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58)
본래 역관 김병옥은 영어, 러시아어뿐만 아니라 제1 외국어인 한어, 2외국어인 일어 또한 익힌 당대 조선 1티어의 인간 파파고다.
참서관 민상호 또한, 여흥 민씨의 차기 기대주이며 한때 저 미리견(미국)의 메릴랜드 농업대학에서 1년 정도 수학했던 적이 있는, 쉽게 말해 조선에서 최선을 다해 기른 외교관이었다.
나름 조선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재들이었단 말이다.
그런 그들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때 이홍장의 최측근이었던 나풍록을 못 알아볼 일은 없었다.
‘하지만 저 청국이 왜······.’
독립국이 되어 버린 조선에다 인제 와서 어깃장이라도 놓고 싶은 것일까?
두 사람은 씁쓸함과 의아함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닌 저 나풍록이 참가했던 바로 그 하관에서의 조약[下關條約 :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조선은 청국과 조공을 비롯한 외교 관계가 일절, 강제로 끊겼다.
따라서 지금 그는 조선 공사들과 만날 수가 없다. 그나마 같은 자리에 초청받으면 그곳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누는 정도?
유치해 보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이 외교라는 판이니까.
그런데.
“그걸 누구보다 잘 알 그가 대체 왜 여기에······ 아니, 영길리 공사로 좌천됐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참서관 나리, 일단 그보다 이 여관에 폐가 될 테니 우리 객실로 올려 보내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으음, 그 말도 옳군. 알겠네. 그러면 자네가 모셔 오겠나.”
“끄응. 알겠습니다.”
폭탄을 넘겨받는 기분이었지만, 김병옥은 어쩔 수 없었다.
아랫사람은 결국 자신이니까.
그리고 예상대로, 어찌어찌 데려온 그 나풍록은 뜬금없이 소리쳤다.
“[그놈은, 어디다 숨겼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 대인.”
“[시치미 떼지 말게!! 대체 그 반역도 놈과 무엄한 조선인은 어디다 숨긴 게야!>”
이게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반역도는 무어고 무엄한 조선인은 무어란 말인가. 애초에 이 먼 륜돈(倫敦:런던) 땅에 그들 말고 조선인이 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풍록은 그들의 항변 같은 것은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콧김을 연신 불며 단호히.
“[그리고!!>”
그리 외친 순간, 동시에 목소리를 낮추더니─ 두 사람을 향해 속삭였다.
“[로스차일드라니, 그 유대인 놈들은 어떻게 구슬린 겐가?>”
“······예에?”
로스차일드? 뜬금없이? 하지만 나풍록은 마치 누가 듣기라도 할세라 연신 빠르게 속삭였다.
“[어허, 숨기지 말게! 그들과 손을 잡다니, 내 북양대신께 알리면 크게 기뻐하실 일일세!>”
“[아니, 그. 대인.>”
“[아무리 왜적 놈들이 패악질을 부린다 한들, 그자들과 손을 잡으면 아무리 그 흉참한 왜놈들이라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겠지! 그래, 대체 어찌한 겐가, 응?>”
“[잠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게 다 무슨 말인가. 로스차일드라니?
‘로스차일드라면 그, 돈으로 구라파를 좌지우지한다는 권세가가 아닌가? 대체 그 이름이 왜 나오는가?’
민상호가 민영환보다 한슬로 진에 대해 부정적이긴 했으나, 그것은 그가 영길리와 미리견에 대해 더 잘 알면 잘 알았지, 몰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잘 알았기 때문에 회의적이었던 거다. 방금도 말했듯, 그는 미리견에서 1년 동안 살아본 얼마 안 되는 글―로벌 인재였으니까.
그리고 그렇기에 나풍록이 하는 말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풍문으로 들었던 로스차일드라는 가문은 그야말로 금귀(金鬼).
돈이 되는 곳에는 들어가고 돈이 되지 않는 거라면 가차 없이 내치는 자들이었으니까.
동료보다 적이 더 많으나, 그 적조차 금력에 눌려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말 그대로 안하무인과 같은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과 우리 조선이? 언제? 어떤 연유로?
여태껏 나눈 이야기 중 하나도 이해가 가는 것이 없었다.
“[나 대인, 아무래도 무언가 오해가 있으신 듯한데, 상황을 좀 정확하게 설명해 주실 수 없습니까?>”
“[설명이라니, 지금 시치미를 떼겠다는 겐가!? 너희 빵쯔 놈이 감히 멸청흥한(滅淸興漢)을 외치는 대역죄인을 데려가 놓고!>”
“[으음······ 저희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뜸을 들이려던 민상호는 잠시 나풍록의 눈치를 보았다.
그가 민영환보다 나이는 어리다. 하지만 그보다 세계 곳곳을 먼저 돌아다녀, 한 가지는 확실하게 길러 왔다.
그것은 바로 눈치.
그런 그가 보기에, 나풍록의 목적은 고작 일개 반역도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로스차일드.’
확실히 그 거부들과 손을 잡을 수 있다면, 하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청일전쟁의 배상금도 메울 수 있고, 황해에 침몰한 북양함대도 다시 만들 수 있을 것이며, 그 값비싸다는 근대화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것들은 전부 돈으로 돌아가는 거니까.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겉으론 대인, 대인 했지만, 청은 어차피 다 저물어가는 나라. 게다가 그 청에서도 좌천당한 나풍록은 크게 무섭지도 않은 존재였다.
그에게 있어서 눈앞에서 오두방정 떠는 이 되놈은 그저 이용하기 좋은 말이었다.
저쪽은 이쪽이 뭔가를 쥐고 있다 생각한다. 그리고 이쪽에서는 없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그 정보가 그 로스차일드와 연결되어 있다?
‘좋아, 한번 장단에 맞춰 볼까?’
뭔갈 빼 먹어도 이득이고 그런 게 없다 해도, 작은 정보만 얻더라도 그들로선 아쉬울 게 하나도 없었다.
하물며 그게 아니라도 저 건방진 되놈을 엿 먹이는 데 이유가 더 필요한가?
빠르게 머리를 굴린 민상호는, 빙긋 웃으면서 나풍록에게 말했다.
“[하하하. 나 공사님. 어찌 그걸 우리가 밝힐 수 있겠습니까.>”
“[으으음······ 무슨 말인가, 그게.>”
“차, 참서관님?”
“자넨 가만히 있게. [공사님, 공사님께서 여기까지 오신 걸, 저 간악한 왜적들이 보지 않았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왜적들이 내 행보를 통해 앞서갈 수도 있다고?>”
“[가능한 이야기지요.>”
민상호는 입에 꿀이라도 바른 듯 간사하게 속삭였다.
“[저희로서도 그들과는 아직 정확한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다만 저 왜구들이 보기에는······.>”
“[그 모호한 관계조차 고까울 것이란 말이지.>”
“[역시 영민하십니다.>”
김병옥은 경악하며 민상호를 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거짓말이 입에서 술술 나오는 것인지.
“[사실 말씀하신 그 조선인도, 저희와 관계는 있지만 솔직히, 제대로 통제는 안 되는 인간이라서 말이지요.>”
“[아니, 자네들은 자국인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뭐 하는 겐가?>”
“[송구합니다. 하지만 저희야 국모가 피살당할 정도로 약소국인데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끄으응······ 그도 그렇지.>”
‘그렇기는 개뿔이.’
민상호는 비릿한 미소를 내뱉으며 나직이 입가를 다셨다.
“[하여 저희도 좀 더 나라로서 입지를 세울 때까지는 자유로이 돌아다니게 하였는데, 설마 청국에 그런 폐를 끼쳤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끄응! 어쩔 수 없군. 그래, 그러면 그 작자는 우리에게 넘겨주는 겐가?>”
“[하하, 그건 그게······ 로스차일드 쪽의 의중을 살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네놈들 따위가 그런 권세가의 총애를 받는 놈을 어찌.>”
“[하하 그렇지요? 그래서 말인데······.>”
민상호가 눈을 번뜩였다.
“[이번에 영길리의 보수당에서 사교회가 있다고 하는데, 저희도 그곳에서 여러 위정자과 반면지교를 트고 싶습니다만······.>”
“[가면 되지 뭐가 문젠가?>”
“[아시잖습니까? 저들이 어떤 자들인지. 그리고 원래 이런 일에는 빈손으로 갈 수 없는 법인데······ 아시다시피 저희는 영세한데다 약소하고, 방금 말씀드린 조선인도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다 보니······.>”
“[음, 하지만 나도 그리······.>”
“[만약 그 조선인만 손에 넣으면 그 정도 푼돈이 대수겠습니까? 곧장 갚아 드리지요. 게다가 공사님도 언제까지 이 영길리에만 있으실 순 없잖습니까?>”
다시 자금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속삭이는 민상호의 말에, 나풍록의 눈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민상호는 그 마음을 찔러 들어갔다.
“[한데 만약 이를 왜적이 아니더라도, 다른 대신들이 안다면······.>”
“[절대, 절대 그럴 수 없지! 알겠네! 내 사비를 털어서라도 지원해 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공사님! 아, 이 건은······.>”
“[내가 바보인 줄 아나? 당연히 비밀리에 진행할 터니 걱정 마시게.>”
데굴데굴 눈을 돌리는 민상호에게, 나풍록은 장담을 하곤 벌떡 일어섰다. 고개를 저은 그는 몸을 홱 돌리며 말했다.
“[그럼, 내 그대만을 믿고 있겠네. 뭔가 이야기가 들리면 즉시 우리 청국의 공사관으로 찾아오도록.>”
“[아이쿠,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그렇게 나풍록은 떠나가자, 옆에서 진땀을 줄줄 흘리던 김병옥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어, 참서관님.”
“왜 그러나, 김 역관.”
“아니, 저 구두쇠 같은 자에게서 지원까지 얻어 내다니! 혹, 저자가 말하는 그 조선인이 누군지 이미 알고 계셨던 겁니까?”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예?”
김병옥은 경악한 눈으로 민상호를 보았다.
하지만 민상호는 의뭉스럽게 답하였다.
“그냥 둘러댄 걸세. 로스차일드와 연이 있는 조선인이라고? 그런 게 어디 말이나 되는가? 저 귀축 같은 자들이 그럴 리가 있나.”
“하, 하지만 그러면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하신 겝니까.”
“흥, 걱정마시게. 저자도 결국 끈 떨어진 연이야. 그러니 저런 말도 안 되는 흰소리에 안절부절못하며 어떻게든 선을 닿아 보려는 거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하나 연락을 주기로 한 것은 어떻게 하고요?”
“알 반가? 우리가 영원히 여기 있을 것도 아니고, 욕심이 많아 저 혼자 공을 세우려는 걸 보니. 우리는 적당한 소리만 던져 주면서 공염불만 받아먹으면 된다네. 이걸로 체류 생활이 더 풍족해지겠군.”
김병옥은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세도 정치의 최첨단에 서 있는 가문 출신이라는 것이 겉치레가 아니라 할 만한 솜씨였다.
‘나 원 참,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 허상 같은 것만 쫓아 대는군.’
세상을 바꾸는 것은 오직 하나. 힘이다.
그런 그에게 있어 말 같지도 않은 소문을 쫓는 나풍록이나, 한낱 소설가에 신경 쓰는 김병옥이나 비슷해 보일 뿐이었다.
***
켄살 그린 묘지(Kensal Green Cemetery).
“영혼을 하느님께 맡기고, 육신는 땅에 안장하니, 흙은 흙으로, 재는 재로 티끌은 티끌로(ashes to ashes, dust to dust).”
유명한 영국의 진혼시가 울려퍼지고, 하인들 몇이 하얀색 관을 천천히 묘지 속으로 넣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 그대를 부활하게 하시어 영생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아멘.”
나는 경건히 고개를 숙였다.
1897년 연말을 자동차 관련으로 보내고, 1898년 새해가 되자마자 나는 부고 한 통을 받게 되었다.
그건 바로 자유당의 터줏대감이자 서민원의 아버지(Father of the House), 찰스 펠햄 빌리어스(Charles Pelham Villiers) 의원.
성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분이 바로 찐 빌리어스 가문의 당대 가주다.
즉, 빈센트 빌리어스에 이름을 써도 된다고 허락해 주신 분이기도 했다.
귀족 까는 소설에 이름을 써도 모독죄로 고소하긴커녕 [피터 페리>의 작가가 다 잊힌 가문 이름에 금칠해 준다며 웃어넘기셨던 분이다.
글 열심히 쓰라고 격려도 해 주셨던, 여러모로 소탈하고 훌륭하신 분이셨는데······.
“연세가 연세시니 아쉽다는 말씀을 드리기도 애매하네요.”
“천수를 누리다가 가신 분이 아닌가.”
그건 그렇지.
1802년생, 4년만 더 살았으면 이 19세기에 100살을 기록하셨을 분이니, 참······.
게다가 미혼이라 조카가 상주(喪主)를 보고 계시고.
“그러니 자네는 빨리 소식 좀 전해주게.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소식이 늦나.”
“아니, 저기. 아무래도 그게 좀.”
“실례하겠소, 밀러 씨.”
그때였다. 아까 봤던 그 상주, 조카 에드워드 빌리어스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물론입니다, 클라렌던 백작님.”
“삼촌께 들었소만, 이 아시안이 그 한슬로 진이요?”
“예. 그렇습니다.”
난 살짝 긴장했지만, 다행히 클라랜던 백작님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가문의 이름을 떨쳐주신 분이로군. 참 고맙네.”
“아닙니다. 전 그저······.”
“이보시오, 클라렌던 백작!”
그때 저 멀리서 수염이 알흠다운 다른 정치인이 그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엄청 바쁘시네.
어쩔 수 없지. 아무래도 사람이 사람이고, 자리가 자리다 보니 일종의 정치의 장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백작은 한숨을 쉬고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보며 입을 열었다.
“또 가 봐야겠군. 미안하네,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누게 되어서.”
“아니요. 저는 괜찮습니다. 먼저 가 보시죠.”
“고맙네, 그러면 이거 받게.”
그리곤 이내,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예? 이게 뭐길래 제게.”
“고인께서 유산을 남기셨네.”
“예?”
저한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