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73)
런던, 어딘가의 바.
“다들, 우리가 왜 모였는지 알 것이다.”
평범한 무역회사 부장이자,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즈의 간부인 제임스가 귀기 어린 눈으로 말했다.
기실, 최근 몇 년간 그는 퍽 좋은 기분이었다.
경기는 살아났고, 회사에서는 승진했으며, 셋째인 아들은 무사히 태어났다.
그의 빛, 그의 소금, 그의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셜록 홈스>도 콜라보레이션 에피소드 이후로 완전히 부활했으며, 현재는 정력적으로 월간 연재를 하며 순항 중.
그 콜라보 이후 원수 같았던 한슬리언들과의 사이도 그럭저럭 데면데면하게는 지낼 정도로는 회복했다. 어쨌든 한슬로 진도 재밌는 글을 숨풍숨풍 낳는 작가이니 마냥 배척하긴 힘들다.
게다가 최근에는 그에 못잖게 볼 만한 글들이 많이 나와서, 셜로키언 이전에 한 사람의 독자로서는 그저 풍요로운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기분이 대대적으로 망쳐지고 있다.
다름 아닌, 저 건방진 바게트 개구리 놈들 때문에!
“감히 우리 영국의 자랑, 셜록 홈스를 이따위로 모욕해?!”
“있는 것도 제대로 간수 못하는 놈들이 왜 인제 와서 셜록 홈스를 막 갖다 쓰는 거야?!”
“당장 파리로 가세나!! 르블랑인지 르브랭(Le Brun: 갈색)인지 하는 놈을 파묻어 버리자고!!”
그리고 그런 분노는 당연히 제임스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다.
솔직한 말로, 셜로키언이라고 해서 오로지 [셜록 홈스>만을 읽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예외적인 팬도 있을지 모르고, 그 예외적인 팬이 이 나라의 왕세자이며, 남들 모르게 알 만한 모습으로 분노하고 있긴 했지만, 체통 때문에 이가 알려질 순 없다는 점은 사소한 오차 범위 내.
대다수의 셜로키언들은 한슬로 진의 [던브링어>도 겸사겸사 읽는 것처럼, [래플스 시리즈>도 읽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프랑스 소설도 번역되면 구해다 읽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나름, 모리스 르블랑에 대해 호의적인 시각을 가진 셜로키언도 어느 정도 존재했다.
뭐 요즘 남수단에서 어쩌고 하는 거야,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과 작가는 별개의 일인 것이고.
당장 내일 전쟁이 터진다 해도 오늘 한 권의 책을 더 읽고 싶어 하는 것이 그들, 셜로키언이고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즈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눈에, [아르센 뤼팽> 시리즈는 그럭저럭 봐줄 만한 요소가 충분히 있었다.
색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셜록 홈스와 에드먼드 에어하트를 반씩 섞어 놓은 것 같은 캐릭터가, 능수능란한 트릭으로 공권력을 놀려먹는 유쾌한 프랑스식 유머는 꽤 맛있었으니까.
[한발 늦은 셜록 홈스>에서야 뭐······ 사소한 고증 오류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봐줄 만했다.하지만 [금발의 귀부인>을 본 순간, 그들은 분노했다.
그것은 명백히 선을 넘어 있었다.
깔아뭉개고, 모독하고, 꼽을 주는 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그 신사 중의 신사, 영국 제일의 젠틀맨인 홈스가 레이디를 납치한다고? 심지어 그 에드먼드 에어하트조차 인정했던 바티츠의 달인이 그렇게 쉽게 제압을 당한다고?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나의 셜록은 이렇지 않아!!
이렇게 푸대접할 거라면, 대체 왜 등장을 시켰단 말인가?
이래서야 완전히 홈스가 뤼팽의 발판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이는 영국인으로서도, 셜록 홈스의 팬으로서도, 일반 상식을 가진 평범한 시민으로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선례가 있었기에 그 모습은 더더욱 부각되었다.
[던브링어>에서는 그렇게 양쪽의 매력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잘 화합시켰거늘, 이 모리스 르브랑이란 듣도 보도 못한 작자는 그것조차 못한단 말인가! 보고 따라만 해도 더 잘 쓸 수 있었을 거늘!당장에 이 삼류 작가 놈을 끌고 와 대국민 사과를 시키자며,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즈가 목소리를 높인 그때.
“자, 잠깐!!”
“뭐야, 버나드잖아?”
“어허, 왜 이렇게 늦었나! 영국의 신사가 함부로 지각해도 된다고 셜록 홈스에서 그랬던가!?”
“그건 오늘 갑자기 야근이 잡혀서 어쩔 수 없었······ 아니, 그보다 이걸 보게!!”
지각한 이레귤러즈의 회원은 천천히, 품에서 지하철역에서 막 구매해 가져온 잡지 하나를 들어 올렸다.
이레귤러즈의 셜로키언들은 당연히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 그게 뭔가?”
“[스트랜드 매거진>이 아닌데? 그렇다고 [템플 바>도 아니고.”
“[펀치>나 [카셀스 매거진>도 아냐. 굳이 따지면 지난번 그······ [코이누르>에 가까운데?”
“정답일세.”
숨을 몰아쉬며, 지각자는 설명했다.
잡지는 다름 아닌 작가 연맹의 신간 동인지로, 이름은 [젠틀맨 클럽(Gentleman Club)>.
여기에 실린 단편은 총 4편이었으며, 그 각각의 작가는 다름 아닌······.
“아서 코난 도일, 한슬로 진, 그리고 어니스트 윌리엄 호넝······!?”
라인업만 봐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본 이레귤러즈의 반응은.
“흐흐흐! 흐흐흐흐!”
“그렇지, 이래야 진정한 콜라보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지!”
“이걸 보게 될 그 삼류 작가 놈의 표정이 궁금하구먼!!”
그렇게 셜로키언들은 복수의 쾌감에 웃음을 지었다.
***
한편, 프랑스 파리에서는.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당연하지 않나, 그럼!”
피에르 라피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진지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외치듯 말했다.
“일단, 잡지부터 팔고 봐야 할 것 아닌가! 막상 쓸 땐 잘 써 놓고서 뭘!”
“아니, 그거야 시키시니까 일단 쓰긴 했는데요.”
모리스 르블랑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피에르 라피트는 혀를 차며 손에 든 원고를 만족스럽게 보았다.
제목은 [유대식 등잔>.
지난달 끝난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장편, [금발의 귀부인>의 뒤를 이을 또 다른 ‘아르센 뤼팽 VS 셜록 홈스’의 소설이며.
후세에 본격적으로 홈스를 디스했던 작품이자, 원작의 냉철과 이성의 화신 셜록 홈스는 완전히 사라지고 속 좁은 영국 혐성만 남은 희대의 괴작으로 악평받을 단편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쓰는 사람인 모리스 르블랑이라고 이런 걸 예상을 못 할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구요!”
본래, 모리스 르블랑은 순수문학을 추구하던 작가였다.
딱히 도덕적이란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다. 순수문학 작가라고 해서 장르소설 작가들보다 도덕적이란 법은 없다.
오히려 작가는 기본적으로 싸가지가 없다. 르블랑이 라피트보다 나이가 많은 건 둘째 쳐도, 아내가 이혼장을 날릴 때까지만 해도 작은 훈장 하나에 목숨 걸고 순문 쓰겠다고 고집부리던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 딸 때문에 잠시 고집을 꺾고 뤼팽을 쓰긴 했다.
그렇게 잠시 금전적 성취를 얻긴 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다른 배가 고팠다.
애초에 작가가 돈은 충분히 벌었으니 업계 전체에 무언가 이바지를 하거나, 한 번 정도는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모리스 르블랑도 마찬가지였다.
순수한 문학을 쓰고 싶다.
아니면 장르문학을 쓰더라도 적어도, 저 아서 코난 도일이나 페르(Pere : 아버지) 뒤마처럼, 어디 가서 질로 떨어지진 않는 소설을 쓰고 싶다.
그런 생각으로 [유대식 등잔>의 원고를 다시 보자······.
‘으윽, 뭐지? 이 쓰레기는? 내 이름 걸고 잡지에 팔린다고? 제정신인가?’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솔직히 이건, 이건 너무 개발 새발이잖아요! [셜록 홈스> 린치 빼면 독자들이 좋아할 요소가 하나도 없는데!”
“뭐, 그건 그렇지만.”
라피트조차 거기엔 별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봐도 [유대식 등잔>에서 등장하는 홈스 호소인은 아무리 봐도 홈스가 아니라 그냥 시건방진 해적 놈이었고, 추리의 퀄리티 나 그런 것보단 ‘얼마나 홈스가 막돼먹은 무뢰한이고, 그에 비해 뤼팽은 얼마나 신사적인가’에 집중한 단편이었으니까.
“이보게. 모리스 군.”
하지만 피에르 라피트는 출판인이자 저널리스트 이전에 사업가.
원 역사라면 1년 뒤에나 설립될 잡지사를 더 빠르게 창립하고, 8년은 더 뒤 1905년에 설립되어야 할 잡지를 출간한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시류를 읽는 눈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또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알겠나? 지금 프랑스는 위기에 빠져 있네.”
“그야, 뭐······.”
모리스 르블랑도 그 말에는 반박을 하지 못했다.
내우외환(內憂外患).
안쪽에는 유대 간첩들이 횡행하고, 밖으로는 프랑스의 자존심이어야 할 식민지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는 데 저 해적 놈들에게 막히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내각이 하루아침에 갈려 나가고 지난달, 지난주, 어제, 그리고 오늘 총리가 달라지는 이 상황이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그리고 모름지기, 난세에서 영웅이 탄생하는 법.
“그것은 왜냐? 난세가 영웅을 원하기 때문일세!!”
피에르 라피트는 당당히 외쳤다.
로마의 말기에 카이사르가 떠올랐듯, 국민공회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나폴레옹이 등장했듯.
도탄에 빠진 백성들은 혼란스러운 나라를 마치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한 번에 정리해 버리고, 다시 한번 평온한 내일을 가져다줄 알렉상드르 대왕을 원하게 된다.
······물론 알렉상드르도 나폴레옹도 끝이 좋다고 하긴 어렵지만, 피에르 라피트는 그런 얘기를 전부 숨겼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영웅이 꼭 누굴 밟고 올라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뭐, 그건 그렇지.”
라피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원고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좋아, 그러면 다음부터는 홈스를 등장시키지 않아도 되네.”
“정말······ 입니까?”
“물론이지.”
그야, 이 반영(反英) 감정도 슬슬 끝나 갈 무렵이니까.
라피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밖으로 공공연히 드러내진 못하지만, 현재 장르소설계의 양대 팬덤, 셜로키언과 한슬리언은 독일이 그랬듯 프랑스에도 존재한다.
당연히 파리의 셜로키언들은 아무리 나라를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도의를 저버린 모리스 르블랑을 증오하고 있으며, 살의가 가득 담긴 항의 서한을 수두룩하게 보내고 있다.
아마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들은 늘어날 것이다.
그뿐이랴. 에밀 졸라의 망명이야 그렇다 쳐도, 파쇼다 사건은 근본적으로 프랑스가 불리하기 그지없는 사건이다.
애초에 영국이 꽉 잡고 있는 나일강 일대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유럽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
실제로 새로이 외무장관이 된 테오필 델카세(Théophile Delcassé) 장관은 대표적인 반독 친영파 외교관.
아마, 조만간 두 나라 간에 해프닝이었다고 하고 끝낼 가능성이 높겠지.
‘쯧. 아쉽군. 돈 잘 벌렸는데.’
젊은 나이에 출판사 사장까지 올라온 사업가로선 정말 아쉽지만, 어쨌든 지금은 한발 물러나야 할 때.
작가의 멘탈 케어를 위해, 피에르 라피트는 천천히 모리스 르블랑을 구슬렸다.
“그러니까 딱 이번, 이번까지만 하세나.”
“이번······.”
“그래, 이번까지만 하면 다음 작품은 자네가 마음대로 써도 돼. 원하면 뤼팽이 아닌 다른 단편도 하나 갖고 오고. 내 얼마든지 실어 주지.”
“저, 정말이죠?!”
“그래. 그러니까 딱 이번 [유대식 등잔>까지만 해 봄 세나. 자네도 아직은 좀, 아쉽지······.”
모리스 르블랑의 두 눈이 흔들렸다.
정말 이게 마지막이라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조금씩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려던 그때.
“사장님, 택배가 왔는데요.”
“응? 택배? 다른 작가 원고인가?”
“아뇨, 책······ 잡지인데요.”
“잡지?”
피에르 라피트와 모리스 르블랑은 동시에 고개를 기울였다.
웬 책이? 그리고, 라피트는 그 잡지를 르블랑과 보지 말았어야 했다고 먼 훗날 생각했다.
그 잡지의 이름은 바로, [젠틀맨 클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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