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62)
“교수님, 교수님이 번번이 말씀하시는 거 있잖아요.”
“머리, 꼬리를 몽땅 자르면 그게 쇠고기인지 말고기인지 알 수 없는 법이라네, 그레이스 양.”
“역사에 경의를 표하라는 거요.”
그레이스 그레인저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또 흰소리로 넘어가려고 하지.
“어떻게 하란 얘기예요, 그거?”
“흐음, 별거 없는데.”
읽던 책을 덮고, 딕터는 또 며칠 동안 깎지 않은 더부룩한 수염을 쓸며 답했다.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이 우리 이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웃이요?”
“그래. 자네는 옆집 사람이 몸살감기에 걸려서 골골댄다고 그 집 장롱 속 금가락지를 막 가져오나?”
“대체 사람을 뭐로 보시는 건가요.”
어이없다는 듯, 그레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에 너털웃음을 터트린 딕터 박사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그런 거라네. 남의 것을 허락 없이 가져온다면 영락없는 도둑질이지. 아주 당연한 상식이라네.”
“그러면 애초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문제잖아요.”
“그래서 중요한 걸세! 원래 우리 학자라는 일이 그런 거야. 살짝 왼쪽으로 가면 무뢰배요, 살짝 오른쪽으로 가면 선진적인 지식인이지.”
껄껄 웃으며 답하는 딕터의 모습을 보며 그레이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제 얼굴에 침을 뱉는 듯한 표현이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무엇보다 그 왼쪽으로 가는 아슬아슬한 행동이라는 게 딕터 자신이 제일 많이 하는 짓 아니던가.
분명 본국에 있는 던컨 학장이 저 소리를 들었다면 입에서 불을 토하며 사흘 밤낮을 조리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딕터는 유쾌하게 흥얼거렸다.
“그러니 우리는 더욱 조심하고, 앞뒤를 명확히 따져야 한다네. 물욕을 버리고 진실만을 추구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하고.”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아무튼 딕터는 덮은 책을 햇살이 드는 고풍스러운 책상 위에 놓으며 말했다.
“요즘 것들은 그 기본을 지키려 들질 않아. 일단 저질러 놓고 나중에 회개하면 된다 생각하지. 하지만 그들은 결코 디스마스가 될 수 없네. 그자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묶였을 때 회개 받을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건 없네. 그저 진심으로 제 잘못을 뉘우쳤기 때문이지.”
딕터는 말은 잎끝에 불을 붙여 쭈욱 빨아들였다. 그리고 이를 크게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즉, 마지막까지 근본적인 마음가짐이 잘못된 자들은 제아무리 면죄부를 산다 한들 베드로 앞에서 떳떳할 수가 없네. 최소한 난 그리 믿는다네.”
생각보다 더 진지한 답변에 그레이스는 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뒀다가 유실되거나 무너졌던 경우도 많잖아요. 그건 괜찮은 건가요?”
“뭐, 실제로 그런 일이 없진 않지. 장물로 팔리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게 된다면 물론 많이 안타깝긴 하겠지만······.
딕터는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그 또한 사람의 역사지.”
난 꽃병에 꽂혀 있는 꽃보다 꽃밭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하거든.
그는 그리 답했다.
“뭐, 그리고 이웃이 제집을 못 지킬 정도로 어렵다면, 여유 있는 쪽에서 좀 도와주면 될 뿐 아니겠는가. 꽃밭이 망가지지 않도록. 예수께서도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말일세.”
“······그거면 될까요?”
“그거면 족하다네. 그레이스 양.”
그것도 사람 사는 도리잖나? 딕터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
대영박물관 최고의 이집트학 전문가, 어니스트 A. 월리스 버지는 플린더스 페트리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고고학이 도굴학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
대영박물관이 대영장물관이란 소리를 듣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의외로 이건 제국주의와도 관련이 없었다. 엘긴 마블(Elgin Marbles)이야 돈 주고 사 오긴 했지만, 결국 장물을 산 거 아니냐는 비판에는 할 말이 없으니까.
그리고, 그래서 더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
‘다른 인간도 아니고, 페트리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월리스 버지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이쪽이었다.
‘이집트 고고학의 아버지’, 윌리엄 매튜 플린더스 페트리.
그와 동시에 그는 매우 격렬한 인종 차별주의자였고, 우생학 지지자였다.
오죽하면 ‘이집트 문명과 신화는 후기 선사 시대에 이집트를 정복한 메소포타미아의 인도―아리아 계가 만든 것이다’라는, 이른바 ‘왕조 인종 이론(Dynastic race theory)’을 주장했을까.
이유? 간단하다. ‘열등한 아프리카 토착 원주민이 이런 찬란한 문명을 일궜을 리 없다’라고 그 비이성적인 편견을 논리로 포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월리스 버지는 이에 반대했다.
그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집트 문명의 발전은 나일강 상류가 하류보다 훨씬 빨랐으며, 그들의 신화는 메소포타미아 최초의 문명인 우루크의 신화보다는 본질적으로 아프리카 북동부와 중앙부의 종교에 더 가까운 것이 팩트였으니까.
그런데······.
“편견 때문에 과학적 증거를 무시하던 인간이 인제 와서 고고학의 윤리성을 주장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페트리 당신이!?”
물론 월리스 버지 자신 역시 ‘그럼 댁은 그걸 지적할 자격이 되냐’라고 하면 할 말은 없었다.
애초에 ‘대영장물관’의 이집트학 최고 권위자라는 말이 무슨 뜻이겠는가? 앞뒤 안 가리고 유물이란 유물은 전부, 그게 도둑질한 장물이든, 밀수품이든 가리지 않고 사들였단 뜻이다.
그 과정에서 밀반입, 세관 관계자들에 대한 뇌물, 현지 시골 사람들이나 유물관리 기관에의 청탁 등, 온갖 불법이 자행되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월리스 버지는 당당했다.
“세상 모든 유물은 우리 대영박물관이 소장해야 해!! 세계 제일의 국가 대영 제국이 아니면 누가 그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유물들을 올바르게 연구할 것이며, 또 올바르게 세상에 알릴 거냔 말이야!!”
물론 투탕카멘의 유물 중에서는 딱히 문헌이 나오지 않아 유물로서 유추할 만한 것밖에 없고. 그건 이미 영국령 이집트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가?
여기서 물러서면 대영박물관에선 정말로 영국 땅에서 나온 것만 들어올 판인데.
그렇기에 월리스 버지는 이미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야 한다’라는 사설을, 입이 닿는 모든 언론에 뿌렸다.
하지만, 이에 답을 준 사람은 룩소르의 플린더즈 페트리가 아니었다.(물론 이집트 술탄국 정부에선 평소보다 많은 항의 서한이 왔지만, 당연히 언제나처럼 무시했다.)
그것이 온 것은 다름 아닌.
─안녕하십니까, 친애하는 대영장물관, 아니 박물관 귀하.(해석 : 야 이 마더퍼커 새끼들아)
─대영 제국의 외무부와 재무부, 궁내부를 대신하여 식민부에서 보내드립니다.(해석 : 기껏 간신히 오스만한테서 이집트 떼어 내고, 운하 사서 꿀 빨고 있는데 지금 너희들이 감히 외교 문제를 일으켜? 니들, 거기 왕실 재산도 담보로 걸려 있는 건 알지?)
─귀 박물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해석 : 뒈질래?)
─감사합니다.(해석 : 잘하자, 응?)
식민부가 태클을 걸어왔다.
현재 대영제국을 지탱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대권력의 총아.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이집트는 대영제국의 부드러운 아랫배일 수밖에 없었다.
디즈레일리의 전설적인 수에즈 코인 매입 비용만 1억 프랑(=400만 파운드). 담보는 대영제국 자체.
이 투자 비용을 뽑기 위해 오스만 튀르크에게서 이집트를 뜯어내고, 반란과 부패를 모조리 진압하고, 그렇게 간신히 안정화시킨 게 고작 몇 년전.
이제와서 무덤 하나 때문에 이 모든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 없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저 4줄에 함축되어 있었다.
월리스 버지가 국가 권력의 무도한 폭력에 발광하든 말든, 대영박물관은 조용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영국은 평화로웠다.
***
[투탕카멘의 유물, 이집트 박물관(Egyptian Museum)으로 들어가다!> [카나본 백작, 박물관 추가 건설 투자 확정!> [플린더즈 페트리 교수, “세계 최대의 고고학 박물관이 될 것”> [(이집트의 술탄, 아바스 힐미 2세 파샤와 악수하는 카나본 백작 조지 허버트의 사진)>“흐으음······ 잘된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워드 카터가 발견한 투탕카멘의 보물은 내가 기억하기로 아마 세계 1차 대전 이후 자주독립했던 이집트 왕국이니까 간신히 지켰던 것일 텐데······.
근데 아직 전쟁도 안 터졌는데 이집트에 술탄이 있다? 술탄이랑 칼리파가 별도로 존재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국왕이란 뜻인데 이집트에 술탄이 있다는 건 독립국이란 뜻인가······ 뭔가 좀 다른 거 같기도.
아무튼 무척이나 복잡했다.
모르겠다.
중동 쪽 역사는 잘 모른다고. 특히 근현대사 쪽은.
나중에 밀러 씨나 로스차일드 쪽에 강의 좀 들어 봐야지.
그보다 중요한 건.
“······생각보다 반발이 적다?”
이게 내 가장 큰 의문이었다.
아, 물론 대영박물관에서 기함하면서 사설 낸 건 봤다. 근데 그 정도도 없으면 대영장물관이란 소리를 들었겠냐.
내가 반발이 적다는 건 다른 쪽. 다름 아닌 대중들이다.
“너무 조용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문젠가?”
“아뇨, 그건 아닌데.”
당연하지만 아직은 대중들의 반응을 앙케이트로 조사하는 시대가 아니다. 무슨 이슈 터질 때마다 전화기 돌려서 하는 여론 조사? 전화기 자체가 사치품인 시대에 무슨, 조사기관인 갤럽의 창시자 갤럽 박사조차 응애다······ 아니,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나?
하여튼 그래서 내가 찾은 사람은 바로 조지 뉸스였다.
[스트랜드 매거진>을 비롯한 잡지의 왕이라고 불리는 이 사람이라면, 여론의 향방을 알려 줄 수 있으리란 기대였고.“아니, 자네가 그렇게 만들었으면서 뭐가 문젠가?”
“예? 저요?”
뜬금없는 답변만 돌아왔다. 아니, 내가 뭘?
하지만 조지 뉸스는 오히려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했다.
“[딕터 박사>에서 그렇게 사람 사는 도리를 설파해 놓고, 그걸 보고 배운 독자들이 왜 그렇게 착한지 물어보는 겐가, 지금?”
“아니, 그거야······ 예수님 말씀은 다들 좋아하기 때문이잖아요?”
웹소설은 장르문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중문학이기도 하다.
양쪽에 겹치지 않으면 도태되고 잊히다 보니 혼용되긴 하는데, 사실 정의상으로는 조금 다르다.
순수문학이 워낙 배타적이다 보니 그 외 분야가 하나로 묶이는 감도 있고.
아무튼 대중문학은 대중 입맛에 맞는 글이다. 그래서 오히려 순수문학보다 훨씬 더 보편타당한, 두루뭉술한 도덕론을 추구한다.
쉽게 말하면 인터넷 유머글 같은 거다.
커뮤니티 성향과 무관하게 맘 편히 웃을 수 있는 유머 글은 어딜 가나 ‘좋아요’를 받을 수 있다. 웹소설이 안전빵으로 놓고 쓰는 도덕률이 그거다.
뭐, 지난번 [바바 야가>처럼 대놓고 피카레스크물을 표방하면 모르겠는데, 그쪽도 나름 ‘사실은 이 녀석도 불쌍한 녀석이었어’ 정도는 깔고 들어가니까.
그래서, 평범하게 쓴 거다. 그냥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당연한 것들을······ 거기에 영국이라는 특성상, 야매-기독교적 교리를 잘 섞어서.
하지만 조지 뉸스는 그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막연히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성경에서 본 것은 다르지.”
“으으음······.”
“솔직히 학교에서 글이나 간신히 떼고 나온 사람들이 성경을 읽었으면 얼마나 읽었겠나? 게다가 거기 나온 비유는 또 어떻고? 괜히 종파가 생긴 줄 아는가? 보통은 해석이 다 다르고, 심지어 이해를 못 하기도 한다네.”
그렇기에 이를 이해시키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느니.
조지 뉸스는 낙타 흉내를 내며 그리 말했다. 그러니까 침을 튀겼단 소리다.
“막말로, 낙타를 직접 본 사람이 이 영국 대중 중에 얼마나 있겠나.”
“그야 그렇긴 한데······ 그런 말씀 하셔도 돼요? 명색이 목사님 아드님이셨으면서.”
“그래서 하는 말이야. 솔직히, 요즘 것들이 노는 데만 바쁘지 않나. 예수님의 말씀도 풀이해 줘야 알아먹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 있을 수도 없지. 내가 괜히 신문사를 세웠다고 생각하는 겐가!?”
고것 참······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뭔가 라떼 이즈 홀스스러워서 좀 꼰대 같으시네요.
“아무튼, 알겠나 한슬!?”
영국 대중 미디어 개념의 창시자, 잡지의 왕, 조지 뉸스는 팔을 벌려 선창하듯 말했다.
“자네나 아서의 일은 단순히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쓰는 것만이 아닐세. 사람들이 이제껏 머리로만 알고 있던, 혹은 알지도 못했던 새로운 도덕률을 각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지!”
“흐음.”
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요컨대.
“신작 하나만 더 해달란 말씀이죠?”
“젠장, 그래! 그놈의 [바바 야가> 하나로 신규 잡지 매출량을 안정시켜!? 자네는 대체 어디서 그런 발상이 샘솟나!?”
“아니, 고작 그 단편 하나 덕이겠습니까.”
신인들이 잘한 거지.
하지만 뉸스 이 양반은 ‘아직 나는 배가 고프다!’를 당당히 외치는 양반이었다.
“뭐든 좋아! 나도 매출! 매출을 더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게! [문명의 충돌> 같은 거!!”
“역시 그게 목적이었군요.”
“당연하지! 젠장, 카드 쪼가리만 팔아도 돈이 우수수 떨어지는 꼴을 내가 언제까지 손가락만 빨고 봐야 하나!?”
허허, 참. 아무리 봐도 영국보단 미국에 있어야 할 분이야.
나는 콧잔등을 긁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러면 뭐, 하나 던져 드릴까? 슬슬 시동을 걸어도 되겠다 싶긴 하니까.
“그러면 일단, 생각하고 있는 아이템이 하나 있긴 한데······.”
“오, 그럼 그렇지. 그래. 뭔가!? 잘만 되면 아예 우리 회사 지분까지도 넘겨주지!”
“뭐, 별건 아니고요.”
나는 씨익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코미컬라이즈(Comicalize), 어떠세요?”
[ 162. 고고학의 발전을 위하여(2) > 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