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54)
대영 제국을 강타하는 히트작을 줄줄이 내온 한슬로 진에 대해, 런던 시민들이 갖는 이미지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한슬로 진? 끝내주지.”
“취향에 안 맞을 순 있어도 재미가 없을 수는 없어.”
“읽기도 쉽고 알기도 쉬운 이야기에, 박진감 넘치고, 매력적인 캐릭터······ 싫어할 수가 없죠. 예? 주제 의식? 미학? 그런 걸 ‘펄프 픽션’에 바라는 게 바보 아닙니까?”
알기 쉽다. 그러면서도 이야기에 힘이 있다.
그것이 웹소설을 쓰다가 대영제국 런던으로 표류해온 작가, 한슬로 진의 최대 장점이었고, 런던 시민들이 한슬로 진의 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던 중.
서점에 새로운 잡지 하나가 살포시 내려앉았다.
“이봐, 이번에 벤틀리 출판사에서 새로 나온 [영 템플>이란 잡지 봤나?”
“아니, 그거 결국 신인들 데뷔용 잡지 아닌가. 수집용이라면 모를까, 그걸 굳이 1편부터 볼 필요가 있겠나? 재밌으면 나중에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되지, 뭐.”
“한슬로 진의 신작이 실렸는데도?”
“뭐야?!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같이 실린 소설들은 브램 스토커라던가, 허버트 조지 웰스 같은 이미 알고 있는 작가들이 아닌, 서머싯 몸이나 데이비드 린지 같은 신인 작가들이 대다수였으나, 그럼에도 사람들은 일단 ‘한슬로 진’이라는 이름을 보고는 기꺼이 돈을 내었다.
그들, 런던의 시민들은 언제나처럼 꿈과 희망의 이야기.
알기 쉽고 교훈적이며, 그러나 희망찬 미래와 약속된 우정, 노력, 승리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 장막을 들추고 엿본 잡지 안의 소설은─.
“이, 이건 뭐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어······! 이게 정말 한슬로 진이 쓴 게 맞나?”
“아냐, 알긴 알겠는데······, 이게 뭐지?”
그들이 알던 것과는 무척 다른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
“주인공이 굉장히 과묵해.”
“나오자마자 사람 한 명을 썰고 시작한다고?! 이래도 되는 건가!?”
“주인공이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쌈박질이라니······ 무슨 소설이 이렇지?”
이질적이다.
폭력적이라거나,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니, 물론 그것도 없잖아 있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던브링어>나, 그 [던브링어>를 시작으로 영국에서 유행하고 있었던 ‘히어로물’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진 않았다.
그런데 [바바 야가>의 주인공, 살인자 빌은 차원이 달랐다.
괜히 별명이 살인이 아니라는 듯, 사람을 죽인다. 단도로 썰고, 총으로 쏴 죽이고, 망치로 깨부숴 죽인다.
심지어 병기라고 생각하기 힘든 깃털 펜이나, 넥타이핀조차 빌의 손에 들어가면 충분히 사람을 죽여 버릴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왜 그렇게 강한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서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강하게 조명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과정으로 절벽에서 떨어져 템즈 강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데도 그런 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도, 그만한 호신술(Martial Arts)을 발휘하는지도 알 수 없다.
최소한의 상황만을 쥐여 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주인공이 어떠한 것을 파악해서 이동하고, 거기서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비 거는, 혹은 막고 있는 녀석들을 ‘무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철저히 처리해 버린다.
일견으론 이렇게, 전투만 나와도 괜찮은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재밌······ 어.”
“뭐지? 왜, 왜 이렇게 시원하지?”
“적이 나오면 그 족족 처리해 버리다니, 마치 소모품을 보는 것 같잖아?! 이······ 이런 폭력적인 글이라니! 하지만 그런데도 밉지 않은 건 왜일까?”
독자들의 도덕관념은 평범했다. 잡지를 주기적으로 살 수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된 중산층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아무리 상대가 먼저 공격했다 하더라도, 그리고 런던의 뒷골목에서 마약, 절도, 자릿세를 요구하는 이탈리아 깡패들이라고 할지라도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시민의식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면 지금 그들이 느끼고 있는 복수의 쾌감은 대체 뭐란 말인가.
총기와 맨몸 무술을 적절히 조합한 화려한 액션.
그것을 과도하게 띄워 주지 않고, 담담하게 묘사할 뿐인 문장.
이야기가 이제까지와 전혀 달라서 그렇지, 한슬로 진의 알기 쉽다는 장점은 여전히 글 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주효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스코틀랜드 야드 놈들을 우리가 어떻게 믿어?!”
“허구한 날 범죄나 일어나는데, 결국 그 월급 도둑놈들이 하는 일이 뭐야?”
“월급 하니 또 빡치네. 아니,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월급은 쥐꼬리고, 상사는 맨날 갈구기나 하고!”
세상에는 스트레스, 만성피로, 운동 부족을 항상 달고 다니고, 울화통은 매일매일 터지는데 우울증과 편집증, 편두통 최소 하나를 진단받는 직종이 존재한다.
회사원이다.
세상에는 매일 해가 뜨고 지기 전에 꼭 하루 한 명 정도는 죽여 버리고 지옥 가겠다고 하느님께 맹세하는 사람이 있다.
회사원이다.
세상에는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도덕을 가진 존재’라는 말을 개소리로 치부하고, 매일매일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역시, 회사원이다.
그런 이들에게 그저 단순히 죽이고 해체하고 부숴 버리는 주인공은······ 그들의 음습한 욕망을, 지나치리만큼 대리만족시켜 주고 있었다.
‘평범한 노인이라고 생각했던 누군가가 사실은 힘을 숨긴 전직 살인귀’라는 설정은, 언제나 치트키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결국 우리 패밀리를 전부 죽였군. 빌. 고작, 고작 개 한 마리 때문에!
─고작?
조반니. 빌은 차갑게 말했다.
─난 그 개를 에밀리의 장례식에서 만났다.
─그 순간, 한 자락 남은 희망을 받았지. 에밀리 뒤를 따라가지 않아도 될 이유를.
─네 아들이 그걸 빼앗아 갔다.
─훔쳐 갔고, 죽여 버렸지.
─그리고 넌······ 내 복수마저 훔쳐 갔군.
─모든 것엔 대가가 있다. 조반니.
“크으으으으······!”
“끝내주는구먼······!”
자신을 건드리는 것은, 그 어떤 거대한 것이라도 용서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대가를 치르게 해 준다.
그 묵직한 한마디에, 한 가정을 지키고 싶은 아버지들은 도저히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제 겨우 첫판이 나온 잡지인 [영 템플>의 판매량은 빠르게 기존 팬들이 형성된 [템플 바>와 [위클리 템플>을 따라잡을 기세였다.
그리고.
“조지 생도! 소포 받아 가라!!”
“오오! 드디어!!”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어느 한 사관학교의 생도가, 바다를 건너온 [영 템플>의 내용을 훑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으니.
“크으으으······! 그래! 바로 이거지!! 남자가 돼서, 자길 건든 놈들은 죄다 불알을 걷어차고 지옥에 떨어트려야 맞지!!”
손발을 휘저으며, 소설 속 빌이 어떻게 상대를 제압한 것인지 따라 해 보는 혈기 넘치는 소년.
동기들은 그런 조지를 보며, 도대체 저게 어떻게 그 명문 패튼(Patton) 가문의 후계자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
일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무(武)가 있고 협(俠)이 있다면 무협이요, 작가가 이 무와 협의 이상(idea)을 어떻게 묘사(mimesis)하느냐에 따라 그 작품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고.
이는 무협을 단순한 김용의 표절이 아닌, 장르로서 성립시키는 중요한 특색이기도 하다.
때문에 명가물(名家物)도 무협이요, 선협 소설도 무협이다.
그렇다면 무는 무엇이고 협은 무엇인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무(武)는 자력(自力)이고, 협(俠)은 사형(私刑)이라고.
즉,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힘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불의에 항거(사적제재)하는 것.
이것만 지키면 대강 무협이라 할 수 있다.
이 조건만 지키면 나머지는 뭐든 상관없다.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 싸운다? 상관없다.
칸담? 로봇? 맘껏 타도 된다.
적이 인간이 아니라 괴수다? 무슨 상관이랴. 그레이트 올드 원이 깽판을 쳐도 거기에 항거한다면 무협인 것을.
한때 커뮤니티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갔던 무협―학원물이나, 흔히 말하는 로맨스 무협이 무협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도 그것이다.
무공을 익혀서 하려는/하는/하게 되는 일이 항거가 아니라 연애니까.
즉, 스킨을 무협으로 쓴 것이지, 장르적 관습은 무협보다는 학원물과 로맨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요즘에는 하도 시장이 죽어가느라 이 역시 무협이라고 하는 동도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만······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에 각혈하고 말 것이다.
잡설이 길었는데, 아무튼 이런 내 관점에 봤을 때.
피카레스크-느와르-복수물이 무협이 아닐 이유는 없다.
“자기 스스로 복수를 하는 사람이, 정의를 이루겠단 사람이 협객이 아닐 리 없잖아요.”
“뭐랄까······ 당신이 임협(任俠)이란 개념을 굉장히 착각하고 있다는 건 알겠구려.”
쑨원은 나를 썩은 눈으로 보며 그렇게 말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협객이란 것들이 다 그런 것들 아니었어? 그래서 형가가 시황제 멱을 따려 들었고, 양과도 몽케 칸의 목을 베고 그랬던 거 아닌가?
“아니, 그렇게 말하면 무슨 협객이 전부 사람 목을 베는 것밖에 생각 안 하는 것 같잖소.”
“실제로 청부사나 동네 건달이었으니 다를 건 없잖습니까?”
쑨원이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입술만은 달싹이는 게, 마치 ‘분하지만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분하다!’라는 표정이다.
나는 웃는 낯으로 그를 달랬다.
“우선 사소한 건 넘어가고요. 아무튼 무슨 일입니까?”
“그건 사소한 게······. 휴, 됐소.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소.”
“말씀해보시죠.”
“당신 말대로 무협이라면, 어째서 우리 중원의 협객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지 않소?”
아니, 그것만이 아니지.
쑨원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무언가를 보는 눈으로 말했다.
“당신 이야기엔, 중국이나 일본 같은 동아시아는 둘째 치고 조선 이야기도 거의 나오지 않는 수준이더군. 내가 비록 소설을 많이 보진 못했지만, 영길리 사람이 쓴 것이나 진배없었소.”
“흠. 그건 고맙군요.”
“그래서 그 이유가 뭐요?”
“제가 소설에 조선 이야기를 많이 넣으면, 그걸 사람들이 읽겠습니까?”
나는 담담하게, 그에게 커피를 내려주며 말했다.
쑨원은 그것을 마치 구정물 보듯 했다. 에라이, 맛알못 짱깨 같으니. 하지만 덕분에 설명은 쉽겠네.
“그겁니다.”
“뭐요?”
“당신도 익숙하지 않은 차는 싫어하지 않습니까.”
사람이란 까다로운 취향을 가진 생물이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도, 이미 아는 맛에서 안도감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까.
“이 나라 사람들에게 동아시아의 문화는 낯설죠. 솔직히 말해, 외계인의 그것에 가깝습니다.”
“······알 만하군.”
왜 외계인이란 말에 커피랑 나를 번갈아 보고 있어. 이 네추럴 빨갱이가 진짜.
“그런데 난 돈을 벌어야겠습니다.”
그러니 별 수 있나, 현실과 타협해야지.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풀어줘야지.
나는 그렇게 말했고, 쑨원은 더더욱 불만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게 이해가 안 된다는 거요. 그래서야 당신이 저 양인들의 노예나 다를 게 뭐요? 양인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려주어선.”
“에휴, 이래서 사상가들이란.”
나는 가엾고 딱한 자를 보는 눈으로 쑨원을 보았다.
자기 딴에는 열심히 이상주의적인 사상을 만들었지만, 결국 독재자들에게 좋을 대로 이용당하는 간판 신세가 된 남자에게.
“남이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하는데, 그걸 참고 들어주는 사람은 딱 두 종류입니다. 그만큼 애정이 있거나, 혹은 그 이상으로 이용해먹으려는 거든가.”
“······몸에 좋은 약이 혀에는 쓴 법, 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역사만 봐도 권력자 주변엔 언제나 아첨꾼들이 모여 있기 마련이죠. 설마 군주론을 공부한 사람들이 감언이 안 좋다는 것을 몰라서 그랬다 생각하진 않겠죠?”
그 나폴레옹조차 샤를 드 라 베두아예르가 했던 희대의 아부질에 넘어갔고 말이지.
감탄고토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알아도, 기분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람의 감정이란 게 그런 거니까.
쑨원은 잠시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숙였다.
아무튼, 하고 나는 이어 말했다.
“감언은 좀 과한 비유긴 하나, 자신의 말을, 뜻을 전하고 싶다면 상대방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폭력에 불과하니.
“흐음······.”
쑨원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다시 눈을 뜨고 불타는 듯한 눈으로 말을 하였다.
“아무튼, 우선은 알겠소. 중원의 법도를 설파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지.”
하려고 했나. 하여간 이래서 방심할 수가 없다니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어이 쑨 씨! 휴식 시간 끝이야! 빨리 와서 작업해야지.”
“앗, 아······ 잠시!”
그리고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편집자의 손길에, 그는 순식간에 노예 A로 돌아와서 어두컴컴한 지하로 끌려 들어갔다.
음, 그래 지금 번역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긴 하지. 내가 쓴 글도 만만치 않은 데다, 들여온 중국 서적들의 양도 만만치 않으니까.
난 아직 미숙한 사상가를 향해 심심찮은 위로를 건네며 조용히 한마디 내뱉었다.
“일해라 노예야.”
화이팅.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