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64)
알폰스 무하의 여동생, 안나 무하가 그림을 배우게 된 경위는 오빠 알폰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렸을 적, 남매의 어머니 아말리에는 남매를 사랑으로 키웠지만, 그들이 살던 곳은 시골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장난감을 사 주는 대신, 연필이 달린 목걸이를 만들어 선물했다.
재능이 있던 오빠 알폰스는 그것으로 그림을 그렸다. 내성적인 성격의 안나는 그것을 옆에서 보고 자랐고, 자연스럽게 화가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재능의 차이를.
물론 성별의 문제도 있긴 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인상파의 메리 카사트(Mary Stevenson Cassatt)만 해도 여자에, 미국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당당히 활동하고 있었으니까.
진짜 문제는 그녀의 재능이 오롯이 그림을 따라 하는 데에만 있었다는 것.
─으음······ 이 주제로 이런 그림을 그렸다고?
─으으······ 미안해, 오빠······
─사과할 게 아냐. 음······ 따라 그리거나, 좀 더 명확한 주문을 한 그림은 괜찮은데.
그 알폰스 무하조차 지나치게 상업적이란 비판을 받을지언정 디자인이나, 구도적인 창작의 영역에서는 되레 극찬받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안나 무하의 모방에만 특화된 회화는 화가로서 홀로 서는 데에는 큰 문제가 있는 셈이었다.
그래, 그녀는 훌륭한 ‘직공’이긴 했으나, 훌륭한 ‘예술가’는 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오빠의 밑에서 도제로서만 그림을 그리다가 시집이나 가야 하는 것인가······ 싶었던 시점.
‘그’가 왔다.
─좋네요. 그럼,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예?
─안 그래도 이번부터 단행본에서 삽화를 대대적으로 늘려 보려고 합니다. 알폰스 무하 작가님. 제 삽화가가 되어 보시겠습니까?
한슬로 진.
안나 무하가 매일 밤, 등불 아래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을 위로해 주는 책들을 쓴 사람.
그가 오빠를 스카웃하러 온 것이다.
물론 알폰스는 너무 바빴고, 따라서 거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지만······.
“그래서 너를 대신 보내면 어떨까 해, 안나.”
“에? 어?!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
안나는 알폰스의 제안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오빠의 대신이라니······ 화가로서는 반푼이나 다름없는 자신이 과연 그래도 되는 건가?!
하지만 알폰스는 신뢰감이 가득한 눈으로 여동생을 보며 말했다.
“뭐, 0부터 쌓아 올리는 창작이라면 나도 못 맡겼겠지만.”
“으, 으으······.”
“소설의 삽화라면, 그렇게까지 무책임한 의뢰는 들어오지 않을 거야. 전문 편집자도 붙을 거고. 그 정도라면 너도 충분히 할 수 있겠지. 아니, 오히려 나보다 더 잘 할 수도 있을 거야.”
거기에 알폰스는 게다가, 라고 덧붙이며 말을 이었다.
“너······ 좋아하잖아? [피에르 페리스>.”
“그야, 좋아하지만······!”
눈만 감으면 소설 구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 풍경을 당장 그려낼 수 있을 정도다.
어떻게 보면 이 일은, 그녀에게 있어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 동생의 모습에 알폰스 무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됐네.”
“으음······!”
“괜찮아, 내 동생.”
알폰스는 그렇게 말하며 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라면 충분히 잘할 수 있어.”
“오빠······!”
그리고 도착한 영국에서 문을 연 안나 무하의 스튜디오는······.
대박을 터트렸다.
“호오. 이 삽화, 느낌 있는데요?”
“아르누보 화풍이긴 한데, 동네에서 어설프게 따라 하는 것들보단 훨씬 기깔 나네.”
“이보시오, 무하 씨. 혹시 벤틀리 출판사 말고 다른 출판사 의뢰도 받습니까?”
“엣, 어, 잠시만요······!”
벤틀리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템플 바>와 [위클리 템플>, 그리고 최근 출간을 시작한 [영 템플>.
[던브링어>부터 시작해, 조지 뉸스가 의뢰를 맡기기 시작한 [스트랜드 매거진>과 [월드 와이드 매거진>.연극판 [피터 페리>의 대형 포스터부터 시작한, 사보이 극장의 신작 오페레타 포스터.
기본적으로 그녀의 직공으로서의 능력은 이미 반쯤 검증되어 있었다.
게다가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작품들과 전속 계약을 맺어서 사방팔방에서 보이는데다, 최신 트랜드에 제일 어울리는 유려한 그림체.
모든 조건이 맞춰지자, 그녀의 그림은 날개 달린 듯 팔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유명세는 당연히 또 다른 의뢰를 낳는다. 상식적으로 이렇게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그냥 놔 둘 사업가들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
“실례합니다, 무하 씨. 로열메일(Royal Mail: 영국 우체국)에서 왔습니다만, 혹시 우표 디자인은 생각이 없으신지―.”
“브리티시 레일(British Rail)이오. 여행 광고 포스터를 의뢰하고 싶소만.”
“반갑습니다, 필립 모리스(Philip Morris : 영국의 담배회사)에서 왔는데요―.”
“하, 한 분씩! 한 분씩 와 주세요!!”
그녀가 평생 꿈꿔 보지 못한, 거대한 규모의 대기업에서 쏟아지는 의뢰의 향연.
그렇게 끊임없이 의뢰가 지속되자, 그녀 역시 이제는 적당히 괜찮은 구도나 자세를 디자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창의적인 무언가는 아니었으나, 모두가 보고 만족할 수는 있는. 이른바 학습된 디자인이었다.
수많은 담금질 끝에, 그녀도 반쪽이나마 자립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모두가 한슬로 진과 오빠 덕분이다. 안나 무하는 언젠가, 반드시 두 사람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때였다.
“실례합니다, 안나 무하 씨. 만화 좀 그려 보시겠어요?”
“하, 한슬로 작가님? 마, 만화요!?”
그녀가 존경해마지 않는 한슬로 진 작가가, 새로운 일거리를 가지고 온 것은.
***
잡지 연재의 중흥기이자, 펄프 픽션의 중흥기인 19세기 말.
이 시대에서 소설 작가로 데뷔, 그리고 곧바로 성공하고 나서 종종 든 생각이 있다.
바로 이 시대에 만화를 떨구면 어떨까―라는 생각.
뭐, 웹툰화에 대한 웹소설 작가로서의 오랜 욕망도 있긴 했지만, 솔직히 너무 블루칩 아닌가?
[슈퍼맨>도 [아이언맨>도, 심지어 용구슬을 찾는 만화도 없는 시대에 그걸 떨군다면? 사업자로서든, 덕후로서든 너무 가슴 뛰는 일 아니냐고.그런데 문제는, 19세기 말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 만화(Comic)요? 이런 거 말씀이십니까?
─······있네?
과거, 벤틀리에게 제안했다가 까였던 이유.
[퍼니 포크스(Funny Folks)>, [펀치(Punch)>, [일러스트레이티드 칩스(Illustrated Chips)> 등.만화의 시초라고 할 만한, 컷 분할을 통해 내용을 전달하고, 간략화된 캐릭터들이 서사를 이끌어 나가고, 대사를 써넣어 내용을 전개해 나가는 초창기의 만화들이 이미 있었다.
물론 기법적 차이는 그쪽으로는 아마추어인 내가 봐도 여실했다.
컷 분할은 재미없는 3×4짜리였고, 말풍선(speech balloons)이 없이 대사만 나열했으며, 명암의 배치는 전혀 없는 수준의 단순한 캐리커처다. 심지어 집중 선이라거나 그런 것도 없더라.
요컨대 연출적 기법의 차이인 셈이다.
이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쌓이는 내공, 스킬인 셈이니까, 19세기 말의 만화에 그런 걸 기대해도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여기에 내가 아는 그쪽 연출이 팍팍 들어간 만화를 도입한다면, 성공은 떼놓은 당상일 텐데─라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은 그리 쉽지 않은 법.
“작가님.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요?”
“예? 뭐가요?”
“그게······ 출력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라서······.”
번지고, 채워지고.
실질 엉망진창으로 출력된 원고.
아직 충분치 못한 기술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만화라는 존재, 그리고 관련된 것이 있었음에도 그게 충분히 발전되지 못한 것이 기술의 차이라니······.
“쩝, 어쩔 수 없죠.”
결국 나는 일단 안나 무하를 일러스트레이터로만 놀려 뒀다. 일단은 스튜디오를 키우라고 해둬야지. 다른 건 모르겠고, 만화도 어느 정도 사람이 필요한 일이니까.
“그래서, 그 돌풍을 하필이면 내게 얘기하는 이유는 뭔가? 자네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리처드 벤틀리 주니어를 내버려 두고 말일세.”
“아니, 왜 좋은 안건을 물어다 줘도 그러시나요.”
“아니, 뭐 순순히 궁금해서 그렇지.”
“이유가 없진 않죠.”
나는 손가락 두 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첫째로, 코미컬라이즈를 하려면, 아무래도 연속성이 없는 옴니버스(Omnibus) 시리즈가 나을 것 같아서요.”
“흐음. 연속성이 없다라.”
조지 뉸스는 히죽 웃었다. 옴니버스란 말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당연히 ‘그거‘지.
“[셜록 홈스>를 생각하고 있는가?”
“예, 맞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화 연출 기법을 시험하기엔 더없이 훌륭한 소재. 그 이름값 덕에 홍보를 안 해도 신규 런칭이 쉬울 거고, 그렇다고 전투 씬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만화화하기도 쉽다.
“물론 제 경우도 [바바야가>나 [승리의 여왕> 같은 단편은 할 수 있겠지만, 그건 단발성 연재겠죠.”
“크흐흐흐. 그래서 내게 맡긴다?”
“예. 게다가 [영 템플> 하나 런칭하는 데도 전전긍긍해야 하는 벤틀리 출판사와 달리, 뉸스 사장님이라면 이런 만화 잡지 하나 런칭하는 것쯤은 쉽지 않습니까?”
“흐흐. 혹시나 망했을 때 손해 보기 싫다는 욕심이 보이는군. 벤틀리 출판사 대주주 나리.”
어마나. 들켰네. 나는 히히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뭐, 사실 그게 두 번째 이유이긴 합니다.”
“그래, 그 이유가 뭔가?”
“등사기(mimeograph)가 필요합니다.”
“흐음.”
쉽지 않은 이야기에 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1886년, 우리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이미 ‘자동화 인쇄’(Autographic Printing) 기술, 정확히 말하면 등사판이라고 이름붙여질 기술을 발명했다. 이름붙인 건 다른 사람이지만.
그리고 여기에 타이핑이 가능한 스텐실, 파피로그래프(papilographic) 기술은 1895년에 특허가 출원되었고.
즉, 인쇄 기술이 내가 좌절했을 때에 비해 발전되긴 했다는 뜻이다.
“근데, 벤틀리 출판사로는 자금력이 애매하죠.”
“무슨 말인지 알겠군.”
최신 기술의 한계다.
상용화되기까진 시간이 걸리고, 벤틀리 출판사에서는 이게 나오자마자 쓸 수 있을만큼 탄창이 충분하지 못했단 거지.
하지만 눈앞의, 잡지왕이라 불리며 [스트랜드 매거진>을 비롯한 영국 최대의 잡지회사, 뉸스 출판사 사장님은 어떨까?
“과연, 그래서 나인가.”
뉸스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였다. 그리고 그 역시도 씨익 웃어 보였다. 돈 냄새를 맡은 것이다.
“알겠네, 그렇다면 그 문제는 이쪽이 처리하지. 그럼 자네는······.”
“네, 다른 부분은 맡겨 주십시오.”
“좋아. 그럼 계약 체결이군.”
조지 뉸스는 음흉하게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얼마 뒤, [셜록 홈즈>와 [바바야가>, 그리고 [A.J. 래플스> 등, 탐정류 소설의 코미컬라이즈판을 담은 만화 잡지.
[디텍티브 코믹스(Detective Comics)>가 출간되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