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60)
프랑스, 파리.
“마아아아앙명?! 내가 왜 파리를 떠나야 하나!!”
가냘픈 실루엣과 턱수염, 그리고 두꺼운 코안경이 인상적인 중늙은이가 카랑카랑하게 외쳤다.
그리고 그런 작가에게 취미 삼아 사주 겸 주필을 하고 있던 정치인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금 아예 이민을 가라는 게 아니잖나, 에밀.”
“어쨌든 나더러 도망치라는 소리잖나! 지금도 드레퓌스는 저 차가운 감옥에서 죽어 가고 있고, 진짜 간첩인 에스테라지가 영웅 취급을 받고 있는데, 내가 저 불한당 같은 군바리들 때문에 도망을 치라고? 조르주,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에밀 졸라는 뻣뻣하게 말했다.
조르주 클레망소는 그런 반응을 예상했으면서도, 이 고집불통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머리를 부여잡았다.
물론, 당연히 답은 없었다.
작가라는 인종들은 모름지기 필력과 에고이즘이 정비례하는 법이고, 그중에서도 프랑스인들의 고집은 유럽에서 알아주는 쇠심줄이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인기 소설 [목로주점(木壚酒店, L‘Assommoir)> 시리즈의 저자이자 현재 파리 최고의 자연주의(Naturalism) 작가로 칭송받는 에밀 졸라의 고집은? 당연히 그냥 쇠심줄도 아니고 티타늄 급의 심줄 수준이었다.
그는 오히려 한 살 아래의 정치인, 클레망소에게 은근히 말했다.
“이봐, 조르주. 내가 그 제목을 붙였나? 자네가 그 ‘나 죽여줍쇼’하는 제목을 붙여 놓고 왜 인제 와서 앓는 소리야?”
“그땐 이렇게 잘 팔릴 줄 몰랐으니까 그렇지!!”
조르주 뱅자맹 클레망소(Georges Benjamin Clemenceau)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30만 부라니······ 문학지 로로르 역사에 여태껏 없었던 쾌거였다.
심지어 그 역시 어느 정도 파장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했고 부수를 늘렸음에도,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래도 뭐, 그 가구장이 아들놈은 좀 간담이 서늘했겠지.”
“대통령을 그렇게 불렀다간 그거대로 또 명예훼손이라고 할 게야.”
통쾌하긴 하지만, 그렇기에 마냥 기뻐할 수만 없게 된 것이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닐세. 지금 밖에서 자네가 무슨 말을 듣는지 알고 있겠지?”
“그야, 뭐.”
에밀 졸라는 얼버무리며 고개를 돌렸다. 매국노, 도이치 잡종, 유대인 창부에게 넘어간 머저리······.
날조도 이 정도면 예술이리라. 이탈리아계 프랑스 작가인 졸라로서는 별별 소리를 다 지껄이는 가톨릭계 보수 신문과 군부 인사들을 보며 어처구니없어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더 어이없는 것은, 그 중상모략이 쏟아지는 대로 곧이곧대로 듣고 있는 파리의 민중들이었지만.
“역시 이상해도 너무 이상해.”
에밀 졸라는 그렇게 투덜거렸다.
한때 모형 단두대를 사 인형의 목을 썰기까지 했던 도시 파리.
그런 이 도시에서 지금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은 그의 인형이었다. 당연히, 태우기 위해서다.
“저 러시아인들도 아니고, 우리 프랑스 국민이 이렇게까지 유대인들을 싫어했던가? 스스로의 도덕과 상식과 이성을 전부 부정해 버릴 만큼?”
“이보게, 에밀.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냐.”
자네가 어떻게 살아남느냐지.
클레망소가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턱. 턱.
밖에서 뭔가가 집히는 듯한 특징적인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순간 두 사람은 벌떡 일어나 출판사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에밀 자네, 결국 날 여기까지 오게 하는구먼.”
“쥘 선배!”
“오셨습니까, 베른 의원님.”
“클레망소 군도 무사해서 다행일세.”
두 사람은 빠르게 다과를 세팅했다.
쥘 베른이 오기 전까지 침을 튀기며 싸우고 있었지만, 올해로 딱 만 70세 되는 노인이자 대선배 앞에서 그럴 정도로 예의 없진 않았다.
“오시는 동안 불편하진 않으셨습니까?”
“뭐, 불편하긴 했네만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까.”
덕분에 로실드로부터 열차 1등 칸을 뽑았다면서 너스레를 떠는 쥘 베른의 말에, 클레망소는 침잠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들도 몸이 달았더군요. 건너 건너 열심히 전달해 오고는 있는데,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제대로 나서는 순간 역풍 불 게 뻔하다면서 조심하는 모습이 참 안쓰럽습디다.”
“드레퓌스 말고도 챙겨야 할 유대계 상점들이 많으니 어쩔 수 없지.”
에밀 졸라는 깊은 한숨을 쉬며 그렇게 말했다.
사건 이전까지 좋은 이웃이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점을 약탈하고, 사람을 패고, 폭동을 일으키니 이것이 인세의 지옥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쥘 베른은 한 차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유대인 거주구(게토)도 문제지만, 정말 시간이 없는 건 자네일세. 에밀, 빨리 변호사부터 만나게. 그사이 내가 영국행 배편을 알아보지.”
“변호사라니요? 무슨 일 있습니까?”
“군부에서 자네를 ‘군법회의를 중상모략했다’라는 이유로 고소했어.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네.”
“그게 말이나 됩니까!? 이, 이······ 이 대가리에 말똥 냄새만 그득한 군바리 새끼들이―!”
“제발, 제발 말조심 좀 하게!!”
“으휴!!”
에밀 졸라는 탄식을 탁하고 내뱉었다. 쥘 베른은 고개를 홰홰 저으며 말했다.
“일단 그럴 가능성도 낮아 보이지만, 무죄를 받는다고 해서 안심할 수도 없네.”
“그러고 보니 저도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군 내에서 아예 암살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꺼내는 미친놈들이 있으니 조심하라고요.”
“제기랄, 하여간 누가 나폴레옹 따까리들 아니랄까 봐.”
“그러니 되도록, 언제든지 영국에 갈 수 있도록 준비해 두게.”
그리고······.
쥘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미리 예기해 둘 터니. 만약 정말 영국에 가게 되면, 한슬로 진을 찾게.”
“아, 그 [피에르 페리스>의 작가 말씀이시군요.”
“에펠에게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지. 미래에 대한 묘한 통찰력이 있는 청년이지.”
미래를 염려하면서도 낙관주의를 긍정하던 그 검은 머리의 청년을 떠올리던 쥘 베른은 그렇게 말하며 일부러라는 듯 짐짓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번 만나 보면 좋은 자극이 될 게야. 자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일단 알겠습니다.”
어차피 영국에서 할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에밀 졸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이 아름다운 프랑스를 아예 뜨지 않는 것이지만.
뭐, 그래도 설마 별일이라도 있겠는가?
다른 곳도 아니고 이 이성과 과학의 도시이자, 자유―평등―박애의 수도 파리에서.
***
“여기 홍콩 투자 관련으로 정리해 둔 문서입니다. 작가님.”
“고맙습니다. 윌터.”
나는 라이오넬 윌터 로스차일드에게 받은 문서를 대강 눈으로 훑으려다가······ 귀찮아져서 다시 닫았다.
응, 내가 뭘 안다고 이걸 다 확인하겠냐, 그거 하라고 전속 회계사 두는 건데.
“그건 그렇고 홍콩이라니, 이렇게까지 발 빠르실 줄은 몰랐습니다.”
“뭐, 홍콩이 노다지인 걸 누가 모르겠어요.”
나는 너스레를 떨며 그렇게 말했다.
사실 제국주의 시대에서 제일 흥한 나라가 대영 제국인 건, 영국이 가장 적극적으로 확장 정책을 펼친 것도 있지만 그만큼 알짜배기를 쫙쫙 빨아먹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브롤터―그리스―수에즈 운하 혹은 희망봉―인도―말레이 반도―홍콩―일본으로 이어지는 범대륙적 경부고속도로를 통으로 차지한 것이 영국이었고, 이중 홍콩은 말하자면 대구쯤 되는 위치.
당연히 그 가치는 굉장히 높다.
게다가 난 손에 쑨원도 쥐고 있지 않은가.
임대사업을 해도 되지만, 홍콩에 벤틀리 출판사 지점을 세우든, 아니면 내가 직접 출판사를 세우든 해서 쑨원을 앉히고 중국어 번역판 소설들을 팔면 대박은 따 논 당상이지.
푸르디푸른 블루 오션이 이렇게나 아름답다.
그런 이야기를 해 주자, 라이오넬 윌터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물었다.
“중국 시장이 그렇게 가치가 높다고 보십니까?”
“그 넓은 땅에 인구가 4억입니다, 4억. 그중 10%만 팔아도 무려 4천만 부죠.”
“으, 으으음······ 확실히.”
“게다가 동양에선 돈 되는 곳이면 무조건 화교가 있다고들 하죠. 싱가폴에서 원주민도 아닌 중국인이 그렇게 많다고 하질 않습니까?”
중국인이 아니더라도 화교들에게 팔 수 있다는 말에, 라이오넬은 신기하다는 듯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어. 그것참 대단한 이야기군요.”
“뭐, 그렇죠.”
나는 그렇게 말하는 라이오넬의 어조에서 미묘한 감정이 넘실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흐음, 이 이야기에서 이 양반이 감정 느낄만한 일이라······.
음, 역시 그거밖에 없겠구먼. 나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요즘 부고가 많네요.”
“아, 음. 확실히 요즘 그렇지요.”
일단 내가 이 이야기를 들은 것도 빌리어스 영감님의 유산이었으니까.
그리고 내 지인 중에서도 부고를 받은 사람들이 많다.
일단 조지 버나드 쇼는 저명한 사회주의자이자 공지주의자인 헨리 조지가 사망해서 장례식에 참석하러 미국에 갔고, 조지 왕세손은 얼마 전에 테크 공작부인의 부고를 받았다.
왕세손비가 원래 테크 공작 영애였으니, 한국식으로 치면 장모상을 당한 거지.
그리고 입원했던 루이스 캐럴 영감님은 오랜 지인이자, 그 앨리스 시리즈의 모델인 앨리스의 아버지 헨리 리델(Henry Liddell)의 부고를 받았고.
“여러모로 한 시대가 저물어 간단 느낌이 많이 듭니다.”
“······뭐, 그렇지요.”
나는 라이오넬 윌터 로스차일드의 말에 조용히 얼버무렸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벨에포크라 불렸던 시기.
이 시기가 지나고, 지구를 다 정복하게 된 인류는 우당탕탕 20세기를 맞게 된다.
광기와 피와 철의 시대.
하지만 동시에, 발전과 발견과 떡상의 시대.
아직 인류는 개발할 곳이 많이 남았고, 해결해야 할 일도 많으며, 발견해야 할 것도 많으니까.
나는 그 시대를 대비할 뿐이다. 일개 개인이자, 고작해야 책을 팔 뿐인 작가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진 않지만······ 그래도 적어도 내게 소중한 사람들 정도는 지켜야 하지 않겠나.
“앞으로 또 뭔가 투자할 만한 곳이 있으면 혼자만 알지 말고 얘기 좀 해 줘요.”
“하, 하하. 예. 물론입니다.”
윌터는 그렇게 말하며 떠나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생각했다.
흐음, 또 뭐 떡상할 게 있던가? 아직 발견 못한 게 뭐 있지?
그렇게 이것저것 고민하며 신문을 뒤적이던 그때.
“응?”
내 눈이 한 곳에서 멈춰 섰다.
신문 1면에 널려 있는 활자들.
그것은 이곳 영국이 아닌, 이집트의 소식이었다.
[거기 봉인된 문이 있었다. 그 문을 열자 우리 앞의 수십 세기가 사라졌다.>“어라?”
이 문구, 어디서 많이 봤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삽화에 뜬 익숙하기 그지없는, 하지만 흑백이라 낯설기는 한 그 커다란······ 황금의 마스크를 보고선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 룩소르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 62번째 무덤 발견!!> [고고학 발견 최초, 단 한 차례도 도굴되지 않은 가장 완벽한 무덤!>“어, 이거 설마?”
틀림없었다.
그건 근대 역사 이래 가장 유명한 파라오.
영광과 저주의 대명사.
“투탕카멘?”
투탕카멘의 무덤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