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51)
온갖 음해에 시달렸다.
어리석은 노예가 국가를 잘못 통치하여, 백성을 해함으로써 한번 넘어지니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 아닌가.
이제 힘센 이웃 나라가 구워삶아 과분의 위기가 목전에 이르렀으니, 이제 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들의 앞에 서서, 당당히 나아가 제대로 된 나라를 다시 만들고 싶었다.
나라를 좀먹고, 민족을 좀먹는 악적과 오랑캐들을 몰아내고, 고통받는 민초가 바로 서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이미 폐기물이 되어 버린 유교를 치우고, 그를 대신하여 이 발전된 영국과 같은 민주주의를 이루는 혁명을 이루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이 좁은 방에 사실상 감금당한 상황이니.
“후우우우.”
아니다, 침착하자.
그는 다시 한번 제 마음의 스승,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탐독하며 스스로의 사상을 다잡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스스로가 꿈꾸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스러졌지만, 그는 아직 팔팔하게 살아 있지 않은가.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다시 고국에 돌아가 혁명을 이룰 날이 오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책을 탐독하려던 순간.
똑, 똑.
“[이봐! 면회다!>”
철창이나 다름없는 문밖에서 그를 감시하던 직원이 그를 불렀다.
‘빌어먹을 폭군의 개들 같으니.’
마치 자신들이 허락해서 만나게 해 주는 꼴이라니······.
어차피 이 또한 밖에다 ‘우리는 감금한 적 없다’라고 주장하기 위해 하는 짓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면회를 안 할 수는 없으니.
그는 천천히 옷을 갖춰 입고 나갔다. 그리고 그는 면회실에서 익숙한 얼굴과 낯선, 그러나 더없이 반가운 동포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얏센(Yat―sen)! 얏센, 이 친구. 살아 있나?!>”
“[칸틀리 씨! 덕분에 무탈합니다.>”
“[너무 걱정 말게. 이제 곧 자네를 빼내 줄 거야! 여기, 런던에서 성공한 자네 동포도 데려왔네!>”
“[안 그래도 궁금했습니다. 이 청년은 누굽······.>”
“아니 씨발(What the Fuck).”
그때였다.
동포라는 청년이 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더니, 얼굴을 확 찡그리고는 런던에서도 명망 깊은 의사로 유명한 제임스 칸틀리(James Cantlie) 씨의 멱살을 잡는 것이 아닌가.
“[난데없이 도움을 요청하길래 혹시나 했더니만, 이 새끼들이 그냥 퍼킹 레이시스트였네, 야 이 돌팔이 새끼야! 동포라는 단어의 뜻이 뭔지를 모르냐?]”
“아, 아니 갑자기 왜 그러는가!?”
“[이봐! 자네, 칸틀리 씨에게 무슨 짓······!>”
아니, 잠깐. 방금 들린 그것은?
그는 흥분해서 칸틀리 씨의 멱살을 잡고 난폭한 짓을 하는 동포 청년을 자신도 모르게 바라봤다.
그래, 그는 이 말을 알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어느 나라 말’인지는 알 수 있었다!
“[아니, 날 끌고 와놓고 한국어는 또 못하네? 야, 누가 동포야! 씨발, 난 한국인이라고, 이 빌어먹을 중뽕 새끼야!!]”
“조, 조선말······?”
그래.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그의 조국─ 중화제국(中華帝國)의 옆에 붙어 있는 소국, 조선의 말이었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오랜만에 만나는 감시자가 아닌 동양인의 모습에 그는 빠르게 입을 놀렸다.
“설마 조선인이시오?”
“난 한국······ 후우, 그래, 그렇다고 칩시다.”
왠지 모르게 긍정하면서도 짜증 어린 말을 내뱉는 청년.
그 태도가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그가 믿고 있던 칸틀리 씨가 데리고 온 사람이라면 무언가가 있을 게 분명했다.
그는 스스로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몸에 밴 움직임으로 제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크흠, 흠! 일단 그, 오해 때문이라고는 하나 만리타향인 먼 곳에서 같은 아시아인끼리 만난 것 아니겠소? 이렇게 찾아 주셔서 감사하오. 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진전을 잇고 있는 자로서, 자는 자이즈(載之), 호는 이시옌(逸仙)을 사용하오. 이름은 쑨더밍(孫德明)이었으나, 지금은 원(文)이라 하는 이름을 쓰고 있소.”
“아니, 이제 보니까 심지어 빨갱이라고? 당신 지금 뭘······ 아니, 잠깐, 지금 뭐라고요? 성이 쑨이고, 이름이 원?”
“그렇소만.”
“그럼─ 쑨원?!”
맙소사.
한국인, 진한솔은 감옥에 갇혀 있는 중국의 늦깎이 대학생이자 얼치기 혁명 모의자, 손문(孫文)을 보며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
아니, 이 인간이 왜 여기 있어.
물론 나도 알고는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 시대에 조선인이 청나라 공사관에 갇혀 있을 리도 없고, 의대 교수씩이나 되는 사람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나? 어······ 나는 미래인 아닌가. 한국인이고.
그래도 혹시 기대는 좀 했다.
아니, 죽어야 했던 릴리엔탈이 살아나고 비행기가 7년이나 일찍 태어나지 않았는가.
그러니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나비의 날갯짓으로 뭔가가 일어나지 않았나 싶었지.
길거리에서 조선 관리를 발견하기도 했고, 죽었어야 할 사람이 살아남기도 했고, 더 뒤에 나와야 할 비행기도 튀어나오고.
뭐, 그게 아니더라도 이 쑨원 말마따나 만리타향 아닌가.
설령 평범하고 이름 없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라도 도움이 필요했다면, 국가와 민족을 떠나서 같은 아시안으로서 얼마든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중국인인 것도 중국인이고, 심지어 얼치기 꼬뮤니스트 정치사범이다, 이겁니까?”
“그, 아니. 이 친구가 공산주의자라니, 그런 건 오해일······. 미안하네.”
그래, 미안해야지.
나는 날 여기로 끌고 온 제임스 칸델리 교수를 노려보았다.
나름 나병 치료의 전문가에 응급의학 1티어 교수라지만, 그게 뭐 어쨌다고.
의도치 않았든 간에 사기를 친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지들도 개구리나 자우어크라우트라고 말하면 바로 쌍욕부터 나가잖아. 심지어는 스코틀랜드랑 잉글랜드끼리도 욕이 나오면서.
사해가 동도다(四海同胞) 뭐 그런 건가?
“이보게, 자네! 아무리 그래도 칸델리 교수님께 너무 무례한 것 아닌가?! 모름지기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했거늘, 어찌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조선에서 온 사람이!”
“난 이 사람 제자 아닌데요.”
“어, 음. 그건 그렇지만!”
뭐라는 거야, 이 어설픈 인간이.
나는 잠시 대화에 껴들어 온 중국인을 보았다.
쑨원, 쑨원이라······ ‘그’ 쑨원이 이렇게 어설픈 대학생 만학도라니.
물론 실제 쑨원도 굳이 따지면 사상가나 혁명가로는 대단했어도, 위정자로서는 얼치기였다고는 했지.
그러나 저자는 이 어설프기 그지없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결국 신해혁명을 성공시키고 대만과 중공 양국에서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는 혁명가다.
시황제 이래 2천 년 동안 이어진 천자(天子)와 천명 시스템을 부수었고 그 자리에 중화(中華)의 개념을 창시해 넣은, 어떻게 보면 근현대 중화민족을 ‘창조’한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말하면 한국인인 내 입장에서는 솔직히 만악의 근원 같기도 한데······ 대만에서도 국부로 추앙받고 있던 걸 생각하면 그냥 민족 정체성을 만들었을 뿐인 양반이고, 쑨원 개인이 직접적으로 조선이나 한국에 이상한 짓을 하진 않았으니까. 일단 세이프라고 쳐 둘까?
아무튼, 중요한 건.
이 게, 어마어마하게 떡상할 코인인 건 확실하다는 거다.
쑨원이라는 사람의 이름값, 그리고 그것이 통하는 중국 인구가 약 13억.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 비록 인도에게 인구수 1위의 자리를 뺏겨서 2위로 내려앉았다곤 하지만, 그 단위 자체가 다른 셈이지.
미국의 여러 회사가 괜히 중국의 달달한 꿀통을 잊지 못해서 이런저런 문제가 생겼던 게 아니다. 13억이란 이름은 죠스가 아닌 거다.
한 사람에게 1원만 뜯어도 13억이 벌린다는 소리니까.
지금? 지금도 무려 4억이나 되는 인구가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괜히 그 인도도 먹은 영국이 아직도 소화를 못 시키고 있는 게 아니니까.
아무튼 나만 해도 한중 관계가 악화되기 전에, 중화권 진출을 노린 무협 웹소설에 도전해 보잔 얘기가 나오긴 했었다.
미친놈과 금치산자의 시너지 때문에 그냥 내수시장에 집중하긴 했었지만.
그때도 그랬는데, 이제 매출 괜찮게 나오는 출판사 대주주가 되니까 그 거대한 시장이 눈에 밟힐 수밖에.
문제는.
“그리고, 무례한 걸로 치면 속 썩이는 그쪽이 더 예의가 없는 쪽 아닙니까? 의사라면서요. 왜 하라는 의학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이 빨갱이 짓이나 하다가 잡힙니까, 잡히기를.”
“빠, 빨갱이 짓이라니! 크흠. 난 어디까지나 학문으로······.”
“마르크스랑 엥겔스의 진전을 잇는다 어쩐다 헛소리했으면서.”
“크으윽.”
“얏센, 자네······.”
나는 차게 식은 눈으로 쑨원을 보았다.
제 딴에는 누명이다 어떻다 말을 했지만, 이렇게 구금되어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뭔가 건수는 없는 정치사범에 하는 그런 거잖아?
그렇다면 청나라에서도 현재 이자를 그런 쪽으로 의심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러니까.
“그래, 이미 다 알고 있다면 어쩔 수 없지.”
방금까지의 어설픈 모습과 달리, 그리 말하는 그는 단단한 거목이 박힌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얏센.”
“죄송합니다, 칸델리 교수님.”
하지만, 이라고 쑨원은 당당하게 말했다.
“지금의 청은 부패했고 황제는 무능하지요. 인민은 굶주리고, 이 만리타향에 노예로 팔려 나온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뒤집어엎고, 예수님 앞에 당당한 나라를 세울 겁니다.”
과연, 이게 본모습이라 이건가.
아니, 정확히는 스스로가 믿는 신념이 단단하기에 이것이 말에 담겨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흠, 이런 걸 보면 확실히 거물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네.
하지만 그래 봤자, 지금은 그저 구금되어 있는 좋은 호갱님일 뿐이지.
“교수님의 믿음을 배신한 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니, 음······ 나도 중국을 갔다 왔으니 뭐라 못하겠군. 그래, 민주주의 국가에선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아시아에선 아시아만의 방식이 있겠지.”
아니, 아시아에서도 망한다니까? 희대의 참새 학살자와 검열 성애자가 튀어나와서 전부 다 신비해진다고.
물론 지금이야 전제 왕정의 기틀이 흔들리고, 한계 없이 나뉘는 계층 사회에 아랫사람이 갈려 나가며 혁명 마렵게 만드니, 다 같이 평등하게 잘살자는 말에 매료되는 것이다.
사실 공산주의라는 게 말로는 정말 태평천국 지상락원이니까.
현재로선 아직 임상실험도 되지 않은 개념이니 세뇌 어플이나 진배없지.
자본주의? 그거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 빨아먹는 논리 아니냐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으니 말 다 했지.
결국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는 건 공산국가의 실체가 드러나서 나고다.
무수한 피와 실패와 희생과 함께.
내가 그 꼴은 못 보지.
난 차분히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확실하게 말했다.
“좋습니다. 일단, 여기서 나오는 데까지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그, 그게 정말인가?”
쑨원의 눈이 흔들린다. 그도 말은 했지만, 실제로 그게 가능하리라곤 생각지 못한 듯한 모습.
“단, 그러기 위해선 필요한 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할 수 있네.”
뭐, 별건 아니고······.
“일단.”
나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출판사에 취직하시죠.”
“으, 으응?”
벤틀리 씨, 지금 한 놈 더 올라갑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