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67)
런던, 빅토리아역(London Victoria station).
─사람들이 지금 나를 비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언젠가 프랑스는 자신의 명예를 지켜 준 것에 대하여 내게 감사하게 될 것이다!(On peut me frapper ici. Un jour, la France me remerciera d’avoir aidé à sauver son honneur!)
에밀 졸라는 재판에서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말은 정말 끝내주게 멋있었다.
멋있었는데······ 그랬는데······.
“[개 같은 군바리 새끼들.>”
멋있으면 뭐 하나, 결국 유죄를 받았는데!
아니, 애초에 유죄라니? 그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대뜸 유죄를 받는단 말인가! 그것도 형사 재판에서!
물론 항소에서 뒤집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도 기술적인 문제에 불과했고, 상고에서 뒤집힐 것은 뻔할 뻔 자.
게다가 곧, 어마어마한 소송의 해일이 뒤이어 그에게 닥쳐왔으니······ 이걸 하나하나 대응하다 보면 정신이 먼저 나가 버릴 터.
그래서 결국,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추하게.
“통탄스럽군.”
에밀 졸라는 우중충하기 짝이 없는 영국의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대체 그가 사랑하는 조국, 위대한 프랑스의 자유, 평등, 우애(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신의 피조물인 모든 사람이 같은 자유와 평등을 누리기 위해, 그리고 그런 서로의 우애를 나누기 위해 혁명을 하고, 왕을 교수대에 올리고, 폐위시켜, 마침내 영세 공화국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던가?
애당초 그는 딱히 유대인과 관계가 있어서 목소리를 낸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가 직접 본 드레퓌스라는 유대인 장교가, 아니 그 스스로는 유대인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그저 성실하고 사교성이 없을 뿐인 무고한 시민이 린치 당하는 것을, 그것도 다름 아닌 그의 사랑하는 조국이 일방적으로 린치하는 꼬락서니를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입을 연 것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결국, 1851년의 콧수염쟁이 어릿광대(나폴레옹 3세)와 같은 나라에 망명을 와야 할 줄이야······.
물론, 후회는 없었다.
그가 직접 본 드레퓌스는 정말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랴.
“[후, 제기랄.>”
틱, 틱.
이제는 성냥까지 말썽인가. 평소처럼 담배 한 개비 입에 물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던 에밀 졸라는 맥없이 긁히기만 하는 나뭇가지에 화를 벌컥 내려 했다.
그때.
치익―.
“[필요하십니까?>”
“[응?>”
유창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들어 줄 만한 프랑스어에 에밀 졸라는 고개를 들었다.
말쑥한 차림, 이름난 메이커가 만든 실크햇 아래에, 이상할 정도로 길쭉한 체형과 맑은 살갗의 아시안이 있었다.
“······[주겠나.>”
“[분부대로.>”
어느 집 집사인가? 굉장히 절도 있게 불을 붙여 주는 모습에, 에밀 졸라는 맛있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며 생각했다.
하긴 아시아 사람이라고 해도, 그 동네에도 귀족 같은 것은 있을 테니······.
‘아니, 가만.’
그 순간 그의 머리에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를 보낸 선배, 쥘 베른이 했던 말이었다.
─한슬로 진 말인가? 음, 한 가지 확실한 건, 자네가 예상하는 그 어떤 모습으로도 나오지 않을 거란 걸세.
─아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우.
─내가 말해 주는 건 그 어떤 식으로든 선입견을 주게 돼. 그러니 가서 직접 보게나.
······확실히, 이런 모습이라면 무슨 식으로든 그가 예상치 못했으리라는 것은 분명한데.
에밀 졸라는 미심쩍다는 듯, 그 아시안 청년에게 물었다.
“······[음. 혹시─ 한슬로 진, 맞는가?>”
“위(oui).”
청년이 공손하게 손을 모았다. 티 없이 맑게 웃는 그를 본 순간, 에밀 졸라는 갖고 있던 선입견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대단히 낯선 자.
눈앞에 있으면서도, 그는 문득 이 청년이 굉장히 멀리 있다고 느껴졌다.
‘쥘 베른 선배하고 비슷하고도······ 또 다른 느낌의.’
쥘 베른의 이미지를 대략 말해 보자면······ 같은 땅에 발을 디디고 있지만, 척추까지가 땅 위에, 시야도 머릿속도 저 먼 곳을 보고 그리워하는 느낌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청년은 뭐랄까, 발만 이 땅에 붙이고 있을 뿐이지 시야도 머릿속도, 그 아래의 척추까지도 저 멀리에 있는 듯한, 그런 기묘한 거리감과 이질감이 있다.
그리고 그 거리감은.
“······[흐흐, 그렇군.>”
에밀 졸라라는 작가의 안에서, 금세 호기심으로 탈바꿈한다.
대체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일까, 한 사람의 작가로서 에밀 졸라는 한슬로 진을 알고 싶어졌다.
“[에밀 졸라일세. 날 기다리고 있었나?>”
“[영광스럽게도, 예. 그렇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슬로 진은 그렇게 말하며 에밀 졸라와 손을 맞잡았다.
음, 방금까지의 울적한 기분이 싹 사라졌다.
이것만으로도 런던에 온 보람이 있는 것 같다. 프랑스의 정의는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다.
***
“[이곳입니다, 작가님.>”
“[오호라.>”
인사를 나눈 뒤, 내가 에밀 졸라를 모신 곳은 당연히 작가 연맹이다.
내가 미리 연락을 넣어 놔서 그런지, 연맹 건물 앞에는 이미 연맹 소속 작가들이 모여 있었고. 그중 대표가 바로······.
“허어, [진짜로 오셨군. 반갑수다. 버나드 쇼요.>”
“[오호, 그래. 자네 평론을 본 적이 있지. 펜 끝이 꽤 날카롭더군?>”
“[졸라 선배님 같은 분께 그런 말을 듣다니 영광이오.>”
같은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라서 그런가? 조지 버나드 쇼는 어느새 에밀 졸라와 굳은 악수를 나누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다지고 있었다.
흠흠, 훈훈하니 보기 좋구먼.
덕분에 에밀 졸라 작가님은 조지 버나드 쇼에게 넘기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 차를 세워둘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유일하게 작가 연맹에 어울리지 않았던 인물, 작가들 사이에 숨어 있던 라이오넬 윌터 로스차일드가 다가와 말했다.
“작가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졸라 작가님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에이, 아녜요. 말씀드렸다시피, 이것도 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나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라이오넬은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근데 이러면 내가 양심에 찔리는데······ 진짜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던 지라.
─예? 에밀 졸라 작가님이요?
─예, 그렇습니다. 염치 불고하고······.
─아뇨. 제가 영광이죠.
출발하기 전에도 이런 대화를 나눴고 말이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잖냐.
에밀 졸라.
모르는 사람에겐 그저 단순히 ‘드레퓌스 사건’에 끼어든 프랑스 최후의 양심 같은 사람 정도겠지만, 문학계에서는 그 이전에 이미 [목로주점> 시리즈, 그 중에서도 [제르미날(Germinal)>로도 충분히 업적작은 할 만큼 했다고 할 만한 작가다.
스스로 창안한 자연주의(Naturalism), 극단적인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이기도 한데, 그 말예가 바로 김동인과 염상섭, 그리고······ 현진건. 바로 그 [운수 좋은 날>의 작가다.
게다가 저 [제르미날>을 포함해, [나나>, [인간짐승>까지 세 작품이 전부 [목로주점>의 후속작으로, 한 가족의 3대가 살아온 역사를 있는 그대로 그려 낸 걸작이다.
한국으로 치면 [토지> 같은 종류의 군중 대서사시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거기에 [테레즈 라캉> 같은 공포 장르 소설로도 일가견이 있던 사람이니까 말이다.
단순히 순수문학 작가는 아닌 셈.
그리고 그런 사람이 영국으로 오는데, 내게 그 안내를 맡긴다고? 아, 이건 받아 줘야지. 받아 줘야 하고말고.
“저 역시도 존경하는 작가님이니까요. 영국에 계신 동안은 제가 책임지고 모시겠습니다.”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라이오넬은 그렇게 말하면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얼굴에 피로가 덕지덕지 묻은 것이,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만은 않은 모양인데······.
“혹시 프랑스 쪽 상황이 그렇게 안 좋습니까?”
“아휴, 말도 마십쇼.”
점수 좀 따려고 들어간 일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고, 라이오넬은 한숨을 픽픽 쉬면서 말했다.
“이 모든 게 전부 저희 유대인 때문이라고, 파리 전체가 몇 달째 불바다라고 합디다.”
“······그런가요.”
“정말,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혁명이랍시고, 반유대주의가 설 자리가 없답시고 거들먹거리던 프랑스에서 이런 일이 몇 달씩이나 계속될 줄은.”
라이오넬 윌터 로스차일드의 목소리가 적잖이 침울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무어라 답을 해 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역시 유대인은 몇백 년을 살아도, 유럽인과 부대끼는 것이 불가능한가 봅니다.”
“······그.”
그건, 이라고 말하려던 나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야 나는 미래인이고 미래에서 갖고 온 지식도 있지만, 답을 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 사람들이 앞으로 무슨 시련을 거치고, 무슨 답을 내릴지 전부 알고 있지만─ 그 답이 오답이라는 것을 보고 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피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흐를 오답. 근데, 내가 그걸 대체할 정답이 있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고. 동시에 이 시기엔 그거 이상의 정답이 없다고 받아들여지는 것도 사실이니까.
이래저래 타인이 껴들기에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사항이다.
어쩔 수 없지.
일단은 천천히, 당장 해야 할 일부터 시작하자.
“그러면 일단, 에밀 졸라 작가님 신변부터 보호하면 되는 거죠?”
“아, 예. 그렇습니다. 후. 유럽인들이 전부 저 에밀 졸라 작가님 같은 사람들이었다면······.”
“아무튼 그러면 당분간은 런던에서 지내시게 될 테니, 비용은 나중에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뭐, 어차피 결론부터 말하자면 망명한 상황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기분까지 꿀꿀할 필요가 있나?
그렇게 난 한국에 놀러 온 일본인 친구 관광을 시키는 기분으로 가볍게 생각했다.
자, 그러면 어딜 모시고 다니면 되려나?
평생을 가장 낮은 곳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려 노력한 작가님이니, 이스트엔드 쪽? 아니면 그냥 평범하게 웨스트민스터 사원 같은 관광지?
뭐, 시간은 많으니까 말이다. 찬찬히 생각해 보면 되겠지.
그때였다.
“한슬.”
“아, 코난 도일 선생님.”
웬일로 늦으셨네? 그렇게 물을 겨를도 없이, 아서 코난 도일은 다짜고짜 내게 물었다.
“에밀 졸라 작가님은 벌써 오셨나?”
“예? 아, 예.”
“이런······.”
아니, 무슨 일인데?
의아해하는 나에게 낭패한 얼굴의 아서 코난 도일이 내게 신문 몇 부를 내보였다.
그것은 바로.
[작가 연맹이 우방국의 범죄자를 숨기다!> [여왕 폐하의 계관시인은 위대한 연합왕국의 외교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가는가?>“······이건.”
“사설일세.”
뭐, 거기까지는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쓴 사람이 문제다. 나는 탄식과 함께 그 이름을 내뱉었다.
“왕립문학회.”
잠잠하던 그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