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59)
유산 자체는 크게 별거 없었다. 그저 고인께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이를 [앨리스와 피터> 재단에 기증하는 방식으로 하려 하니 잘 부탁한다는 정도.
물론, 금액 자체가 상당하긴 했다.
모름지기 한 갑자의 내공이면 천하를 오시한다고 하듯, 찰스 펠럼 빌리어스 의원님의 정치 경력도 딱 한 갑자를 채웠다.
모아 놓으신 돈이 평범한 서민이 모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도 당연한 거다.
뭐, 내 작품에서 나오는 정치 명가 빌리어스 가문의 돈이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부족한 편이지만 애초에 그분은 가주도 아니셨고, 그런 걸 덜컥 받았다간 내가 조카분에게 17등분 당했을 거다. 차라리 소소하게 용돈이나 받은 셈이지.
그보다는······ 이쪽.
“허, 참.”
나는 침착하게 봉투에 들어 있던 상당량의 주식 배당표를 늘어놓으며 침을 꿀꺽 삼켜야 했다.
어느 특정한 회사의 주식은 아니었다.
홍콩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무역의 터줏대감인 자딘 & 매시슨(Jardine, Matheson & Co.)도 있었고, 섬유 중심의 무역회사인 스와이어 그룹(Swire Group)도 있었으며, 홍콩상하이은행(The Hong Kong and Shanghai Banking Corporation)의 주식도 있었다.
그 밖의 자잘한 회사들의 주식 배당표가 모여 있었고, 이들은 전부 홍콩 증권거래소에서 뽑힌 것이었다.
“와, 이게 다 얼마야······.”
나는 현대에서도 알짜배기로 손꼽히는 대기업들의 주식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돈 욕심은 없긴 하지만 이러면 이야기가 좀 다르긴 하지.
홍콩은 이후로도 아시아와 서구의 창구가 되며 그 미래에도 경제의 중심이 되니까.
비록 그사이에 여러 가지 정치적, 위치적, 이념적 사항이 껴 있었다곤 하지만, 그걸 제외한다 해도 이 가치는 뭐라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긴 하지.
난 잠시 내가 받은 것들을 확인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밀러 씨, 혹시 이걸 통해 홍콩 쪽에 땅을 구할 수 없을까요?”
“땅 말인가?”
“네.”
나는 밀러 씨에게 그렇게 진언을 올렸다. 밀러 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왜 굳이? 땅이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 않나. 뭐, 런던 땅을 구하는 것보다야 홍콩 땅이 싸긴 하겠네만······.”
“돌아가신 빌리어스 의원님이 너무 큰 선물을 주셨네요.”
배당표들 사이, 작고하신 고인께서 끼워 넣었던 쪽지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밀러 씨에게 내보였고, 밀러 씨 역시도 이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영국령 홍콩이 넓어진다, 이건가?”
“그렇습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홍콩은 크게 두 가지 구역으로 나눠진다.
영국이 처음 개척한 홍콩섬, 그 홍콩에 속한 반도인 구룡반도(九龍半島)다.
20세기의 대표적인 던전 중 하나였던 구룡성채(九龍城砦)가 있던 그곳 맞다.
하지만 1898년의 영국령 홍콩이란 딱 울릉도 수준 크기의 섬인 홍콩섬 하나만을 말한다.
즉, 1898년에서 20세기 사이에 영국이 중국에서 구룡반도를 삥뜯······ 아니, 조차하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늦어도 올해 말!? 자네, 틀림없나?!”
밀러 씨는 크게 놀라 소리치듯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틀림없을 겁니다.”
찰스 펠햄 빌리어스 하원의원은 비록 하원의원이었지만, 오랫동안 자유당의 터줏대감이었고, 전문 분야는 자유무역이었다.
흔히 그러듯 해적질을 고상하게 부르는 게 아니라 ‘진짜’ 자유무역.
그래서 국제외교에도 어느 정도 한 발 걸치고 있었고, 그 탓인지 동양에도 호의적이셨던 분이라 나에게 잘해 주셨던 것도 있다.
아무튼, 그분이 자유당 쪽에서 얻어들은 바에 따르면 재작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일본 따위에 대차게 패배하자, 중국을 더 만만하게 보게 된 유럽 열강들은 ‘열강의 뷔페’, 중국을 좀 더 대놓고 나라를 분할하고 약화된 중국 정부에 조약을 강요했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서로 눈치가 보이다 보니 대놓고 어느 나라가 큼지막하게 퍼먹진 못했다.
하지만 각각이 자잘하게 항구 하나씩은 챙겼는데, 대표적으로 벨기에가 톈진을, 러시아가 다롄을, 독일이 키아우초우를 뜯어먹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일본의 최대 후원국이었던 만큼 둘을 먹었다.
하나는 웨이하이웨이(威海衞) 항구고, 또 다른 땅이 바로······.
“이 쿠―롱 반도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이 둘을 합쳐, 영국령 홍콩은 완성된다.
이것이 찰스 펠햄 빌리어스 의원님이 내게 알려 준 정보였고, 그걸 홍콩 채권과 함께 넘겨준 걸 보면······. 나는 이걸 ‘네가 가서 뜯어 먹어라’라고 인식했다.
만약 내가 이걸 기회로 홍콩 유지 같은 게 된다면, 아무래도 영국 입장에서도 내 입장에서도 좋을 수밖에 없는 일이지.
이 시기에 나만 한 지영파(知英派)는 없으니 영국에도 좋고, 나도 앞으로 ‘아시아 4마리 용’이 될 이 땅을 조금이라도 파먹는다면 어마어마하게 코인이 떡상하지 않겠나.
응? 홍콩인들 입장에서? 에이, 당연히 그 양반들한테도 좋지.
이런 얘기를 쭉 풀어 주자, 밀러 씨는 이상하게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네. 그러면 재단 이름으로 부동산 투자를 해 볼 수 있도록 준비해 보지.”
“감사합니다. 밀러 씨.”
“음, 그런데 한슬.”
밀러 씨는 쭈뼛거리더니,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말았다.
아니, 평소에 거침없이 말하던 양반이 왜 저러신······ 아, 설마.
“지금 당장 가겠다는 거 절대 아닙니다.”
“아, 그런가?”
무슨 동틀 때 해바라기인 줄 알겠네. 나는 활짝 핀 밀러 씨의 얼굴에 마주 보며 씨익 웃고는 말했다.
“아직 매지 아가씨나 몬티 도련님 결혼하는 것도 못 봤고, 메리 아가씨도 아장거리고 있는데 제가 가긴 어딜 갑니까? 한 10년 내론 절대 어디 안 가니까 걱정 마십쇼.”
“흠흠, 걱정하긴 누가 걱정했다고.”
거짓말. 내가 피식피식 웃자, 밀러 씨는 뜬금없이 역정을 내셨다.
“그러니까 평소에 결혼도 안 하고 정착도 안 하니까 내가 이런 걱정을 하는 거 아닌가?”
“아니, 제가 결혼하든 안 하든 그건 상관없는 문제잖아요.”
“사람이 정착도 안 하고 만날 싸돌아다니니 언제 어디서 어디로 갈 지 모르니 걱정을 안 할 수가 있어야지.”
“숨만 쉬어도 돈이 샘솟는 이 브리튼 섬에서 가긴 어딜 갑니까. 만약 제가 어디 간다면 여행이거나 천재지변이겠죠.”
후자의 가능성은 도저히 배제할 수가 없긴 하다.
뜬금없이 환생 트럭도 아니고 환생 계단을 통해 이 19세기로 와 버렸으니 언제 어디서 도로시마냥 캔자스 허리케인 같은 천재지변에 휘말릴지 모르는 얘기니까.
근데 뭐, 그쪽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니까 말이다.
걱정해봐야 소용없겠지. 일단 돈이라도 모아 두자.
***
버킹엄셔, 워데스덴 저택.
본래 페르디난드 드 로스차일드 남작의 사유지이자, 버킹엄셔의 명물인 이 건물은 동시에 천하제일 금융 세가 로스차일드 영국 분가의 비밀장원 비스무리한 위치였다.
물론 대놓고 드러난 사유지이긴 하지만, 적어도 소속은 영국 분가 소속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분가 소속으로 되어 있으니 암튼 다른 곳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했다.
일종의 차명 계좌다.
하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에서는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일을 할 때 이곳을 종종 이용했으며, 대표적으로 지금이 그러했다.
“흐음, 한슬로 진이 홍콩에 투자를 하고 싶다라······.”
로스차일드 영국 분가 가주, 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Nathan Mayer Rothschild)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서 이 정보를 얻은 건지, 참.”
“지난번도 그렇고, 정말이지 정보가 빠른 사람입니다.”
“뭐, 우리보단 당연히 느릴 수밖에 없네만.”
소가주 라이오넬의 말에 장로 페르디난드가 답했다. 그리고 네이선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정리했다.
“애초에 홍콩 투자는 우리 역시 하기로 했던 것. 거기에 자선 단체 한둘 정도, 차명 계좌로 쓰는 셈 치고 끼우는 건 어렵지 않긴 하지.”
“탈세도 하고 좋지요. 허허.”
상식적으로 아무리 하원의 아버지라지만, 일개 하원의원이 아는 일을 천하제일 금융세가 로스차일드에서 모른다는 것은 어불성설.
당연히 로스차일드 역시 홍콩의 ‘새 영토’에 알박기할 심산이었다.
그래서 [앨리스와 피터> 재단에서의 투자 문의는 ‘예상 밖’의 일이라 그렇지, 엄청나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자, 그럼 이 일은 여기까지 해 두고.”
이 일을 다루지.
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굳이 토론을 이 비밀장원에까지 와서 해야 하는 이유.
그것은.
툭!
그는 지난 1월 13일 자, 프랑스 문학 신문 [로로르(L‘Aurore)>를 내밀었다.
[타임지>에 버금가는 프랑스 신문인 [르 피가로(Le Figaro)>나 [라 크루아(La Croix)>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이름조차 변변히 없는 신문.하지만 그 날짜의 신문 기사만큼은 온 유럽을 강타했다.
다름 아닌.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 프랑스인들은 언제나 격정적이군요.”
라이오넬 윌터 로스차일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말년에 참으로 끔찍한 일이지.”
드레퓌스 사건.
프랑스의 반유대주의를 대표하는 사건이자, 터무니없는 스파이 조작 모의 사건.
시오니즘을 후원하는 로스차일드에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프랑스 로스차일드 분가, 로쉴드조차 제대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잘못 건들였다간 분명 수군거리는 음모론자들이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진 않을 테니까.
그래서 어떻게, 우회적으로라도 지원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는데······.
“한슬로 진은 여전히 여기에 말 얹을 생각이 없다더냐.”
“얘기도 못 꺼내 봤습니다. 애초에 그가 해준 일이 보통 일은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는 매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반유대주의를 퍼트리던 엘리자베스 니체, 그녀의 실체를 폭로하고 위대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를 구해온 것은 다름 아닌 한슬로 진.
물론, 당시 한슬로 진 명의가 아닌 ‘타케 이테아시’라는 정체불명의 일본 사업가 명의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의 공적은 무시할 수가 없다.
‘덕분에 우리 분가 입지도 올라갔고.’
네이선 메이어는 제 옆자리에 앉아 있는 페르디난드를 흘낏 보았다.
반유대주의를 막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본가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
니체 사건으로 영국 분가의 입지는 다른 분가들보다 한껏 앞서갈 수 있었다.
다만, 아직 공고하진 않다.
그 상황에서 벌어진 이 사건, 유대인 차별에 관한 가장 큰 사건인 이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전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얻어 낼 수 있다면······.
‘경쟁 자체가 필요 없어질 텐데.’
네이선은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냥 놔두는 것만으로도 프랑스 로쉴드를 견제할 수 있는 셈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놓치기엔 아까운 고기 아닌가.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십시오. 애초에 에밀 졸라는 우리 분가 중 그 누구와도 연관된 인물이 아니잖습니까. 그냥 양심적인 지식인에 불과하지요.”
“흠, 그건 그렇지.”
만약 에밀 졸라가 프랑스 로쉴드의 후원을 받는 사람이었다면?
기껏 앞서나간 점수가 따라잡힐 수도 있었다.
네이선 메이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서, 어찌할까?”
“한 가지 제안하자면, 차라리 다른 방향으로─, 로쉴드 측과도, 한슬로 진과도 윈윈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모색해보면 어떨까 싶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페르디난드 형님?”
네이선 메이어는 한 살 위의 먼 친척뻘 형에게 물었다. 그러자 페르디난드는 고개를 끄덕이곤, 가주에게 진언했다.
“에밀 졸라는 그 어떤 가문의 후원도 받지 않았던 인물이지요.”
“그야 그렇습니다만.”
“그렇다면, 인제부터 지원을 하면 좋지 않겠소?”
페르디난드는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네이선 메이어는 그것을 급히 뜯었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프랑스 로쉴드 분가.
그리고 그 내용은······.
―‘프랑스에서 작가 에밀 졸라에 대한 암살 모의가 꾸며지고 있소.’
“흐음.”
네이선 메이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슬로 진이 동종업계 종사자들을 그렇게 잘 끌어모은다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