년 만에 버킹엄 궁전의 초대를 받은 것이다.
물론, 초대한 쪽이나 초대받은 쪽이나······ 초대라기보단, 차라리 호출했다고 표현하는 게 더욱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긴 했지만.
“그래, 무슨 일입니까? 별일 아니면 빨리 보내 주시죠. 공사다망하신 어머님과 달리, 저는 진짜 매력적인 여자들과 중요한 약속을 잡아 놨단 말입니다.”
“오라버니, 언사를 구별하세요. 어전입니다.”
“오, 너도 있었냐?”
저게 진짜.
여왕이 중요한 인물들을 두루뭉술한 이유로 만날 때는 꼭 옆에 끼는 비서이자, 에드워드 왕세자의 막냇동생인 베아트리스 공주는 탕아(蕩兒)를 보는 눈으로 제 큰오빠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래서 어쩔 건데?
에드워드 왕세자는 되레 콧방귀를 뀌며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고작 막냇동생이 째려보는 것 따위로 주눅이 들었으면 저 어마어마하신 여왕님께도 진작에 숙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이야기가 많던데, 슬슬 정신 좀 차리시죠. 뭐가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음’입니까. 대놓고 지배하고 계시면서요.”
“에드워드.”
“아, 예~ 예. 입 닥치고 있겠습니다. 암요, 수십 년간 정사(政事)에는 손도 대지 못하게 하셨으니─.”
“이번에 네 명의로 기업 몇 개를 사 뒀다.”
“······예?”
그 갑작스러운 말에 에드워드도, 베아트리스도 놀란 눈으로 빅토리아 여왕을 바라보았다.
저게 지금 무슨 말인가? 기업을 사 둬? 근데 그게 저렇게 여상하게 할 수 있는 말인가? 아니면 혹시, 기업이라는 단어에 에드워드 자신은 모르는 동음이의어가 있어서 새로 발견된 과일이나 동방의 과자 같은 것을 의미하는 건가?
만약 그런 거라면 그건 분명 맛이 없을 게 분명했다.
눈앞의 노모(老母)이자 여왕이, 자신의 입안에 맛 좋은 무언가를 넣어 줄 사람은 절대로 아니었으까.
눈앞에 있는 제 자식이 머릿속으로 그녀를 무슨 마귀할멈으로 묘사해 가는지도 모르는 채, 빅토리아 여왕은 그저 지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선 군수업체. 제식화기를 전담할 기술력이 되는 알짜배기만 쏙 빼 왔고, 이게 네 밑으로 떨어질 거다.”
“······그게 진짜 기업이었다고요?”
심지어 군수업체라니······ 맛있어도 지나치게 맛있는 얘기 아닌가?
어안이 벙벙한 에드워드를 흘낏 본 빅토리아는 잠시 차 한 입을 마신 뒤, 다시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조선업 쪽은 먹기 좋게 제철과 선박, 철도로 잘라 놨다. 이쪽은 카탈로그를 뽑아 놨으니 알아서 원하는 걸 골라 두거라. 실탄은 준비해 뒀으니.”
“아니, 아니아니.”
“아, 네놈이 환장하는 술 만드는 놈들도 주종별로 분류해 놓았으니 확인하고. 세금을 알코올 함량별로 소급 적용해 주기로 했다. 제일 수혜를 많이 입을 분야에 대해서도 차후 설명 듣고.”
“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에드워드 왕세자는 결국 충격과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돼지라고 대놓고 들을 정도로 비대한 그 몸이 그렇게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에 베아트리스가 깜짝 놀랐지만, 왕세자는 그런 여동생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내가 듣고 있는 것이 맞나?’
그 위대하고 엄격하신 어머니, 그분께서 지금 자신에게 사기업을 넘기고 있다고?
아니, 애초에 저 많은 매물은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저 대부분은 독점 산업······.
‘그래, 그건 알겠군.’
최근,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그가 어머니와 얼굴 맞대기 싫어 장만한 작고 아담한 집, 노퍽의 샌드닝엄까지 찾아와 하소연하던 경제계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이 하던 이야기가 무엇인가.
‘왕세자 전하.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반독점법이라니! 의회에 빨갱이들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허허, 진정들 하시오.’
물론 그도 그 빨갱이 운운이 사실이 아님은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부르주아 사업자들 해도 너무한다는 얘기는 나라를 가리지 않고 나오던 이야기니까.
하지만 그게 전부······ 자신의 어머니, 여왕의 짓이었다고?
“그리고 철도는 차라리 공기업화를 하자는 이야기로 귀결이 될 거다. 그레이트 웨스턴, 이스턴, 센트럴, 미들랜드를 묶어서 큰 노선을 국유 철도사인 브리티쉬 레일(British Rail)로 묶고 편의상 네가 최대 대주주로─.”
“아하, 이제야 알겠군!”
왕세자가 소리치며 말했다.
빅토리아 여왕이 잠시, 눈만 슬쩍 뜨며 제 큰아들을 보았다.
“반독점법이니 뭐니, 뭔가 했더니만 인제 와서 엘리자베스 1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이겁니까?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겠다더니! 정치는 안 되니까, 내 명의로 이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시겠다고!?”
“에드워드.”
“그렇겐 안될 겁니다! 제기랄, 그놈의 비밀 요원들도 아주 진절머리가 났었는데, 이젠 아주 대놓고 손을 뻗으시겠다고요? 심지어 거기에 필요하니까 수십 년 동안 얼굴도 안 본 아들을 데려와서 차명 계좌를 굴려?! 도대체가―!”
그 노욕은 어디까지 갈 참이냐고, 에드워드 왕세자가 노성을 지르려던 찰라였다.
순간 햇볕이 드는 방안에 나직한 빅토리아의 목소리가 서늘히 울려 퍼졌다.
“이는, 네 몫의 유산이다.”
“······뭐, 요?”
그 말에는 그 역시도 순간 굳을 수밖에 없었다.
생전 들으리라 생각지도 못한 말, 단어였기 때문이다.
“내 나이가 이제 일흔일곱이다.”
빅토리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에드워드 왕세자는 새삼스럽게 놀랐다는 표정밖에 할 수 없었다.
‘몇 살? 일흔일곱? 아, 대충 그 정도긴 하지. 하지만 언제? 하긴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제 할아버지이긴 했는데.’
실상 사고가 굳어 버린 거다.
하지만 그가 그러든 말든, 노모의 입은 매끄럽게 움직여 갔다.
“인제 와서 네가 정치에서 손을 떼겠다고 한 그 생각을 돌릴 생각은 없다. 어차피 넌 그럴 능력이 안 돼.”
“······큭! 오히려 그 말을 들으니 안심입니다. 이제야 제가 아는 그 어마마마 같으시군요.”
“그래서 넘겨주는 거다.”
이 자산들을.
빅토리아 여왕은 조용히 카탈로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조지. 그리고 어쩌면 에드먼드까지. 점점 왕실과 의회는 멀어질 것이고, 권력은 돌아오지 않겠지.”
“그게 나은 겁니다. 알겠습니까? 난 다신 어마마마의 그 끔찍한 제왕학 교육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뭐, 맘대로 해라.”
단, 하고 빅토리아는 말했다.
“그래도 왕실이 존속하려면, 자산은 있어야 한다.”
“설마 우리 왕가가 저 프랑스 놈들처럼 저잣거리에 목이 매달릴 거라 생각하시는 건······.”
“잊지 마라.”
빅토리아가 서늘하게 말했다.
“세계 최초로 왕을 사형시킨 의회의 수장은 로베스피에르가 아니었다. 크롬웰(Oliver Cromwell)이지.”
“······.”
그래······ 찰스 1세.
에드먼드는 자신도 모르게 제 목을 쓰다듬었다.
그래, 그랬었지.
“그러니 이 자산을 쓰라는 거다.”
“돈을 벌라는 얘기라면, 땅도 있고, 세금으로 들어오는 것도 있는데······.”
“돈도 중요하다만, 그보다 중요한 것─ 민심을 벌어라.”
빅토리아는 처음으로, 이토록 절박하게 에드워드를 가르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에드워드도 그제야 제 어머니에게 귀를 기울였다.
“의회는 표를 벌어야 하는 집단이고, 그 표는 민심의 표상이다.”
“그러니 기업을 통해 시혜를 베풀고, 민심을 사로잡아라······.”
에드워드 왕세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억거렸다.
어쩐지 요즘 이스트엔드 재개발도 그렇고, 납 금지도 그렇고, 왠지 모르게 이것저것 시혜적 정책을 마음껏 하고 다닌다 싶더니만.
‘대체 뭘 잘못 먹어서.’
그러고 보니 그 철도 국유화는, 그 빈티지인가 빈센트인가에 나왔던 것 같은데······.
물론 지독한 셜로키언으로서 [셜록 홈스> 외의 소설은 잘 읽지 않는 에드워드 왕세자는 딱 거기까지밖에 알 수 없었지만.
“설명은 여기까지다. 질문 있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마마마.”
에드워드 왕세자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기분 탓인가? 빅토리아 여왕은 제 아들의 발걸음이 예전에 비해 가볍다고 느꼈다.
***
“허,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나는 기어코 이 반독점법이 귀족원까지 통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게 이렇게 쉬웠나? 그럴 리가 없는데.
“귀족가에서도 이것저것 나눠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독점기업들이란 것들 대부분은, 어쨌든 결과적으로 자기가 가진 주식들을 절대 내놓지 않던 회사들이니까요.”
“아하.”
결국 군침 도는 먹이가 보이니까 냅다 달려다 물었다는 소리군.
“사실 저희 로스차일드에서도, 상당 부분 점유율을 받아 온 분야들이 많습니다.”
이스트엔드의 학교에 방문해, 니체 사건 이후로 다시 만난 로웨나에게 설명을 듣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니, 이번에 마침 학교 근처에 지하철역도 들어온다더라. 그래서 오면서 한번 봤는데 입지도 좋더라.
“그러고 보니 오는 길에 들어보니, 철도 환승 비용도 없어진다면서요.”
“예. 놀라운 일이죠.”
로웨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음, 나는 그냥 마차 타고 다니지만 확실히 좋은 일이지. 역시 이런 건 나라에서 나서줘야 한다니까.
아무튼 마셜 교수님도 조지 버나드 쇼도 페이비언 협회에 찾아와서 다 같이 축배를 들었으니, 관련된 사람들 모두가 해피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독점 기업? 걔들은 법인이니 사람이 아니므니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기분 좋게 신문을 넘겼다.
뭔가 잘됐다는 느낌이 팍팍 드는 게······.
“저, 작가님. 말씀드릴 게 있는데-.”
“어, 어라?!”
하지만 나는 이어지는 로웨나의 말을 듣지 못한 채, 벌떡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슨 일이십니까!?”
“이, 이거.”
이게 왜 벌써 나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