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53)
“한슬로 진? 그 고려······ 인(Gāolían)이 말이오?”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발음이 희한하네? 그분은 자신을 코리안(Korean)이라고 하던데.”
“저 사람은 작가님과는 다르게 중국인이라잖아, 저쪽에선 저쪽의 발음이 따로 있겠지.”
“흠, 하긴.”
출판사 ‘벤틀리와 아들’의 창고.
그곳에는 2~3년 전부터 ‘세 얼간이(three Idiots)’라고 불리는 애칭으로 불리는 세 작가 지망생이 감금······ 아니 숙식하며 일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린지.
월터 드 라 메어.
그리고 윌리엄 서머싯 몸까지.
그런데 이제는 거기에 중년의 중국인이 한 명 추가되었다.
그 중국인, 쑨원은 그들이 설명하는 조선인 진한솔. 아니, 작가 한슬로 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글을 좀 쓴다길래 조선 정부의 홍보물이라도 만드는 자인 줄 알았거늘.’
대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소국인 조선인이 감히 대국의 공사관에 찾아와 자신 같은 정치사범을 빼냈다면 당연히 국가 공권력 단위의 무언가가 얽혀 있지 않겠는가.
그저 그렇게 생각했던 쑨원이었다.
아무튼 쉽지 않은 일일 테고, 그만한 구명지은(救命之恩)을 입은 만큼. 이를 갚기 위해 자신이 소국의 일에 도움을 주는 정도면 충분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넘어온 건데······.
그런 게 아니었다.
한슬로 진이라니, 제아무리 그가 이 나라에 통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이름만큼은 들어 본 적이 있을 정도다.
그가 다니던 도서관에서도 언제나 이야기의 주제가 되곤 했던 이름이었으니까.
이 런던 땅에선 조선이라는 국명을 아는 이를 찾기 더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로 한 나라보다 더 거대한 이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조선인이라고······?”
쑨원은 인지의 간극이라는 거대한 절벽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며 중얼거렸다.
그가 아는 한 조선은 중원의 부속에 불과하던 변방 땅.
그런 땅에서 이런 불세출의 영향력을 가진 이가 나왔다니······ 도저히 머리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물론 소설가, 라고 하면 전통적으로 요설(妖說)이나 퍼트리고 다니는, 설서인(設書人)과 비슷한 직종으로 마련이라지만, 그것도 정도라는 게 있는 거다.
한 줄 한 줄로 런던을 들었다 놨다 하는 영향력을 지닌 이를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심지어 갓난아이도, 그리고 갓 이곳에 도착한 외국인조차도 이름을 알 정도의 사람을.
그는 그제야 제가 이곳에 오면서 계산했던 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를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곧 호기심으로 전환되었다.
“······그, 혹시 그 책들이란 걸 좀 볼 수 있겠소?”
“물론이죠. 애초에 그러려고 오신 거잖아요.”
“아, 그, 그렇지. 그랬어. 번역하려면 일단 봐야지.”
쑨원은 자신보다 열 살은 족히 아래인 세 작가 지망생들에게서 공손히 한슬로 진의 책들을 받아 들었다.
그렇게, 쑨원은 마치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느낌으로 [피터 페리와 요정의 숲>을 펼쳤다.
‘기이한 기분이군.’
어렸을 때라면 모를까, 현재의 그는 소설은 잘 읽지 않는 사람이다.
애초에 돈도 별로 없는 의대 유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 소설을 사 보겠는가, 라는 것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소설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공상의 산물.
사상가인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꿈과 같은 허실이 아닌,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무언가였다.
그래서 그는 남들이 이런 소설에 탐닉하고 있을 때도,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탐닉했다.
[셜록 홈스>도, [타임머신>도, 당연히 한슬로 진의 소설들도 읽어 본 적이 없다.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다 함이 정확하리라.그리하여 이제야 확인하게 된 그 책들은.
“······이게 정말 조선 사람이 쓴 것이라고?”
쑨원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아, 물론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문장 자체는 쉬운 편이었고, 전개는 빨랐지만 아이들에게도 보여 줄 수 있을 정도로 간단했으며, 간간이 아름답고 가시성 좋은 삽화도 끼어 있어 상상력을 보충해 주고 있었으니까.
단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내용의 저변에 깔린 ‘생각’이었다.
사상가인 만큼, 그의 머릿속에는 화려한 전투나 아름다운 풍광보다는 그런 점들이 더 깊게 남았다.
소설에서 진행되는 사건, 인연, 문제들에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이념이라고도, 가치관이라고도, 혹은 사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 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낯설 수가 있지?’
쑨원은 조선에 가 본 적 없다.
하지만 어릴 적 하와이로 이주해 수학하고, 홍콩과 일본 등 세계를 돌며 흥중회(興中會)를 설립해 본 입장에서, 어느 정도는 동아인(東亞人)과 서구인(西歐人)을 둘 다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동아인은 공동체주의적이고, 그 내면에는 유불도(儒佛道) 삼 교의 가르침이 잡탕으로 섞여 있다.
서구인은 개인주의적이고, 기독교 이념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만이 그 성향을 결정한다.
그런데 이 책, [피터 페리>에 저변에 깔린 가치관은 개인주의적이면서, 공동체주의도 섞여 있다.
기독교적이라면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도 있었고, 불교적이라면 불교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와이에 있을 적, 기독교를 믿고 싶다고 형에게 말했다가 고향으로 쫓겨나고, 그 구태적인 고향에서 적응 못하다가 우상(偶像)을 부순 역사마저 있는 쑨원에겐······ 마치 물과 기름이 섞여 있는 것을 보는 느낌이었다.
“허어어어.”
근데 그게 맛있네.
쑨원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혼란 속에서 멍하니 책장을 넘기다 보니, 심지어 어느새 소설이 다 끝나 있었다.
그런 혼란스러운 그에게 서머싯 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때요, 재밌죠?”
“······재밌군.”
그렇다면, 다른 책은 어떤가.
쑨원은 다급히 손을 뻗어, 그 손에 잡힌 것을 펼쳤다.
그리고.
“이, 이건?”
“어때요, 이건 또 분위기가 확 다르죠?”
“참 신기하다니까. 그 동화를 쓰신 분이 어떻게 이렇게 사회 비판 그득한 글도 쓸 수 있는 건지······.”
“그러니 배울 게 많지. 저런 점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인다는 거, 쉬운 게 아니니까.”
[빈센트 빌리어스>.소문을 들어 모르진 않았다. 단순한 소설이 금융사기 사건을 고발하고, 그 사기를 막아 내기까지 했다는 그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였으니까.
그리고 그 내용은.
─왜 부유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느냐, 라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왜 날아오르려고, 힘이 헤라클레스만큼 세지려고, 그 반들반들한 머리가 스스로 수북해지도록 노력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저 이스트엔드의 사람들에게는 당신의 부가 그런 것입니다.
─세상에 자수성가란 말만큼 위선적인 이야기는 없습니다. 행운, 부, 권력! 그것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까? 신의 축복으로, 노동자들의 과도한 노동으로, 그리고 경쟁자들을 찍어 누른 결과가 아닙니까?
─모든 사람은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성취하느냐 마느냐는 재능에 달린 일이지만, 적어도 그 길을 막을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아······!”
쑨원은 처음엔 기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주인공 빈센트 빌리어스는 결국 자본 부르주아 아닌가?
그러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야기를 차용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하지만 읽다 보면, 결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산주의의 자본주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면서도, 공산주의 폭력 혁명으로 인해 상처 입을 평범한 서민들을 조명하고, 그들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자. 그것이 빈센트 빌리어스였다.
단 한 사람의 피해도 만들지 않기 위해, 같은 사장들에게도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비판하며 모든 사람이 스스로 타고난 행운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한다.
‘이게······ 가능한 건가?’
혼란스럽다. 하지만 자꾸 눈이 간다.
쑨원은 천천히 침잠했다.
빈센트의 행동은 결국 저의 성공만을 생각하고, 하는 행동은 지극히 위선적이면서도······ 결과적으론 이상을 꿈꾸고 있었다.
쑨원 스스로가 이상주의자였고, 그랬기에 외면하기 어려웠다. 그런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속에서는 차가운 이성이 그것을 거부했고, 그 결과.
“저 중국인 아저씨, 집중이 굉장한데?”
“그냥 즐기시게 내버려 둬.”
“하긴, 우리 원고도 급한데. 그리고 보니 너흰 뭐 쓸지 정했어?”
“······.”
“······.”
후루루룩, 그들이 홍차를 마시는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진다.
이제껏 그렇게 바라 왔지만, 정작 진짜로 잡지 연재를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자 세 얼간이도 내심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 연재를 시작하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돈과 명성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욕이나 처먹진 않을까?
“대체 다른 작가님들은 어떻게 이런 부담을 이기고 글을 쓰는 거지?”
“맞아. 한슬로 진 작가님을 봐 봐. 어떻게 한 번에 3개씩 글을 쓰는 거야?”
“그보다 굉장한 건 매번 손댈 때마다 성공한다는 거지. 그것도 색채가 다 다른 글을.”
부럽다.
너무나도 부럽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고 싶다.
똑―! 똑―!
그렇게 생각하던 세 사람, 아니 이제 네 사람이 지낼 방문에 벤틀리 출판사의 편집자가 들어왔다.
“여, 세 얼간이. 새로 온 사람이랑은 잘 지내냐?”
“뭐, 괜찮은 아저씨네요.”
“중국인이라고 들었는데 영어도 잘하고요.”
“지금은 책 읽느라 빡 집중 중이라 대화는 많이 못 했지만요.”
“그래? 그러면 이거.”
편집자는 무언가를 넘기며, 그렇게 말했다.
“너희들이랑 같은 잡지 들어갈 한슬로 진 작가님 신작인데, 한번 봐라, 참고할 부분이 많을 거다. 돌려 읽고 나서는 저 중국인한테도 넘기고.”
“시, 신작이요?! 이미 셋이나 하고 있는데!?”
“그래. 게다가 이거······.”
느낌이 꽤 달라.
편집자는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감탄한 뒤 사라졌다. 세 얼간이는 의아해하면서 서로를 보았다.
대체 어떻길래 세상에 존재하는 책은 다 봤을 법한, 저 숙련된 편집자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가.
“그, 그럼 본다.”
“응.”
“빨리 보고 넘겨!”
대표로 원고를 받은 윌리엄 서머싯 몸은 침을 꿀꺽 삼키고, 봉투를 열어 원고지를 보았다.
타자기의 무기질적인 타자로 쓰인 그 제목에는.
[바바 야가(Baba―Yaga)>라고 적혀 있었다.***
“내 아들을 때렸다고 들었다.”
자욱한 시가 향이 코를 스쳤다.
꿇어앉은 사내는 그저 흐릿한 눈으로 연기 너머, 호랑이 가죽 소파 위를 볼 뿐이었다.
“미켈레, 미켈레, 미켈레.”
그리고 그 소파 위. 고향, 이탈리아식 말투가 강한 사내가 그에게 말했다.
“우린 오랜 친구지. 이유를 듣고 싶네.”
“오. 조반니, 조반니, 조반니.”
미켈레가 킬킬거리면서 웃었다. 조반니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것은 산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다. 죽음을 각오한, 살아 있는 시체의 목소리다.
“별거 아닙니다. 아드님이 빌의 말을 훔쳤다더군요.”
“······뭐?”
조반니는 잠시 무슨 말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빌? 설마 그 빌인가?
“심지어 그 친구의 개를 쏴 죽이고, 집까지 불태웠다지요.”
“절벽에서 떨어트렸어요!! 살아 있을 리가 없다고요!!”
철없는 아들이 옆에서 소리치는 것을, 조반니는 가만히 들었다.
그리고.
“아, 아버지?”
“미치겠군.”
그걸 먼저 말을 했어야지.
조반니는 떨고 있었다. 시칠리아에서 여기 런던까지, 마피아(Mafia)의 정점에 있었던 그가.
“그 좆도 아닌 노친네가 대체 뭐라고!”
“그 좆도 아닌 노친네가 바로······ 살인자 빌(Killer Bill)이다.”
이 런던에서 살아 있는 노친네를 본다면, 그건 생존자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때였다. 문밖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집기가 부서지고, 비명이 들리고, 화약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아, 아버지!”
“젠장, 늦었군.”
이런 대화를 나눌 시간에, 빌이 이미 21명은 쏴 죽였을 것으로 생각했어야 했는데.
조반니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후.”
방 안으로 들어온 하얀 백발의 노인은 천천히, 자신을 모욕했던 애송이의 주검과.
그 주검 위에 남겨진 Rache(복수)라는 단어를 볼 수 있었다.
“얼마든지.”
빌이 애송이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